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 선물 사줄게”…스물둘 기범 씨, 조선소 바다에서 숨졌다

입력 2025.0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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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스물두 살 청년 김기범 씨는 HD 현대미포에 하청 노동자로 입사했습니다. 해군 특수전전단, UDT를 꿈꿨던 기범 씨는 잠수 자격증을 따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잠수 자격증을 활용해 조선소 선박 검사 일을 한 겁니다. 입사 3개월째인 지난해 12월 30일에도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아침부터 2인 1조로 1시간가량의 작업을 마친 기범 씨는 8분 만에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였습니다. 입수한 지 1시간 30분이 돼서야 기범 씨가 물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관계자들이 급히 비상 신고를 했습니다. 소방 당국이 기범 씨를 건져 올린 건 입수 4시간 30분이 지나서였습니다. 이미 심정지 상태였던 기범 씨는 끝내 숨졌습니다.

유가족은 여전히 빈소에서 관계자들의 책임 있는 해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물둘 청년은 왜 조선소 바다에서 홀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을까요?

■또 지켜지지 않은 '2인 1조'와 '휴식 시간'
1. 오전 10시 14분, 2명 선박 아래 1차 작업
2. 오전 11시 20분, 1차 작업 종료 후 복귀
3. 오전 11시 28분, 선박 아래 기범 씨 혼자 2차 작업
4. 오후 1시 11분, 사내 비상 신고 접수
5. 오후 3시 33분, 수중카메라로 실종자 확인
6. 오후 4시 3분, 실종자 구조

-HD 현대미포 안전사고 보고(지난해 12월 30일)

사고에서 지켜지지 않은 건 대표적으로 2가지입니다. 첫째, 2인 1조 작업 원칙입니다. 잠수 작업자에게 신호 줄을 달고 물 밖에 있는 감시자가 줄을 당기는 방식으로 위험 상황을 확인해야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신호 줄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둘째, 휴식 시간입니다. 김씨는 1시간 넘게 잠수 작업을 하고 불과 8분 만에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20kg 산소통이 약 40분을 호흡할 수 있게 해주는데, 기범 씨는 겨우 5kg짜리 산소통 하나를 들고 10분도 쉬지 못한 채 혼자 작업을 하러 들어갔다"며 비판했습니다. 또 "투입 이후 2시간쯤이나 되어서야 신고를 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기범 씨는 익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대 산업 재해 발생을 알리는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사이렌'에서도 김 씨의 사망 원인을 '잠수하여 선박 하부 촬영 작업 중 익사'로 봤습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사고를 조사하고 있고, 울산해양경찰서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엄마, 설날에 생일 선물 사줄게" 하나뿐인 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왔다

"자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나요. 옆으로 (누워) 편안하게 자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는데,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진짜 가슴이 무너집니다."

-사고 노동자 김기범 씨 어머니

불과 2주 전, 크리스마스에 기범 씨는 어머니와 누나를 보러 울산에서 서울로 향했습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엄마, 설날에 생일 선물 사줄게"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올해 설에 어머니의 생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UDT가 되기 위해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던 아이였다고도 말합니다. 심장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에게 "엄마 힘드니까, 그냥 내 등에 업혀. 내가 업어줄게"라고 말하던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범 씨는 약속을 지킬 수도, 어머니를 업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유가족들은 원청인 HD현대미포와 하청 업체를 향해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사망 이후 하청 업체 관계자는 찾아오지도 않았고, HD현대미포 관계자가 찾아와 한 말은 "책임이 없는데, 일단은 도의적으로 도와주는 거다."였다고 합니다. 장례식장 복도 앞에서 '장례식 지원'이라는 이유로 직원이 상주하며 조문객의 신상을 묻기도 했고, 대기 시간에는 직원들끼리 웃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난 3일 빈소를 차린 유가족들은 여전히 빈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치가 없으니 쉽게 발인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범 씨의 시신은 여전히 시신 안치용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HD현대미포는 사고 당시 언론에 "유가족께 진심으로 깊은 위로를 전하며, 관계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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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생일 선물 사줄게”…스물둘 기범 씨, 조선소 바다에서 숨졌다
    • 입력 2025-01-08 07: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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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스물두 살 청년 김기범 씨는 HD 현대미포에 하청 노동자로 입사했습니다. 해군 특수전전단, UDT를 꿈꿨던 기범 씨는 잠수 자격증을 따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잠수 자격증을 활용해 조선소 선박 검사 일을 한 겁니다. 입사 3개월째인 지난해 12월 30일에도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아침부터 2인 1조로 1시간가량의 작업을 마친 기범 씨는 8분 만에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였습니다. 입수한 지 1시간 30분이 돼서야 기범 씨가 물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관계자들이 급히 비상 신고를 했습니다. 소방 당국이 기범 씨를 건져 올린 건 입수 4시간 30분이 지나서였습니다. 이미 심정지 상태였던 기범 씨는 끝내 숨졌습니다.

