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지난 2008년 초에 숭례문 화재 났던 것, 다들 기억하시죠?
5년 넘는 복원과정 끝에 숭례문이 다시 되돌아 오긴 했는데요, 그런데, 복원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부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취재기자 나와 있습니다.
홍희정 기자?
<질문> 당시 화재 상황 먼저 짚어볼까요?
그 때 불길을 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어디 있었나요?
소방차가 늦게 출동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답변>
네, 5년 전 화재 당시 상황을 다시 짚어보면, 말씀하신 것 처럼 소방차가 늦게 출동한 것도 아니고, 화재 진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목조 건물 구조에 대해 잘 몰라서 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 화면을 보시면, 처음에는 누각 쪽에서 연기만 나는 정도였습니다.
40분쯤 지난 후에 불길을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화근이었던 거죠.
나중에 보니까 불씨가 계속 살아나고 있었는데, 지붕 기와에 가려 보지 못한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지붕을 깨고 건물 안쪽을 위주로 화재 진압을 했어야 했는데, 국보 1호 문화재다 보니까 섣불리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겁니다.
<질문>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지난 5월에 숭례문이 복원을 마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성대하게 준공기념식도 했었는데, 지금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죠?
<답변>
네, 지금 가장 얘기가 많이 되고 있는 건 단청 문젭니다.
단청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게 발견된 건 지난 5월 26일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준공 직후부터 단청칠이 뜨는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숭례문 단청에 연꽃 무늬 부분이 주로 훼손이 됐는데요, 아예 단청 칠 일부가 떨어져 나간 곳도 있구요, 이렇게 칠이 일어나서 곧 있으면 떨어질 것 처럼 보이는 부분들도 많습니다.
단청 훼손 위치를 보면 건물 정면, 그러니까 남쪽 방향에 많이 보이고, 아래층보다는 위층에 단청이 훼손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질문> 복원작업 당시에 이미 단청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작업을 늦추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나요?
<답변>
네, 이번에 숭례문 단청을 칠할 때, 호분을 두껍게 칠한 게 문제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호분을 칠할때 호분이 잘 붙어있으려면 접착제 성분이 필요한데, 이 접착제가 기존에 쓰이지 않았던 것이 화근인 것으로 보입니다.
접착제에는 아교랑 아크릴 수지가 있는데, 요즘 모든 단청 복원할때는 아크릴 수지를 접착제로 쓴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전통기법을 살리기 위해 아교를 쓰기로 했죠.
아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이 안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일본산 아교를 가져다 쓰기로 한겁니다.
색깔을 내는 물감을 안료라고 하는데, 이 안료도 천연 안료를 쓴다는게 당초 계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안료는 검붉은색인 석간주 밖에 못 썻고, 나머지는 색감이 좋다는 이유로 일본산 안료를 수입해다 썼습니다.
그런데, 일본산 안료 역시 천연안료가 아니었습니다.
인공색소와 돌가루를 섞어서 만든 수간분채라고 하는 합성안료라고 합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시죠.
<인터뷰> 박미례(문화재전문위원) : "성분을 보면, 수간분채를 이루고 있는 주요 재료가 화학 성분 안료에 분채를 혼합해서 다시 가공한 안료기 때문에, 수간분채를 다시 적용할 이유는 전혀 없거든요. 그러면 수간분채에 대한 연구를 우리가 해야될 이유도 없고."
그러니까, 천연안료를 쓰자는 당초 취지 때문에 접착제와 물감을 일본산을 쓰게 됐고, 그나마 물감은 천연안료가 아닌 결과가 나온 겁니다.
<질문> 목재나 다른 쪽은 어떻나? 목재나 기와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 같은데?
<답변>
기와 색깔과 목재 건조상태가 논란입니다.
