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민과 30년…인생 2막도 그들과 함께

입력 2017.03.18 (08:21) 수정 2017.03.1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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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탈북민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면 가장 먼저 신원과 탈북 경위를 확인한 뒤에 정착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네. 그런 업무를 무려 30년이나 담당했던 한 전직 공무원이 있는데요,

최근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그 역시 탈북민을 위한 삶이라고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김만철씨 가족 귀순을 시작으로 탈북민들의 길잡이로 살아온 나원호 씨의 새로운 인생 준비를 홍은지 리포터가 소개해드립니다.

<리포트>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

간단한 게임을 하고,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율동도 하는 어르신들이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옆에서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며 함께 즐거워하는 이 사람.

지난해까지 30여 년을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원호 씨입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제2의 인생을 지금 출발하는 건데 제가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노인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싶고... ”

특유의 붙임성으로 어르신들께 인기가 많은데요.

<인터뷰> 이성만(80살) : “하루에 한두 번 만나 얘기를 하면 아주 마음 편해하고 그래요. ”

직원 가운데는 탈북민도 있습니다.

<인터뷰> 황규순(요양보호사/탈북민) : “한국 사회에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 원장님께서 많이 보살펴 주시고 또 신뢰도 해 주시고 하니까 저도 자기 맡은 일에 잘 하려고 저도 노력하고... ”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직 공무원 나원호 씨.

공직에 몸담았던 지난 30년 동안 그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하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탈북민인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녹취> “특별히 좀 더 신경 써서 보살피셔야 할 것 같고...”

꼼꼼하게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는 나원호 씨.

그런데 공무원 시절 그의 업무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는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들이 처음 오시면 이 사람이 정확하게 탈북민이 맞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그런 부분하고, 그리고 또 우리가 이제 남북이 대치되어 있으니까 북한 정보 이런 것도 좀 저희가 수집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업무를 좀 많이 했습니다. ”

30년 전인 1987년 2월, 일가족 11명이 집단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김만철씨 일가 귀순 사건’.

<녹취> 김만철(1987년 귀순 당시 기자회견) :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었는데요.

나원호 씨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만철 씨 가족의 남한 생활 적응과 정착을 돕는 일을 맡았던 건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3대가 와서 할머니에서부터 김만철 씨 부부 그렇게 하고 이제 최정섭?최평섭 처남, 그리고 아들들까지 왔으니까 다... 제가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사람 하면 뭐 머리에 뿔, 좀 무서운 뭐 그런 게 좀 있었는데 막상 접해보니까 진짜 똑같더라고요. 야, 이게 이제 앞으로 내 천직이 될 수 있겠구나 해가지고 그 이후부터 그냥 계속 줄곧 이 업무만 해 오게 됐습니다. ”

지금은 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만철 씨의 처남 최정섭 씨.

나원호 씨와 3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던 그에게 나원호씨가 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정섭(김만철 씨 처남) : “시장에도 데리고 나갔었고요. 그 다음에 버스 노선이라든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줬죠. 그만큼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한테 너무 따뜻하게 잘해줬죠. ”

탈북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도움을 주려 애쓴 그의 모습에 지금까지도 호형호제하게 된 탈북민들.

그들이 잘 정착해 지내고 있는 모습이 나원호 씨에겐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인생의 반을 남한에서 보내 이제는 탈북민이라는 수식어가 조금 어색한 아우들도 여럿 있는데요.

<녹취> “우리는 다시 만나리 안녕~ 어머니...”

과거 가수로, 또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김용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한국 땅에 첫 발을 딛었을 때 처음으로 저에게 와서 ‘수고했습니다. 피곤하죠? 여기 대한민국입니다. 잘 왔습니다.’ 하면서 저에게 악수를 했고 같은 차를 타고 숙소까지 오신 분이에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그는 나원호 씨가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제는 선배 사업가의 입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과외 선생을 자처합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여태까지는 인생의 스승으로서 조심스럽게 내가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아, 이제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구나...”

탈북민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지난 세월.

덕분에 탈북민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나원호 씨.

남북한 주민들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 개발을 연구하는 한 민간 연구소.

탈북민 출신의 석·박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세미나가 진행 중인데요.

나원호 씨의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 소장) : “(나원호 씨의) 논문에서 보니까 탈북자들의 정착 방안 같은 것들 제가 보니까 상당히 와 닿는 것들이 많아요. ”

나원호 씨가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 얘기인데요.

친목, 봉사 모임 등에 참여해 사회적 관계를 활발히 맺는 탈북민일수록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정착에도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은 특히 기댈 데 없는 탈북민 노년층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데요.

새로 시작한 일도 바로 이 같은 관심에서 출발한 겁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 노후까지는 아직까지 우리 정부나 이쪽에서 책임져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제가 앞으로 남은 여생은 탈북민들의 좀 더 편안한 여생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좀 잘 섬기고 싶습니다.”

수많은 탈북민의 정착 과정을 지켜봐 온 그는 탈북민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한국에 오는 순간 당신은 한 살입니다. 한 살... 그러니까 새로 태어났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인들보다도 몇 십 배 더 열심히 노력하면 바로 적응할 것이다라고 조언을 많이 해 주는데... (국민들도) 넓은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포용해 주고 안아주면서 이끌어 가면 이들이 더 잘 적응할 것이고 통일도 더 빨리 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탈북민 정착의 길잡이에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탈북민의 친구가 된 전직 공무원.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탈북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그의 인생 제2막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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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탈북민과 30년…인생 2막도 그들과 함께
    • 입력 2017-03-18 08:25:37
    • 수정2017-03-18 08: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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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탈북민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하면 가장 먼저 신원과 탈북 경위를 확인한 뒤에 정착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네. 그런 업무를 무려 30년이나 담당했던 한 전직 공무원이 있는데요,

최근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네, 그 역시 탈북민을 위한 삶이라고 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김만철씨 가족 귀순을 시작으로 탈북민들의 길잡이로 살아온 나원호 씨의 새로운 인생 준비를 홍은지 리포터가 소개해드립니다.

