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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기술유출’ 앞에서 행동은 없었다…‘공모’와 ‘무능’사이 KAIST
입력 2020.09.28 (16:22) 수정 2020.09.28 (17:11) 취재후
카이스트(KAIST)의 이 모 교수가 지난 14일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국가핵심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입니다. 그는 중국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 이른바 ‘천인계획’에 포섭됐다고 합니다. 중국이 그를 눈여겨본 것은 그가 자율주행차량의 눈에 해당하는 핵심 센서 ‘라이다’의 권위자였기 때문입니다.

한국 과학자의 천인계획 참여와 국가핵심기술 유출. 혐의도 충격적이지만 그런 일이 국내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 대학에서 벌어졌다는 게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목격한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기술유출이 알려지기까지, 험난한 과정입니다. 내부 고발, 청와대 청원, 카이스트 ‘부실’ 감사, 감사원 검토, 국정원 포착, 검찰 수사까지... 우리나라 권력기관이 다 움직여야 밝혀질 수 있었던 ‘KAIST 기술유출’ 사건. 활극은 2년 전 누군가의 내부 고발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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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학교는 아무 행동 안 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옵니다. 중국 대학에 파견된 카이스트 교수가 학교 몰래 중국의 천인계획 과제를 받았다, 중국이 이 과제를 통해 기술을 빼내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청원인은 글 말미에 이런 문장을 덧붙입니다. ‘학교 감사실에 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를 하였지만, 아직 아무 행동은 안 하고 있다.’

청와대 청원이 게시된 날, 카이스트 감사실이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교수가 중국 천인계획에 참여한 지 1년 1개월이 지난 시점입니다.

17일간 조사 벌인 카이스트 감사실은 2019년 1월 4일 최종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카이스트 교수가 중국 천인계획에 참여한 절차를 따져봤더니 규정상 괜찮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교수가 중국에 가서 뭘 연구하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않습니다.

‘기술 유출’에 대한 판단을 외면한 감사는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첫 번째 아쉬운 대목입니다. 당시 감사실이 산업통상자원부에 문의만 했어도 결론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산업부는 2018년 1월 15일 ‘라이다’ 관련 기술을 자동차 분야 국가핵심기술로 고시해 놨습니다.

다만, 감사실은 중국에서의 연구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는 검토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여지를 남기며 대학 본부로 공을 넘깁니다.

카이스트 감사실 관계자는 “특정 분야의 연구 과제에 대해서 ‘국가핵심기술’ 여부를 감사실이 판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우려가 있을 수 있어 대학 본부 측에 관련 전문가들이나 교수들을 모아서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민감한 단어는 빼시고” 이상한 면담


감사 결과를 통보받은 대학 본부는 한 달 뒤인 2019년 2월 정부에 공식 질의를 넣습니다. 이 교수가 중국에서 연구 중인 라이다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관련법에 따라 판정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른바 ‘매뉴얼’대로 진행됐습니다. ‘반쪽 감사’는 아쉬웠지만, 본부가 엇나간 단추를 그나마 바로잡으려 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또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KBS가 지난 21일 보도한 카이스트의 ‘이상한 면담’을 보면, 당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면담이 이뤄진 건 산자부에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을 접수하고 사흘 뒤. 카이스트에서 연구정책을 총괄하는 고위급 보직교수가 ‘기술 유출’ 의혹 당사자인 이 교수를 집무실로 불렀습니다. 다른 보직교수 2명도 배석했습니다. 카이스트 측과 연구 담당 교수가 3대 1로 마주한 것입니다.

면담 초기 분위기는 딱딱했습니다. 보직교수들은 학교가 입을 타격에 걱정을 늘어놓으며 이 교수를 어르고 달랬습니다. 내용을 뜯어보면 보직교수들은 이 교수의 중국 천인계획 참여, 그리고 국가핵심기술인 ‘라이다’ 관련 연구 과제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눈칩니다.



천인계획에 빠지면 안 되겠느냐, 다른 교수에 연구를 넘기면 안 되겠느냐, 이런저런 제안을 하던 보직교수들. 하지만 이 교수가 천인계획 참여는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말하자, 연구 과제를 변경하는 쪽으로 대화의 방향은 미묘하게 틀어집니다.


