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가을’이 가장 먼저 닿는 땅, 오대산의 가을 밥상

입력 2017.10.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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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 오대산은 오색 가을이 가장 먼저 닿는 땅이다. 첩첩산중에 고운 빛깔이 물들면 오대산 품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밥상도 계절 갈이를 시작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떠날 수 없던 삶의 터전. 그 땅이 선사한 소박하지만 그리운 맛, 삶의 애환을 담은 깊은 맛을 찾아서 KBS '한국인의 밥상'(19일 저녁 7시 35분, 1TV)이 오대산으로 떠났다.



감자 캐는 계절, 그리움을 나누다

산 정상에 운무(雲霧)가 넘나들 정도로 높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운두령 고개. 그 끝자락에는 감자로 유명한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 마을이 있다.


요즘 이 동네 어머니들은 감자를 수확하느라 바쁘다. 없던 시절, 감자는 주린 배를 채워준 작물이었다. 배추를 깔고 강판에 간 감자를 올려 부친 감자전은 요맘때 온 가족이 입에 달고 살던 음식이었다. 삶은 감자를 진득해질 때까지 으깨고 동그랗게 뭉친 뒤 콩가루를 묻혀 먹었던 감자 인절미도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음식이다.

감자를 캐는 계절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상에 둘러앉아 그리움을 나눈다. 감자가 별미가 아니라 주식이었던 세월을 추억한다. 자갈밭을 떠나지 않고 일구며 살아온 이들에게, 감자는 고생의 기억이 담긴 음식이다.

오대산의 가장 깊은 가을을 만나다

가을 산은 늘 넉넉하고 풍성하게 제 가진 것을 내어준다. 깊은 오대산 자락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계곡을 따라 엄청난 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통마름골이 있다.

이곳 생활은 봄부터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자급자족의 삶이다. 곤드레 나물은 봄에 채취해서 일 년 내내 밥상에 내놓는 대표적 음식이다.


외진 산골이다 보니, 비린 생선 한 토막 조차 상에 올리기가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귀한 생선요리 양을 늘리기 위해 고등어 밑에 곤드레 나물을 잔뜩 깔았다. 풋내 나는 산골에서 비릿한 맛을 보게 해 준 곤드레 고등어조림이다.

강원도 하면 빠질 수 없는 감자를 넣어 만든 능이 감자백숙도 있다. 백숙과 함께 푹 쪄낸 감자를 곰취에 싸먹으면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부족하다 원망하지 않고 더 가지려고도 욕심부리지 않는 것. 그것이 오대산 품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일지도 모른다.


오대산의 메밀은 이곳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줬던 일등공신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메밀을 먹는 것조차 호사스러웠다. 메밀 전병과 메밀 칼국수로 차려진 밥상에는 그 시절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배 곯던 시절, 고단한 삶 어루만져준 무 밥상

한껏 가을을 맞은 오대산에는 싱싱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고랭지 무밭이 있다. '가을 무는 과일보다 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속이 알차고 달큰하다. 지금이야 무가 부재료지만, 30년 전 이 마을에서 무는 주식으로 여겨졌다. 쌀보다 무가 많던 어린 시절에는 무밥을 질리도록 먹었다.

산골 오지의 결핍이 만든 음식, 그러나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버린 추억이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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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 가을’이 가장 먼저 닿는 땅, 오대산의 가을 밥상
    • 입력 2017-10-19 08:00:30
    생활·건강
강원도 평창 오대산은 오색 가을이 가장 먼저 닿는 땅이다. 첩첩산중에 고운 빛깔이 물들면 오대산 품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 밥상도 계절 갈이를 시작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떠날 수 없던 삶의 터전. 그 땅이 선사한 소박하지만 그리운 맛, 삶의 애환을 담은 깊은 맛을 찾아서 KBS '한국인의 밥상'(19일 저녁 7시 35분, 1TV)이 오대산으로 떠났다.



감자 캐는 계절, 그리움을 나누다

산 정상에 운무(雲霧)가 넘나들 정도로 높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운두령 고개. 그 끝자락에는 감자로 유명한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 마을이 있다.


요즘 이 동네 어머니들은 감자를 수확하느라 바쁘다. 없던 시절, 감자는 주린 배를 채워준 작물이었다. 배추를 깔고 강판에 간 감자를 올려 부친 감자전은 요맘때 온 가족이 입에 달고 살던 음식이었다. 삶은 감자를 진득해질 때까지 으깨고 동그랗게 뭉친 뒤 콩가루를 묻혀 먹었던 감자 인절미도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음식이다.

감자를 캐는 계절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상에 둘러앉아 그리움을 나눈다. 감자가 별미가 아니라 주식이었던 세월을 추억한다. 자갈밭을 떠나지 않고 일구며 살아온 이들에게, 감자는 고생의 기억이 담긴 음식이다.

오대산의 가장 깊은 가을을 만나다

가을 산은 늘 넉넉하고 풍성하게 제 가진 것을 내어준다. 깊은 오대산 자락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계곡을 따라 엄청난 바람이 불어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통마름골이 있다.

이곳 생활은 봄부터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자급자족의 삶이다. 곤드레 나물은 봄에 채취해서 일 년 내내 밥상에 내놓는 대표적 음식이다.


외진 산골이다 보니, 비린 생선 한 토막 조차 상에 올리기가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귀한 생선요리 양을 늘리기 위해 고등어 밑에 곤드레 나물을 잔뜩 깔았다. 풋내 나는 산골에서 비릿한 맛을 보게 해 준 곤드레 고등어조림이다.

강원도 하면 빠질 수 없는 감자를 넣어 만든 능이 감자백숙도 있다. 백숙과 함께 푹 쪄낸 감자를 곰취에 싸먹으면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부족하다 원망하지 않고 더 가지려고도 욕심부리지 않는 것. 그것이 오대산 품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일지도 모른다.


오대산의 메밀은 이곳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줬던 일등공신이었다. 사실 당시에는 메밀을 먹는 것조차 호사스러웠다. 메밀 전병과 메밀 칼국수로 차려진 밥상에는 그 시절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배 곯던 시절, 고단한 삶 어루만져준 무 밥상

한껏 가을을 맞은 오대산에는 싱싱한 푸른빛을 자랑하는 고랭지 무밭이 있다. '가을 무는 과일보다 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속이 알차고 달큰하다. 지금이야 무가 부재료지만, 30년 전 이 마을에서 무는 주식으로 여겨졌다. 쌀보다 무가 많던 어린 시절에는 무밥을 질리도록 먹었다.

산골 오지의 결핍이 만든 음식, 그러나 이제는 그리움이 되어버린 추억이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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