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동문화유산 ‘같이 함께’] 남과 북을 잇는 맛 ‘추어탕’

입력 2020.09.19 (09:14) 수정 2020.09.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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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70년 분단의 세월을 겪는 동안 남과 북의 문화 차이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질성 극복’과 ‘동질성 회복’은 이제 우리 민족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됐는데요.

그래서 <남북의 창>이 조금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 봤습니다.

남과 북에 전해지고 있는 공통의 문화를 통해 잊고 있던 동질성과 민족의 우수성을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남북 공동문화유산 프로젝트 <같이, 함께>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남과 북을 잇는 맛 ‘추어탕’입니다.

[리포트]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곡식들도 마지막 힘을 다해 낟알을 채워가는 시기.

지역을 불문하고 농경지가 있는 곳이라면 쉬이 찾을 수 있는 미꾸라지.

예부터 우리 민족은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갖은 채소와 함께 끓여 먹는 풍습을 이어오고 있다.

여름내 잃은 원기를 추어탕으로 회복해 온 것이다.

도시에서도 추어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메뉴가 됐다.

지역마다 만드는 방식은 다르지만, 대중적인 보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송정환/서울 영등포구 : "몸이 좀 허할 때 월요일 같은 날, 에너지를 넣어야 할 때 (먹습니다)."]

[박훈기/서울 송파구 : "일단 해장에 좋아요. 해장에 아주 좋고 이거(추어탕) 먹으면 종일 든든합니다."]

[이방렬/서울 송파구 :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옛날 맛 그대로. 땀 흘린 만큼 맛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추어탕은 맞은편 북녘땅에서도 대중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추어탕 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북한의 한 식당.

가게 안은 추어탕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식당에선 자체 양식장까지 만들어 손님들에게 추어탕을 대접하고 있다.

[신정희/원산시 상동추어탕 지배인 : "우리 식당에서는 미꾸라지 서식장을 꾸려놓고 날로 늘어나는 손님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부터, 완성된 추어탕의 모습까지. 낯설지 않은 이 광경은 우리가 얼마나 오랜 기간 식문화를 공유해 온 한민족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농업 국가인 우리나라는 뭔가 단백질을 얻을 것에 대한 고민을 항상 늘 하고 있었는데 남이나 북이나, 북이나 남이나 다 단백질 항상 부족했잖아요. 그러면서 추어탕은 남이든, 북이든 어디나 일상적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러니까 고기가 부족하니까. 그런 음식이었고 또 획득이 쉬워요. 논두렁에 가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음식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먹지 않았을까."]

우리 민족이 미꾸라지를 먹은 것은 농사가 시작된 삼국시대 이전부터로 추측된다.

강, 논, 호수, 도랑 등 지천에 널린 미꾸라지는 그야 말로 대표적인 서민들의 식재료.

미꾸라지를 먹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나와 있는데,

["서민들이 수산물을 많이 먹는데 그중에 미꾸라지, 전복, 새우, 진주조개, 굴, 게 등이 있다."]

귀인은 육고기를, 가난한 백성은 미꾸라지,전복,조개를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토록 서민적이었던 추어탕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대중화되어 갔다.

서울 청계천을 중심으로 추어탕집들이 줄줄이 생겨났고,1930년대엔 일반 상인들이 운영하는 추어탕집 까지 문을 열었다.

당시 자전거 대회 우승자가 추어탕 배달원들이었을 만큼 추어탕은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그 중 몇 곳은 아직도 남아 서울식 추어탕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그 당시 이곳의 추어탕을 맛보았던 북한 사람들이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1953년, 판문점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시기.

북측의 통역이던 김동석이 회담 휴식 시간에 ‘지금도 용금옥 추탕맛은 여전한가?’ 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나, 1973년 남북조절회의차 서울을 찾은 북한 박성철 부주석이 ‘용금옥은 아직 잘 있습니까?’라고 물어봤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서울 ‘ㅇ’ 추어탕 사장 : "6.25 전쟁 터지면서 서울에 살던 지식층 중에북한으로 넘어가신 분들이 있대요."]

[서울 ‘ㅇ’ 추어탕 사장 : "그래서 그분이 이제 북한의 대표가 돼서 서울로 오시게 된 거죠. 그런데 예전에 자기가 학창시절 때 용금옥에서 추탕을 먹은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용금옥이 있느냐..."]

