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② 시약기(試藥器) 비웃는 마약의 진화

입력 2019.05.15 (17:41) 수정 2019.05.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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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마약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마약 문제의 해결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약 세계의 내부자들을 찾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KBS 디지털 공간에 연재합니다.

[연관 기사][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① ‘익명의 약물중독자들’(N·A)과 만나다

약물중독자들의 치료 모임인 '익명의 약물중독자들'(Narcotics Anonymous, N·A)에서 처음 만난 A는 20대 후반의 밝은 청년이었습니다. 방금 전 거리에서 지나쳤을 법한 평범한 모습에선 약물의 그늘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A는 매일 '단약'(斷藥, 약을 끊는 것)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A는 서울의 클럽에서 MD(영업직원)이자 디제이로 일하며 마약의 굴레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버닝썬' 사건도 익숙합니다. 그러다 죽음의 기로에서 단약을 결심하고 입원 치료를 거쳐 재활 시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약물중독자 그룹홈 ‘다르크’ 안 A의 방. 입소하게 되면 휴대전화와 컴퓨터 소지가 금지되지만 A는 특별히 컴퓨터 반입을 허락받았다.약물중독자 그룹홈 ‘다르크’ 안 A의 방. 입소하게 되면 휴대전화와 컴퓨터 소지가 금지되지만 A는 특별히 컴퓨터 반입을 허락받았다.

토요일 오전, A를 만나기 위해 약물중독자를 위한 재활 시설을 방문했습니다. 시설이라고는 하지만, 방 3개에 2층 침대 2개가 있는 보통 가정집입니다. A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입소비를 내고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合力(합력)하여, 回復(회복)으로.'

이런 구호가 적힌 거실에서 A와 마주 앉았습니다. 먼저 입소해 단약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선배 2명이 A의 양 옆을 지켰습니다. 기자를 마주한 A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A는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대마초를 배웠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다 한국에 들어왔는데 가끔 손님으로 놀러 가던 클럽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약물중독이 심각한 문제가 된 건 그때였습니다.

약물중독자를 위한 그룹홈 ‘다르크’에 구호가 적힌 팻말이 걸려있다.약물중독자를 위한 그룹홈 ‘다르크’에 구호가 적힌 팻말이 걸려있다.

"클럽 손님들은 항상 약을 하고 오더라고요."

"손님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늘 항상 약을 하고 오더라고요. 제 손님 중에 심지어 약을 갖고 와서 저한테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고. 엑스터시 같은 걸 클럽에서 많이 하거든요. 클럽 룸에서는 필로폰을 투약한 빈 주사기 같은 것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비밀리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한국에도 약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구나. 신기했죠. 그때는 어려서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되게 새로운 기분이니까. 그 약을 하게 되면 되게 활발해지고 적극적으로 되고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

미국에선 대마초 같은 것만 했다가 한국에서 다른 약물을 접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보다 이런 마약 종류도 더 다양화 해지고 또 텔레그램이라는 어플도 생기면서."

텔레그램은 대화를 한 직후 내용을 지울 수 있어 약물 유통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신종 마약은 시약기(試藥器)에도 안 나와…"약은 진화해요"

A는 대마초와 엑스터시뿐만 아니라 신종 마약들까지 손 댔습니다. 일부 합성 마약은 시약기(마약을 검출하는 기계)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는 당연하다는 듯 "인터넷 검색해서 알고 있거나 판매자에게 물어봤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시약기가 발달해도 수사망을 피해가는 것 같아요, 더 빠르게. 어떻게든 다른 약물을 하면서 버틸 수 있게." A가 말했습니다.

A의 이야기에 재활 시설 책임자 B가 "약은 점점 진화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어제까지 합법이었던 신경안정제가 오늘 '향'(향정신성의약품)으로 넘어가고, 어제까지 수면제였는데 오늘 '향'으로 넘어가고…. 졸피뎀, 스틸록스, 프로포폴 이런 게 그런거죠."

