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축구 대표팀 평가전에서 '골키퍼 삼국지' 1막의 승자가 정해질지 주목된다.
스위스와의 평가전을 이틀 앞두고 12일 파주 NFC(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첫 번째 전술훈련에서 정성룡(28·수원)과 김승규(23·울산)·이범영(24·부산)은 번갈아가면서 주전팀 조끼를 입고 골문을 지켰다.
전날에는 회복훈련 뒤 골키퍼들만 모여 김봉수 코치와 추가 훈련을 했다. 김 코치는 3명의 선수 모두를 똑같은 비중을 두고 지도하는 모습이었다.
'홍명보호(號)' 출범 이후 생긴 변화다.
지난 4년간 수문장 자리를 지켜온 정성룡에게 K리그에서 올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김승규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2 런던 올림픽 8강 승부차기에서 신들린 듯한 선방을 펼친 이범영도 경쟁에 가세했다.
홍 감독은 과거 주전 골키퍼에게 집중됐던 코칭 방식을 바꿔 경쟁 구도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안정성이 최우선 덕목인 골키퍼는 다른 포지션처럼 쉽게 바꿀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특히나 월드컵처럼 최고 권위의 대회를 코앞에 두고 주전 골키퍼를 바꾸는 선택을 감행할 감독은 많지 않다.
따라서 올해 마지막 A매치인 스위스, 러시아전에서 홍 감독의 속내가 드러날 것이라고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에 골키퍼 장갑을 끼는 선수가 본선 무대에서 주전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일단은 지난 9월 크로아티아전에서 주전 자리를 되찾은 뒤 브라질, 말리전까지 3경기 연속 골문을 지킨 정성룡이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10일 K리그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게 걸림돌이다.
그는 완전히 막을 수 있어 보였던 이명주의 슈팅을 제대로 쳐내지 못해 동점골을 내줬다. 수원은 1-2로 져 3연패에 빠졌다.
정성룡은 심기일전하겠다는 취지에서 머리를 삭발에 가깝게 짧게 깎고 이번 소집훈련에 응했다. "운동장에서 온 힘을 다한다는 생각뿐"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페루와 아이티전에서 2경기 연속 골문을 지킨 뒤 백업으로 돌아간 김승규는 K리그에서 연이은 선방으로 소속팀의 선두 질주를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
실점률은 경기당 0.79점으로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10경기 이상 뛴 골키퍼 가운데 가장 낮다. 정성룡의 실점률은 1.19점, 이범영은 1.07점이다.
페루전에서 파올로 게레로와 클라우디오 피사로의 예리한 슈팅을 연이어 막아내 무승부로 이끄는 등 A매치에서의 활약상도 정성룡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그는 정성룡의 포항전 실수를 두고는 "골키퍼로서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라며 선배를 두둔하는 대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선수의 지위가 이제는 거의 대등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아시안컵 이후 대표팀에서 낙마했던 이범영도 브라질, 말리전을 앞두고 복귀한 뒤 또다시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넘버3' 골키퍼로서의 지위는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김승규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쳐온 그가 이번 경쟁에서 욕심을 쉽게 접을 이유는 없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앞두고 정성룡은 막판까지 치열한 주전 경쟁 끝에 선배 이운재를 제치고 수문장 자리에 올랐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으로 가는 길목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