1990년대 까지도 북한 사람들이 잊지 못했던 남한의 추어탕.

남과 북이 공유한‘맛’은 그렇게 남북 해빙 분위기 조성에도 한몫을 했던 것이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1953년도 이야기들도 있고, 1990년대 (고위급 회담 당시 추어탕에 관한) 이런 이야기도 있고, 그 당시에 유화 국면일 때 북쪽 인사들이 (서울에) 오면 여기에서(추어탕집) 식사를 했어요. 우리는 결국 정치적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사람의 기억은 저렇게 소박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것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나 분단의 세월과 함께 남북 식문화 교류도 끊어진 지 오래다.

전통 음식 ‘추어탕’ 역시 북한에선 자취를 감췄다가 지역 음식을 되살리라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1970년대 ‘개성 특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북한은 민족 요리 경연대회 등을 개최하고, 2017년엔 추어탕을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등록 하는 등 추어탕의 다양화와 대중화를 강조하고 있다.

[리영철/조선요리협회 중앙위원회 부장 : "이번 경연은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인 추어탕, 이 추어탕의 가공방법을 더욱 완성하고 또 수십 가지나 되는 미꾸라지 요리 가공방법을 완성하는데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지역별·시대별로 추어탕의 조리 방법은 끊임없이 변화해 오고 있다.

[조선중앙TV : "손질한 미꾸라지를 그대로 가마에 넣고 끓이는가 하면 살짝 대쳐내는 요리사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미꾸라지지의 뼈를 추려내는 요리사도 있습니다."]

추어탕이라는 음식 본연의 색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도 맛도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는 현실.

그 다양성을 지금이라도 공유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박찬일/요리연구가 : "북한만 변한 게 아니라 우리도 변했고. 각자의 음식이 긴세월 동안 조금 다르고 변한 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다고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러운 발전과 달라진 부분도 사실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앞으로 좀 들여다 보고 연구하고 공유하고 그런 방법이 그런 시간들이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식 추어탕은 어떠한 맛과 모양을 하고 있을까?

요리연구가이자 칼럼리스트인 박찬일 요리사와, 북한군 초대소 요리사 출신 안영자 요리사와 함께 북한 전통 추어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박찬일/요리연구가 : "북한식 추어탕을 제대로 해주실 선생님과 만나서 먹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북한에도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죠?"]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저는 북한의 전통식으로 해주려고 그래요. 개성 지방에서 하는 걸 기본 북한에서 전통식이라고 해요."]

[박찬일/요리연구가 : "그럼 개성식 추어탕을 선생님이 해주시는 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해감을 시킨다.

소금이 닿자 몸속에 있던 이물질을 토해내는 미꾸라지.

쌀뜨물과 식초를 이용해 다시 한번 특유의 비린 맛을 잡는다.

["이 쌀뜨물하고 식초 약간 넣으면 여기 흙냄새도 다 빠져요."]

육수는 양지머리를 이용해 끓여두고, 토란대, 호박, 표고버섯, 대파를 썰어 준비한다.

삶아낸 양지머리도 미꾸라지 크기만큼 썰고 계란은 풀어 놓는다. 준비된 육수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풀고 준비된 채소를 넣고 끓이는데, 이후 양지머리와 미꾸라지를 넣을 때는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으로 넣는 게 특징이다.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이 미꾸라지가 보여야 돼요."]

이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서울식 전통 추어탕과도 같은 조리법이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이거는 서울식과 같네요. 점점 이 개성식 추어탕이 서울식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서울도 통마리라고 해서 미꾸라지가 통째로 보여야 되거든요."]

미꾸라지가 고아지면 다진 생강. 다진 마늘 넣고 소금 넣고 간을 맞춘다.

그리고 풀어놨던 계란물을 얹으면 북한 개성식 추어탕이 완성된다.

북한 요리사가 끓여낸 북한 전통 추어탕. 그 맛은 어떨까?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자, 선생님. 북한 전통 추어탕 한번 드셔 보세요."]

박찬일 요리사는 잠시 맛을 음미 하다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이게 육개장. 서울식 육개장 먹는 맛도 좀 나요."]

