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아 거북아” 구지가에 나오는 ‘가야신화’가 유물로?

입력 2019.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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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놓아라
若不現也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 먹으리


다소 엉뚱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내용의 이 고대가요, 다들 한 번씩 들어보셨을 겁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와 문제집 지문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던 '구지가(龜旨歌)' 입니다.

매우 짧은 내용에 작자와 연대도 미상이지만, 그 속에 나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 비해 다소 우리에게 덜 알려진 가야의 건국신화를 담고 있다는 것이죠.

《삼국유사》에는 가야국의 출발을 알리는 내용으로 <가락국기(駕洛國記)>가 실려 있습니다. 고려 문종 때 편찬된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인데요. 가락국은 김해 지역에서 건국된 나라로 금관가야의 전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가락국을 세운 사람은 김수로왕이라고 합니다.

황금알 6개에서 '6가야'의 왕들이…

<가락국기>에는 가락국에 아직 왕이 없을 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부족장이 백성들을 다스리던 서기 42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구지봉에서 '신'의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족장들이 백성들을 모아놓고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는 겁니다.

이후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왔는데, 알에서 각각 귀공자가 한 명씩 나와 여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설화입니다. 집단적 주술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후 해석하는 이에 따라 의견이 분분합니다.

경북 고령 대가야박물관 일원경북 고령 대가야박물관 일원

가야의 건국신화를 보여주는 '유물' 발견

이 같은 구지가 속 내용을 보여주는 유물이 발견돼 화제입니다. 장소는 경북 고령의 대가야박물관 인근입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작업을 해오던 사적 제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의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가 발견된 겁니다.

무덤 11기 가운데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소형 석곽묘 5-1호입니다. 길이 165cm, 너비 45cm, 깊이 55cm의 무덤 안에서 작은 '토제 방울'이 발견됐는데 놀랍게도 이 방울 표면에 여섯 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토제방울’이번에 발굴된 ‘토제방울’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방울 표면에 어떤 '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총 6가지 독립적인 그림이 방울 표면에 새겨져 있는데요. 언뜻 봐선 뭘 그린 건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미경을 이용해 세밀하게 분석을 해본 전문가들은 그림의 내용이 가야의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각각 그림은 위에 설명한 <가락국기>의 건국신화 내용과 부합하는데 그동안 문헌으로만 보던 건국신화가 유물에 투영된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

그림을 보면 거북이 등 모양의 무늬가 보입니다. 토제방울의 고리 부분을 머리로 삼고 표면에는 둥글게 외곽선을 긋고 내부에 2열의 등껍질을 새겨 넣었다는 분석입니다. 거북의 머리는 '신' 또는 '하늘'을 상징화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옵니다.

관을 쓴 남자, 지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도 보입니다. 머리의 윗부분에는 세 가닥의 선각이 있는데, 대가야 고분에서 출토되는 금동관의 입식이나 관모 장식이 대부분 세 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을 볼 때, 관을 쓴 지도자를 표현했다는 추정이 나옵니다.

거북 머리에 해당하는 고리를 통과해 내려오는 줄과 끝에 매달린 금합을 담은 자루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도 있습니다. <가락국기>에서 "자줏빛 줄이 하늘에서 드리워져서 땅에 닿았다. 그 줄이 내려온 곳을 따라가 붉은 보자기(자루)에 싸인 금합(金合)을 발견하고 열어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는 내용에 부합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금합 속 구슬 6개가 바로 가야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여섯 가야의 왕으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발굴현장고령 지산동 고분군 발굴현장

"건국신화, 더는 '금관가야' 만의 전유물 아냐"

이번에 발견된 토제방울을 통해 가락국기에 등장하는 건국신화는 이제 더는 금관가야만의 전유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는 가야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건국신화에 담긴 핵심 요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겁니다.

토제방울이 나온 무덤에서는 작은 토기 6점과 쇠 낫 1점, 화살촉 3점, 곡옥(曲玉) 1점, 그리고 어린이의 치아와 두개골 조각이 함께 출토됐습니다.

또 이번에 발견된 무덤 11기 가운데 제1호 석실묘는 횡혈식 구조 (석재를 이용해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 벽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무덤방식)를 하고 있어 대가야 시대의 묘제 방식을 연구하는 데 귀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무덤과 유물들이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 관한 학술정보를 확대하고, 대가야를 포함한 모든 가야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기반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번 발굴을 통해 우리가 막연하게 알아온 우리의 역사 '가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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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아 거북아” 구지가에 나오는 ‘가야신화’가 유물로?
    • 입력 2019-03-20 09:00:42
    취재K
[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머리를 내놓아라
若不現也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구워 먹으리


다소 엉뚱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내용의 이 고대가요, 다들 한 번씩 들어보셨을 겁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와 문제집 지문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던 '구지가(龜旨歌)' 입니다.

