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작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 방언인 '올렛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유명관광지 대신 휴식과 마음의 평안을 얻기위해 올렛길을 걷는 사람들을 조성훈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제주의 동쪽 끝, 푸른 바다를 끼고 두 마을이 마주봅니다.
지척의 거리지만, 이웃간엔 어장을 둘러싸고 수십년동안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녹취> 김화분(제주 종달리 주민) : "다투고 싸우고 난리가 났지..."
지난해 가을, 마을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오름사이로 조그만 길이 열렸습니다.
<녹취> 마을 청년(제주 구좌읍) : "길이 생기면서 이웃끼리 얼굴도 자주보고 그러다보니까 서로 조금씩 친숙해진 것 같습니다."
작은 골목을 뜻하는 제주말 올레, 이 올렛길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녹취> 서명숙(제주 올레 개척) : "올레의 처음 출발부터가 통합의 올레, 평화의 올레, 치유의 올레이죠."
제주 동부에서 남쪽 바닷길을 따라 이어지는 올렛 길은 지금까지 모두 10개 코스 200여 km가 열렸습니다.
울퉁불퉁 흙투성이 그저 한적한 시골길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야생초 가득한 푸른 들판이 펼쳐집니다.
열대의 정취가 풍기는 야자수 가로수 길을 지나면, 해맑은 억새가 바람 속에서 손짓합니다.
제주 올렛길의 대부분은 바다와 접해 있어 걷기 여행의 명소로 알려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아름답다는 평갑니다.
<녹취> 지민정(여행자) : "차없이 걸을 수 있고, 또 바다를 이렇게 계속 끼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제가 경험한 것으로는 이곳밖에 없어요."
으례 시끌벅적한 관광명소만을 쫏기듯 둘러보고 제주를 떠났던 여행자들도 이젠 마음의 평화와 휴식을 위해 올렛 길을 걷습니다.
<녹취> 김명수(여행자) : "누구 뭐 걱정할 것도 없고, 오직 걷는 것, 마음의 평안만 갖고 걷는 것이니까요..."
등산처럼 정상을 올라야 한다는 강박도 도시의 길에서 나는 찌든 공해와 소음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인터뷰> 최형석(여행자) : "등산도 해보고 마라톤도 조금씩 하고 있지만, 생각하면서 편안한 것은 역시 걷기인 것 같아요."
걸음은 그래서 속도를 거스릅니다.
최대한 느리게, 주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는 게으름뱅이같은 걸음이어야 걷기의 묘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서명숙(제주 올레 이사장) : "빠른 것속엔 평화가 없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바쁜 생활속에 놓이면 놓일수록 인간 본연의 속도로 돌아가야죠."
건강은 물론 마음의 평화를 찾는 여행자들이 몰리면서 제주에서 시작된 자연의 길 만들기는 지리산의 샛길 살리기 등,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조금 더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 꼭 풍치 좋은 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사는 주변 곳곳에 나만의 보석같은 골목길들이 느릿한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성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