약물의 진화 속도를 단속 기관이 따라잡지 못하는 셈입니다.

A는 클럽 마약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과거 대마초 투약으로 검거됐을 때는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이번엔 구속기소가 돼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습니다. 극심한 좌절감에 극단적인 시도를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것이 A의 '바닥'이었습니다.

A가 인터뷰 전날 밤 말할 내용을 적어놓은 수첩. ‘한국에는 치료 시설과 정보가 많이 부족해서 안타까움. 중독자들은 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환자’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A가 인터뷰 전날 밤 말할 내용을 적어놓은 수첩. ‘한국에는 치료 시설과 정보가 많이 부족해서 안타까움. 중독자들은 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환자’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다른 사람처럼 못 되는 절망감에..."

"왜냐면, 왜 자살 시도를 했냐면요…. 이게 약물로 뇌에 이미 타격을 입었고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를 못하니까 절망감에 빠지는 거예요. 내가, 이게 만약에 회복이 금방 되고 그렇게 하면 더 살아볼 용기가 있겠는데. 이미 내가 몸이 망가지고, 제가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더 살아갈 용기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약 생각이 계속 나고 이럴 바엔 차라리…."

'약물로 인해 뇌에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뭐냐고 묻자 A가 직접 적어온 수첩을 꺼내들었습니다.

"어떤 후유증이냐면, 적어왔어요. '집중 장애'라든지 '말을 논리적으로 잘 못한다'든지, 그리고 계속 업(up)된 상태에서 중독돼 있다가 약에서 깬 다음에 느끼는 우울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기억력 감퇴, 판단력 저하.

각성된 상태로 일을 하다가 그걸 안 먹게 되면 몸이 확 다운되는 거예요. 그 약을 먹어야만 내가 막 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것 같고, 약물에 '의존'을 하게 된 거예요. 약을 끊으면 말도 잘 안나오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기소유예된 사람들 보면 주부도 있고, 교사 준비생도 있어요"

약물중독의 '경로'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호기심에 일명 '게이트 드러그'라고 하는 연성 약물을 먼저 접합니다. 대마초처럼 중독 정도가 약한 것들입니다. 여성들은 다이어트 약에 중독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다 약물에 내성이 생기고 필로폰 같은 더 강한 약물을 원하게 됩니다.

A의 또 다른 재활 선배 C가 입을 열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 무방비니까. 이렇게까지 되는 게 굉장히 짧은 시간에 되니까. 예전에는 중독되는 게 시간이 오래걸렸는데, 요즘은…. A가 필로폰까지 중독되지 않고 여기(재활 시설)에 왔다는 게 대단한 겁니다."

"요즘은 기소유예된 사람 보면 가정주부도 있고 교사 임용 취소된 애도 있고 그래요. 그 애는 다이어트 약 먹다가 그렇게 된 거야, 요즘엔 약물 범위가 넓으니까…." B가 덧붙였습니다.

'다르크' 구석 방에 위치한 시설 책임자 B의 업무 공간. B는 10년여 전 단약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약물중독자 재활 시설 '다르크'를 세웠다. 처음에는 일본 ‘다르크’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룹홈 자격을 딴 이후엔 자립해 운영하고 있다.'다르크' 구석 방에 위치한 시설 책임자 B의 업무 공간. B는 10년여 전 단약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약물중독자 재활 시설 '다르크'를 세웠다. 처음에는 일본 ‘다르크’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룹홈 자격을 딴 이후엔 자립해 운영하고 있다.

단순 약물투약으로 경찰에 검거돼도 약물을 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우리가 징역사는 걸 제일 우려하는 경우가, A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감옥 갔다오면 '전국구'가 돼서 나오거든요. 거기서 정보를 다 얻는 거에요, 시약기 피하는 방법, 약 구입하는 방법…." B가 설명했습니다.