매우 짧은 내용에 작자와 연대도 미상이지만, 그 속에 나름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에 비해 다소 우리에게 덜 알려진 가야의 건국신화를 담고 있다는 것이죠.

《삼국유사》에는 가야국의 출발을 알리는 내용으로 <가락국기(駕洛國記)>가 실려 있습니다. 고려 문종 때 편찬된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인데요. 가락국은 김해 지역에서 건국된 나라로 금관가야의 전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가락국을 세운 사람은 김수로왕이라고 합니다.

황금알 6개에서 '6가야'의 왕들이…

<가락국기>에는 가락국에 아직 왕이 없을 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부족장이 백성들을 다스리던 서기 42년,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 지역의 구지봉에서 '신'의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족장들이 백성들을 모아놓고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는 겁니다.

이후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왔는데, 알에서 각각 귀공자가 한 명씩 나와 여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설화입니다. 집단적 주술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후 해석하는 이에 따라 의견이 분분합니다.

경북 고령 대가야박물관 일원
가야의 건국신화를 보여주는 '유물' 발견

이 같은 구지가 속 내용을 보여주는 유물이 발견돼 화제입니다. 장소는 경북 고령의 대가야박물관 인근입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작업을 해오던 사적 제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의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가 발견된 겁니다.

무덤 11기 가운데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소형 석곽묘 5-1호입니다. 길이 165cm, 너비 45cm, 깊이 55cm의 무덤 안에서 작은 '토제 방울'이 발견됐는데 놀랍게도 이 방울 표면에 여섯 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토제방울’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방울 표면에 어떤 '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총 6가지 독립적인 그림이 방울 표면에 새겨져 있는데요. 언뜻 봐선 뭘 그린 건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미경을 이용해 세밀하게 분석을 해본 전문가들은 그림의 내용이 가야의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각각 그림은 위에 설명한 <가락국기>의 건국신화 내용과 부합하는데 그동안 문헌으로만 보던 건국신화가 유물에 투영된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

그림을 보면 거북이 등 모양의 무늬가 보입니다. 토제방울의 고리 부분을 머리로 삼고 표면에는 둥글게 외곽선을 긋고 내부에 2열의 등껍질을 새겨 넣었다는 분석입니다. 거북의 머리는 '신' 또는 '하늘'을 상징화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옵니다.

관을 쓴 남자, 지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도 보입니다. 머리의 윗부분에는 세 가닥의 선각이 있는데, 대가야 고분에서 출토되는 금동관의 입식이나 관모 장식이 대부분 세 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을 볼 때, 관을 쓴 지도자를 표현했다는 추정이 나옵니다.

거북 머리에 해당하는 고리를 통과해 내려오는 줄과 끝에 매달린 금합을 담은 자루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도 있습니다. <가락국기>에서 "자줏빛 줄이 하늘에서 드리워져서 땅에 닿았다. 그 줄이 내려온 곳을 따라가 붉은 보자기(자루)에 싸인 금합(金合)을 발견하고 열어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는 내용에 부합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 금합 속 구슬 6개가 바로 가야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여섯 가야의 왕으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발굴현장
"건국신화, 더는 '금관가야' 만의 전유물 아냐"

이번에 발견된 토제방울을 통해 가락국기에 등장하는 건국신화는 이제 더는 금관가야만의 전유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는 가야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건국신화에 담긴 핵심 요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겁니다.

토제방울이 나온 무덤에서는 작은 토기 6점과 쇠 낫 1점, 화살촉 3점, 곡옥(曲玉) 1점, 그리고 어린이의 치아와 두개골 조각이 함께 출토됐습니다.

또 이번에 발견된 무덤 11기 가운데 제1호 석실묘는 횡혈식 구조 (석재를 이용해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 벽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든 무덤방식)를 하고 있어 대가야 시대의 묘제 방식을 연구하는 데 귀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무덤과 유물들이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 관한 학술정보를 확대하고, 대가야를 포함한 모든 가야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기반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번 발굴을 통해 우리가 막연하게 알아온 우리의 역사 '가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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