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신음하는 고구려·발해 유적들

입력 2006.12.31 (22:07) 수정 2006.12.3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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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에 포함시키려고 동북공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고대 유적의 보호에는 소홀해 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복원 작업 이후 처음 공개되는 발해 상경궁 터의 모습과 함께, 모은희 기자가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60여 년 동안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

중국이 천9백억 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벌이는 곳입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지금은 발굴이 잠시 중단되고 관리인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녹취> 현장 관리인: (발굴이 언제 끝납니까?) "하얼빈에서 와서 발굴을 하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네스코에 문화 유산을 신청하려고 해마다 작업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발해 유적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보호 조례를 마련하고 관광지 개발에 나섰습니다.

궁성 정문인 오봉루와 발해 황제가 국무를 봤던 1,2 궁전터는 이미 복원이 끝났습니다.

황제의 거처인 3,4 궁전터도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복원된 것은 중국 당나라 양식을 그대로 따왔을 뿐, 온돌과 굴뚝 등 발해 고유의 양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유적지 안내 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조영은 중화 민족의 자손으로 한족과 혈육의 정이 있다.

발해국은 말갈족 소수 정권이고 말갈족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중 하나라고 적혀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해석입니다.

<인터뷰> 신형식 (상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발해는 대흥, 혹은 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썼습니다. 이것은 그러니까 지방 정권이라면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죠."

궁성의 식수원이던 우물은 온갖 낙서로 뒤덮여 흉물스럽고, 수백여 장의 기와 유물도 벌판에 쌓여 있습니다.

발굴 현장 곳곳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은 흔적도 발견됩니다.

<녹취> 현장 관리인: "국가에서는 농사를 못 짓게 하는데, 농사를 짓지 않으면 주민들은 뭘 먹고 삽니까?"

지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의 고구려 유적은 이미 심각한 훼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구려 식이 아닌 중국식으로 단장한 국내성은 잡초가 우거진 주택가로 변했습니다.

국내성 외곽의 환도산성은 무너지기 직전의 석벽에 철망으로 응급 조치를 해 놓았습니다.

왕궁터를 비롯한 산성 내부 전체가 인근 주민들이 농사짓는 밭입니다.

<녹취> 산성 관리원: "왕궁터 안은 이제 밭으로 쓰지 않고 바깥 쪽은 계속 밭으로 사용할 겁니다."

관광객 편의만을 고려해 말뚝을 박고 계단을 설치한 광개토대왕릉.

묘실 천장은 바깥과의 온도차 때문에 이슬이 맺혀 뚝뚝 떨어지고, 곰팡이도 잔뜩 끼어 있습니다.

군데군데 시멘트를 때운 광개토대왕비는 좁은 유리벽에 갇혀 동북아의 맹주였던 고구려의 위용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녹취> 광개토대왕비 관리인: "유네스코 신청할 때 유리벽을 쳤고, 나무로만 돼 있던 기둥을 1982년도에 시멘트로 만들었습니다."

오회분오호묘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정수인 사신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관뚜껑을 밟을 수 있도록 방치한데다, 6월부터 묘실이 공개된 뒤로는 안에 계속 이슬이 맺혀 벽화가 소멸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인터뷰> 최광식 (고려대학교 박물관장): " 유네스코 차원에서 세계문화유산이 더 잘 보전되도록 함께 같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입니다."

유네스코 등재 이후 외화벌이로 재미를 보자, 중국은 이제 고구려 유적지를 테마파크로 만들어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입니다.

천5백년 역사에도 바래지 않고, 대륙을 호령하던 한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보여주는 고구려, 발해 유적들.

