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9백억 투입했는데…전통시장 활성화 ‘백약무효’

입력 2021.04.13 (13:33) 수정 2021.04.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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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의 한 전통시장.부산 수영구의 한 전통시장.

924억 원.

2018년부터 3년간 부산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들어간 비용입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은 말 그대로 사람들을 모이게 해 시장을 활성화 시켜보겠다는 정책인데요.

2002년부터 정부 사업으로 시작됐고 부산시도 매년 활성화 사업에 예산을 책정하다 2018년부터는 3개년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3년간 국비와 시비, 구비와 자부담 등 9백억 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습니다.

빈 점포 늘고 상인은 시장 떠나

9백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3년간의 사업 성과는 어땠을까요. 오히려 빈 점포는 늘었고 상인들은 시장을 떠났습니다.

2017년 3,049곳이던 전통시장의 빈 점포 숫자는 2021년 들어 4,032곳으로 늘었습니다. 전통시장 종사자 숫자는 반대로 4만 4,653명에서 4만 1,764명으로 줄었습니다.

실제 취재진이 찾은 부산 수영구의 한 전통시장은 41개의 점포 중 31곳이 비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시장 상인들은 10여 년 전까지는 시장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많았지만 5년 전부터 서서히 사람들이 줄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손님들 발길이 끊기면서 문을 닫는 점포도 늘었습니다.

물론 코로나19나 경기침체 여파도 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판매 확대로의 시대적 변화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부분 고령화됐는데 이들이 은퇴한 이후 새로 젊은 상인들이 전통시장에 유입되지 않아 빈 점포가 늘고 종사자 수가 줄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빈 점포에 새 상인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전통시장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새로 입점하려는 상인들이 없다는 겁니다. 상인들은 "부산시의 활성화 사업 취지는 이해하고 당연히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시장은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 대부분 예산 여전히 겉치장 집중

3년간 전통시장 활성화에 사용된 예산을 분석해 봤습니다.

920억 원의 예산 중 70% 이상이 전통시장의 노후화된 건물 등을 보수하는 시설 현대화 사업이나 주차장 시설 확충 등에 사용됐습니다. 나머지 예산은 시장별 특성화 사업에 들어갔습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예산이 여전히 시장 겉치장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시장 상인들은 시장의 외관만 꾸민다고 해서 떠나간 손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는데요.

부산지역 한 시장에서는 "손님 발길이 끊겼는데 겉만 화려해진다고 사람들이 오겠냐"며 아예 활성화 사업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시는 3년간 7백억 원을 들여 다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은 부산시청 전경.부산시는 3년간 7백억 원을 들여 다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은 부산시청 전경.

■ 계획 발표 후 활성 방안 용역…7백억 원 낭비 '우려'

이런 상황에서 부산시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또 7백억 원을 투입해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합니다.

부산시는 지난해부터 모바일 앱을 구축하는 등 전통시장 온라인 판로 개척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번 계획에서도 7백억 원 중 백억 원가량을 관련 사업에 투입할 예정입니다. 시설 개선 등
사업에도 여전히 5백억 원 가까운 예산이 듭니다.

다만 이 사업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은 많습니다. 우선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온라인 시장 개척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특히 시장 상인들은 물론 시장을 찾는 주 고객층도 장년층이 많은 만큼 온라인 시장 활성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부산시는 2천만 원을 들여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용역을 이달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을 다시 점검해 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3개년 계획이 발표된 시점에서 너무 늦은 용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데요. 시는 용역 발주 시기를 놓쳤고 오는 9월쯤 용역이 마무리되면 3개년 계획에 다시 반영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해명을 내놨습니다.

사업에 대한 아무 개선 없이 전통시장 활성화에 또 7백억 원이 낭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 고객층 심층 분석…상인 안정적 소득 마련 방안 보장"

전문가들은 예산이 편성된다고 해서 관성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 활성화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업이 무엇인지 재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외관 개선에 집중할 게 아니라 진짜 전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이 뭔지 좀 더 고민해야 한다는 건데요.

전문가들은 우선 개별 전통시장을 찾는 주 고객층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통시장별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조언하는데요. 이와 더불어 전통시장에서 상인들이 떠나지 않도록 안정적인 소득 마련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동아대 오동윤 경제학과 교수는 "전통시장 주 고객층과 상인 연령대를 분석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전통시장 인근 식당 등에 원부자재를 판매하게끔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해 줄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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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9백억 투입했는데…전통시장 활성화 ‘백약무효’
    • 입력 2021-04-13 13:33:47
    • 수정2021-04-13 13:34:11
    취재후·사건후
부산 수영구의 한 전통시장.
924억 원.

