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아픔 ‘여전’…동거차도 주민의 ‘눈물’
입력 2019.04.16 (21:11)
수정 2019.04.1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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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인 동거차도 주민들은 사고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구조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엄청난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생계에도 타격이 컸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치료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박상훈 기자가 동거차도 주민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팽목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 동거차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5년 전 그날도 주민들은 이렇게 한데 모여 수확기를 맞은 미역을 뭍으로 옮기고 말리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동거차도 주민 : "이렇게 미역을 널고 있는데, 시작한 지 이틀, 사흘째 널고 있는데 세월호가 넘어져서 다른 일 못하고 다 거기(현장)로 갔죠."]
이미 기운 세월호를 보고 정신없이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을 구조했지만,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숱한 불면의 밤으로 이어졌습니다.
[동거차도 주민 : "얼마나 운 줄 알아요? 내 아까운 새끼들 어쩔까 하고 얼마나 운 줄 알아요? 늙은 우리들이 죽으면 죽어야지 어린아이들이 죽었다는게...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여학생의 시신을 직접 수습한 어민은 해마다 4월이면 그때의 기억과 고통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당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이옥영/여학생 시신 수습 어민 : "(치료) 한 번 받았어요. 한 번 오라고 하니까 가서 약먹고 이것 저것했는데 그 뒤로는 약 좀 보내주라고 전화를 했더니 돈을 보내야 약을 보내 준다는 거예요."]
생계는 막막해졌습니다.
세월호 침몰과 인양과정에서 발생한 시커먼 기름띠에 어장이 황폐화됐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석준/동거차도 주민 :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죠. 4년 동안 완전히 버렸어요."]
결국, 남은 건 빚더미 뿐 입니다.
[조옥순/동거차도 주민 : "(외국인들) 월급은 나가죠, 벌이는 없죠. 별 수 없죠. 수협에서 빚내서 막아야죠... 먹고는 살아야하고, 들어가는 돈은 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참사를 마주하고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는 동거차도 주민들.
'4월의 봄'에만 반짝이는 세상의 관심이 더욱 힘들게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KBS 뉴스 박상훈입니다.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인 동거차도 주민들은 사고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구조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엄청난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생계에도 타격이 컸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치료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박상훈 기자가 동거차도 주민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팽목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 동거차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5년 전 그날도 주민들은 이렇게 한데 모여 수확기를 맞은 미역을 뭍으로 옮기고 말리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동거차도 주민 : "이렇게 미역을 널고 있는데, 시작한 지 이틀, 사흘째 널고 있는데 세월호가 넘어져서 다른 일 못하고 다 거기(현장)로 갔죠."]
이미 기운 세월호를 보고 정신없이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을 구조했지만,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숱한 불면의 밤으로 이어졌습니다.
[동거차도 주민 : "얼마나 운 줄 알아요? 내 아까운 새끼들 어쩔까 하고 얼마나 운 줄 알아요? 늙은 우리들이 죽으면 죽어야지 어린아이들이 죽었다는게...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여학생의 시신을 직접 수습한 어민은 해마다 4월이면 그때의 기억과 고통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당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이옥영/여학생 시신 수습 어민 : "(치료) 한 번 받았어요. 한 번 오라고 하니까 가서 약먹고 이것 저것했는데 그 뒤로는 약 좀 보내주라고 전화를 했더니 돈을 보내야 약을 보내 준다는 거예요."]
생계는 막막해졌습니다.
세월호 침몰과 인양과정에서 발생한 시커먼 기름띠에 어장이 황폐화됐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석준/동거차도 주민 :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죠. 4년 동안 완전히 버렸어요."]
결국, 남은 건 빚더미 뿐 입니다.
[조옥순/동거차도 주민 : "(외국인들) 월급은 나가죠, 벌이는 없죠. 별 수 없죠. 수협에서 빚내서 막아야죠... 먹고는 살아야하고, 들어가는 돈은 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참사를 마주하고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는 동거차도 주민들.
'4월의 봄'에만 반짝이는 세상의 관심이 더욱 힘들게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KBS 뉴스 박상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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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아픔 ‘여전’…동거차도 주민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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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4-16 21:20:27
- 수정2019-04-17 09:02:42
[기자]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인 동거차도 주민들은 사고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구조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엄청난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생계에도 타격이 컸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치료나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박상훈 기자가 동거차도 주민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팽목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 동거차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5년 전 그날도 주민들은 이렇게 한데 모여 수확기를 맞은 미역을 뭍으로 옮기고 말리는 작업을 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동거차도 주민 : "이렇게 미역을 널고 있는데, 시작한 지 이틀, 사흘째 널고 있는데 세월호가 넘어져서 다른 일 못하고 다 거기(현장)로 갔죠."]
이미 기운 세월호를 보고 정신없이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을 구조했지만,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숱한 불면의 밤으로 이어졌습니다.
[동거차도 주민 : "얼마나 운 줄 알아요? 내 아까운 새끼들 어쩔까 하고 얼마나 운 줄 알아요? 늙은 우리들이 죽으면 죽어야지 어린아이들이 죽었다는게... 그 심정이 어떻겠어요."]
여학생의 시신을 직접 수습한 어민은 해마다 4월이면 그때의 기억과 고통이 더욱 또렷해집니다.
당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이옥영/여학생 시신 수습 어민 : "(치료) 한 번 받았어요. 한 번 오라고 하니까 가서 약먹고 이것 저것했는데 그 뒤로는 약 좀 보내주라고 전화를 했더니 돈을 보내야 약을 보내 준다는 거예요."]
생계는 막막해졌습니다.
세월호 침몰과 인양과정에서 발생한 시커먼 기름띠에 어장이 황폐화됐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석준/동거차도 주민 :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죠. 4년 동안 완전히 버렸어요."]
결국, 남은 건 빚더미 뿐 입니다.
[조옥순/동거차도 주민 : "(외국인들) 월급은 나가죠, 벌이는 없죠. 별 수 없죠. 수협에서 빚내서 막아야죠... 먹고는 살아야하고, 들어가는 돈은 있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참사를 마주하고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는 동거차도 주민들.
'4월의 봄'에만 반짝이는 세상의 관심이 더욱 힘들게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KBS 뉴스 박상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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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psh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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