중국 유적으로 편입되거나 철저한 고증 없이 마구잡이로 복원되는가 하면, 훼손도 심해 우리 고대사의 일부가 소멸될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중국 지린성에서 KBS 뉴스 모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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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층취재] 신음하는 고구려·발해 유적들
    • 입력 2006-12-31 21:15:30
    • 수정2006-12-31 22:18:35
    뉴스 9
<앵커 멘트>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에 포함시키려고 동북공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고대 유적의 보호에는 소홀해 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복원 작업 이후 처음 공개되는 발해 상경궁 터의 모습과 함께, 모은희 기자가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60여 년 동안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 중국이 천9백억 원을 투입해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벌이는 곳입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지금은 발굴이 잠시 중단되고 관리인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녹취> 현장 관리인: (발굴이 언제 끝납니까?) "하얼빈에서 와서 발굴을 하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네스코에 문화 유산을 신청하려고 해마다 작업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발해 유적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보호 조례를 마련하고 관광지 개발에 나섰습니다. 궁성 정문인 오봉루와 발해 황제가 국무를 봤던 1,2 궁전터는 이미 복원이 끝났습니다. 황제의 거처인 3,4 궁전터도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복원된 것은 중국 당나라 양식을 그대로 따왔을 뿐, 온돌과 굴뚝 등 발해 고유의 양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발해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유적지 안내 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조영은 중화 민족의 자손으로 한족과 혈육의 정이 있다. 발해국은 말갈족 소수 정권이고 말갈족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 중 하나라고 적혀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해석입니다. <인터뷰> 신형식 (상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발해는 대흥, 혹은 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썼습니다. 이것은 그러니까 지방 정권이라면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죠." 궁성의 식수원이던 우물은 온갖 낙서로 뒤덮여 흉물스럽고, 수백여 장의 기와 유물도 벌판에 쌓여 있습니다. 발굴 현장 곳곳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은 흔적도 발견됩니다. <녹취> 현장 관리인: "국가에서는 농사를 못 짓게 하는데, 농사를 짓지 않으면 주민들은 뭘 먹고 삽니까?" 지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의 고구려 유적은 이미 심각한 훼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구려 식이 아닌 중국식으로 단장한 국내성은 잡초가 우거진 주택가로 변했습니다. 국내성 외곽의 환도산성은 무너지기 직전의 석벽에 철망으로 응급 조치를 해 놓았습니다. 왕궁터를 비롯한 산성 내부 전체가 인근 주민들이 농사짓는 밭입니다. <녹취> 산성 관리원: "왕궁터 안은 이제 밭으로 쓰지 않고 바깥 쪽은 계속 밭으로 사용할 겁니다." 관광객 편의만을 고려해 말뚝을 박고 계단을 설치한 광개토대왕릉. 묘실 천장은 바깥과의 온도차 때문에 이슬이 맺혀 뚝뚝 떨어지고, 곰팡이도 잔뜩 끼어 있습니다. 군데군데 시멘트를 때운 광개토대왕비는 좁은 유리벽에 갇혀 동북아의 맹주였던 고구려의 위용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녹취> 광개토대왕비 관리인: "유네스코 신청할 때 유리벽을 쳤고, 나무로만 돼 있던 기둥을 1982년도에 시멘트로 만들었습니다." 오회분오호묘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정수인 사신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관뚜껑을 밟을 수 있도록 방치한데다, 6월부터 묘실이 공개된 뒤로는 안에 계속 이슬이 맺혀 벽화가 소멸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인터뷰> 최광식 (고려대학교 박물관장): " 유네스코 차원에서 세계문화유산이 더 잘 보전되도록 함께 같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입니다." 유네스코 등재 이후 외화벌이로 재미를 보자, 중국은 이제 고구려 유적지를 테마파크로 만들어 매년 2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계획입니다. 천5백년 역사에도 바래지 않고, 대륙을 호령하던 한민족의 웅대한 기상을 보여주는 고구려, 발해 유적들. 중국 유적으로 편입되거나 철저한 고증 없이 마구잡이로 복원되는가 하면, 훼손도 심해 우리 고대사의 일부가 소멸될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중국 지린성에서 KBS 뉴스 모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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