개성식 추어탕에서 서울식 육개장의 맛을 느꼈다는 것이다.

또 조리법에서도 남북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토란대를 쓰신다든가, 계란을 푼다든가, 그다음에 양지머리 육수를 기반으로 하고 이런 게 전형적으로 서울 음식의 경향이거든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육개장... 서울식 육개장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래서 개성 음식과 서울 음식이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을 저희들이 해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안영자 요리사도 공감하기는 마찬가지.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아 그저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이점이있다면 양념의 강도.

[박찬일/요리 연구가 : "북한 음식답다고 생각 드는 건 재료의 맛이 눌러지는 경향이 확실히 적어요. 남쪽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비해서는 양념도 좀 덜 쓰시고 그다음에 재료를 좀 도드라지게 그냥 내버려두는 방식들. 이런 것들이 북한 음식의 경향이 아닌가..."]

남과 북 식문화의 이질성을 찾아보려 했던 두 전문가가 오히려 추어탕 한 그릇으로 동질성을 발견한 것이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남북 분단의 측면으로 그 음식이 서로 이질감이 너무 지나치 게 커졌을 것이다라고 예단하는 건 저는 좀 옳은 방법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보면 민족음식이라는 건 만드는 방식, 또 나오는 산물과 양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뭐 엄청나게 다른 음식이다라는 생각은 안 드는 거죠."]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관계가 좋아지면 우선 먹는 것부터.남한의 재료도 북한에도 가고 또 북한의 재료도 한국에 와서 서로 이렇게 나눠먹고 이렇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우리 사람들도 서로 동감하기도 좋고 아마 서로 우리가 문화도 다 알게 되고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일 우선적으로 우리는 먹는 문화부터 좀 먼저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든든한 한 끼가 되어준 ‘추어탕’.

우리의 민족 음식 추어탕이 남과 북을 오가며 더욱 풍성한 문화로 계승되기를 기대해 본다.

[알립니다] [같이,함께]코너에서 추어에 대한 설명 중 일부 오류가 있어 이를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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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공동문화유산 ‘같이 함께’] 남과 북을 잇는 맛 ‘추어탕’
    • 입력 2020-09-19 09:14:29
    • 수정2020-09-19 16:35:49
    남북의 창
[앵커]

70년 분단의 세월을 겪는 동안 남과 북의 문화 차이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질성 극복’과 ‘동질성 회복’은 이제 우리 민족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됐는데요.

그래서 <남북의 창>이 조금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 봤습니다.

남과 북에 전해지고 있는 공통의 문화를 통해 잊고 있던 동질성과 민족의 우수성을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남북 공동문화유산 프로젝트 <같이, 함께>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남과 북을 잇는 맛 ‘추어탕’입니다.

[리포트]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곡식들도 마지막 힘을 다해 낟알을 채워가는 시기.

지역을 불문하고 농경지가 있는 곳이라면 쉬이 찾을 수 있는 미꾸라지.

예부터 우리 민족은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미꾸라지를 잡아서 갖은 채소와 함께 끓여 먹는 풍습을 이어오고 있다.

여름내 잃은 원기를 추어탕으로 회복해 온 것이다.

도시에서도 추어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메뉴가 됐다.

지역마다 만드는 방식은 다르지만, 대중적인 보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송정환/서울 영등포구 : "몸이 좀 허할 때 월요일 같은 날, 에너지를 넣어야 할 때 (먹습니다)."]

[박훈기/서울 송파구 : "일단 해장에 좋아요. 해장에 아주 좋고 이거(추어탕) 먹으면 종일 든든합니다."]

[이방렬/서울 송파구 :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옛날 맛 그대로. 땀 흘린 만큼 맛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추어탕은 맞은편 북녘땅에서도 대중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추어탕 집’이라는 간판을 내건 북한의 한 식당.

가게 안은 추어탕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식당에선 자체 양식장까지 만들어 손님들에게 추어탕을 대접하고 있다.

