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개나리가 만발한 호젓한 시골길.
새벽부터 길을 재촉해 다섯 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평안남도의 ‘다제 내성’ 결핵 센터입니다.
<녹취> 인세반(유진벨 재단 회장) : 우리가 아침 가래를 받기 위해서 여섯시 반에 떠났습니다. 그런데 도로가 나빠 가지고 다섯 시간 걸렸습니다."
북한의 결핵 환자들도 아침부터 남한 의료진을 기다렸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결핵 치료약을 받기 위해섭니다.
환자들은 간단한 신체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통한 폐 검사를 하고, 가래도 제출합니다.
검사를 거쳐 일반 결핵인지, 아니면 ‘다제 내성’ 결핵, 이른바 ‘슈퍼 결핵’인지에 따라 치료약과 방법이 달라집니다.
약을 꾸준히 먹지 않아 병세가 좋아지지 않은 환자들에게는 따끔한 충고가 이어집니다.
<녹취> "(왜 이 약을 먹죠?) 살기 위해서 먹습니다. (네, 그런데 그러면 왜 더 좋은 약. 도츠 키트를 왜 안 먹습니까?)치료에 실패해서 그렇습니다. (네, 거기에 대한 내성이 있어서 그래요. )"
‘다제 내성’ 결핵은, 두 가지 이상의 치료약에 내성을 가진, 즉 약이 듣지 않는 결핵을 말합니다.
결핵 환자가 약을 먹으면 몸 안의 결핵균 대부분은 죽습니다.
이 때 환자는 완치됐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중단하기 쉬운데요.
하지만 살아남은 적은 수의 결핵균이 약에 내성을 가진 채 다시 퍼지게 되고,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이른바 ‘슈퍼 결핵’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다제 내성’ 결핵은 치료비용과 기간도 일반 결핵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다제 내성’ 결핵 환자의 경우 일반 결핵환자보다 150배의 비용이 더 들고 완치율도 20-30%에 불과합니다.
보통 결핵 환자들은 여섯 달에서 여덟 달 정도 치료를 받으면 완치되는 반면, ‘다제 내성’ 결핵 환자들은 최소 2년 반 정도 꾸준히 치료받아야 합니다.
이 단체는 북한의 결핵 퇴치, 특히 ‘다제 내성’ 결핵 퇴치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녹취> 인세반(유진벨 재단 회장) : "북한에서 일반 결핵 치료를 실패할 때는 사실 우리 사업 외에는 거의 다제 내성 환자들이 치료 받을 기회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도 가지고 있는 약이 제한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제 내성 치료 하다가 실패한 환자들에게는 다른 희망을 줄 수가 없거든요. "
결핵 환자들의 가래를 남한으로 가져와 검사한 뒤, 6개월 뒤 또다시 북한을 찾아 알맞은 약과 치료방법을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 내 6곳의 치료 센터에서 ‘다제 내성’ 결핵 환자 8백여 명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가 북한 결핵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지금까지 백 명 넘는 환자들을 완치시켰습니다.
<녹취>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유진벨 재단이 갖고 있는 큰 장점이 북한 전역을 커버하고 있어요. 특정 부분에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전문성도 키우고 특히 이제 정보도 많이 축적할 수도 있고 인적 관계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효과적인 작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 길은 멉니다.
매년 3백 명의 새로운 결핵 환자가 재단에 도움을 청하고 있고, 재단에서 치료 받는 환자 역시 북한 ‘다제 내성’ 결핵 환자의 5% 수준에 불과합니다.
필수 의약품이 부족하고 상하수도 시설이 비위생적인 데다, 주민의 영양 상태까지 좋지 않은 게 결핵 환자가 급증한 주요 이유입니다.
치료할 길이 막막해 몇 년씩 병을 앓기만 했던 북한의 ‘다제 내성’ 결핵 환자들은 본격적인 치료를 받으며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녹취> 다제 내성 결핵 환자 : "우리가 살려면 이거(약) 먹는 게 그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약을 받고 보니까 이거 이제 내가 병을 다 고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합니다. "
<녹취> 다제 내성 결핵 환자 : "그 때는 죽을 뻔했으니까 금방 죽는 것 같아서 그랬는데. 이제 어느 정도 회복되고, 저한테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회복이 많이 됐단 말입니다. 그래서 즐겁기도 하고. 그때는 웃음이 아예 안 나왔었는데 지금은 조금만 우스운 일이 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기뻐요. "
환자를 돌보다 의료진이 결핵에 감염되는 안타까운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녹취> 다제 내성 결핵 환자(의사) : "결핵을 다루는 의사였는데 제가 환자들에게 감염을 받아서. 도츠약을 썼는데 실패해서 가래에서 균이 나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내성약을 먹습니다. "
<녹취> 다제 내성 결핵 환자(결핵 센터 소장) : "이렇게 환자 관리에 정성을 다 하시다가 소장 선생도 감염이 되셨네.(네,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약을 먹고 버티겠습니다. )"
<녹취> "다음에 올 때 이 옷을 가져와야 해요. (네.)"