이 ‘설득’의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발언까지 나옵니다.


취재진은 이 발언이 가장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중국 가서 조사하겠냐, 알아서 하라’는 발언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카이스트 연구정책 최고위급 보직교수의 적절한 대처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술 유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40분간의 면담은 부드러운 분위기로 끝이 납니다. 이 교수는 연구 과제를 바꿔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받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면담에 참여했던 교수들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카이스트는 면담 직후,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서를 두 차례 변경해 제출합니다. 당시 면담 결과처럼 최종 연구 신청서에서 연구 과제 주제는 ‘라이다’가 아닌 전혀 다른 기술, ‘라이파이’로 바뀌었습니다. 라이파이는 국가핵심기술이 아닙니다.

카이스트 신청서를 본 정부 역시 “문제없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라이다라는 ‘민감한 단어’를 뺐으니 당연한 결론이었습니다.

■“유연하게 막는 게 최선의 방안”

당시 면담에 참여했던 교수들은 앞서 취재진이 지적한 일부 발언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를 하려다 보니 나온 ‘말실수’였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교수의 천인계획 연구를 강하게 저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취한 최선의 조치였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자신들이 설득해 이 교수가 연구 과제를 바꾼 셈이고, 결과적으로 기술유출을 막은 거 아니냐는 거였습니다.

2018년 하반기 내부 고발로 불거진 ‘기술 유출’ 논란은 카이스트 내부에서 이렇게 정리됐습니다. 이 면담 이후로 카이스트의 추가 조치는 없었습니다. 최고위직 보직교수 말대로 상당 기간 이 교수가 중국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이○○ 교수에 대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감사처분서’ 중 일부(자료출처: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이○○ 교수에 대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감사처분서’ 중 일부(자료출처: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

■“허위의 내용으로 판정을 신청”

잘 지나간(?) 기술유출 논란은 국가정보원이 움직이면서 전기를 맞았습니다. 지난해 말 국가정보원이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8개월여간 추적조사를 통해 기술 유출 실태를 밝혔습니다. 국정원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번 사안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정원 첩보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특별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라이파이’를 연구하겠다던 이 교수가 실제로는 ‘라이다’ 연구를 해왔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습니다.

과기부는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이 변경되는 과정을 ‘허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과기부 감사 결과 중 주요 사실관계를 날짜별로 정리한 <주요사건 경과> 표를 보면, 카이스트와 이 교수가 ‘공모를 통해’ 허위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적혀있습니다.

과기부는 그러나, 카이스트에 ‘공모’의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면담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 교수의 비위 행위와 천인계획 연구의 국가핵심기술 여부 조사에 집중하다 보니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가 안 됐을 뿐, 카이스트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건 아니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럼 ‘공모’라는 표현은 왜 쓴 걸까요? 과기정통부는 해당 감사 건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면서 이른바 ‘허위 신청’ 과정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는 거로 전해졌습니다.

검찰은 이 부분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이 교수가 실제 라이파이 연구를 했기 때문에, 의도와 상관없이 변경 신청 자체를 허위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만 밝혔습니다.

■카이스트의 책임은?

검찰 수사와 달리, 취재진은 카이스트와 이 교수의 ‘의도’가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내부고발이 제기된 이후, 기술유출을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이 교수와의 면담 자리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벌어졌다면, 정해진 절차만 따랐다면,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면담 자리에서 읽히는 고위 보직교수들의 의도는 바람직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장의 곤란함을 피하려고 꼼수를 부린 건 아닌지, 같은 연구자의 흠결을 온정주의로 안아준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이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속은 것이라면, 이를 거르지 못한 무능함도 치부를 드러낸 셈입니다.

카이스트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교원의 해외파견 심의절차를 강화하고, 사후 관리시스템도 적극적으로 보완한다며 제도 개선을 강조했습니다. 제도 부실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처럼 읽힙니다.

