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멘트>
지난주, 부산 고가도로 공사현장에서 철골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근로자 4명이 숨졌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산업재해.
지난 한해 산업 재해자가 9만 2천 여명, 하루에 5명의 근로자가 숨지고 250명 가까이 다친 셈입니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그 심각성이 더합니다.
사망자가 가장 적은 국가에 비해 15배 가까이 많은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산업재해에 있어서만큼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는건데요, 왜 이렇게 자주 산업재해가 발생하는지 이동환 기자가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7월, 서울 노량진 상수도관 부설공사 중 근로자 7명이 수몰돼 숨졌습니다.
무리한 공사강행과 부실한 안전조치, 허술한 감독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이 병원을 포함해 근로복지공단 산하 10개 산재 병원에는 1,800여 명의 산재환자가 입원해 있습니다.
주로 건설과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다 다친 사람들입니다.
<인터뷰> "사다리가 미끄러지면서 앉은 채로 떨어져 무릎, 허리 등을 다쳤죠."
제조업 등의 분야에선 재해자 수가 정체나 감소하는 것과 달리 건설업의 재해 발생자 수는 2008년 이후 계속 늘고 있습니다.
건설분야에선 안전 의식과 대책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하청에 재하청까지 내려가는 구조속에서, 이익을 내려면 공기단축 외에는 별 방법이 없습니다.
자연, 안전보다는 효율을 우선시하는 작업관행이 팽배합니다.
<인터뷰> 재해자 : "하청이 오면 이윤을 남기려다 보면 빨리 일을 할수 밖에 없어요."
사고 사업장 사업주에 대한 과태료도 최고가 1000만원.
330명의 산재 공무원이 전국의 사업장 180만 곳을 관리해야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자 멘트>
산업재해를 입은 근로자 10명 가운데 8명은 남성,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때문에 산업재해는 한 개인의 희생뿐 아니라 가장의 경제력 상실로, 가정경제를 파탄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입니다.
보상금과 보험금 등을 포함해 산업재해로 인한 직간접적 손실액은 해마다 증가 추세인데요, 2011년에 18조원을 넘어선데 이어 지난해는 무려 19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이 정도면 국내총생산의 1.7%를 차지하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예고된 인재'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예방에 만전을 기한다면 중대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건데요.
산업재해에는 '1:29:300',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됩니다.
한 건의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 그 현장에서는 이미 29건의 경미한 유사 사고가 있었고, 300건의 사고 징후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예방이 가능한 산업 재해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전모 착용 등 보호장비만 제대로 갖춰도 사고의 절반이 준다고 합니다.
근로자의 생명을 중시하는 사업주의 경영 철학도 중요합니다.
강력한 산재 예방책, 가장 낮은 산재사망률을 자랑하는 영국의 사례에서 배워봅니다.
<리포트>
지난 2008년, 영국의 20대 노동자가 작업 도중 지반 침하로 구덩이에 빠져 숨졌습니다.
3년 뒤 법원은 안전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며 해당 기업에 '기업 살인법'을 적용해 벌금 7억원을 부과했습니다.
영국에서 '기업 살인법'이 적용된 첫 사례입니다.
<인터뷰> 셸리 라이트(피해자 어머니) :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는 못하겠지만 기업들이 작업 관행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기업 살인법이 처음 제정된 건 지난 2007년.
기업이 필수적인 안전 조치를 무시해 노동자가 숨진 경우 기업주와 감독관은 과실 치사혐의로 처벌받게 됩니다.
여기에 상한선 없는 징벌적 벌금이 부과되고, 범죄 사실까지 공표돼 기업으로선 치명적인 부담입니다.
<인터뷰> 로이 쏜리(기업 위험 자문가) : "공표 명령이 내려지면 기업은 범죄 주체와 범죄 상황.벌금 액수 등을 공개해야 합니다"
법 제정 이후 노동자 안전을 위한 기업들의 투자와 관심이 커지게 되면서 영국의 산재 비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습니다.
산업 재해를 기업의 범죄 행위로 규정한 인식 전환과 엄격한 법 제정이 영국의 산업 재해율을 세계 최저로 끌어내린 비결로 꼽히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영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