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삼바 분식회계’ 그룹 승계가 핵심이라는데 무슨 관계지?

입력 2019.03.19 (07:01) 수정 2019.03.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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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삼성SDS데이터센터와 삼성물산, 한국거래소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한국거래소를 압수수색한 것은 검찰의 수사가 분식회계에 그치지 않고 삼성바이오 특혜 상장 의혹까지 살펴보겠다는 의지입니다. 상장 과정까지 살펴본다는 것은 곧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승계까지 수사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와 그룹 승계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또 그룹 승계 문제가 나올 때마다 삼성물산 합병이 도마 위에 오르는데 뭐가 문제였을까요? 여러 가지 사건이 얽혀있다 보니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뜯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삼성물산 합병, 뭐가 문제지?

삼성물산 합병은 그룹 승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꼽힙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였던 (구)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지분 4%를 보유한 (구)삼성물산이 합병하면서, 이 부회장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물산 합병은 2015년 5월 발표 당시부터 논란이었습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등장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국민연금이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를 놓고 공방이 계속됐습니다.

문제는 합병 비율입니다.

(구)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은 1:0.35의 비율로 합병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 이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합병 비율이 중요한데, 이 부회장 등 제일모직 주주 입장에선 (구)삼성물산의 가치를 의미하는 뒤쪽의 숫자가 작을수록 유리하고, 클수록 불리합니다.

그렇다면, 두 회사의 합병 비율 1:0.35는 어느 수준일까요?


국민연금이 찬반을 결정하기에 앞서 만든 보고서입니다. 국민연금은 내부적으로 1:0.46이 적정하다고 봤고,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는 1:0.95, 국내 회계법인은 1:0.4 정도가 적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분석 기관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실제 합병비율보다 (구)삼성물산의 가치를 더 높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0.35라는 합병 비율은 적정가치보다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제일모직 주주들에게 유리하다는 의견입니다.

국민연금이 내부적으로 산출한 1:0.46과 실제 합병 비율 1:0.35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구)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이 비율로 합병할 경우 자신들이 산출한 비율에 비해 1,400억 원 정도 손해가 난다고 평가했습니다. 선뜻 찬성하기 힘든 액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 과정에서 찬성표를 강요한 혐의로 문영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합병 비율 1:0.35, 어디서 나온 숫자지?

합병 비율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면서 삼성 측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무리하게 합병 비율을 정했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합병비율은 양사의 주가 수준을 반영해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맞습니다. 합병 결정 직전 한 달간의 주가를 고려해 합병 비율이 정해졌습니다.

두 회사 모두 당시 주식시장에 상장돼있었고, 그래서 주가에 따라 합병 비율을 결정했다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 참고할 만한 판결이 있습니다.

합병에 반대하는 (구)삼성물산 주주들은 회사 측에 자신들의 주식을 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이 있습니다. 합병에 찬성할 수 없으니 주식을 팔고 떠나겠다는 겁니다. 이에 (구)삼성물산 측은 합병 결정 직전 주가 수준을 고려해 매수가격을 1주당 5만 7,200원으로 제시했습니다. 합병 비율 산정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계산해 매수 가격을 제시한 것인데, 주주들은 이 가격이 적정 가치보다 너무 낮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주주들의 손을 들어 줬고, 15% 이상 높은 6만 6,600원 정도가 적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2016라20189 주식매수가격 결정 등)

