[취재후] 강제징용 진상규명보다 개인정보가 중요하다고?

입력 2020.08.15 (07:01) 수정 2020.08.1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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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안 나오고 탄광 밑에 있었던 사람은 일본이 다 죽여버렸어요."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FOMO라는 소식지를 통해 해저 탄광 노무에 동원된 신영현 옹(96세, 부산 북구)을 알게 됐습니다. 19살에 일본으로 끌려간 신 옹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시모노세키시 소재 탄광에서 노무동원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모진 매질에 도망치다 맞아 죽어도, 죽는 것은 매한가지겠다고 생각했던 신 옹은 동료 2명과 함께 도망쳤습니다. 신 옹은 도망치지 못한 노무자들은 바다에 갇혀 죽었다고 당시를 기억했습니다.


■너무 늦은 정부의 기록

하지만,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설립된 역사관이 신 옹을 찾은 것은 광복된 지 75년 만이었습니다. 역사관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일일이 수소문해 찾다 보니, 늦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 취재하던 중 우연히 천안에 사는 일제강제동원 지킴이로부터 제보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행정안전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역사관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왜 행정안전부는 피해 생존자들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걸까요?

■행안부만 갖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서류'

문제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0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국외 일제 강제동원에 한해 위로금 또는 의료비를 지원해줄 수 있게 됩니다.

또, 진상 조사를 위해서 같은 해에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족합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한시적으로 설립된 위원회의 연장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위원회는 2015년 12월 31일 자로 폐지됐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국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진술과 자료는 행정안전부로 모두 넘어갔습니다. 폐지된 위원회의 사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2014년 6월 출범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는 피해자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피해자를 위한 사업할 때마다 행안부에 '요청해야'

재단의 한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유족지원 사업이든 연구사업이든 피해자 정보를 알아야 만나고 도울 수 있는데, 그 정보를 행정안전부가 다 갖고 있다 보니 사업을 할 때마다 몇 번씩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행안부에 물었습니다. 정보 제공이 어려운 까닭에 관해 묻자, 담당자는 "재단의 직원이 행안부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이라고 답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법률자문단, 만장일치로 "개인정보 제공해야 해"

생존자뿐만 아니라, 과거 재단의 유족지원 사업에서도 몇 차례나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행안부는 자문회의를 연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 4명과 재단, 행안부 직원이 참석한 당시 자문회의 보고서를 보면, 재단은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위원회 시절, 강제동원피해신고 22만 6천 건을 받았는데 이 정보를 받기 위해선 행안부로부터 수시로 개인정보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4명의 법률자문단은 만장일치로 "강제동원조사법 목적에 따라 행안부의 일을 재단이 하는 것이며, 재단의 여러 지원사업이 목적 외 사용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비춰봐도 위반 사항 아니야.

자문회의 정보 공개 만장일치를 근거로 정보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행안부에 다시 물었습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자문회의에서 나온 개인정보 협조는 '유족지원 사업'에 한정"해서 얘기했기 때문에 생존자 피해 진술은 다른 얘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자문회의에 참석한 백대용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유족지원 사업이든 생존자 피해진술 사업이든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자문회의에서 다룬 쟁점이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목적에 둔 개인정보 공개는 문제없다는 것이었기에, 행안부의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법을 확인해봐도,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 탓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3호를 보면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돼 있으며, 법 제17조 제1항 제2호에 의해서도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 범위에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제 3자에게 공유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위원회가 국내·국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피해 진술을 기록하고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특별법에 따라 개인정보를 수집했고 재단 역시도 위원회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유족 지원과 생존자 피해진술을 위해 피해자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해석입니다. 행안부의 '개인정보 위반'이라는 말은 변명에 가까워 보입니다.