B는 그래서 마약의 '공급 억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수요 억제'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약류 유통을 단속하면서, 마약의 폐해를 알려 "애초에 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단순 투약자들을 '치료'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원에서 치료보호 제도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게 처음엔 명령이지만 나중엔 (단약의) 동기 부여가 되거든요."

A의 책상 위에 ‘오늘 하루만’이라는 단약의 다짐이 적힌 N·A 열쇠고리가 놓여 있다.A의 책상 위에 ‘오늘 하루만’이라는 단약의 다짐이 적힌 N·A 열쇠고리가 놓여 있다.

이제 인터뷰를 끝낼 시간입니다. 중독자, 동시에 재활자인 A는 말합니다.

"마약은 너무 후회할 게 많고. 거기에 빠져드는 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주변 관계도 다 엉망으로 가고. 그때만 좋지 시간이 지나면 걸리게 돼 있어요. 다 이어져 있어서…."

이날 오후엔 A의 부모님이 시설을 방문해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 보기 긴장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는 "아뇨~"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약물중독으로 감옥을 드나들며 가족들과의 연이 끊어졌다는 선배들은 "얘가 얼마나 배가 부른지 아직도 모른다"며 웃었습니다.

다음편에서는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③ 마약 '공급책'이 풀려나오는 이유…'머릿수 채우기' 수사의 함정 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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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② 시약기(試藥器) 비웃는 마약의 진화
    • 입력 2019-05-15 17:41:02
    • 수정2019-05-29 17:35:42
    취재K
과거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마약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마약 문제의 해결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약 세계의 내부자들을 찾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KBS 디지털 공간에 연재합니다.

[연관 기사][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① ‘익명의 약물중독자들’(N·A)과 만나다

약물중독자들의 치료 모임인 '익명의 약물중독자들'(Narcotics Anonymous, N·A)에서 처음 만난 A는 20대 후반의 밝은 청년이었습니다. 방금 전 거리에서 지나쳤을 법한 평범한 모습에선 약물의 그늘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A는 매일 '단약'(斷藥, 약을 끊는 것)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A는 서울의 클럽에서 MD(영업직원)이자 디제이로 일하며 마약의 굴레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버닝썬' 사건도 익숙합니다. 그러다 죽음의 기로에서 단약을 결심하고 입원 치료를 거쳐 재활 시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약물중독자 그룹홈 ‘다르크’ 안 A의 방. 입소하게 되면 휴대전화와 컴퓨터 소지가 금지되지만 A는 특별히 컴퓨터 반입을 허락받았다.
토요일 오전, A를 만나기 위해 약물중독자를 위한 재활 시설을 방문했습니다. 시설이라고는 하지만, 방 3개에 2층 침대 2개가 있는 보통 가정집입니다. A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입소비를 내고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合力(합력)하여, 回復(회복)으로.'

이런 구호가 적힌 거실에서 A와 마주 앉았습니다. 먼저 입소해 단약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선배 2명이 A의 양 옆을 지켰습니다. 기자를 마주한 A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A는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대마초를 배웠습니다. 대학교에 다니다 한국에 들어왔는데 가끔 손님으로 놀러 가던 클럽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약물중독이 심각한 문제가 된 건 그때였습니다.

약물중독자를 위한 그룹홈 ‘다르크’에 구호가 적힌 팻말이 걸려있다.
"클럽 손님들은 항상 약을 하고 오더라고요."

"손님들이나 이런 사람들은 늘 항상 약을 하고 오더라고요. 제 손님 중에 심지어 약을 갖고 와서 저한테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고. 엑스터시 같은 걸 클럽에서 많이 하거든요. 클럽 룸에서는 필로폰을 투약한 빈 주사기 같은 것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비밀리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한국에도 약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구나. 신기했죠. 그때는 어려서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되게 새로운 기분이니까. 그 약을 하게 되면 되게 활발해지고 적극적으로 되고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

미국에선 대마초 같은 것만 했다가 한국에서 다른 약물을 접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보다 이런 마약 종류도 더 다양화 해지고 또 텔레그램이라는 어플도 생기면서."