법원이 주주들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합병을 6개월 앞둔 2014년 12월부터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이미 주가가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봤습니다. 특히 언론이나 증권사 등을 통해 합병이 총수 일가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면서, 반대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구)삼성물산 주가는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였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불리한 합병이 예견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합병 당시 주가는 실제 가치보다 낮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법원은 또 (구)삼성물산의 실적 부진도 주가 약세에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는데, 특히 의도된 실적 부진이라는 의혹도 존재한다고 밝혔습니다.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극 경영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언급한 것입니다. 법원은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를 가진 (구)삼성물산이 합병을 앞둔 시기에 다른 건설사와는 달리 주택 건설에 소극적이었던 점, 그리고 대규모 해외공사 수주하고도 제때 공시하지 않았던 점들을 언급했고, "의혹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사실들도 일부 존재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물론 이 판결은 주식매수 가격에 대한 것이지, 합병 비율의 적정성을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법원도 판결문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합병 비율 산정의 근거가 된 (구)삼성물산의 주가가 이 시기 실제 가치보다 낮게 형성돼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의도성까지 언급했다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가 이 부분까지 들여다보게 될 지 주목됩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는 무슨 관계지?

합병 비율이 (구)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 주가로 결정됐다면 삼성바이오는 무슨 관계일까요?

앞서 언급한 국민연금의 보고서의 다른 페이지를 보겠습니다.


국민연금과 ISS, 국내 회계법인이 각각 적정한 합병 비율을 산출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표는 평가 기관별로 (구)제일모직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ISS가 다른 곳보다 (구)제일모직의 가치를 상당히 낮게 보고 있는데요. 특히 자회사 삼성바이오에 대한 가치 평가가 크게 다릅니다. (구)제일모직은 장부상에 삼성바이오의 지분가치를 4,800억 원 정도로 반영하고 있었는데, ISS는 1조 5천억 원, 국내 회계법인은 8조 원 이상으로 평가했습니다.

삼성바이오가 (구)제일모직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삼성바이오의 가치가 커질수록 (구)제일모직의 가치도 커지고, 이재용 부회장 등 (구)제일모직 주주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대부분 평가기관들이 제시한 합병비율보다 주가 수준에 따라 결정된 합병 비율이 (구)제일모직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구)제일모직 주주들은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삼성물산 주주들은 달랐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헤지펀드 엘리엇은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일부 주주들도 끝까지 반대하면서, 주식매수가격을 놓고 소송까지 벌였습니다.

만약 반대하는 주주가 많아서 합병 안건이 (구)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부결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합병을 포기하거나 합병 비율을 다시 조정해야 했을 겁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구)삼성물산 주주들을 설득해야겠죠. 당시 수박을 가지고 다니면서 주주들을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수박을 건네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삼성바이오의 가치가 엄청나고 그래서 합병 비율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면서 "합병 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삼성바이오 가치를 부풀렸고, 이를 사후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 2015년말 결산 때 분식회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삼성바이오 결산은 삼성물산 합병 이후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인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선후 관계만 보면 삼성 측의 주장도 맞지만, 시민단체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 체인저 '내부 문건'

그런데 금융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이 나오면서 삼성물산 합병과 분식회계 사이의 새로운 관련성이 떠올랐습니다. 삼성바이오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재경팀이 2015년 작성한 내부 문건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 내부 문건 (2015년 11월 17일)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 내부 문건 (2015년 11월 17일)

삼성바이오의 대주주인 통합 삼성물산이 2015년 9월 출범합니다.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 회계장부에 자회사의 가치를 금액으로 적어놓는데, 이 장부가는 함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합병해 새롭게 출범할 때는 다릅니다. 보유 자산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자산 재평가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회사의 가치도 다시 평가됩니다.

삼성물산 합병 때도 이 과정이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6조 9천억 원으로 재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삼성바이오도 이 평가 결과에 맞춰 회계처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게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의 내용입니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서로 다르게 회계처리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 내부 문건 (2015년 11월 10일)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 내부 문건 (2015년 11월 10일)

삼성바이오가 삼성물산의 가치 평가 결과를 따르려다 보니 자본잠식에 빠지게 된 겁니다. 이 부분을 설명하려면 좀 복잡하니까 넘어가겠습니다. 중요한 건 기존의 회계처리 방식을 유지한 채로 삼성물산의 평가 결과만 반영하면 삼성바이오는 2015년에 자본잠식이 된다는 겁니다. 내부문건은 자본잠식 상태가 되면 기존에 빌린 차입금도 상환해야 하고 주식시장 상장도 안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형 회계법인들과 함께 여러 방안을 논의합니다. 결국, 선택된 것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이 변경됐다며 회계처리 방식을 바꾼 건데,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회계처리입니다.