2018년부터 3년간 부산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들어간 비용입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은 말 그대로 사람들을 모이게 해 시장을 활성화 시켜보겠다는 정책인데요.

2002년부터 정부 사업으로 시작됐고 부산시도 매년 활성화 사업에 예산을 책정하다 2018년부터는 3개년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3년간 국비와 시비, 구비와 자부담 등 9백억 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습니다.

빈 점포 늘고 상인은 시장 떠나

9백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3년간의 사업 성과는 어땠을까요. 오히려 빈 점포는 늘었고 상인들은 시장을 떠났습니다.

2017년 3,049곳이던 전통시장의 빈 점포 숫자는 2021년 들어 4,032곳으로 늘었습니다. 전통시장 종사자 숫자는 반대로 4만 4,653명에서 4만 1,764명으로 줄었습니다.

실제 취재진이 찾은 부산 수영구의 한 전통시장은 41개의 점포 중 31곳이 비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시장 상인들은 10여 년 전까지는 시장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많았지만 5년 전부터 서서히 사람들이 줄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손님들 발길이 끊기면서 문을 닫는 점포도 늘었습니다.

물론 코로나19나 경기침체 여파도 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판매 확대로의 시대적 변화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부분 고령화됐는데 이들이 은퇴한 이후 새로 젊은 상인들이 전통시장에 유입되지 않아 빈 점포가 늘고 종사자 수가 줄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빈 점포에 새 상인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전통시장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새로 입점하려는 상인들이 없다는 겁니다. 상인들은 "부산시의 활성화 사업 취지는 이해하고 당연히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시장은 전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 대부분 예산 여전히 겉치장 집중

3년간 전통시장 활성화에 사용된 예산을 분석해 봤습니다.

920억 원의 예산 중 70% 이상이 전통시장의 노후화된 건물 등을 보수하는 시설 현대화 사업이나 주차장 시설 확충 등에 사용됐습니다. 나머지 예산은 시장별 특성화 사업에 들어갔습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예산이 여전히 시장 겉치장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시장 상인들은 시장의 외관만 꾸민다고 해서 떠나간 손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는데요.

부산지역 한 시장에서는 "손님 발길이 끊겼는데 겉만 화려해진다고 사람들이 오겠냐"며 아예 활성화 사업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시는 3년간 7백억 원을 들여 다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은 부산시청 전경.
■ 계획 발표 후 활성 방안 용역…7백억 원 낭비 '우려'

이런 상황에서 부산시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또 7백억 원을 투입해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합니다.

부산시는 지난해부터 모바일 앱을 구축하는 등 전통시장 온라인 판로 개척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번 계획에서도 7백억 원 중 백억 원가량을 관련 사업에 투입할 예정입니다. 시설 개선 등
사업에도 여전히 5백억 원 가까운 예산이 듭니다.

다만 이 사업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은 많습니다. 우선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온라인 시장 개척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특히 시장 상인들은 물론 시장을 찾는 주 고객층도 장년층이 많은 만큼 온라인 시장 활성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부산시는 2천만 원을 들여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용역을 이달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을 다시 점검해 보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3개년 계획이 발표된 시점에서 너무 늦은 용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데요. 시는 용역 발주 시기를 놓쳤고 오는 9월쯤 용역이 마무리되면 3개년 계획에 다시 반영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해명을 내놨습니다.

사업에 대한 아무 개선 없이 전통시장 활성화에 또 7백억 원이 낭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 고객층 심층 분석…상인 안정적 소득 마련 방안 보장"

전문가들은 예산이 편성된다고 해서 관성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 활성화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업이 무엇인지 재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외관 개선에 집중할 게 아니라 진짜 전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이 뭔지 좀 더 고민해야 한다는 건데요.

전문가들은 우선 개별 전통시장을 찾는 주 고객층에 대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통시장별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조언하는데요. 이와 더불어 전통시장에서 상인들이 떠나지 않도록 안정적인 소득 마련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동아대 오동윤 경제학과 교수는 "전통시장 주 고객층과 상인 연령대를 분석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전통시장 인근 식당 등에 원부자재를 판매하게끔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해 줄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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