[신정희/원산시 상동추어탕 지배인 : "우리 식당에서는 미꾸라지 서식장을 꾸려놓고 날로 늘어나는 손님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부터, 완성된 추어탕의 모습까지. 낯설지 않은 이 광경은 우리가 얼마나 오랜 기간 식문화를 공유해 온 한민족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농업 국가인 우리나라는 뭔가 단백질을 얻을 것에 대한 고민을 항상 늘 하고 있었는데 남이나 북이나, 북이나 남이나 다 단백질 항상 부족했잖아요. 그러면서 추어탕은 남이든, 북이든 어디나 일상적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러니까 고기가 부족하니까. 그런 음식이었고 또 획득이 쉬워요. 논두렁에 가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음식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먹지 않았을까."]

우리 민족이 미꾸라지를 먹은 것은 농사가 시작된 삼국시대 이전부터로 추측된다.

강, 논, 호수, 도랑 등 지천에 널린 미꾸라지는 그야 말로 대표적인 서민들의 식재료.

미꾸라지를 먹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나와 있는데,

["서민들이 수산물을 많이 먹는데 그중에 미꾸라지, 전복, 새우, 진주조개, 굴, 게 등이 있다."]

귀인은 육고기를, 가난한 백성은 미꾸라지,전복,조개를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토록 서민적이었던 추어탕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대중화되어 갔다.

서울 청계천을 중심으로 추어탕집들이 줄줄이 생겨났고,1930년대엔 일반 상인들이 운영하는 추어탕집 까지 문을 열었다.

당시 자전거 대회 우승자가 추어탕 배달원들이었을 만큼 추어탕은 대중적인 음식이었다.

그 중 몇 곳은 아직도 남아 서울식 추어탕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그 당시 이곳의 추어탕을 맛보았던 북한 사람들이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1953년, 판문점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시기.

북측의 통역이던 김동석이 회담 휴식 시간에 ‘지금도 용금옥 추탕맛은 여전한가?’ 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나, 1973년 남북조절회의차 서울을 찾은 북한 박성철 부주석이 ‘용금옥은 아직 잘 있습니까?’라고 물어봤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서울 ‘ㅇ’ 추어탕 사장 : "6.25 전쟁 터지면서 서울에 살던 지식층 중에북한으로 넘어가신 분들이 있대요."]

[서울 ‘ㅇ’ 추어탕 사장 : "그래서 그분이 이제 북한의 대표가 돼서 서울로 오시게 된 거죠. 그런데 예전에 자기가 학창시절 때 용금옥에서 추탕을 먹은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용금옥이 있느냐..."]

1990년대 까지도 북한 사람들이 잊지 못했던 남한의 추어탕.

남과 북이 공유한‘맛’은 그렇게 남북 해빙 분위기 조성에도 한몫을 했던 것이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1953년도 이야기들도 있고, 1990년대 (고위급 회담 당시 추어탕에 관한) 이런 이야기도 있고, 그 당시에 유화 국면일 때 북쪽 인사들이 (서울에) 오면 여기에서(추어탕집) 식사를 했어요. 우리는 결국 정치적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사람의 기억은 저렇게 소박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그런것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나 분단의 세월과 함께 남북 식문화 교류도 끊어진 지 오래다.

전통 음식 ‘추어탕’ 역시 북한에선 자취를 감췄다가 지역 음식을 되살리라는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1970년대 ‘개성 특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북한은 민족 요리 경연대회 등을 개최하고, 2017년엔 추어탕을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등록 하는 등 추어탕의 다양화와 대중화를 강조하고 있다.

[리영철/조선요리협회 중앙위원회 부장 : "이번 경연은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인 추어탕, 이 추어탕의 가공방법을 더욱 완성하고 또 수십 가지나 되는 미꾸라지 요리 가공방법을 완성하는데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지역별·시대별로 추어탕의 조리 방법은 끊임없이 변화해 오고 있다.

[조선중앙TV : "손질한 미꾸라지를 그대로 가마에 넣고 끓이는가 하면 살짝 대쳐내는 요리사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미꾸라지지의 뼈를 추려내는 요리사도 있습니다."]

추어탕이라는 음식 본연의 색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도 맛도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는 현실.

그 다양성을 지금이라도 공유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박찬일/요리연구가 : "북한만 변한 게 아니라 우리도 변했고. 각자의 음식이 긴세월 동안 조금 다르고 변한 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다고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러운 발전과 달라진 부분도 사실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앞으로 좀 들여다 보고 연구하고 공유하고 그런 방법이 그런 시간들이 필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식 추어탕은 어떠한 맛과 모양을 하고 있을까?