삼성바이오는 정말 분식회계를 했나?

삼성바이오 측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공개된 문건이 재경팀 내부 문서가 맞는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논의한 점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증권선물위원회 의사록 중 일부증권선물위원회 의사록 중 일부

하지만 2014년부터 사업성이 좋아져서 2015년에는 자회사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겼고, 그래서 회계기준에 맞게 회계 방식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분식회계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금융당국은 분식회계로 결론 내렸지만, 삼성바이오는 여기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분식회계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취재과정에서 만난 회계 전문가들도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5년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대단히 과감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창사 이래 계속 적자였던 삼성바이오는 2015년에도 매출액이 천억 원이 안 되는 회사였습니다. 사실상 회계장부에 조 단위 숫자를 쓸 일이 없는 곳이였죠. 그런데 삼성물산 합병의 여파로 자본잠식 위기에 놓이게 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자회사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바꾸면서 무려 4조 5천억 원의 평가이익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본잠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조 단위 흑자까지 기록하게 됐으니 회계 기준에 맞느냐 틀리느냐를 떠나 과감한 회계처리라고 할만하다는 겁니다.

어쨌든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니까 분식회계 논란은 법정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검찰 수사는 어떨까요? 분식회계 수사에서 끝날까요? 아니면 이를 계기로 삼성물산 합병과 그룹 차원의 승계 작업 여부까지 수사가 진행될까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재용 부회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그룹 차원의 승계 작업은 없었다고 밝혔는데요. 대법원은 조만간 전원합의체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의 수사 결과에 더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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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삼바 분식회계’ 그룹 승계가 핵심이라는데 무슨 관계지?
    • 입력 2019-03-19 07:01:23
    • 수정2019-03-19 13:44:59
    취재후·사건후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에는 삼성SDS데이터센터와 삼성물산, 한국거래소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한국거래소를 압수수색한 것은 검찰의 수사가 분식회계에 그치지 않고 삼성바이오 특혜 상장 의혹까지 살펴보겠다는 의지입니다. 상장 과정까지 살펴본다는 것은 곧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승계까지 수사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와 그룹 승계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또 그룹 승계 문제가 나올 때마다 삼성물산 합병이 도마 위에 오르는데 뭐가 문제였을까요? 여러 가지 사건이 얽혀있다 보니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뜯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삼성물산 합병, 뭐가 문제지?

삼성물산 합병은 그룹 승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꼽힙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였던 (구)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지분 4%를 보유한 (구)삼성물산이 합병하면서, 이 부회장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물산 합병은 2015년 5월 발표 당시부터 논란이었습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등장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국민연금이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를 놓고 공방이 계속됐습니다.

문제는 합병 비율입니다.

(구)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은 1:0.35의 비율로 합병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이 합병 이후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합병 비율이 중요한데, 이 부회장 등 제일모직 주주 입장에선 (구)삼성물산의 가치를 의미하는 뒤쪽의 숫자가 작을수록 유리하고, 클수록 불리합니다.

그렇다면, 두 회사의 합병 비율 1:0.35는 어느 수준일까요?


국민연금이 찬반을 결정하기에 앞서 만든 보고서입니다. 국민연금은 내부적으로 1:0.46이 적정하다고 봤고,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는 1:0.95, 국내 회계법인은 1:0.4 정도가 적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분석 기관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실제 합병비율보다 (구)삼성물산의 가치를 더 높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0.35라는 합병 비율은 적정가치보다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제일모직 주주들에게 유리하다는 의견입니다.

