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폐지’ 고민하는 세계…‘라쿤 카페’ 성행하는 한국

입력 2019.02.07 (10:01) 수정 2019.02.0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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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센터, 어린이집 등에서 유행하는 ‘이동식 동물원’ 수업

우리나라에 첫 동물원이 생긴 지 올해로 110년입니다. 1909년, 일제가 창경궁에 설치한 동물원이 시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호랑이를 잡아들였고, 그 시절에도 인도와 청나라에 코끼리를 사러 갔습니다. 캥거루, 낙타, 타조 같은 동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근대적 동물원'의 시초가 그랬듯,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 역시 부와 권력, 그리고 문명을 과시하는 용도였다고 평가받습니다.

그 후 동물원은 점차 대중화되고, 친근한 오락 시설로 자리 잡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라는 인식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 한 마리가 탈출합니다. 퓨마는 곧 사살됐습니다. 허무한 죽음이었지만, 이 퓨마의 죽음을 계기로 사람들 입에 '동물원 폐지'라는 말까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전시 동물의 복지, 사육 환경을 걱정하고, '동물원은 어떤 공간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연관 기사] “왈라비야 미안해” 동물학대의 온상은 동물원

100년 지나서야 생긴 '동물원법'

우리가 고민을 미뤄온 사이, 동물원은 더 많아지고 열악해졌습니다. 실내 동물원, 체험식 동물원, 이동식 동물원이 난립했습니다. 2018년 9월 기준으로 국가에 등록된 동물원은 84곳, 수족관은 23곳이나 됩니다. 등록조차 하지 않은 '유사 동물원'도 늘고 있습니다. 라쿤 카페, 미어캣 카페 등에서도 동물을 여럿 전시하지만, 보통 '식품접객업', '자유업'으로 분류되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동물 복지 사각지대가 늘고 있는 셈입니다.

배경에는 '동물원수족관법(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동물원수족관법은 2016년 국회를 통과해 2017년 시행됐습니다. 이 땅에 동물원이 생긴 지 100년도 더 지나 만들어진 법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제정됐는데, 허점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나라 동물원법은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동물원법에서 정하는 동물원의 기준인 '10종 또는 50개체 이상'의 동물을 전시하고, 수의사 등 전문 인력, 운영 계획 등 기본적인 기준만 맞추면 사실상 누구나 동물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형식상 요건을 충족하면 '당연히' 등록이 되는 것으로, 등록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사실상 없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격 미달인 동물원들이 난립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동물원법은 사육 환경 기준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물 종의 특성에 맞는 영양분 공급, 질병 치료 등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선언적 조항만 있습니다. 이 조항을 두고 '가훈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 구체적인 기준이 없을뿐더러, 사육 환경을 점검하거나 평가하는 절차, 의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키면 좋고, 아니면 그만입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경우에만 별도의 법으로 최소 면적을 정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10종 또는 50개체 미만'일 경우에는 아예 동물원으로 등록할 의무조차 없습니다. 대부분의 체험형 동물 카페들은 이 허술한 법마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KBS와 인터뷰 중인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항 교수KBS와 인터뷰 중인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항 교수

"기준 이하 동물원은 문 닫게 해야"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항 교수는 "유럽연합이나 미국, 호주 등 동물복지 선진국에선 동물원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역시 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물원을 쉽게 만들 수 없도록 엄격한 사육 환경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어야 하고, 각 동물원이 허가 사항을 잘 지키고 있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구 선진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항 교수는 "인도 역시 동물원 사정이 굉장히 열악했는데, 1980년대 들어서 동물원을 관리하는 법과 정부 기구를 만들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구에서 모든 동물원을 관리하면서, 기준 이하인 동물원 수백 개를 아예 폐지했고, 남은 동물원은 보전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식의 변화는 더디니, 우리나라도 인도처럼 강력한 법적·제도적 변화로 동물원의 변화를 도모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이 교수의 주장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동물 체험'은 등딱지와 양털로

그렇다면 해외 동물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허가제를 시행하는 나라라고 해서 모두 바람직한 시설만 있는 건 아닙니다만, 몇몇 놀라운 곳도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동물원을 방문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가 꼽은 사례를 소개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는 다친 동물들이 많다고 합니다. 동물원에서 다친 게 아니라, 야생에서 다친 채로 발견돼 구조된 동물들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의 바다사자는 총상을 입고 실명한 상태로 구조됐습니다. 미국 펠리컨 세 마리는 하늘을 날지 못합니다. 날개가 잘리거나 부러진 채로 발견돼 동물원으로 오게 됐다고 합니다. 이처럼 '야생에서 살기 힘든' 동물들을 보호하는 목적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동물 체험'도 우리나라 체험 동물원과는 꽤 다릅니다. 살아있는 거북이를 만지는 게 아니라, 죽은 거북이의 등딱지를 만져보게 하고, 소복하게 모아놓은 양털을 만지게 한다는 겁니다. 몇몇 농장 동물만 사육사 감독하에 만져볼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 동물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프랑스 파리 동물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코끼리 없는 동물원