■정보제공 거부는, 행안부 업무 태만 스스로 증명하는 일

재단과 행정안전부의 존재 근거를 찾아봤습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단의 설립 목적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한 문화․학술․조사․연구 등의 사업과 피해구제를 위한 활동을 추진함으로써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평화와 인권의 신장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행정안전부의 대일항쟁 강제동원 피해지원과 주요업무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결과, 일제강제동원 관련 피해진상조사 연구와 재단과 역사관 운영지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별법에 따른 행정안전부의 징용피해지원금을 받는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 수는 작년엔 4천여 명, 올해엔 3천여 명입니다. 한 해 사이, 1천 명이 떠났습니다.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 핑계로 강제징용의 진상규명이 늦어지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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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강제징용 진상규명보다 개인정보가 중요하다고?
    • 입력 2020-08-15 07:01:27
    • 수정2020-08-15 08:07:16
    취재후·사건후
"그때 안 나오고 탄광 밑에 있었던 사람은 일본이 다 죽여버렸어요."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FOMO라는 소식지를 통해 해저 탄광 노무에 동원된 신영현 옹(96세, 부산 북구)을 알게 됐습니다. 19살에 일본으로 끌려간 신 옹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시모노세키시 소재 탄광에서 노무동원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모진 매질에 도망치다 맞아 죽어도, 죽는 것은 매한가지겠다고 생각했던 신 옹은 동료 2명과 함께 도망쳤습니다. 신 옹은 도망치지 못한 노무자들은 바다에 갇혀 죽었다고 당시를 기억했습니다.


■너무 늦은 정부의 기록

하지만,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연구 목적으로 설립된 역사관이 신 옹을 찾은 것은 광복된 지 75년 만이었습니다. 역사관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일일이 수소문해 찾다 보니, 늦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 취재하던 중 우연히 천안에 사는 일제강제동원 지킴이로부터 제보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행정안전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역사관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왜 행정안전부는 피해 생존자들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걸까요?

■행안부만 갖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서류'

문제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0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국외 일제 강제동원에 한해 위로금 또는 의료비를 지원해줄 수 있게 됩니다.

또, 진상 조사를 위해서 같은 해에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발족합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한시적으로 설립된 위원회의 연장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위원회는 2015년 12월 31일 자로 폐지됐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국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진술과 자료는 행정안전부로 모두 넘어갔습니다. 폐지된 위원회의 사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2014년 6월 출범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는 피해자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피해자를 위한 사업할 때마다 행안부에 '요청해야'

재단의 한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유족지원 사업이든 연구사업이든 피해자 정보를 알아야 만나고 도울 수 있는데, 그 정보를 행정안전부가 다 갖고 있다 보니 사업을 할 때마다 몇 번씩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행안부에 물었습니다. 정보 제공이 어려운 까닭에 관해 묻자, 담당자는 "재단의 직원이 행안부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이라고 답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법률자문단, 만장일치로 "개인정보 제공해야 해"

생존자뿐만 아니라, 과거 재단의 유족지원 사업에서도 몇 차례나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행안부는 자문회의를 연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 4명과 재단, 행안부 직원이 참석한 당시 자문회의 보고서를 보면, 재단은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위원회 시절, 강제동원피해신고 22만 6천 건을 받았는데 이 정보를 받기 위해선 행안부로부터 수시로 개인정보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4명의 법률자문단은 만장일치로 "강제동원조사법 목적에 따라 행안부의 일을 재단이 하는 것이며, 재단의 여러 지원사업이 목적 외 사용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비춰봐도 위반 사항 아니야.

자문회의 정보 공개 만장일치를 근거로 정보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행안부에 다시 물었습니다.

행안부 관계자는 "자문회의에서 나온 개인정보 협조는 '유족지원 사업'에 한정"해서 얘기했기 때문에 생존자 피해 진술은 다른 얘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자문회의에 참석한 백대용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유족지원 사업이든 생존자 피해진술 사업이든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자문회의에서 다룬 쟁점이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사업을 목적에 둔 개인정보 공개는 문제없다는 것이었기에, 행안부의 논리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법을 확인해봐도,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 탓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3호를 보면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 돼 있으며, 법 제17조 제1항 제2호에 의해서도 '개인정보를 수집한 목적 범위에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제 3자에게 공유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위원회가 국내·국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피해 진술을 기록하고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특별법에 따라 개인정보를 수집했고 재단 역시도 위원회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유족 지원과 생존자 피해진술을 위해 피해자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해석입니다. 행안부의 '개인정보 위반'이라는 말은 변명에 가까워 보입니다.


■정보제공 거부는, 행안부 업무 태만 스스로 증명하는 일

재단과 행정안전부의 존재 근거를 찾아봤습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단의 설립 목적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한 문화․학술․조사․연구 등의 사업과 피해구제를 위한 활동을 추진함으로써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평화와 인권의 신장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행정안전부의 대일항쟁 강제동원 피해지원과 주요업무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결과, 일제강제동원 관련 피해진상조사 연구와 재단과 역사관 운영지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별법에 따른 행정안전부의 징용피해지원금을 받는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 수는 작년엔 4천여 명, 올해엔 3천여 명입니다. 한 해 사이, 1천 명이 떠났습니다.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 핑계로 강제징용의 진상규명이 늦어지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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