<리포트>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노인 요양원.

간단한 게임을 하고,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춰 율동도 하는 어르신들이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요.

옆에서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며 함께 즐거워하는 이 사람.

지난해까지 30여 년을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원호 씨입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제2의 인생을 지금 출발하는 건데 제가 평상시에 하고 싶었던 노인 복지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싶고... ”

특유의 붙임성으로 어르신들께 인기가 많은데요.

<인터뷰> 이성만(80살) : “하루에 한두 번 만나 얘기를 하면 아주 마음 편해하고 그래요. ”

직원 가운데는 탈북민도 있습니다.

<인터뷰> 황규순(요양보호사/탈북민) : “한국 사회에 정착을 잘 할 수 있도록 원장님께서 많이 보살펴 주시고 또 신뢰도 해 주시고 하니까 저도 자기 맡은 일에 잘 하려고 저도 노력하고... ”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직 공무원 나원호 씨.

공직에 몸담았던 지난 30년 동안 그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하고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탈북민인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녹취> “특별히 좀 더 신경 써서 보살피셔야 할 것 같고...”

꼼꼼하게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는 나원호 씨.

그런데 공무원 시절 그의 업무는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일이었다는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들이 처음 오시면 이 사람이 정확하게 탈북민이 맞는지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그런 부분하고, 그리고 또 우리가 이제 남북이 대치되어 있으니까 북한 정보 이런 것도 좀 저희가 수집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업무를 좀 많이 했습니다. ”

30년 전인 1987년 2월, 일가족 11명이 집단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김만철씨 일가 귀순 사건’.

<녹취> 김만철(1987년 귀순 당시 기자회견) :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자유스럽게 살기 위해 떠났습니다. ”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었는데요.

나원호 씨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김만철 씨 가족의 남한 생활 적응과 정착을 돕는 일을 맡았던 건데요.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3대가 와서 할머니에서부터 김만철 씨 부부 그렇게 하고 이제 최정섭?최평섭 처남, 그리고 아들들까지 왔으니까 다... 제가 너무 좋더라고요. 북한사람 하면 뭐 머리에 뿔, 좀 무서운 뭐 그런 게 좀 있었는데 막상 접해보니까 진짜 똑같더라고요. 야, 이게 이제 앞으로 내 천직이 될 수 있겠구나 해가지고 그 이후부터 그냥 계속 줄곧 이 업무만 해 오게 됐습니다. ”

지금은 한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만철 씨의 처남 최정섭 씨.

나원호 씨와 30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던 그에게 나원호씨가 생활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정섭(김만철 씨 처남) : “시장에도 데리고 나갔었고요. 그 다음에 버스 노선이라든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줬죠. 그만큼 우리 가족 한 명 한 명한테 너무 따뜻하게 잘해줬죠. ”

탈북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도움을 주려 애쓴 그의 모습에 지금까지도 호형호제하게 된 탈북민들.

그들이 잘 정착해 지내고 있는 모습이 나원호 씨에겐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인생의 반을 남한에서 보내 이제는 탈북민이라는 수식어가 조금 어색한 아우들도 여럿 있는데요.

<녹취> “우리는 다시 만나리 안녕~ 어머니...”

과거 가수로, 또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김용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한국 땅에 첫 발을 딛었을 때 처음으로 저에게 와서 ‘수고했습니다. 피곤하죠? 여기 대한민국입니다. 잘 왔습니다.’ 하면서 저에게 악수를 했고 같은 차를 타고 숙소까지 오신 분이에요.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그는 나원호 씨가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제는 선배 사업가의 입장에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와 과외 선생을 자처합니다.

<인터뷰> 김용(탈북 사업가) : “여태까지는 인생의 스승으로서 조심스럽게 내가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면 아, 이제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구나...”

탈북민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내온 지난 세월.

덕분에 탈북민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나원호 씨.

남북한 주민들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비해 북한 개발을 연구하는 한 민간 연구소.

탈북민 출신의 석·박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세미나가 진행 중인데요.

나원호 씨의 모습도 보입니다.

<인터뷰> 김병욱(북한개발연구소 소장) : “(나원호 씨의) 논문에서 보니까 탈북자들의 정착 방안 같은 것들 제가 보니까 상당히 와 닿는 것들이 많아요. ”

나원호 씨가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 얘기인데요.

친목, 봉사 모임 등에 참여해 사회적 관계를 활발히 맺는 탈북민일수록 우리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정착에도 성공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은 특히 기댈 데 없는 탈북민 노년층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는데요.

새로 시작한 일도 바로 이 같은 관심에서 출발한 겁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탈북민 노후까지는 아직까지 우리 정부나 이쪽에서 책임져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제가 앞으로 남은 여생은 탈북민들의 좀 더 편안한 여생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좀 잘 섬기고 싶습니다.”

수많은 탈북민의 정착 과정을 지켜봐 온 그는 탈북민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나원호(전직 공무원) : “한국에 오는 순간 당신은 한 살입니다. 한 살... 그러니까 새로 태어났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인들보다도 몇 십 배 더 열심히 노력하면 바로 적응할 것이다라고 조언을 많이 해 주는데... (국민들도) 넓은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포용해 주고 안아주면서 이끌어 가면 이들이 더 잘 적응할 것이고 통일도 더 빨리 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탈북민 정착의 길잡이에서 이제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탈북민의 친구가 된 전직 공무원.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탈북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그의 인생 제2막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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