'벵센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프랑스 파리 동물원은 쇠창살을 보기 힘들다고 이형주 대표는 설명합니다. 최대한 서식지와 비슷하게 환경을 조성하고, 도랑과 갈대숲, 바위 같은 자연물로 경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동물이 사는 공간이 매우 넓고, 동물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도 많아서 동물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 특이한 건, 파리 동물원에 코끼리와 곰이 없다는 점입니다. 동물원이라면 꼭 있어야할 것 같은 인기 동물인데, 왜 없는 걸까요? 파리 동물원은 "활동 반경이 큰 동물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는 것이 동물 복지를 해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파리 동물원처럼 돌고래, 코끼리, 북극곰같이 활동 반경이 큰 동물은 아예 전시하지 않는 동물원이 늘고 있습니다. 동물들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결정입니다. 앞서 소개한 샌프란시스코 동물원도 2004년 이후 코끼리를 전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동물원 폐지' 선언했던 코스타리카

우리로선 꿈꾸기조차 힘든 이런 동물원들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동물을 감금하는 것 자체를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에게 아무리 좋은 환경을 제공해도 동물원은 동물원일 뿐, '감금'과 '전시'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살을 없애고, 자연에 가까운 전시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동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물을 구경하는 인간들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동물원 폐지'까지 나아갑니다. 실제로 동물원 전면 폐지를 선언했던 나라도 있습니다. 바로 코스타리카입니다. 코스타리카는 2013년 국내 동물원들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동물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낸다는 원칙을 세우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동물원을 운영하는 민간법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 이후 실제로 동물원들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생태 천국'이라 불리는 데다, 동물원 개수가 얼마 되지 않는 코스타리카도 쉽게 없앨 수 없었던 동물원. 유사 동물원에 라쿤카페까지 우후죽순 늘고 있는 우리나라가 '동물원 폐지'를 이야기하기엔 아직 멀리 있는지도 모릅니다. 샌프란스시코 동물원, 파리 동물원 수준의 동물원을 가져보지도 못했고, 이미 있는 동물원을 엄격하게 관리하자는 동물원법 개정 논의는 무관심 속에 제자리걸음 중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동물원의 탄생》,지호, 2003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자료집》, 2019
《이동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2019
이형주,〈고아 곰, 실명한 바다사자…그 동물원엔 이유가 있었다〉,《한겨레》, 2018. 8. 15
이형주,〈종일 기다려 원숭이 한마리 구경, 참 이상한 동물원〉,《오마이뉴스》, 201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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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원 폐지’ 고민하는 세계…‘라쿤 카페’ 성행하는 한국
    • 입력 2019-02-07 10:01:02
    • 수정2019-02-07 11:32:19
    취재K
▲ 문화센터, 어린이집 등에서 유행하는 ‘이동식 동물원’ 수업

우리나라에 첫 동물원이 생긴 지 올해로 110년입니다. 1909년, 일제가 창경궁에 설치한 동물원이 시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호랑이를 잡아들였고, 그 시절에도 인도와 청나라에 코끼리를 사러 갔습니다. 캥거루, 낙타, 타조 같은 동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근대적 동물원'의 시초가 그랬듯,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 역시 부와 권력, 그리고 문명을 과시하는 용도였다고 평가받습니다.

그 후 동물원은 점차 대중화되고, 친근한 오락 시설로 자리 잡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라는 인식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 한 마리가 탈출합니다. 퓨마는 곧 사살됐습니다. 허무한 죽음이었지만, 이 퓨마의 죽음을 계기로 사람들 입에 '동물원 폐지'라는 말까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전시 동물의 복지, 사육 환경을 걱정하고, '동물원은 어떤 공간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연관 기사] “왈라비야 미안해” 동물학대의 온상은 동물원

100년 지나서야 생긴 '동물원법'

우리가 고민을 미뤄온 사이, 동물원은 더 많아지고 열악해졌습니다. 실내 동물원, 체험식 동물원, 이동식 동물원이 난립했습니다. 2018년 9월 기준으로 국가에 등록된 동물원은 84곳, 수족관은 23곳이나 됩니다. 등록조차 하지 않은 '유사 동물원'도 늘고 있습니다. 라쿤 카페, 미어캣 카페 등에서도 동물을 여럿 전시하지만, 보통 '식품접객업', '자유업'으로 분류되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동물 복지 사각지대가 늘고 있는 셈입니다.

