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2천년 전에 담근 술…마실 수 있을까?

입력 2020.09.2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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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난성에서 발굴된 고분

지난 5월 중국 허난성 산먼샤시(河南省 三门峡市)에서 고분 하나가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이 대거 현장에 투입돼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넉 달에 걸친 발굴 동안 고분에선 진기한 옛 유물이 많이 나왔다.

탄소동위원소 측정을 해보니 부장품은 2천 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역사로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위(魏)·촉(蜀) ·오(吳) 삼국시대 보다 앞선 서한(西漢) 시대 초기다. 서한은 기원전 206년 창건해 AD 24년까지 번성했던 중국 왕조다.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秦)나라가 패망한 뒤 들어선 왕조로, 한 무제 통치 시기에는 중국 봉건사회의 첫 황금기를 열기도 했다.


고분 주인은 무사(武士)

고분에선 쇠로 만든 검(劍)도 발견됐다. 중국 고고학계는 고분 주인을 무사(武士) 신분의 지방 관료로 추정했다. 키가 당시로서는 거인이나 다름없었던 180cm의 남자다.

검(劍) 외에도 고분에선 숨지기 전 남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물건이 나왔다. 구리거울과 도장, 대야, 장신구 등이다. 또 검(劍)은 4개의 옥 장식물이 꾸며져 있었다.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산먼샤시 문물고고학연구소 리융타오(李永涛) 연구원은 중국 국영 방송사 CCTV에 "보검이 나온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고분 주인은 무사였을 것입니다. 고분에서는 구리거울과 구리 장신구도 발견됐는데, 모두 시신 옆에서 나왔습니다. 멋내기와 꾸미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청동 주전자에 담긴 2천 년 전 술

그런데 중국 고고학계의 시선을 더 끈 건 검이 아니라 고분에서 나온 청동으로 만든 주전자였다. 무게 2.5kg으로 제법 묵직했다. 백조 모양을 한 이 주전자는 병 몸통은 둥근 모양으로 제법 큰 편이지만, 주전자 입구는 3cm 정도로 작다. 백조 머리 모양의 정교한 뚜껑이 닫혀 있다.

그런데 사실 중국 역사에서 2천 년 전쯤 청동 주전자 그 자체로는 매우 진기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 그 주전자 안에 '출렁출렁'.. 뭔가 들어있었다. 그게 '술'이었다. 2천 년 전 술, 양은 3ℓ 정도 됐다.


중국 고고학계는 술이 어떻게 2천 년 동안이나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 관심이 폭발했다. 산먼샤시 고고학 연구소 옌페이(燕飞) 주임은 "주전자가 땅속 4m 깊이에서 발견됐습니다. 농사 같은 지표면 생산 활동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깊이입니다. 그리고 주전자 주변 흙이 모두 진흙이어서 밀폐 효과가 높았습니다. 주전자 입구가 3cm 정도로 작고, 목 부분은 굴곡져 있어서 술이 잘 날아가지 않아 지금까지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성분 분석도 이뤄졌다. 2천 년 전 술, 이 술은 과연 어떤 술일까? 중국 과학원 양이민(杨益民) 인류학과 교수는 "액체에 미량의 유기산과 주석산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볼 때 술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유기산은 산성을 띤 유기화합물로 과실류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주석산은 포도주를 만들 때 침전하는 주석에 함유된 성분이다.

양이민 교수는 또 "술 속에 든 유기성분은 소염(消炎) 효과가 있습니다. 종합해 볼 때 이 술은 소염과 지혈에 도움을 주는 '오십이병방'에 기재된 약방 약주와 흡사해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은 1973년 허난성 창사에서 발굴된 한나라 시대 고분 마왕두이(马王堆)에서 발견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적이다.


2천 년 전 술, 마실 수 있을까?

중국 네티즌들은, '2천 년 전 술을 과연 마실 수 있을까'에 주목했다. 연구를 진행한 고고학계는 이에 대한 대답도 내놓았다. 양이민 교수는 유기질 분석과 전자 현미경 분석을 진행했는데, 결과적으로 알코올과 다른 향미 성분은 모두 없어졌다고 밝혔다.

"술이 2천 년이나 묻혀 있어서 지금은 아무런 향이 없습니다. 억지로 마신다면 마실 수는 있지만, 청동 주전자에 오랫동안 담겨 있어서 중금속 성분이 높습니다. 만약 마신다면 몸에 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중국 고고학계는 술 동위원소를 포함해 재료로 쓰인 식물, 그리고 단백질 분석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를 통해 이 술이 어떤 원료를 사용해,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밝혀낼 계획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온 몇 가지 중의 하나가 술이다. 비록 향과 맛은 사라졌지만 옛 모습 그대로 술 주전자에 담겨 발견된 것 자체가 이색적이다. 2천 년 전 고대 비법이 담긴 약술을 마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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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2천년 전에 담근 술…마실 수 있을까?
    • 입력 2020-09-21 15:49:31
    특파원 리포트
중국 허난성에서 발굴된 고분

지난 5월 중국 허난성 산먼샤시(河南省 三门峡市)에서 고분 하나가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이 대거 현장에 투입돼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넉 달에 걸친 발굴 동안 고분에선 진기한 옛 유물이 많이 나왔다.