모든 문제가 제도 개선만으로 해결되진 않습니다. 3년 만에 겨우 드러난 카이스트 기술유출 사건,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제도 탓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부터 돌아보길 카이스트에 부탁드립니다.
  • [취재후] ‘기술유출’ 앞에서 행동은 없었다…‘공모’와 ‘무능’사이 KAIST
    • 입력 2020-09-28 16:22:28
    • 수정2020-09-28 17:11:25
    취재후
카이스트(KAIST)의 이 모 교수가 지난 14일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국가핵심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입니다. 그는 중국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 이른바 ‘천인계획’에 포섭됐다고 합니다. 중국이 그를 눈여겨본 것은 그가 자율주행차량의 눈에 해당하는 핵심 센서 ‘라이다’의 권위자였기 때문입니다.

한국 과학자의 천인계획 참여와 국가핵심기술 유출. 혐의도 충격적이지만 그런 일이 국내 최고의 과학기술 연구 대학에서 벌어졌다는 게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목격한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기술유출이 알려지기까지, 험난한 과정입니다. 내부 고발, 청와대 청원, 카이스트 ‘부실’ 감사, 감사원 검토, 국정원 포착, 검찰 수사까지... 우리나라 권력기관이 다 움직여야 밝혀질 수 있었던 ‘KAIST 기술유출’ 사건. 활극은 2년 전 누군가의 내부 고발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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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학교는 아무 행동 안 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옵니다. 중국 대학에 파견된 카이스트 교수가 학교 몰래 중국의 천인계획 과제를 받았다, 중국이 이 과제를 통해 기술을 빼내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청원인은 글 말미에 이런 문장을 덧붙입니다. ‘학교 감사실에 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를 하였지만, 아직 아무 행동은 안 하고 있다.’

청와대 청원이 게시된 날, 카이스트 감사실이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교수가 중국 천인계획에 참여한 지 1년 1개월이 지난 시점입니다.

17일간 조사 벌인 카이스트 감사실은 2019년 1월 4일 최종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카이스트 교수가 중국 천인계획에 참여한 절차를 따져봤더니 규정상 괜찮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교수가 중국에 가서 뭘 연구하는지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않습니다.

‘기술 유출’에 대한 판단을 외면한 감사는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첫 번째 아쉬운 대목입니다. 당시 감사실이 산업통상자원부에 문의만 했어도 결론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산업부는 2018년 1월 15일 ‘라이다’ 관련 기술을 자동차 분야 국가핵심기술로 고시해 놨습니다.

다만, 감사실은 중국에서의 연구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는 검토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여지를 남기며 대학 본부로 공을 넘깁니다.

카이스트 감사실 관계자는 “특정 분야의 연구 과제에 대해서 ‘국가핵심기술’ 여부를 감사실이 판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우려가 있을 수 있어 대학 본부 측에 관련 전문가들이나 교수들을 모아서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민감한 단어는 빼시고” 이상한 면담


감사 결과를 통보받은 대학 본부는 한 달 뒤인 2019년 2월 정부에 공식 질의를 넣습니다. 이 교수가 중국에서 연구 중인 라이다가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관련법에 따라 판정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른바 ‘매뉴얼’대로 진행됐습니다. ‘반쪽 감사’는 아쉬웠지만, 본부가 엇나간 단추를 그나마 바로잡으려 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또 일이 엉뚱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KBS가 지난 21일 보도한 카이스트의 ‘이상한 면담’을 보면, 당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면담이 이뤄진 건 산자부에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을 접수하고 사흘 뒤. 카이스트에서 연구정책을 총괄하는 고위급 보직교수가 ‘기술 유출’ 의혹 당사자인 이 교수를 집무실로 불렀습니다. 다른 보직교수 2명도 배석했습니다. 카이스트 측과 연구 담당 교수가 3대 1로 마주한 것입니다.

면담 초기 분위기는 딱딱했습니다. 보직교수들은 학교가 입을 타격에 걱정을 늘어놓으며 이 교수를 어르고 달랬습니다. 내용을 뜯어보면 보직교수들은 이 교수의 중국 천인계획 참여, 그리고 국가핵심기술인 ‘라이다’ 관련 연구 과제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눈칩니다.



천인계획에 빠지면 안 되겠느냐, 다른 교수에 연구를 넘기면 안 되겠느냐, 이런저런 제안을 하던 보직교수들. 하지만 이 교수가 천인계획 참여는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말하자, 연구 과제를 변경하는 쪽으로 대화의 방향은 미묘하게 틀어집니다.


