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터지도록 기쁩니다”…제주4·3 행방불명 수형인 첫 재심 개시 결정

입력 2020.12.0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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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터지도록 기쁩니다.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효도가 되고, 자식 도리를 할 수 있어 감격의 눈물이 납니다.”

지난달 30일, 제주 4·3 사건 당시 행방불명된 수형인 10명에 대한 재심 청구를 법원이 처음 받아들였습니다. 4·3의 광풍이 불던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형을 선고받아 전국 형무소로 뿔뿔이 흩어졌던 4·3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한 걸음 다가선 건데요. 시신조차 찾기가 쉽지 않아 사망 여부를 밝혀내기 쉽지 않았던 만큼, 이번 재심 개시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돌아가신 날 몰라서 생일에 제사 지냅니다.” 유족 흐느낌에 침묵 흐른 법정

제주4·3행방불명 수형인(이하 4·3 행불수형인) 은 주로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불법 군사재판으로 형을 선고받고 전국 각지 형무소에 복역하다가 행방불명된 사람들입니다. 2천5백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에서 수형인 명부에 기재됐으면서 동시에 유가족이 찾는 행불인과 동일인인지 재차 확인된 340여 명이 재심 청구 피고인입니다.

4·3 행불수형인 재심 청구인들은 피고인의 배우자나 형제자매, 자녀들로 이미 일흔을 훌쩍 넘겼는데요. 재심을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피고인의 사망’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당시 전국 각지 형무소에서 처형돼 암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현재 행불수형인의 유해조차 찾기가 쉽지 않은데요.

사망을 입증하기 위해 고령의 유족들은 법정에서 ‘피고인과 헤어지던 마지막 기억’에 대해, 그리고 ‘연락이 끊겼던 순간’에 대해서, 그 밖에도 ‘묘비는 어디에 있고 제사는 매년 누가 언제 지내는지’ 등을 상세히 진술했습니다.

한순간 헤어진 뒤 70여 년간 가슴 깊은 응어리로 남아있는 가족의 기억을 법정에서 풀어내던 유족들은 진술 말미에 끝내 눈물을 보이곤 했습니다. 재판부가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질문할 때면, 청구인 대부분은 ‘명예회복을 바란다’는 간절한 호소를 반복했습니다.

■ 재판부 “살아있다면 고향 찾지 않을 이유 없다…상식적 판단”

과거 진행돼온 다른 재심 사건들은 피고인의 사망 여부가 쟁점이 되지 않았지만, 4·3 행불수형인 재심의 경우에는 사망 여부를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형사소송법상 재심 청구인으로 배우자나 친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심 청구 당시엔 피고인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법적 근거가 마땅찮아, 재심 여부를 내려야 하는 재판부의 고민이 클 수밖엔 없었는데요.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재심 청구 접수 이후 1년 6개월간 사건 관련 방대한 기록과 청구인 심문을 거쳐 ‘피고인 10명이 사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피고인의 나이입니다. 피고인 10명은 재심 청구일 기준으로 생존을 가정할 때 나이가 86세에서 106세 사이였습니다.

재판부는 “생활 수준이 나아진 지금도 평균 수명이 피고인들의 나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며 “특히 처우가 매우 안 좋았던 형무소 수감 신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살아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봤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수구초심 인지상정(首丘初心 人之常情)’이라는 상식적 판단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피고인이 현재 살아있다면, 지금까지 고향을 찾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들은 피고인의 제사를 매년 지내고 있으며, 제주4·3평화공원에는 묘비가 조성된 여러 피고인의 제적등본에 사망했다고 쓰여있는 점” 등을 사망 판단 근거로 인정했습니다.

이밖에 4·3 행불수형인 재심 사유는 앞서 진행된 4.3 재심 건과 같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는데요. 피고인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이 자행된 점이 인정되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수감자를 대상으로 집단 총살이 자행된 사실 역시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재판부는 설명했습니다.


■‘1년 반 만에 재심 개시’ …330여 명 올해 내 재심 청구 절차 마무리

앞으로 본격적인 재심 본안 재판이 진행될 4·3 행불 수형인은 故 김경행 씨 등 모두 10명입니다. 각 4·3 지역위원회별 2명씩 대표로 지난해 6월 3일 재심을 청구했는데, 1년 반 만에 명예회복의 길이 열린 겁니다.

남은 재심 청구 4·3 행불수형인은 330명을 넘습니다. 이들 중 2/3 이상이 현재 재심 청구 심문이 진행된 상태로, 이르면 올해 안에 재심 청구 절차가 모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70여 년간 마음에 응어리가 맺혀있던 유족들은 긴 세월의 한을 재심으로 풀 수 있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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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이 터지도록 기쁩니다”…제주4·3 행방불명 수형인 첫 재심 개시 결정
    • 입력 2020-12-01 18:14:52
    취재K

“가슴이 터지도록 기쁩니다.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효도가 되고, 자식 도리를 할 수 있어 감격의 눈물이 납니다.”

