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경선 규칙에 울고 웃다

입력 2014.03.14 (10:17)

수정 2014.03.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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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6년 전인 2008년 3월 23일, 총선을 불과 17일 앞두고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한 말입니다. ‘공정 공천’을 하겠다는 당 지도부의 말을 믿었지만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당시 총선 공천 심사에서 '친박'계를 대거 탈락시켰는데요. '공천'이 정치인들에게 '생명줄'과 같다 보니 당시 '공천학살'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정치인들이 '공천'에 울고 웃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공천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선거에서의 당선 가능성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꼭 2008년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각 정당에서 공천과 관련한 불협화음이 반복돼왔습니다.

최근에는 정당들이 공천 심사를 투명하게 하겠다며 '국민참여 경선'을 내걸고 당원과 국민의 직접 투표로 공천 대상자를 정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갈등이 없어졌을까요?

조금은 나아졌겠지만 최근에는 당원과 국민의 투표,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를 어느 정도 반영할지 '경선 규칙'을 놓고 후보자들이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입 시험에서 수능과 논술, 내신의 비중이 달라지면 수험생들의 당락이 달라지는 것처럼, 정치인들도 당 장악력이 높은 사람과 대중적 인기가 높은 사람이 다르다보니 승부가 팽팽할수록 신경전도 치열합니다.



최근 새누리당에서는 제주도지사 후보자 경선 방식이 논란이 됐는데요. 원희룡 전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유리하고, 경쟁자인 우근민 현 지사는 당원 투표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당헌.당규는 경선에서 대의원과 당원, 일반국민의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2:3:3:2의 비율로 반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예외적으로 '취약지역'의 경우 여론조사만으로 경선을 치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법률지원단은 소속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는 제주도는 '취약지역'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놨습니다.

결국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국민참여 경선'과 '100% 여론조사 경선' 가운데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데,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더라도 상대편에서는 불만을 터뜨릴 것이 뻔하고, '출마 포기'나 '특정인 봐주기', 심지어 '탈당', '무소속 출마'까지도 말이 나올 수 있으니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엎치락뒤치락하던 새누리당의 선택은 결국 '100% 여론조사 경선'이었습니다. 4년 전 무소속으로 제주지사에 당선된 우근민 지사는 지난해 11월 새누리당에 입당했는데, 이 시기를 전후해 당원 1만 7천여 명이 급증한, 이른바 '기획 입당' 의혹이 있어 공정한 경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우근민 지사 측은 당을 위해서 열심히 당원을 모았더니 이제와 죄인 취급한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내에서도 당원 모집 자체에 불법이 없다면 그것을 문제 삼아 원칙이 아닌 예외를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새누리당도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원칙대로 '국민참여 경선'을 하려고 했지만 공천위 외부 위원들이 공정성에 강력한 문제제기를 해 어쩔 수 없이 위원들의 표결로 '100% 여론조사'를 결정했다며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반발이 거센 상황입니다.



통합 신당으로 가고 있는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어떨까요? 당장은 통합 작업이 발등의 불이어서 경선 규칙을 놓고는 갈등이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합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면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는데요. 민주당의 현행 경선 규칙은 당원과 일반국민이 1:1로 참여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당원 규모나 조직에서 민주당과 이제 막 창당 절차를 밟고 있는 새정치연합이 비교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이 방식대로라면 새정치연합이 상당히 불리할 것입니다. 민주당이 새정치연합을 배려해 기존의 경선 규칙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럴 경우 반대로 민주당 당원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민주당과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1년여 전에도 이와 비슷한 문제로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는데요.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사이의 단일화 협상이 여론조사 질문 방식과 반영 비율을 놓고 진통을 겪다 결국 '미완의 단일화'로 끝을 낸 적이 있죠. 그래서 양측이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상당히 궁금해 집니다.

선거에서 각 정당이 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일,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공정해야 하고, 당원과 국민 모두가 납득할만 해야겠죠. 정말 더 이상 '공천 잡음'을 일으키지 않는 '완벽한 경선 규칙'이란,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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