이 ‘설득’의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발언까지 나옵니다.


취재진은 이 발언이 가장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중국 가서 조사하겠냐, 알아서 하라’는 발언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카이스트 연구정책 최고위급 보직교수의 적절한 대처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술 유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40분간의 면담은 부드러운 분위기로 끝이 납니다. 이 교수는 연구 과제를 바꿔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받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면담에 참여했던 교수들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카이스트는 면담 직후,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서를 두 차례 변경해 제출합니다. 당시 면담 결과처럼 최종 연구 신청서에서 연구 과제 주제는 ‘라이다’가 아닌 전혀 다른 기술, ‘라이파이’로 바뀌었습니다. 라이파이는 국가핵심기술이 아닙니다.

카이스트 신청서를 본 정부 역시 “문제없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라이다라는 ‘민감한 단어’를 뺐으니 당연한 결론이었습니다.

■“유연하게 막는 게 최선의 방안”

당시 면담에 참여했던 교수들은 앞서 취재진이 지적한 일부 발언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를 하려다 보니 나온 ‘말실수’였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교수의 천인계획 연구를 강하게 저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취한 최선의 조치였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자신들이 설득해 이 교수가 연구 과제를 바꾼 셈이고, 결과적으로 기술유출을 막은 거 아니냐는 거였습니다.

2018년 하반기 내부 고발로 불거진 ‘기술 유출’ 논란은 카이스트 내부에서 이렇게 정리됐습니다. 이 면담 이후로 카이스트의 추가 조치는 없었습니다. 최고위직 보직교수 말대로 상당 기간 이 교수가 중국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이○○ 교수에 대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감사처분서’ 중 일부(자료출처: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이○○ 교수에 대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감사처분서’ 중 일부(자료출처: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실)

■“허위의 내용으로 판정을 신청”

잘 지나간(?) 기술유출 논란은 국가정보원이 움직이면서 전기를 맞았습니다. 지난해 말 국가정보원이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8개월여간 추적조사를 통해 기술 유출 실태를 밝혔습니다. 국정원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번 사안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정원 첩보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특별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라이파이’를 연구하겠다던 이 교수가 실제로는 ‘라이다’ 연구를 해왔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됐습니다.

과기부는 국가핵심기술 판정 신청이 변경되는 과정을 ‘허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과기부 감사 결과 중 주요 사실관계를 날짜별로 정리한 <주요사건 경과> 표를 보면, 카이스트와 이 교수가 ‘공모를 통해’ 허위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적혀있습니다.

과기부는 그러나, 카이스트에 ‘공모’의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면담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 교수의 비위 행위와 천인계획 연구의 국가핵심기술 여부 조사에 집중하다 보니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사가 안 됐을 뿐, 카이스트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건 아니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럼 ‘공모’라는 표현은 왜 쓴 걸까요? 과기정통부는 해당 감사 건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면서 이른바 ‘허위 신청’ 과정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는 거로 전해졌습니다.

검찰은 이 부분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이 교수가 실제 라이파이 연구를 했기 때문에, 의도와 상관없이 변경 신청 자체를 허위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만 밝혔습니다.

■카이스트의 책임은?

검찰 수사와 달리, 취재진은 카이스트와 이 교수의 ‘의도’가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내부고발이 제기된 이후, 기술유출을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이 교수와의 면담 자리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벌어졌다면, 정해진 절차만 따랐다면,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면담 자리에서 읽히는 고위 보직교수들의 의도는 바람직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장의 곤란함을 피하려고 꼼수를 부린 건 아닌지, 같은 연구자의 흠결을 온정주의로 안아준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이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속은 것이라면, 이를 거르지 못한 무능함도 치부를 드러낸 셈입니다.

카이스트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교원의 해외파견 심의절차를 강화하고, 사후 관리시스템도 적극적으로 보완한다며 제도 개선을 강조했습니다. 제도 부실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처럼 읽힙니다.

모든 문제가 제도 개선만으로 해결되진 않습니다. 3년 만에 겨우 드러난 카이스트 기술유출 사건, 자세히 들여다보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제도 탓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부터 돌아보길 카이스트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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