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창] 北경제원로 ‘박봉주’…전면에 다시 등장한 이유

입력 2020.09.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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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살의 북한 경제 원로 박봉주…. 그는 누구?

북한에서 서열 순위를 매긴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그리고 '3인자'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인물은 노동당 박봉주 부위원장입니다. 박봉주는 올해 82살로 고령의 당 고위간부입니다.

북한에서는 일명 '경제사령탑'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역할분담에 나선 이후 북한 파워엘리트 동향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박봉주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 출신·학벌 배경 없이 승승장구한 인물

박봉주는 1939년 함경북도 출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덕천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기계제작기사, 룡천식료공장 지배인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 관료 출신입니다. 1980년 6차 당 대회에서 박봉주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북한 엘리트 그룹에 진입합니다.

대부분의 북한 당 고위간부들이 김일성 종합대학이나 김책 공과대학 등을 나와 기용되는 것과 달리 박봉주는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나 학벌 배경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자수성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0년 초반 북한 개혁경제 주도적 이끌어


박봉주가 북한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고, 당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개혁경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 개혁 지시를 내리면서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이 조치로 북한은 기업들의 자율화를 높이고, 농업에서도 책임담당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때 경제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 박봉주입니다.

경제관리개선 조치 1년이 지난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봉주를 내각 총리직에 전격 발탁합니다. 실무에 능하고 개혁성향이 강했던 박봉주가 김정일 국방 위원장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경제건설이 절실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봉주를 적임자로 눈여겨봤던 건 경제 분야에서 그처럼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박봉주가 내각 총리에 발탁되면서 북한 사회에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합니다. 북한의 시장인 '장마당'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또 주민들의 근로의욕이 높아지면서 북한 경제 전반도 활기를 띠었습니다.

박봉주는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획일적인 계획경제 대신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경제 정책에서도 시장 경제를 시도합니다. 실제 2005년에 중국을 방문한 박봉주는 자신의 방문 목적이 경제에 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 당과 군부 반발로 지방 '좌천'


그러나 박봉주의 추진력은 곧 힘을 잃었습니다. 개혁 조치로 영향력이 축소된 당과 군부의 반발이 커진 것입니다. 결국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조직 지도부의 반발을 수용했고, 2007년 박봉주는 지방으로 좌천됩니다.

그렇게 지방으로 물러나 있던 박봉주에게 2009년 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북한 당국은 경제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전격적인 화폐 개혁을 단행하지만, 곧바로 실패에 봉착했습니다. 물가와 환율은 요동쳤고 주민들의 식량난은 가중됐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나자, 화폐 교환 조치를 주도한 노동당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공개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박봉주는 다시 핵심 엘리트 반열에 올라섭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권력을 승계받은 이후 박봉주를 내각 총리에 임명합니다. 다시 북한의 경제사령탑을 지휘하게 된 박봉주는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합니다. 이때부터 북한에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아파트 살림집이 잇따라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해 4월, 박봉주는 내각 총리직에서 물러납니다. 김재룡이 그의 후임으로 임명되고 박봉주는 실무에선 한걸음 물러나 당 부위원장 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박봉주가 여전히 경제 정책을 지휘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박봉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전면에서 나선 북한 경제 원로


지난해 12월,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북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됐을 때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황해남도 태풍피해 지역을 현지 지도하며 노동신문 1면을 차지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박봉주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북한사회에서 여느 관료보다 적극적이고 섬세하게 북한 경제를 살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북한 내 당과 국가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 주체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어서 계속 중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박봉주의 진퇴와 북한 경제 상황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그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늘(5일) 오전 7시 50분 KBS 1TV <남북의 창>과 유튜브 <이북리더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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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의창] 北경제원로 ‘박봉주’…전면에 다시 등장한 이유
    • 입력 2020-09-05 08:00:25
    취재K
■82살의 북한 경제 원로 박봉주…. 그는 누구?

북한에서 서열 순위를 매긴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그리고 '3인자'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인물은 노동당 박봉주 부위원장입니다. 박봉주는 올해 82살로 고령의 당 고위간부입니다.

북한에서는 일명 '경제사령탑'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역할분담에 나선 이후 북한 파워엘리트 동향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박봉주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 출신·학벌 배경 없이 승승장구한 인물

박봉주는 1939년 함경북도 출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덕천공업대학을 졸업한 후 기계제작기사, 룡천식료공장 지배인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술 관료 출신입니다. 1980년 6차 당 대회에서 박봉주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북한 엘리트 그룹에 진입합니다.

대부분의 북한 당 고위간부들이 김일성 종합대학이나 김책 공과대학 등을 나와 기용되는 것과 달리 박봉주는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나 학벌 배경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 자수성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0년 초반 북한 개혁경제 주도적 이끌어


박봉주가 북한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 불릴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고, 당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개혁경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내각을 중심으로 경제 개혁 지시를 내리면서 2002년에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이 조치로 북한은 기업들의 자율화를 높이고, 농업에서도 책임담당제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때 경제개혁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 박봉주입니다.

경제관리개선 조치 1년이 지난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박봉주를 내각 총리직에 전격 발탁합니다. 실무에 능하고 개혁성향이 강했던 박봉주가 김정일 국방 위원장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경제건설이 절실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봉주를 적임자로 눈여겨봤던 건 경제 분야에서 그처럼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박봉주가 내각 총리에 발탁되면서 북한 사회에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합니다. 북한의 시장인 '장마당'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또 주민들의 근로의욕이 높아지면서 북한 경제 전반도 활기를 띠었습니다.

박봉주는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획일적인 계획경제 대신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경제 정책에서도 시장 경제를 시도합니다. 실제 2005년에 중국을 방문한 박봉주는 자신의 방문 목적이 경제에 있음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 당과 군부 반발로 지방 '좌천'


그러나 박봉주의 추진력은 곧 힘을 잃었습니다. 개혁 조치로 영향력이 축소된 당과 군부의 반발이 커진 것입니다. 결국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조직 지도부의 반발을 수용했고, 2007년 박봉주는 지방으로 좌천됩니다.

그렇게 지방으로 물러나 있던 박봉주에게 2009년 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북한 당국은 경제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전격적인 화폐 개혁을 단행하지만, 곧바로 실패에 봉착했습니다. 물가와 환율은 요동쳤고 주민들의 식량난은 가중됐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일어나자, 화폐 교환 조치를 주도한 노동당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공개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결정된 이후, 박봉주는 다시 핵심 엘리트 반열에 올라섭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권력을 승계받은 이후 박봉주를 내각 총리에 임명합니다. 다시 북한의 경제사령탑을 지휘하게 된 박봉주는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합니다. 이때부터 북한에 고층 건물이 올라가고, 아파트 살림집이 잇따라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해 4월, 박봉주는 내각 총리직에서 물러납니다. 김재룡이 그의 후임으로 임명되고 박봉주는 실무에선 한걸음 물러나 당 부위원장 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박봉주가 여전히 경제 정책을 지휘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박봉주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전면에서 나선 북한 경제 원로


지난해 12월,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북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진행됐을 때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황해남도 태풍피해 지역을 현지 지도하며 노동신문 1면을 차지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박봉주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북한사회에서 여느 관료보다 적극적이고 섬세하게 북한 경제를 살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북한 내 당과 국가의 관료들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 주체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어서 계속 중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박봉주의 진퇴와 북한 경제 상황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그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오늘(5일) 오전 7시 50분 KBS 1TV <남북의 창>과 유튜브 <이북리더기>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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