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한 알의 옥수수, 통일의 ‘밀알’ 되길

입력 2020.09.19 (09:23) 수정 2020.09.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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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북한에서는 옥수수를 이용해 국수와 과자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이렇게 북한이 옥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는 건 ‘옥수수박사’라고 불리는 김순권 박사의 공이 크다고 합니다.

수 십 년을 품질 좋은 옥수수 생산을 위해 매진하고, 더불어 남북을 오가며 통일의 꿈을 실천하고 있는 김순권 박사를 채유나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곡식이 무르익어가는 포항의 한 들녘입니다.

여러분 날씨가 너무 좋죠. 좋은 날씨만큼 이곳의 상황도 좋으면 좋을 텐데요.

사실 이곳은 올해 긴 장마에 태풍까지 겹치면서 농작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특히 저곳에 조금 특별한 옥수수밭이 있는데요. 그곳의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오늘 제가 돕기 위해 완전무장하고 왔습니다. 일단 함께 가보시죠.

["박사님, 저는 여기가 옥수수밭이라고 해서 왔는데 다 죽은 거 아니에요, 옥수수가 지금?"]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죽은 게 아니고 태풍 피해를 봐서 옥수수가 전부 넘어져 있는 겁니다."]

옥수수 수확인 한창인 이곳, 마치 시골 농부처럼 보이는 이분은 오늘의 주인공인 김순권 박사입니다.

김 박사는 50여 년간 옥수수 품종 개발에 앞장서 온 ‘옥수수 박사’로 불리는데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새라든가 쥐들이 와서 (옥수수를) 못 파먹게 방지하기 위해서 이삭 한 개 한 개 봉투를 덮어씌우고 있는 겁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 옥수수를 수확하는 작업에 학생들도 기꺼이 함께했습니다.

[최선/한동대 1학년 : "봉투를 가지고 옥수수 보이는 데마다 뿌리 쪽에 딱 맞춰서 끼우면 돼요."]

김 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수확에 공을 들이는 건 남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 온 게 특별한 옥수수밭이라고 해서 왔거든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여기가 90% 이상이 북한으로 갈 옥수수입니다. (북한으로 가는 옥수수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네, 북한 어린이 백만 명이 내년에 이 꿀옥수수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 종자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질 좋은 종자를 북한에 보내기 위해 매일 학교와 밭을 오가며 옥수수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직접 종자를 심고, 가꾸고, 가을이 되면 수확까지 쉴 틈이 없다고 합니다.

[한민종/한동대 1학년 :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지만 이런 일들 통해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작은 보탬이 된다면 많이 좋을 것 같단 생각으로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다 함께 마음을 모아 가꾼 옥수수, 그 맛은 어떨까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이거는 생 걸로 먹어도 되는 거야. (생 걸로요? 안 삶아도?)"]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생 걸로 먹어도 배탈도 안 나고."]

[최선/한동대 1학년 : "(어때요, 맛이?) 옥수수랑 고구마 섞은 맛?"]

["(맛있어요? 생 건데?) 괜찮네요, 생각보다."]

["그냥 먹어도 맛있네요? 문화 충격이야 지금, 심지어 맛있어. 심지어 달아요."]

[최선/한동대 1학년 : "제가 먹어본 옥수수 중에 제일 맛있어요. 첫맛은 스위트콘처럼 단데 끝 맛은 생고구마 먹는 그런 느낌?"]

북한에선 ‘강냉이’라고 불리는 옥수수는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 가운데 하나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열매뿐 아니라 줄기와 잎, 수염까지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김 박사는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 ‘고난의 행군’을 겪었을 때 옥수수를 지원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실향민이었던 아내의 영향도 컸습니다.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우리는 한민족이에요. 남과 북 정치적으로 갈려 있지 같은 형제고 같은 핏줄입니다.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는 통일이 됐어요. 우리 집사람은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났고 나는 울산 경주 사람이니까."]

1998년에는 농업인으로는 처음으로 옥수수를 들고 북한을 방문했는데요.

