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윙에서 미드필더로…이인영의 변신은 통할까?

입력 2019.05.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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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의 이인영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이 의원은 1차 투표에서 54표를 얻어 김태년 의원(37표), 노웅래 의원(34표)를 비교적 큰 차이로 따돌렸고, 이어진 결선투표에서도 76표를 받아 무려 27표 차로 김태년 의원을 꺾었습니다. 박빙·혼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던 승부치고는 싱거운 낙승이었습니다.

'86 운동권 그룹 대표 주자'로 정계 입문

전대협 초대 의장 시절 이인영 의원전대협 초대 의장 시절 이인영 의원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는 이른바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의 대표주자입니다.

이 원내대표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을 맡으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기도 했던 이 원내대표는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함께 6월 항쟁 당시 대학생 시위를 진두지휘하며 전대협 결성을 주도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전민련과 전국연합 등에서 오랜 시간 재야 활동을 하다가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 방침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적 유명세를 얻었던 학생운동 지도자치고는 정계 진출이 늦은 편인데요. 이 원내대표는 전대협 동료였던 우상호 의원 등과 "학생운동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적어도 10년간은 정계에 진출하지 말자, 숙성 기간을 갖자"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정당이 무슨 엔터테인먼트 회사인가?"…진보 이념 고수해온 원칙론자

새천년민주당 의원 시절 이인영 의원 (오른쪽에서 세 번째)새천년민주당 의원 시절 이인영 의원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인영 원내대표는 정계 입문 이후에도 상당한 원칙주의자로 통했습니다. 2013년 4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는 그런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난 기사로 지금도 회자됩니다.

'과거 운동권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기자의 지적에 이 원내대표는 "그럼 민주당이 보수당이 되라는 말인가? 이념 없는 정치는 거짓말이다. 정당이 무슨 엔터테인먼트 회사인가?"라는 말로 응수했습니다.

"정치에서 중간층을 목적으로 하는 건 없다.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버리나? 예를 들어 비정규직을 줄이자는 것과 늘리자는 것의 중간층은 도대체 뭔가?"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운동권 가치를 시대 변화에 맞게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 아니냐'는 질문에도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그걸 버리면 정치를 왜 하나? 지난 총선과 대선의 실패는 지휘부의 리더십 책임이지 진보의 가치를 고집해서 생긴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직후여서 안팎으로부터 중도로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지만, 이 원내대표는 오히려 진보적 정체성 유지를 강조한 겁니다. 이렇게 원칙주의자적인 면모 덕분에 이 원내대표는 주변으로부터 주로 '까칠하다', '뻣뻣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20대 국회 들어서는 이렇다 할 당직도 맡지 않아 '스킨십이 부족하다', '낯가림이 있다' 같은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당 대표 선거에선 본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한 채 '컷오프'되며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우리 인영이가 달라졌어요"

이번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앞두고서도 이인영 원내대표 원칙주의자적인 면모가 발목을 잡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당장 내년 총선을 걱정하고 야당을 상대할 협상 전략을 궁금해하는 의원들에게 '진보적 가치'와 '원칙'을 앞세우는 이 원내대표의 화법이 과연 통할까, 라는 물음표가 이 원내대표 주변을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 선거운동으로 자신을 둘러싼 회의론을 성공적으로 불식시켰습니다. 가벼운 농담을 곁들인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로 "우리 인영이가 달라졌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변화를 강조한 이 원내대표의 선거운동은 오늘 정견 발표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 정치라는 축구장에서 레프트 윙에서 옮겨 중앙 미드필더가 되겠다"는 말로 사실상의 전향(?) 선언을 했습니다. 한 당직자는 "오랫동안 이인영을 봐온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파격적인 말인지 알 것"이라는 말로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이후 원내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정말 말 잘 듣는 원내대표가 되겠다, 고집 세다는 평을 깔끔하게 불식하고 부드러운 남자가 되겠다"면서 역시 변화에 방점을 뒀습니다.

이인영의 변신, 성과로 입증될까?


이인영의 변화 혹은 변신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당장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해 국회 밖으로 뛰쳐나간 자유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와야 합니다. 추경 예산안 처리를 비롯해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등 전임 홍영표 원내대표가 미처 풀지 못하고 떠난 각종 현안 법안들도 쌓여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만큼, 이제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중압감도 한층 커진 상황입니다.

이를 위해선 주로 청와대가 방향을 제시하고 당이 실행하는 역할을 해왔던 기존의 당·청 관계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나하나가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녹록지 않은 과제들입니다. 이 원내대표가 좋아하는 축구에 비유하자면, 월드컵 4강에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날카로운 레프트윙에서 중원 사령관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이인영 선수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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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프트윙에서 미드필더로…이인영의 변신은 통할까?
    • 입력 2019-05-08 19:34:32
    취재K
3선의 이인영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이 의원은 1차 투표에서 54표를 얻어 김태년 의원(37표), 노웅래 의원(34표)를 비교적 큰 차이로 따돌렸고, 이어진 결선투표에서도 76표를 받아 무려 27표 차로 김태년 의원을 꺾었습니다. 박빙·혼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던 승부치고는 싱거운 낙승이었습니다.