국민연금이 내부적으로 산출한 1:0.46과 실제 합병 비율 1:0.35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구)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이 비율로 합병할 경우 자신들이 산출한 비율에 비해 1,400억 원 정도 손해가 난다고 평가했습니다. 선뜻 찬성하기 힘든 액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 과정에서 찬성표를 강요한 혐의로 문영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합병 비율 1:0.35, 어디서 나온 숫자지?

합병 비율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면서 삼성 측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무리하게 합병 비율을 정했다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합병비율은 양사의 주가 수준을 반영해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맞습니다. 합병 결정 직전 한 달간의 주가를 고려해 합병 비율이 정해졌습니다.

두 회사 모두 당시 주식시장에 상장돼있었고, 그래서 주가에 따라 합병 비율을 결정했다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닐까요? 여기에 참고할 만한 판결이 있습니다.

합병에 반대하는 (구)삼성물산 주주들은 회사 측에 자신들의 주식을 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이 있습니다. 합병에 찬성할 수 없으니 주식을 팔고 떠나겠다는 겁니다. 이에 (구)삼성물산 측은 합병 결정 직전 주가 수준을 고려해 매수가격을 1주당 5만 7,200원으로 제시했습니다. 합병 비율 산정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계산해 매수 가격을 제시한 것인데, 주주들은 이 가격이 적정 가치보다 너무 낮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주주들의 손을 들어 줬고, 15% 이상 높은 6만 6,600원 정도가 적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2016라20189 주식매수가격 결정 등)

법원이 주주들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합병을 6개월 앞둔 2014년 12월부터 두 회사의 합병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이미 주가가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봤습니다. 특히 언론이나 증권사 등을 통해 합병이 총수 일가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면서, 반대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구)삼성물산 주가는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였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불리한 합병이 예견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합병 당시 주가는 실제 가치보다 낮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법원은 또 (구)삼성물산의 실적 부진도 주가 약세에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는데, 특히 의도된 실적 부진이라는 의혹도 존재한다고 밝혔습니다.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극 경영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언급한 것입니다. 법원은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를 가진 (구)삼성물산이 합병을 앞둔 시기에 다른 건설사와는 달리 주택 건설에 소극적이었던 점, 그리고 대규모 해외공사 수주하고도 제때 공시하지 않았던 점들을 언급했고, "의혹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사실들도 일부 존재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물론 이 판결은 주식매수 가격에 대한 것이지, 합병 비율의 적정성을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법원도 판결문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합병 비율 산정의 근거가 된 (구)삼성물산의 주가가 이 시기 실제 가치보다 낮게 형성돼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는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의도성까지 언급했다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가 이 부분까지 들여다보게 될 지 주목됩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는 무슨 관계지?

합병 비율이 (구)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 주가로 결정됐다면 삼성바이오는 무슨 관계일까요?

앞서 언급한 국민연금의 보고서의 다른 페이지를 보겠습니다.


국민연금과 ISS, 국내 회계법인이 각각 적정한 합병 비율을 산출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표는 평가 기관별로 (구)제일모직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ISS가 다른 곳보다 (구)제일모직의 가치를 상당히 낮게 보고 있는데요. 특히 자회사 삼성바이오에 대한 가치 평가가 크게 다릅니다. (구)제일모직은 장부상에 삼성바이오의 지분가치를 4,800억 원 정도로 반영하고 있었는데, ISS는 1조 5천억 원, 국내 회계법인은 8조 원 이상으로 평가했습니다.

삼성바이오가 (구)제일모직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삼성바이오의 가치가 커질수록 (구)제일모직의 가치도 커지고, 이재용 부회장 등 (구)제일모직 주주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대부분 평가기관들이 제시한 합병비율보다 주가 수준에 따라 결정된 합병 비율이 (구)제일모직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구)제일모직 주주들은 반대할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삼성물산 주주들은 달랐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헤지펀드 엘리엇은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일부 주주들도 끝까지 반대하면서, 주식매수가격을 놓고 소송까지 벌였습니다.

