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자장면값 두 배로 내는 사람들

입력 2013.12.31 (16:29)

수정 2013.12.3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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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찾은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 카페 입구에 손님들이 맡겨둔 음료가 얼마나 쌓였는지를 적어놓은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누구나 드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요.

"커피 한 잔 주시고요, 한 잔은 맡아주세요!"

커피숍에 커피를 맡긴다니... 무슨 얘기인가 싶을 텐데요, 최근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기부 방법입니다.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면서 한 잔을 더 기부해 카페에 맡겨두면 노숙자 등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공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한 이탈리아의 '서스펜디드 커피' 문화에 착안한 겁니다. 기부받는 사람의 몫까지 미리 계산한다는 뜻에서 이른바 '미리내 기부'라고 합니다.

'노숙자가 과연 카페에 올까?', '노숙자가 카페에 들어와 음료를 마시면 다른 손님이 불쾌해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기부 음료'가 얼마나 인기를 끄는지 카페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음료를 맡겨놓는 사람에 비해 음료를 마시러 오는 사람이 적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카페 사장님은 직접 거리에 나가 노숙자들이 자활을 위해 만들어 판매하는 잡지를 사면서 맡겨놓은 음료를 가져다 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부 방식은 지난 5월 한 대학 교수에 의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커피에서 시작한 미리내 기부는 빠르게 확산돼 이제는 자장면, 삼계탕, 공연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은퇴 후 재취업 교육을 하는 한 소셜벤처업체도 미리내 기부에 동참했습니다. 현재 미리내 기부에 참여하고 있는 업체는 전국적으로 130여 곳에 이릅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미리내 기부에 참여하는 가게는 없을까? 지난 여름부터 미리내 기부에 동참하고 있는 서울 성내동의 한 중식당을 찾았습니다. 식당 사장님은 미리내 기부를 시작하면서 구청과 동사무소, 교회나 기부단체를 찾아 다녔습니다. 정말로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하기 이틀 전에도 복지시설에 계시는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식당으로 초대해 식사대접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손님들이 기부한 자장면과 짬뽕이 58그릇이나 남아있었습니다. 식당 사장님이 사비를 더 보태 식사를 기부하기 때문입니다. 이 식당은 앞으로 노숙자와 결손가정 아동을 가게로 초대해 손님들이 맡겨둔 식사를 기부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어린이 공연이 열리고 있는 서울 청담동의 한 아트홀입니다. 한 공연기획사가 연말을 맞아 그동안 해오던 '버블쇼'에 미리내 기부 방식을 도입한 건데요, 아동복지기관과 연계해 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 자녀를 공연에 초대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공연을 보러 온 8살 례완이는 이 공연을 보면서 저소득층 아이 2명에게 공연표를 기부했습니다. 재미있는 공연도 보고 나눔도 배운 거지요.

'미리내 기부'를 소개하는 보도가 나간 뒤,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노숙자들이 무슨 '아메리카노'냐', '공연보다 돈으로 기부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냐' 그리고 '기부한 정성이 정말 투명하게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될 지도 의문'이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노숙자나 저소득층 아이들 처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과연 '빵'뿐일까요? 기부 방법이 다양해짐으로써 사람들이 저마다 흥미를 느끼는 방식으로 기부 생활에 익숙해진다면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미리내 기부'는 이제 시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더 큰 물결을 이루면 작은 시행착오나 문제점은 자연스레 개선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2014년 새해, 이웃을 위해 따뜻한 밥 한 그릇 맡겨두는 '미리내 기부'를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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