'86 운동권 그룹 대표 주자'로 정계 입문

전대협 초대 의장 시절 이인영 의원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는 이른바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의 대표주자입니다.

이 원내대표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을 맡으면서부터였습니다.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기도 했던 이 원내대표는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민주당 우상호 의원과 함께 6월 항쟁 당시 대학생 시위를 진두지휘하며 전대협 결성을 주도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전민련과 전국연합 등에서 오랜 시간 재야 활동을 하다가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 방침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적 유명세를 얻었던 학생운동 지도자치고는 정계 진출이 늦은 편인데요. 이 원내대표는 전대협 동료였던 우상호 의원 등과 "학생운동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적어도 10년간은 정계에 진출하지 말자, 숙성 기간을 갖자"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정당이 무슨 엔터테인먼트 회사인가?"…진보 이념 고수해온 원칙론자

새천년민주당 의원 시절 이인영 의원 (오른쪽에서 세 번째)
이인영 원내대표는 정계 입문 이후에도 상당한 원칙주의자로 통했습니다. 2013년 4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는 그런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난 기사로 지금도 회자됩니다.

'과거 운동권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기자의 지적에 이 원내대표는 "그럼 민주당이 보수당이 되라는 말인가? 이념 없는 정치는 거짓말이다. 정당이 무슨 엔터테인먼트 회사인가?"라는 말로 응수했습니다.

"정치에서 중간층을 목적으로 하는 건 없다.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버리나? 예를 들어 비정규직을 줄이자는 것과 늘리자는 것의 중간층은 도대체 뭔가?"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운동권 가치를 시대 변화에 맞게 바꾸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 아니냐'는 질문에도 "내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버릴 수 없다. 그걸 버리면 정치를 왜 하나? 지난 총선과 대선의 실패는 지휘부의 리더십 책임이지 진보의 가치를 고집해서 생긴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패배한 직후여서 안팎으로부터 중도로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지만, 이 원내대표는 오히려 진보적 정체성 유지를 강조한 겁니다. 이렇게 원칙주의자적인 면모 덕분에 이 원내대표는 주변으로부터 주로 '까칠하다', '뻣뻣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20대 국회 들어서는 이렇다 할 당직도 맡지 않아 '스킨십이 부족하다', '낯가림이 있다' 같은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당 대표 선거에선 본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한 채 '컷오프'되며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우리 인영이가 달라졌어요"

이번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앞두고서도 이인영 원내대표 원칙주의자적인 면모가 발목을 잡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습니다.

당장 내년 총선을 걱정하고 야당을 상대할 협상 전략을 궁금해하는 의원들에게 '진보적 가치'와 '원칙'을 앞세우는 이 원내대표의 화법이 과연 통할까, 라는 물음표가 이 원내대표 주변을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는 변화에 초점을 맞춘 선거운동으로 자신을 둘러싼 회의론을 성공적으로 불식시켰습니다. 가벼운 농담을 곁들인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로 "우리 인영이가 달라졌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변화를 강조한 이 원내대표의 선거운동은 오늘 정견 발표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 정치라는 축구장에서 레프트 윙에서 옮겨 중앙 미드필더가 되겠다"는 말로 사실상의 전향(?) 선언을 했습니다. 한 당직자는 "오랫동안 이인영을 봐온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파격적인 말인지 알 것"이라는 말로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이후 원내대표 수락 연설에서도 "정말 말 잘 듣는 원내대표가 되겠다, 고집 세다는 평을 깔끔하게 불식하고 부드러운 남자가 되겠다"면서 역시 변화에 방점을 뒀습니다.

이인영의 변신, 성과로 입증될까?


이인영의 변화 혹은 변신이 현실 정치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이 원내대표는 당장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해 국회 밖으로 뛰쳐나간 자유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와야 합니다. 추경 예산안 처리를 비롯해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 체계 개편 등 전임 홍영표 원내대표가 미처 풀지 못하고 떠난 각종 현안 법안들도 쌓여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만큼, 이제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중압감도 한층 커진 상황입니다.

이를 위해선 주로 청와대가 방향을 제시하고 당이 실행하는 역할을 해왔던 기존의 당·청 관계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나하나가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녹록지 않은 과제들입니다. 이 원내대표가 좋아하는 축구에 비유하자면, 월드컵 4강에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막 날카로운 레프트윙에서 중원 사령관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이인영 선수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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