만약 반대하는 주주가 많아서 합병 안건이 (구)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부결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합병을 포기하거나 합병 비율을 다시 조정해야 했을 겁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구)삼성물산 주주들을 설득해야겠죠. 당시 수박을 가지고 다니면서 주주들을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수박을 건네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삼성바이오의 가치가 엄청나고 그래서 합병 비율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면서 "합병 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삼성바이오 가치를 부풀렸고, 이를 사후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 2015년말 결산 때 분식회계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삼성바이오 결산은 삼성물산 합병 이후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인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선후 관계만 보면 삼성 측의 주장도 맞지만, 시민단체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 체인저 '내부 문건'

그런데 금융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이 나오면서 삼성물산 합병과 분식회계 사이의 새로운 관련성이 떠올랐습니다. 삼성바이오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는 재경팀이 2015년 작성한 내부 문건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 내부 문건 (2015년 11월 17일)
삼성바이오의 대주주인 통합 삼성물산이 2015년 9월 출범합니다.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 회계장부에 자회사의 가치를 금액으로 적어놓는데, 이 장부가는 함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합병해 새롭게 출범할 때는 다릅니다. 보유 자산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자산 재평가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자회사의 가치도 다시 평가됩니다.

삼성물산 합병 때도 이 과정이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6조 9천억 원으로 재평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삼성바이오도 이 평가 결과에 맞춰 회계처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게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의 내용입니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서로 다르게 회계처리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 내부 문건 (2015년 11월 10일)
삼성바이오가 삼성물산의 가치 평가 결과를 따르려다 보니 자본잠식에 빠지게 된 겁니다. 이 부분을 설명하려면 좀 복잡하니까 넘어가겠습니다. 중요한 건 기존의 회계처리 방식을 유지한 채로 삼성물산의 평가 결과만 반영하면 삼성바이오는 2015년에 자본잠식이 된다는 겁니다. 내부문건은 자본잠식 상태가 되면 기존에 빌린 차입금도 상환해야 하고 주식시장 상장도 안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형 회계법인들과 함께 여러 방안을 논의합니다. 결국, 선택된 것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이 변경됐다며 회계처리 방식을 바꾼 건데,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회계처리입니다.

삼성바이오는 정말 분식회계를 했나?

삼성바이오 측은 증권선물위원회에서 공개된 문건이 재경팀 내부 문서가 맞는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논의한 점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증권선물위원회 의사록 중 일부
하지만 2014년부터 사업성이 좋아져서 2015년에는 자회사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겼고, 그래서 회계기준에 맞게 회계 방식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분식회계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금융당국은 분식회계로 결론 내렸지만, 삼성바이오는 여기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분식회계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취재과정에서 만난 회계 전문가들도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5년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대단히 과감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창사 이래 계속 적자였던 삼성바이오는 2015년에도 매출액이 천억 원이 안 되는 회사였습니다. 사실상 회계장부에 조 단위 숫자를 쓸 일이 없는 곳이였죠. 그런데 삼성물산 합병의 여파로 자본잠식 위기에 놓이게 됐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자회사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바꾸면서 무려 4조 5천억 원의 평가이익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본잠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조 단위 흑자까지 기록하게 됐으니 회계 기준에 맞느냐 틀리느냐를 떠나 과감한 회계처리라고 할만하다는 겁니다.

어쨌든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니까 분식회계 논란은 법정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검찰 수사는 어떨까요? 분식회계 수사에서 끝날까요? 아니면 이를 계기로 삼성물산 합병과 그룹 차원의 승계 작업 여부까지 수사가 진행될까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재용 부회장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그룹 차원의 승계 작업은 없었다고 밝혔는데요. 대법원은 조만간 전원합의체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의 수사 결과에 더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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