유가족은 여전히 빈소에서 관계자들의 책임 있는 해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물둘 청년은 왜 조선소 바다에서 홀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을까요?

■또 지켜지지 않은 '2인 1조'와 '휴식 시간'
1. 오전 10시 14분, 2명 선박 아래 1차 작업
2. 오전 11시 20분, 1차 작업 종료 후 복귀
3. 오전 11시 28분, 선박 아래 기범 씨 혼자 2차 작업
4. 오후 1시 11분, 사내 비상 신고 접수
5. 오후 3시 33분, 수중카메라로 실종자 확인
6. 오후 4시 3분, 실종자 구조

-HD 현대미포 안전사고 보고(지난해 12월 30일)

사고에서 지켜지지 않은 건 대표적으로 2가지입니다. 첫째, 2인 1조 작업 원칙입니다. 잠수 작업자에게 신호 줄을 달고 물 밖에 있는 감시자가 줄을 당기는 방식으로 위험 상황을 확인해야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신호 줄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둘째, 휴식 시간입니다. 김씨는 1시간 넘게 잠수 작업을 하고 불과 8분 만에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20kg 산소통이 약 40분을 호흡할 수 있게 해주는데, 기범 씨는 겨우 5kg짜리 산소통 하나를 들고 10분도 쉬지 못한 채 혼자 작업을 하러 들어갔다"며 비판했습니다. 또 "투입 이후 2시간쯤이나 되어서야 신고를 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기범 씨는 익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대 산업 재해 발생을 알리는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사이렌'에서도 김 씨의 사망 원인을 '잠수하여 선박 하부 촬영 작업 중 익사'로 봤습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사고를 조사하고 있고, 울산해양경찰서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엄마, 설날에 생일 선물 사줄게" 하나뿐인 아들이 시신으로 돌아왔다

"자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나요. 옆으로 (누워) 편안하게 자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는데,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진짜 가슴이 무너집니다."

-사고 노동자 김기범 씨 어머니

불과 2주 전, 크리스마스에 기범 씨는 어머니와 누나를 보러 울산에서 서울로 향했습니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엄마, 설날에 생일 선물 사줄게"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올해 설에 어머니의 생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UDT가 되기 위해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던 아이였다고도 말합니다. 심장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에게 "엄마 힘드니까, 그냥 내 등에 업혀. 내가 업어줄게"라고 말하던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범 씨는 약속을 지킬 수도, 어머니를 업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유가족들은 원청인 HD현대미포와 하청 업체를 향해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사망 이후 하청 업체 관계자는 찾아오지도 않았고, HD현대미포 관계자가 찾아와 한 말은 "책임이 없는데, 일단은 도의적으로 도와주는 거다."였다고 합니다. 장례식장 복도 앞에서 '장례식 지원'이라는 이유로 직원이 상주하며 조문객의 신상을 묻기도 했고, 대기 시간에는 직원들끼리 웃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난 3일 빈소를 차린 유가족들은 여전히 빈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치가 없으니 쉽게 발인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범 씨의 시신은 여전히 시신 안치용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HD현대미포는 사고 당시 언론에 "유가족께 진심으로 깊은 위로를 전하며, 관계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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