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차량으로 달려간 버스기사…불 끄고 홀연히 다음 정거장으로

입력 2021.03.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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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밤 9시쯤, 대전시 용운동 차량 화재 현장 지난 1일 밤 9시쯤, 대전시 용운동 차량 화재 현장

■ 달리던 버스 세우고 불길 잡은 버스기사...소화기 들고 사고 현장으로

운행 중이던 시내버스가 정류장도 아닌 곳에 멈춰 섰습니다. 버스를 멈춰 세운 기사는 버스 출입문 앞에 놓여 있던 소화기를 집어 들더니 주저 없이 도로로 나섰습니다.

버스기사가 향한 곳은 조금 전 지나쳤던 차량 충돌사고 현장이었습니다.

지난 1일 밤 9시쯤, 대전시 용운동에서 시내버스를 운행하던 41살 김광우 씨. 차고지에서 출발해 정류장 한 곳을 막 지나쳤을 때 교차로에서 승용차끼리 충돌한 사고를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승용차 한 대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여기에 흰 연기까지 뿜어져 나왔습니다.

충돌로 인한 차량 화재라는 것을 직감한 김 씨. 마침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버스에 탄 승객이 없었고 지체 없이 인근 도로에 버스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고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사고 차량은 엔진룸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고 차량 운전자가 차에 있던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불길이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더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소화기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김 씨는 곧장 소화기를 뿌려 침착하게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가 나선 덕분에 119가 도착하기 전 불길이 잡혔고 더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 차량 화재 완전 진화 후 다음 정거장 승객 위해 홀연히 현장 떠나

불이 모두 꺼진 것을 확인한 김 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쿨(?)하게 버스를 몰고 다음 정류장에 있을 승객을 태우기 위해 현장을 급히 떠났습니다.

차량 화재를 진압한 버스기사 김광우 씨차량 화재를 진압한 버스기사 김광우 씨

■ 버스기사의 이유 있는 용기…앞선 선행도 알려져

김 씨가 침착하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화재 현장에 뛰어든 건 이유가 있었습니다. 김 씨에게는 소방안전관리자 2급 자격증이 있었습니다.

시내버스를 운행한 지 2년 정도 된 김 씨는 그전까지 한 업체 관리자로 일했습니다. 10년 전쯤 관리자로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소방 자격증이 필요해 취득해 놓았던 겁니다.

그런데 김 씨의 선행은 전에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9년 4월, 대전시 법동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편도 4차선 도로를 비틀거리며 오가다 결국 도로 한가운데 쓰러졌습니다. 이때도 김 씨는 운행 중이던 버스에서 지체 없이 내렸습니다.

갓길에 버스를 세우고 도로를 가로질러 가 누워 있던 술 취한 사람을 안전하게 인도로 옮긴 뒤 다시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김 씨의 선행을 목격한 한 시민이 대전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코너에 제보하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김 씨의 선행은 자격증 때문이라기보단, '몸에 배어 있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지난달 27일, 제주시 삼도동지난달 27일, 제주시 삼도동

■ 제주에서도 버스기사가 화재 진압…'시민 해결사' 역할 톡톡

이번 화재 진압도 뒤늦게 동료들에 의해 알려졌는데, 김 씨는 취재진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손사래를 쳤습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비치는 게 쑥스럽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김 씨. "잠깐 희생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지체 없이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제주에서도 버스기사가 운행 중 화재 현장을 목격하고 불길을 진화해 큰 피해를 막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버스기사 역시 김 씨처럼 달리던 버스를 세우고 망설임 없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 소화기로 불을 꺼 큰 화제가 됐습니다.

위기의 현장을 보고 지나치지 않는 버스기사들의 용기 있는 행동들. 시민의 발뿐만 아니라 시민의 해결사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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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는 차량으로 달려간 버스기사…불 끄고 홀연히 다음 정거장으로
    • 입력 2021-03-05 17:00:11
    취재K
 지난 1일 밤 9시쯤, 대전시 용운동 차량 화재 현장
■ 달리던 버스 세우고 불길 잡은 버스기사...소화기 들고 사고 현장으로

운행 중이던 시내버스가 정류장도 아닌 곳에 멈춰 섰습니다. 버스를 멈춰 세운 기사는 버스 출입문 앞에 놓여 있던 소화기를 집어 들더니 주저 없이 도로로 나섰습니다.

버스기사가 향한 곳은 조금 전 지나쳤던 차량 충돌사고 현장이었습니다.

지난 1일 밤 9시쯤, 대전시 용운동에서 시내버스를 운행하던 41살 김광우 씨. 차고지에서 출발해 정류장 한 곳을 막 지나쳤을 때 교차로에서 승용차끼리 충돌한 사고를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승용차 한 대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여기에 흰 연기까지 뿜어져 나왔습니다.

충돌로 인한 차량 화재라는 것을 직감한 김 씨. 마침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버스에 탄 승객이 없었고 지체 없이 인근 도로에 버스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고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사고 차량은 엔진룸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고 차량 운전자가 차에 있던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불길이 잡히지 않았고 오히려 더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소화기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김 씨는 곧장 소화기를 뿌려 침착하게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가 나선 덕분에 119가 도착하기 전 불길이 잡혔고 더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 차량 화재 완전 진화 후 다음 정거장 승객 위해 홀연히 현장 떠나

불이 모두 꺼진 것을 확인한 김 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쿨(?)하게 버스를 몰고 다음 정류장에 있을 승객을 태우기 위해 현장을 급히 떠났습니다.

차량 화재를 진압한 버스기사 김광우 씨
■ 버스기사의 이유 있는 용기…앞선 선행도 알려져

김 씨가 침착하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화재 현장에 뛰어든 건 이유가 있었습니다. 김 씨에게는 소방안전관리자 2급 자격증이 있었습니다.

시내버스를 운행한 지 2년 정도 된 김 씨는 그전까지 한 업체 관리자로 일했습니다. 10년 전쯤 관리자로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소방 자격증이 필요해 취득해 놓았던 겁니다.

그런데 김 씨의 선행은 전에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9년 4월, 대전시 법동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편도 4차선 도로를 비틀거리며 오가다 결국 도로 한가운데 쓰러졌습니다. 이때도 김 씨는 운행 중이던 버스에서 지체 없이 내렸습니다.

갓길에 버스를 세우고 도로를 가로질러 가 누워 있던 술 취한 사람을 안전하게 인도로 옮긴 뒤 다시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김 씨의 선행을 목격한 한 시민이 대전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코너에 제보하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김 씨의 선행은 자격증 때문이라기보단, '몸에 배어 있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지난달 27일, 제주시 삼도동
■ 제주에서도 버스기사가 화재 진압…'시민 해결사' 역할 톡톡

이번 화재 진압도 뒤늦게 동료들에 의해 알려졌는데, 김 씨는 취재진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손사래를 쳤습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비치는 게 쑥스럽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슈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김 씨. "잠깐 희생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지체 없이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제주에서도 버스기사가 운행 중 화재 현장을 목격하고 불길을 진화해 큰 피해를 막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버스기사 역시 김 씨처럼 달리던 버스를 세우고 망설임 없이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 소화기로 불을 꺼 큰 화제가 됐습니다.

위기의 현장을 보고 지나치지 않는 버스기사들의 용기 있는 행동들. 시민의 발뿐만 아니라 시민의 해결사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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