요리연구가이자 칼럼리스트인 박찬일 요리사와, 북한군 초대소 요리사 출신 안영자 요리사와 함께 북한 전통 추어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박찬일/요리연구가 : "북한식 추어탕을 제대로 해주실 선생님과 만나서 먹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북한에도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죠?"]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저는 북한의 전통식으로 해주려고 그래요. 개성 지방에서 하는 걸 기본 북한에서 전통식이라고 해요."]

[박찬일/요리연구가 : "그럼 개성식 추어탕을 선생님이 해주시는 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해감을 시킨다.

소금이 닿자 몸속에 있던 이물질을 토해내는 미꾸라지.

쌀뜨물과 식초를 이용해 다시 한번 특유의 비린 맛을 잡는다.

["이 쌀뜨물하고 식초 약간 넣으면 여기 흙냄새도 다 빠져요."]

육수는 양지머리를 이용해 끓여두고, 토란대, 호박, 표고버섯, 대파를 썰어 준비한다.

삶아낸 양지머리도 미꾸라지 크기만큼 썰고 계란은 풀어 놓는다. 준비된 육수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풀고 준비된 채소를 넣고 끓이는데, 이후 양지머리와 미꾸라지를 넣을 때는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으로 넣는 게 특징이다.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이 미꾸라지가 보여야 돼요."]

이는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서울식 전통 추어탕과도 같은 조리법이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이거는 서울식과 같네요. 점점 이 개성식 추어탕이 서울식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서울도 통마리라고 해서 미꾸라지가 통째로 보여야 되거든요."]

미꾸라지가 고아지면 다진 생강. 다진 마늘 넣고 소금 넣고 간을 맞춘다.

그리고 풀어놨던 계란물을 얹으면 북한 개성식 추어탕이 완성된다.

북한 요리사가 끓여낸 북한 전통 추어탕. 그 맛은 어떨까?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자, 선생님. 북한 전통 추어탕 한번 드셔 보세요."]

박찬일 요리사는 잠시 맛을 음미 하다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이게 육개장. 서울식 육개장 먹는 맛도 좀 나요."]

개성식 추어탕에서 서울식 육개장의 맛을 느꼈다는 것이다.

또 조리법에서도 남북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전한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토란대를 쓰신다든가, 계란을 푼다든가, 그다음에 양지머리 육수를 기반으로 하고 이런 게 전형적으로 서울 음식의 경향이거든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육개장... 서울식 육개장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래서 개성 음식과 서울 음식이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을 저희들이 해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안영자 요리사도 공감하기는 마찬가지.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아 그저 남한이나 북한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이점이있다면 양념의 강도.

[박찬일/요리 연구가 : "북한 음식답다고 생각 드는 건 재료의 맛이 눌러지는 경향이 확실히 적어요. 남쪽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에 비해서는 양념도 좀 덜 쓰시고 그다음에 재료를 좀 도드라지게 그냥 내버려두는 방식들. 이런 것들이 북한 음식의 경향이 아닌가..."]

남과 북 식문화의 이질성을 찾아보려 했던 두 전문가가 오히려 추어탕 한 그릇으로 동질성을 발견한 것이다.

[박찬일/요리 연구가 : "남북 분단의 측면으로 그 음식이 서로 이질감이 너무 지나치 게 커졌을 것이다라고 예단하는 건 저는 좀 옳은 방법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보면 민족음식이라는 건 만드는 방식, 또 나오는 산물과 양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뭐 엄청나게 다른 음식이다라는 생각은 안 드는 거죠."]

[안영자/북한군 초대소 출신 요리사 :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관계가 좋아지면 우선 먹는 것부터.남한의 재료도 북한에도 가고 또 북한의 재료도 한국에 와서 서로 이렇게 나눠먹고 이렇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우리 사람들도 서로 동감하기도 좋고 아마 서로 우리가 문화도 다 알게 되고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일 우선적으로 우리는 먹는 문화부터 좀 먼저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든든한 한 끼가 되어준 ‘추어탕’.

우리의 민족 음식 추어탕이 남과 북을 오가며 더욱 풍성한 문화로 계승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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