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핫팩에 의존한 쿠팡 노동자가 남긴 네 가지 물음표

입력 2021.01.20 (14:43) 수정 2021.01.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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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물류센터 화장실에서 50대 여성 최경애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던 날, 최 씨는 핫팩 하나에 의존하며 밤새워 일했고, 밥과 반찬이 식어있던 차가운 도시락을 마지막 끼니로 먹었습니다.

[연관기사] 쿠팡 50대 노동자 사망…영하 10도에 ‘핫팩’ 하나로 버텼다 (2021.1.20. KBS1TV 뉴스9)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지난 8개월 동안 3명의 노동자가 돌연사했습니다. 사인은 모두 심근경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짧은 뉴스에서 다 전하지 못한 숨진 최 씨의 사연을 네 가지 의문으로 정리해 [취재후]로 전합니다.

■사회복지사는 '왜' 물류센터 알바를 했나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였던 최 씨는 지난해 12월, 다니던 요양병원을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뒀습니다. 가계를 홀로 책임지고 있던 만큼, 새 직장을 찾기까지 공백을 메꿔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찾던 최 씨에게 쿠팡 물류센터 자리가 눈에 들어온 이유입니다.

최 씨는 10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아이 둘을 키워왔습니다. 자식들은 자라서 2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초년생과 대학생입니다. 뒷바라지를 하려면 여전히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류센터에서 밤새 일하면 일당 10만 4,640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 여섯 번, 최 씨는 동탄 물류센터로 향했습니다.

두 아이에겐 든든한 엄마였지만 어머니를 살뜰하게 챙기는 딸이기도 했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최 씨의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합니다. 친언니 경미(가명)씨는 아직 어머니께 동생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딸의 죽음을 모르는 엄마는 여전히 둘째딸이 언제 오는지 찾고 있다고 합니다.

고 최경애 씨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고 최경애 씨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영하 10도 강추위…핫팩 '왜' 더 못 썼나

물류센터에서 여섯 번째 근무하던 날인 지난 10일. 최 씨는 언니 경미 씨를 오후 4시 15분쯤 수원역에서 만났습니다. 함께 동탄 물류센터로 간 그들은 일일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로 다른 층에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근무했습니다. 이날은 수도권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질 만큼 추웠던 날입니다.

이날 평소 안 입던 내복을 입고 털모자까지 썼던 경미 씨는 "추위가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물류센터엔 난방되지 않았고, 밤새 열린 문으로 강풍이 들어왔습니다. 관리자들은 출근할 때 핫팩 한 개만을 나눠줄 뿐이었습니다. 보온병 반입도 엄격히 금지돼 따뜻한 물을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앞서 보도가 나간 뒤 "그렇게 추운 날 왜 따로 핫팩을 챙겨가지 않았냐"고 지적하는 인터넷 댓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노동자들은 "물류센터에서 개인 핫팩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쿠팡 측은 "도난 등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 핫팩과 보온병 등 개인 물품 반입을 막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 씨가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최 씨가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

■지병 없던 최 씨, '왜' 쓰러졌나

최 씨는 11일 새벽, 동탄 물류센터 지하 1층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최초 발견자는 언니 경미 씨였습니다. 이날 언니보다 일찍 업무가 끝난 최 씨는 지하 1층에서 언니를 기다렸습니다. 휴게공간이 마련돼 있었지만, 난방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벽 4시, 한파가 절정에 달했던 시간입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최 씨는 결국 숨졌습니다. 10일 밤 11시 37분, 최 씨가 언니에게 보낸 "오늘은 11시에 밥 먹었어"라는 말은 마지막 메시지가 됐습니다. "지금 밥 먹고 왔다"는 답장은 '읽지 않음' 상태로 남았습니다. 경미 씨는 이날 물류센터에서 배급된 도시락의 밥과 반찬이 모두 차가웠다고 전했습니다.

응급의는 지병이 없던 최 씨의 사인이 심근경색이라는 1차 소견을 냈습니다. 화성 동탄 경찰서는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최 씨의 부검을 의뢰했습니다. 오동진 강동성심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50대 여성이 추운 작업환경에 노출될 경우, 심근경색 위험이 상당히 커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나눠준 핫팩이 물류센터 인근에 버려져 있는 모습. 쿠팡 최저가로 개당 420원인 상품이다.사측이 노동자들에게 나눠준 핫팩이 물류센터 인근에 버려져 있는 모습. 쿠팡 최저가로 개당 420원인 상품이다.

■쿠팡, '왜' 억울한가

어제(19일) 동탄 물류센터를 방문한 취재진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핫팩에 의존해 일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이 쓰는 핫팩은 쿠팡 최저가로 개당 420원 정도 하는 상품입니다. 한 야간 근무자는 "최 씨가 숨진 뒤 관리자들이 핫팩을 두 개씩 나눠주겠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쿠팡 측은 "화물 차량의 출입과 상품의 입출고가 개방된 공간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냉난방 설비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이는 "쿠팡 물류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식당, 휴게실, 화장실 등에 난방시설을 설치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취재진에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휴게실이 바깥만큼 춥다"고 입을 모은 노동자들의 말과는 엇갈리는 대목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 쿠팡 관계자는 KBS 취재진에게 입장을 다시 전해왔습니다. 물류센터 근무자들에게는 핫팩 '한 개'가 아닌 '두 개'를 주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숨진 최 씨가 사망한 당일 핫팩을 한 개 썼는지, 두 개 썼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근로자를 위해 보온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기록적인 추위가 엄습한 이번 겨울, 뻥 뚫린 물류센터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핫팩을 '하나' 혹은 '둘' 나눠준 쿠팡의 조치가 보온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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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핫팩에 의존한 쿠팡 노동자가 남긴 네 가지 물음표
    • 입력 2021-01-20 14:43:40
    • 수정2021-01-20 16:52:42
    취재후·사건후

쿠팡 물류센터 화장실에서 50대 여성 최경애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던 날, 최 씨는 핫팩 하나에 의존하며 밤새워 일했고, 밥과 반찬이 식어있던 차가운 도시락을 마지막 끼니로 먹었습니다.