탄소동위원소 측정을 해보니 부장품은 2천 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역사로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위(魏)·촉(蜀) ·오(吳) 삼국시대 보다 앞선 서한(西漢) 시대 초기다. 서한은 기원전 206년 창건해 AD 24년까지 번성했던 중국 왕조다.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秦)나라가 패망한 뒤 들어선 왕조로, 한 무제 통치 시기에는 중국 봉건사회의 첫 황금기를 열기도 했다.


고분 주인은 무사(武士)

고분에선 쇠로 만든 검(劍)도 발견됐다. 중국 고고학계는 고분 주인을 무사(武士) 신분의 지방 관료로 추정했다. 키가 당시로서는 거인이나 다름없었던 180cm의 남자다.

검(劍) 외에도 고분에선 숨지기 전 남자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물건이 나왔다. 구리거울과 도장, 대야, 장신구 등이다. 또 검(劍)은 4개의 옥 장식물이 꾸며져 있었다.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산먼샤시 문물고고학연구소 리융타오(李永涛) 연구원은 중국 국영 방송사 CCTV에 "보검이 나온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고분 주인은 무사였을 것입니다. 고분에서는 구리거울과 구리 장신구도 발견됐는데, 모두 시신 옆에서 나왔습니다. 멋내기와 꾸미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청동 주전자에 담긴 2천 년 전 술

그런데 중국 고고학계의 시선을 더 끈 건 검이 아니라 고분에서 나온 청동으로 만든 주전자였다. 무게 2.5kg으로 제법 묵직했다. 백조 모양을 한 이 주전자는 병 몸통은 둥근 모양으로 제법 큰 편이지만, 주전자 입구는 3cm 정도로 작다. 백조 머리 모양의 정교한 뚜껑이 닫혀 있다.

그런데 사실 중국 역사에서 2천 년 전쯤 청동 주전자 그 자체로는 매우 진기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 그 주전자 안에 '출렁출렁'.. 뭔가 들어있었다. 그게 '술'이었다. 2천 년 전 술, 양은 3ℓ 정도 됐다.


중국 고고학계는 술이 어떻게 2천 년 동안이나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 관심이 폭발했다. 산먼샤시 고고학 연구소 옌페이(燕飞) 주임은 "주전자가 땅속 4m 깊이에서 발견됐습니다. 농사 같은 지표면 생산 활동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깊이입니다. 그리고 주전자 주변 흙이 모두 진흙이어서 밀폐 효과가 높았습니다. 주전자 입구가 3cm 정도로 작고, 목 부분은 굴곡져 있어서 술이 잘 날아가지 않아 지금까지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성분 분석도 이뤄졌다. 2천 년 전 술, 이 술은 과연 어떤 술일까? 중국 과학원 양이민(杨益民) 인류학과 교수는 "액체에 미량의 유기산과 주석산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볼 때 술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유기산은 산성을 띤 유기화합물로 과실류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주석산은 포도주를 만들 때 침전하는 주석에 함유된 성분이다.

양이민 교수는 또 "술 속에 든 유기성분은 소염(消炎) 효과가 있습니다. 종합해 볼 때 이 술은 소염과 지혈에 도움을 주는 '오십이병방'에 기재된 약방 약주와 흡사해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오십이병방(五十二病方)'은 1973년 허난성 창사에서 발굴된 한나라 시대 고분 마왕두이(马王堆)에서 발견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학서적이다.


2천 년 전 술, 마실 수 있을까?

중국 네티즌들은, '2천 년 전 술을 과연 마실 수 있을까'에 주목했다. 연구를 진행한 고고학계는 이에 대한 대답도 내놓았다. 양이민 교수는 유기질 분석과 전자 현미경 분석을 진행했는데, 결과적으로 알코올과 다른 향미 성분은 모두 없어졌다고 밝혔다.

"술이 2천 년이나 묻혀 있어서 지금은 아무런 향이 없습니다. 억지로 마신다면 마실 수는 있지만, 청동 주전자에 오랫동안 담겨 있어서 중금속 성분이 높습니다. 만약 마신다면 몸에 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중국 고고학계는 술 동위원소를 포함해 재료로 쓰인 식물, 그리고 단백질 분석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를 통해 이 술이 어떤 원료를 사용해,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밝혀낼 계획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해 온 몇 가지 중의 하나가 술이다. 비록 향과 맛은 사라졌지만 옛 모습 그대로 술 주전자에 담겨 발견된 것 자체가 이색적이다. 2천 년 전 고대 비법이 담긴 약술을 마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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