처음 입는 초록색 조끼와 팔에 두른 완장이 머쓱하기만 합니다.
환자들의 대표인 ‘반장’으로 선출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치료는 물론 나머지 환자들의 치료까지도 신경 써야만 합니다.
<녹취> 인세반(유진벨 재단 회장) : "반장의 역할이 뭐냐? 자기 환자들 모조리 처방을 아시고, 모든 사람이 무조건 약을 먹는 거예요. 확인하세요. 매일."
결핵약은 먹기도 힘들고 부작용도 많습니다.
그런 만큼 약 복용을 게을리 하거나 스스로 복용을 중단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단체는 의료진의 손길이 채 닿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환자들 스스로 서로를 돌봐주는 반장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녹취> 다제 내성 결핵 환자(반장) : "네, 오늘 반장으로 추천됐습니다. 반장 사업을 더 잘해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들이 다 같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녹취> "이건 어떻습니까? 일단 완치로 보는 게 좋습니까? 졸업 시킵시다. 완치!"
6개월에 한 번씩, 남북의 의료진은 다 같이 모여 환자의 퇴소 문제를 논의합니다.
18개월 이상 결핵균에 대해 음성 반응을 유지하면 완치로 간주 돼 요양소를 ‘퇴소’하게 됩니다.
격리돼 치료를 받기 때문에 대개 2년 넘게 가족과 떨어져 있던 환자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표정이 밝아집니다.
<녹취> ‘다제 내성’ 결핵 완치자 : "우리 처도 기다리고 있고, 우리 아들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녹취> ‘다제 내성’ 결핵 완치자 : "얼굴에 살도 많이 쪄서 이전하고 많이 달라요 모습이. 그렇죠? (네.)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네.)"
올해 스무 살인 이 환자 역시 오랜 치료 끝에 완치됐습니다.
하지만 계속 요양소에 남아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녹취> ‘다제 내성’ 결핵 완치자(간호사) : "저 같이 병 걸렸다 고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다 같이 나가길 바라는 심정에서 같이 치료하고 싶고 해서 남았습니다.
지난 봄, 이 단체가 처음 치료에 도입한 의료장비입니다.
결핵 환자들의 가래를 분석하면 ‘다제 내성’ 결핵에 걸렸는지 여부를 2시간 만에 판별할 수 있습니다.
<녹취> 북한 보건성 소속 의료진 : "치료를 정말 요구되는 환자들이 즉석에서 진단하고 즉석에서 치료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하지만 우리 정부는 군사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이 장비를 북한으로 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에 있는 재단을 통해 장비를 북한으로 가져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 한 대당 2천 5백만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여서, 현재 3대인 장비 수를 늘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북한 당국이 의료진의 방북을 1년에 두 차례로 제한하고 있고, 이마저도 중국을 경유해야만 하는 어려움도 겪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다제 내성’ 결핵 퇴치를 위한 치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한 민간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상황입니다.
이런 만큼 단체는 개성에 ‘결핵 퇴치 기지’ 설립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녹취> 인세반(유진벨 재단 회장) : "이 결핵은 사실 문제로 봤을 때는 벌써 통일된 문제입니다. 이건 남과 북을 구별할 필요 없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우려해야 할 문제다. 그래서 개성공단 같은 데에서 결핵을 퇴치하는 심의를 같이 해야 되지 않겠느냐.
유진벨 재단의 치료를 받으며 북한의 결핵 환자들은 건강을 되찾는 것뿐 아니라 다시 살아갈 용기와 새 삶에 대한 희망도 얻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현재 북한의 결핵 환자는 9만 천여 명, 또 그 중 3천 5백 명 정도는 ‘다제 내성’ 결핵 환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대북지원단체들은 보편적 인류애의 관점에서라도 이들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