[연관기사] 쿠팡 50대 노동자 사망…영하 10도에 ‘핫팩’ 하나로 버텼다 (2021.1.20. KBS1TV 뉴스9)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지난 8개월 동안 3명의 노동자가 돌연사했습니다. 사인은 모두 심근경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짧은 뉴스에서 다 전하지 못한 숨진 최 씨의 사연을 네 가지 의문으로 정리해 [취재후]로 전합니다.

■사회복지사는 '왜' 물류센터 알바를 했나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였던 최 씨는 지난해 12월, 다니던 요양병원을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뒀습니다. 가계를 홀로 책임지고 있던 만큼, 새 직장을 찾기까지 공백을 메꿔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찾던 최 씨에게 쿠팡 물류센터 자리가 눈에 들어온 이유입니다.

최 씨는 10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아이 둘을 키워왔습니다. 자식들은 자라서 2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초년생과 대학생입니다. 뒷바라지를 하려면 여전히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물류센터에서 밤새 일하면 일당 10만 4,640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 여섯 번, 최 씨는 동탄 물류센터로 향했습니다.

두 아이에겐 든든한 엄마였지만 어머니를 살뜰하게 챙기는 딸이기도 했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최 씨의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합니다. 친언니 경미(가명)씨는 아직 어머니께 동생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딸의 죽음을 모르는 엄마는 여전히 둘째딸이 언제 오는지 찾고 있다고 합니다.

고 최경애 씨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영하 10도 강추위…핫팩 '왜' 더 못 썼나

물류센터에서 여섯 번째 근무하던 날인 지난 10일. 최 씨는 언니 경미 씨를 오후 4시 15분쯤 수원역에서 만났습니다. 함께 동탄 물류센터로 간 그들은 일일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로 다른 층에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근무했습니다. 이날은 수도권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질 만큼 추웠던 날입니다.

이날 평소 안 입던 내복을 입고 털모자까지 썼던 경미 씨는 "추위가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물류센터엔 난방되지 않았고, 밤새 열린 문으로 강풍이 들어왔습니다. 관리자들은 출근할 때 핫팩 한 개만을 나눠줄 뿐이었습니다. 보온병 반입도 엄격히 금지돼 따뜻한 물을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앞서 보도가 나간 뒤 "그렇게 추운 날 왜 따로 핫팩을 챙겨가지 않았냐"고 지적하는 인터넷 댓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노동자들은 "물류센터에서 개인 핫팩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쿠팡 측은 "도난 등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 핫팩과 보온병 등 개인 물품 반입을 막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 씨가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
■지병 없던 최 씨, '왜' 쓰러졌나

최 씨는 11일 새벽, 동탄 물류센터 지하 1층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최초 발견자는 언니 경미 씨였습니다. 이날 언니보다 일찍 업무가 끝난 최 씨는 지하 1층에서 언니를 기다렸습니다. 휴게공간이 마련돼 있었지만, 난방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벽 4시, 한파가 절정에 달했던 시간입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최 씨는 결국 숨졌습니다. 10일 밤 11시 37분, 최 씨가 언니에게 보낸 "오늘은 11시에 밥 먹었어"라는 말은 마지막 메시지가 됐습니다. "지금 밥 먹고 왔다"는 답장은 '읽지 않음' 상태로 남았습니다. 경미 씨는 이날 물류센터에서 배급된 도시락의 밥과 반찬이 모두 차가웠다고 전했습니다.

응급의는 지병이 없던 최 씨의 사인이 심근경색이라는 1차 소견을 냈습니다. 화성 동탄 경찰서는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최 씨의 부검을 의뢰했습니다. 오동진 강동성심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50대 여성이 추운 작업환경에 노출될 경우, 심근경색 위험이 상당히 커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나눠준 핫팩이 물류센터 인근에 버려져 있는 모습. 쿠팡 최저가로 개당 420원인 상품이다.
■쿠팡, '왜' 억울한가

어제(19일) 동탄 물류센터를 방문한 취재진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핫팩에 의존해 일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이 쓰는 핫팩은 쿠팡 최저가로 개당 420원 정도 하는 상품입니다. 한 야간 근무자는 "최 씨가 숨진 뒤 관리자들이 핫팩을 두 개씩 나눠주겠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쿠팡 측은 "화물 차량의 출입과 상품의 입출고가 개방된 공간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냉난방 설비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이는 "쿠팡 물류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식당, 휴게실, 화장실 등에 난방시설을 설치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취재진에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휴게실이 바깥만큼 춥다"고 입을 모은 노동자들의 말과는 엇갈리는 대목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 쿠팡 관계자는 KBS 취재진에게 입장을 다시 전해왔습니다. 물류센터 근무자들에게는 핫팩 '한 개'가 아닌 '두 개'를 주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숨진 최 씨가 사망한 당일 핫팩을 한 개 썼는지, 두 개 썼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근로자를 위해 보온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기록적인 추위가 엄습한 이번 겨울, 뻥 뚫린 물류센터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핫팩을 '하나' 혹은 '둘' 나눠준 쿠팡의 조치가 보온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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