배경에는 '동물원수족관법(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동물원수족관법은 2016년 국회를 통과해 2017년 시행됐습니다. 이 땅에 동물원이 생긴 지 100년도 더 지나 만들어진 법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제정됐는데, 허점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나라 동물원법은 '등록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동물원법에서 정하는 동물원의 기준인 '10종 또는 50개체 이상'의 동물을 전시하고, 수의사 등 전문 인력, 운영 계획 등 기본적인 기준만 맞추면 사실상 누구나 동물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형식상 요건을 충족하면 '당연히' 등록이 되는 것으로, 등록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사실상 없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격 미달인 동물원들이 난립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동물원법은 사육 환경 기준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물 종의 특성에 맞는 영양분 공급, 질병 치료 등 적정한 서식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선언적 조항만 있습니다. 이 조항을 두고 '가훈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 구체적인 기준이 없을뿐더러, 사육 환경을 점검하거나 평가하는 절차, 의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키면 좋고, 아니면 그만입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경우에만 별도의 법으로 최소 면적을 정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10종 또는 50개체 미만'일 경우에는 아예 동물원으로 등록할 의무조차 없습니다. 대부분의 체험형 동물 카페들은 이 허술한 법마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KBS와 인터뷰 중인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항 교수
"기준 이하 동물원은 문 닫게 해야"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항 교수는 "유럽연합이나 미국, 호주 등 동물복지 선진국에선 동물원을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역시 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물원을 쉽게 만들 수 없도록 엄격한 사육 환경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어야 하고, 각 동물원이 허가 사항을 잘 지키고 있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구 선진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항 교수는 "인도 역시 동물원 사정이 굉장히 열악했는데, 1980년대 들어서 동물원을 관리하는 법과 정부 기구를 만들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구에서 모든 동물원을 관리하면서, 기준 이하인 동물원 수백 개를 아예 폐지했고, 남은 동물원은 보전 기관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인식의 변화는 더디니, 우리나라도 인도처럼 강력한 법적·제도적 변화로 동물원의 변화를 도모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이 교수의 주장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동물 체험'은 등딱지와 양털로

그렇다면 해외 동물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허가제를 시행하는 나라라고 해서 모두 바람직한 시설만 있는 건 아닙니다만, 몇몇 놀라운 곳도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동물원을 방문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가 꼽은 사례를 소개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는 다친 동물들이 많다고 합니다. 동물원에서 다친 게 아니라, 야생에서 다친 채로 발견돼 구조된 동물들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의 바다사자는 총상을 입고 실명한 상태로 구조됐습니다. 미국 펠리컨 세 마리는 하늘을 날지 못합니다. 날개가 잘리거나 부러진 채로 발견돼 동물원으로 오게 됐다고 합니다. 이처럼 '야생에서 살기 힘든' 동물들을 보호하는 목적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동물 체험'도 우리나라 체험 동물원과는 꽤 다릅니다. 살아있는 거북이를 만지는 게 아니라, 죽은 거북이의 등딱지를 만져보게 하고, 소복하게 모아놓은 양털을 만지게 한다는 겁니다. 몇몇 농장 동물만 사육사 감독하에 만져볼 수 있게 제한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 동물원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코끼리 없는 동물원

'벵센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프랑스 파리 동물원은 쇠창살을 보기 힘들다고 이형주 대표는 설명합니다. 최대한 서식지와 비슷하게 환경을 조성하고, 도랑과 갈대숲, 바위 같은 자연물로 경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동물이 사는 공간이 매우 넓고, 동물들이 몸을 숨길 수 있는 곳도 많아서 동물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합니다.

이보다 더 특이한 건, 파리 동물원에 코끼리와 곰이 없다는 점입니다. 동물원이라면 꼭 있어야할 것 같은 인기 동물인데, 왜 없는 걸까요? 파리 동물원은 "활동 반경이 큰 동물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는 것이 동물 복지를 해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파리 동물원처럼 돌고래, 코끼리, 북극곰같이 활동 반경이 큰 동물은 아예 전시하지 않는 동물원이 늘고 있습니다. 동물들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한 결정입니다. 앞서 소개한 샌프란시스코 동물원도 2004년 이후 코끼리를 전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동물원 폐지' 선언했던 코스타리카

우리로선 꿈꾸기조차 힘든 이런 동물원들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동물을 감금하는 것 자체를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에게 아무리 좋은 환경을 제공해도 동물원은 동물원일 뿐, '감금'과 '전시'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살을 없애고, 자연에 가까운 전시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동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동물을 구경하는 인간들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동물원 폐지'까지 나아갑니다. 실제로 동물원 전면 폐지를 선언했던 나라도 있습니다. 바로 코스타리카입니다. 코스타리카는 2013년 국내 동물원들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동물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낸다는 원칙을 세우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동물원을 운영하는 민간법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 이후 실제로 동물원들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생태 천국'이라 불리는 데다, 동물원 개수가 얼마 되지 않는 코스타리카도 쉽게 없앨 수 없었던 동물원. 유사 동물원에 라쿤카페까지 우후죽순 늘고 있는 우리나라가 '동물원 폐지'를 이야기하기엔 아직 멀리 있는지도 모릅니다. 샌프란스시코 동물원, 파리 동물원 수준의 동물원을 가져보지도 못했고, 이미 있는 동물원을 엄격하게 관리하자는 동물원법 개정 논의는 무관심 속에 제자리걸음 중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동물원의 탄생》,지호, 2003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자료집》, 2019
《이동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2019
이형주,〈고아 곰, 실명한 바다사자…그 동물원엔 이유가 있었다〉,《한겨레》, 2018. 8. 15
이형주,〈종일 기다려 원숭이 한마리 구경, 참 이상한 동물원〉,《오마이뉴스》, 201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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