우선 목재부터 살펴보면, 2층 문루 기둥이 위아래로 1미터 이상 갈라져. 삼척 금강송을 말린거라는데, 얼마나 건조했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건조 여부는 함수율, 그러니까 나무가 물을 머금고 있는 수준을 측정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숭례문 목재의 함수율 기준은 24퍼센트로 일반 목조 건축물의 함수율 기준인 18에서 20퍼센트보다도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만큼 덜 말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인데요, 기와에 대해서도 살펴보면요, 전통 수제 기와를 썼습니다.
그런데 장인이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80대의 고령이셨어요.
얼마나 이 수제기와를 생산하는데 관여하셨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곳곳에서 기한 맞추느라 서두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질문> 너무 조금했다는 문제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답변>
숭례문 준공행사 계획안에 따르면 2월 10일에 준공행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공사가 미뤄졌고, 문화재청 담당자가 크게 질책 받았다고. 당시 정부에서는 새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하려 했다는 것.
이 때문에 당시 문화재청 담당자가 사흘간 휴대전화도 꺼놓고 출근 안했다는 것.
이런 얘기가 공사 현장에도 파다하게 퍼져있었다고.
<질문> 이런 일 없도록 해야할 텐데...
<답변>
네, 그동안 우리가 문화재 복원에 얼마나 소홀했는지가 이번 숭례문 복원을 통해 드러난 건데요.
일단 너무 서둘렀다. 전통 기술의 단절이 생각보다 심했다는 부분이 이번에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황평우 : "5년 3개월이 걸렸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준공을 하려고 했잖아요? 근데 그때 못했죠. 왜냐면 준비가 안됐는데 어떻게 합니까. 결국에는 가장 큰 건 조급증. (감리는 왜 제대로 안했을까요?) 젊은 현장 기술자들이, 문화재 보수 기술자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오래된 숙련 장인에 대해서 감리를 제대로 한다?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사실상 이런 감리제도도 한번 되씹어 볼 필요가 있죠.
문화재청은 원인을 정확히 점검해서 신중하게 복원하겠다는 입장인데요, 단청 문제가 심할 경우에는 단청을 전부 뜯어낸 뒤 새로 칠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강경환 : "정확히 점검해서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그 원인에 따라서 보수하는 바에 따라서 아마 전부 새로 칠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 세부적인 부분만 보수하면 될지 그런 부분이 아마 그렇게 결정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사실 전통방식으로 복구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만, 저희가 조금 미숙하거나 간과한 부분은 전통방식의 복구가 얼마나 심각하게 단절돼 있었는지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 숭례문 국보1 호 지정된 과정 한번 살펴볼까요?
<답변>
조선 초 창건된 숭례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1934년 관보를 보시면, 조선총독부가 보물 1호로 남대문을, 보물 2호로 동대문을 지정한 사실이 명기돼 있습니다.
숭례문을 첫손에 꼽은 이유에 대해선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인터뷰> 김왕직(명지대 건축학과 교수) : "번호를 붙일 때 서울을 기준으로 지방, 쭉 내려가면서 붙여나가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이게 퍼스트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편의상 지정하기 위해서 번호를 부여했다.."
<인터뷰>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조선 출병, 임진왜란 당시에 이 문으로 (일본 장수인) 가토 기요마사가 출입했다라는 기록을 분명히 남기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국보 1호 지정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것이죠."
총독부의 결정은 해방 뒤까지 이어졌습니다.
<질문>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변경하자는 요구가 여러 차례 제기됐죠?
<답변>
네, 일제의 일방적 지정이었다는 문제에다, 역사, 예술적 가치와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섭니다.
감사원에서 국보1 호를 변경할 것을 문화재청에 권고하기도 했었는데, 변경에 따른 혼란이 우려돼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질문> 숭례문 복원 과정 문제가 많은데, 앞으로가 문제죠?
차근차근 복원과정을 취재하다보니까 우리 행정이 이른바 ‘보여주기식’의 형식적인 부분에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문화재 복원 전반에 대한 연구와 지원 체계 등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