당시 방북 당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KBS 뉴스9/2007.10.03 : "기존의 사료용 옥수수보다 두 배나 수확량이 많은 슈퍼옥수수가 개발돼 품종등록을 마쳤습니다. 북한에서도 시범적으로 재배하고 있는데 올해 작황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김 교수팀은 슈퍼옥수수가 국내뿐 아니라 해주 등 북한 남부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내가 아프리카에 17년 있어도 그와 같이 어려운 나라를 본 적이 없어요. 동포를 옥수수로 살려야겠다는 그런 생각밖에 없었어요."]

첫 방문 이후 13년 동안 59번이나 북한을 방문했다는데요.

북한 연구원들에게 연구성과를 전수하고, 옥수수 종자 개량 사업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 환경에 적합해 가뭄과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12종의 옥수수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북한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북한이 놀란 건 남쪽 강원도에서 개발한 ‘수원 19호’, 북한에 갔더니 너무 좋아한 겁니다. (왜 좋아한 거예요?) 종자 생산이 제일 쉬워요. 옥수수 4가마니 나오던 데서 이걸 심으면 5가마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올해는 긴 장마에 잇따른 태풍이 북한을 강타하면서 식량난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2011년 이후로 북한 방문은 물론 함께 진행하던 연구도 중단된 상황이여서 더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북으로 옥수수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아둔 종자 저장고가 그걸 말해주고 있는데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박스 하나에 종자가 몇 가지나 지금 보관되어 있는 거예요?) 보통 200종류가 한 박스에 들어있어요. 종자들이 저장되어 있는데 되게 차가워요."]

김 박사는 배고픈 사람이 없을 때까지 영양가 있는 옥수수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계속 심어야죠. (언제까지 심으실 거예요?) 나 죽을 때까지."]

남북 화해를 겨냥한 북한돕기는 김 박사의 통일 철학이기도 합니다.

김 박사는 한 알의 옥수수가 통일의 ‘밀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들녘으로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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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한 알의 옥수수, 통일의 ‘밀알’ 되길
    • 입력 2020-09-19 09:23:42
    • 수정2020-09-19 09: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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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북한에서는 옥수수를 이용해 국수와 과자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이렇게 북한이 옥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는 건 ‘옥수수박사’라고 불리는 김순권 박사의 공이 크다고 합니다.

수 십 년을 품질 좋은 옥수수 생산을 위해 매진하고, 더불어 남북을 오가며 통일의 꿈을 실천하고 있는 김순권 박사를 채유나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곡식이 무르익어가는 포항의 한 들녘입니다.

여러분 날씨가 너무 좋죠. 좋은 날씨만큼 이곳의 상황도 좋으면 좋을 텐데요.

사실 이곳은 올해 긴 장마에 태풍까지 겹치면서 농작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특히 저곳에 조금 특별한 옥수수밭이 있는데요. 그곳의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오늘 제가 돕기 위해 완전무장하고 왔습니다. 일단 함께 가보시죠.

["박사님, 저는 여기가 옥수수밭이라고 해서 왔는데 다 죽은 거 아니에요, 옥수수가 지금?"]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죽은 게 아니고 태풍 피해를 봐서 옥수수가 전부 넘어져 있는 겁니다."]

옥수수 수확인 한창인 이곳, 마치 시골 농부처럼 보이는 이분은 오늘의 주인공인 김순권 박사입니다.

김 박사는 50여 년간 옥수수 품종 개발에 앞장서 온 ‘옥수수 박사’로 불리는데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새라든가 쥐들이 와서 (옥수수를) 못 파먹게 방지하기 위해서 이삭 한 개 한 개 봉투를 덮어씌우고 있는 겁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 옥수수를 수확하는 작업에 학생들도 기꺼이 함께했습니다.

[최선/한동대 1학년 : "봉투를 가지고 옥수수 보이는 데마다 뿌리 쪽에 딱 맞춰서 끼우면 돼요."]