지난달 30일, 제주 4·3 사건 당시 행방불명된 수형인 10명에 대한 재심 청구를 법원이 처음 받아들였습니다. 4·3의 광풍이 불던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형을 선고받아 전국 형무소로 뿔뿔이 흩어졌던 4·3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한 걸음 다가선 건데요. 시신조차 찾기가 쉽지 않아 사망 여부를 밝혀내기 쉽지 않았던 만큼, 이번 재심 개시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돌아가신 날 몰라서 생일에 제사 지냅니다.” 유족 흐느낌에 침묵 흐른 법정

제주4·3행방불명 수형인(이하 4·3 행불수형인) 은 주로 1948년에서 1949년 사이 불법 군사재판으로 형을 선고받고 전국 각지 형무소에 복역하다가 행방불명된 사람들입니다. 2천5백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에서 수형인 명부에 기재됐으면서 동시에 유가족이 찾는 행불인과 동일인인지 재차 확인된 340여 명이 재심 청구 피고인입니다.

4·3 행불수형인 재심 청구인들은 피고인의 배우자나 형제자매, 자녀들로 이미 일흔을 훌쩍 넘겼는데요. 재심을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피고인의 사망’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당시 전국 각지 형무소에서 처형돼 암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현재 행불수형인의 유해조차 찾기가 쉽지 않은데요.

사망을 입증하기 위해 고령의 유족들은 법정에서 ‘피고인과 헤어지던 마지막 기억’에 대해, 그리고 ‘연락이 끊겼던 순간’에 대해서, 그 밖에도 ‘묘비는 어디에 있고 제사는 매년 누가 언제 지내는지’ 등을 상세히 진술했습니다.

한순간 헤어진 뒤 70여 년간 가슴 깊은 응어리로 남아있는 가족의 기억을 법정에서 풀어내던 유족들은 진술 말미에 끝내 눈물을 보이곤 했습니다. 재판부가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질문할 때면, 청구인 대부분은 ‘명예회복을 바란다’는 간절한 호소를 반복했습니다.

■ 재판부 “살아있다면 고향 찾지 않을 이유 없다…상식적 판단”

과거 진행돼온 다른 재심 사건들은 피고인의 사망 여부가 쟁점이 되지 않았지만, 4·3 행불수형인 재심의 경우에는 사망 여부를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형사소송법상 재심 청구인으로 배우자나 친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심 청구 당시엔 피고인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법적 근거가 마땅찮아, 재심 여부를 내려야 하는 재판부의 고민이 클 수밖엔 없었는데요.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부장판사 장찬수)는 재심 청구 접수 이후 1년 6개월간 사건 관련 방대한 기록과 청구인 심문을 거쳐 ‘피고인 10명이 사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피고인의 나이입니다. 피고인 10명은 재심 청구일 기준으로 생존을 가정할 때 나이가 86세에서 106세 사이였습니다.

재판부는 “생활 수준이 나아진 지금도 평균 수명이 피고인들의 나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며 “특히 처우가 매우 안 좋았던 형무소 수감 신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살아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봤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수구초심 인지상정(首丘初心 人之常情)’이라는 상식적 판단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피고인이 현재 살아있다면, 지금까지 고향을 찾지 않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들은 피고인의 제사를 매년 지내고 있으며, 제주4·3평화공원에는 묘비가 조성된 여러 피고인의 제적등본에 사망했다고 쓰여있는 점” 등을 사망 판단 근거로 인정했습니다.

이밖에 4·3 행불수형인 재심 사유는 앞서 진행된 4.3 재심 건과 같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는데요. 피고인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이 자행된 점이 인정되고, 한국전쟁 발발 직후 수감자를 대상으로 집단 총살이 자행된 사실 역시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 재판부는 설명했습니다.


■‘1년 반 만에 재심 개시’ …330여 명 올해 내 재심 청구 절차 마무리

앞으로 본격적인 재심 본안 재판이 진행될 4·3 행불 수형인은 故 김경행 씨 등 모두 10명입니다. 각 4·3 지역위원회별 2명씩 대표로 지난해 6월 3일 재심을 청구했는데, 1년 반 만에 명예회복의 길이 열린 겁니다.

남은 재심 청구 4·3 행불수형인은 330명을 넘습니다. 이들 중 2/3 이상이 현재 재심 청구 심문이 진행된 상태로, 이르면 올해 안에 재심 청구 절차가 모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70여 년간 마음에 응어리가 맺혀있던 유족들은 긴 세월의 한을 재심으로 풀 수 있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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