김 박사와 학생들이 함께 수확에 공을 들이는 건 남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 온 게 특별한 옥수수밭이라고 해서 왔거든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여기가 90% 이상이 북한으로 갈 옥수수입니다. (북한으로 가는 옥수수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네, 북한 어린이 백만 명이 내년에 이 꿀옥수수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 종자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질 좋은 종자를 북한에 보내기 위해 매일 학교와 밭을 오가며 옥수수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직접 종자를 심고, 가꾸고, 가을이 되면 수확까지 쉴 틈이 없다고 합니다.

[한민종/한동대 1학년 :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지만 이런 일들 통해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작은 보탬이 된다면 많이 좋을 것 같단 생각으로 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

다 함께 마음을 모아 가꾼 옥수수, 그 맛은 어떨까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이거는 생 걸로 먹어도 되는 거야. (생 걸로요? 안 삶아도?)"]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생 걸로 먹어도 배탈도 안 나고."]

[최선/한동대 1학년 : "(어때요, 맛이?) 옥수수랑 고구마 섞은 맛?"]

["(맛있어요? 생 건데?) 괜찮네요, 생각보다."]

["그냥 먹어도 맛있네요? 문화 충격이야 지금, 심지어 맛있어. 심지어 달아요."]

[최선/한동대 1학년 : "제가 먹어본 옥수수 중에 제일 맛있어요. 첫맛은 스위트콘처럼 단데 끝 맛은 생고구마 먹는 그런 느낌?"]

북한에선 ‘강냉이’라고 불리는 옥수수는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 가운데 하나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열매뿐 아니라 줄기와 잎, 수염까지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김 박사는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최악의 식량난 ‘고난의 행군’을 겪었을 때 옥수수를 지원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실향민이었던 아내의 영향도 컸습니다.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우리는 한민족이에요. 남과 북 정치적으로 갈려 있지 같은 형제고 같은 핏줄입니다.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는 통일이 됐어요. 우리 집사람은 함경도 북청에서 태어났고 나는 울산 경주 사람이니까."]

1998년에는 농업인으로는 처음으로 옥수수를 들고 북한을 방문했는데요.

당시 방북 당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KBS 뉴스9/2007.10.03 : "기존의 사료용 옥수수보다 두 배나 수확량이 많은 슈퍼옥수수가 개발돼 품종등록을 마쳤습니다. 북한에서도 시범적으로 재배하고 있는데 올해 작황이 아주 좋다고 합니다. 김 교수팀은 슈퍼옥수수가 국내뿐 아니라 해주 등 북한 남부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내가 아프리카에 17년 있어도 그와 같이 어려운 나라를 본 적이 없어요. 동포를 옥수수로 살려야겠다는 그런 생각밖에 없었어요."]

첫 방문 이후 13년 동안 59번이나 북한을 방문했다는데요.

북한 연구원들에게 연구성과를 전수하고, 옥수수 종자 개량 사업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 환경에 적합해 가뭄과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12종의 옥수수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북한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북한이 놀란 건 남쪽 강원도에서 개발한 ‘수원 19호’, 북한에 갔더니 너무 좋아한 겁니다. (왜 좋아한 거예요?) 종자 생산이 제일 쉬워요. 옥수수 4가마니 나오던 데서 이걸 심으면 5가마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올해는 긴 장마에 잇따른 태풍이 북한을 강타하면서 식량난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2011년 이후로 북한 방문은 물론 함께 진행하던 연구도 중단된 상황이여서 더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북으로 옥수수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쌓아둔 종자 저장고가 그걸 말해주고 있는데요.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박스 하나에 종자가 몇 가지나 지금 보관되어 있는 거예요?) 보통 200종류가 한 박스에 들어있어요. 종자들이 저장되어 있는데 되게 차가워요."]

김 박사는 배고픈 사람이 없을 때까지 영양가 있는 옥수수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김순권/한동대 석좌교수 : "계속 심어야죠. (언제까지 심으실 거예요?) 나 죽을 때까지."]

남북 화해를 겨냥한 북한돕기는 김 박사의 통일 철학이기도 합니다.

김 박사는 한 알의 옥수수가 통일의 ‘밀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오늘도 들녘으로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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