텔레그램은 대화를 한 직후 내용을 지울 수 있어 약물 유통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신종 마약은 시약기(試藥器)에도 안 나와…"약은 진화해요"

A는 대마초와 엑스터시뿐만 아니라 신종 마약들까지 손 댔습니다. 일부 합성 마약은 시약기(마약을 검출하는 기계)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는 당연하다는 듯 "인터넷 검색해서 알고 있거나 판매자에게 물어봤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시약기가 발달해도 수사망을 피해가는 것 같아요, 더 빠르게. 어떻게든 다른 약물을 하면서 버틸 수 있게." A가 말했습니다.

A의 이야기에 재활 시설 책임자 B가 "약은 점점 진화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어제까지 합법이었던 신경안정제가 오늘 '향'(향정신성의약품)으로 넘어가고, 어제까지 수면제였는데 오늘 '향'으로 넘어가고…. 졸피뎀, 스틸록스, 프로포폴 이런 게 그런거죠."

약물의 진화 속도를 단속 기관이 따라잡지 못하는 셈입니다.

A는 클럽 마약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과거 대마초 투약으로 검거됐을 때는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이번엔 구속기소가 돼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습니다. 극심한 좌절감에 극단적인 시도를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것이 A의 '바닥'이었습니다.

A가 인터뷰 전날 밤 말할 내용을 적어놓은 수첩. ‘한국에는 치료 시설과 정보가 많이 부족해서 안타까움. 중독자들은 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환자’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다른 사람처럼 못 되는 절망감에..."

"왜냐면, 왜 자살 시도를 했냐면요…. 이게 약물로 뇌에 이미 타격을 입었고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를 못하니까 절망감에 빠지는 거예요. 내가, 이게 만약에 회복이 금방 되고 그렇게 하면 더 살아볼 용기가 있겠는데. 이미 내가 몸이 망가지고, 제가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더 살아갈 용기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약 생각이 계속 나고 이럴 바엔 차라리…."

'약물로 인해 뇌에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뭐냐고 묻자 A가 직접 적어온 수첩을 꺼내들었습니다.

"어떤 후유증이냐면, 적어왔어요. '집중 장애'라든지 '말을 논리적으로 잘 못한다'든지, 그리고 계속 업(up)된 상태에서 중독돼 있다가 약에서 깬 다음에 느끼는 우울감과 무기력감. 그리고 기억력 감퇴, 판단력 저하.

각성된 상태로 일을 하다가 그걸 안 먹게 되면 몸이 확 다운되는 거예요. 그 약을 먹어야만 내가 막 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것 같고, 약물에 '의존'을 하게 된 거예요. 약을 끊으면 말도 잘 안나오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기소유예된 사람들 보면 주부도 있고, 교사 준비생도 있어요"

약물중독의 '경로'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호기심에 일명 '게이트 드러그'라고 하는 연성 약물을 먼저 접합니다. 대마초처럼 중독 정도가 약한 것들입니다. 여성들은 다이어트 약에 중독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다 약물에 내성이 생기고 필로폰 같은 더 강한 약물을 원하게 됩니다.

A의 또 다른 재활 선배 C가 입을 열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 무방비니까. 이렇게까지 되는 게 굉장히 짧은 시간에 되니까. 예전에는 중독되는 게 시간이 오래걸렸는데, 요즘은…. A가 필로폰까지 중독되지 않고 여기(재활 시설)에 왔다는 게 대단한 겁니다."

"요즘은 기소유예된 사람 보면 가정주부도 있고 교사 임용 취소된 애도 있고 그래요. 그 애는 다이어트 약 먹다가 그렇게 된 거야, 요즘엔 약물 범위가 넓으니까…." B가 덧붙였습니다.

'다르크' 구석 방에 위치한 시설 책임자 B의 업무 공간. B는 10년여 전 단약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약물중독자 재활 시설 '다르크'를 세웠다. 처음에는 일본 ‘다르크’의 지원을 받았지만, 그룹홈 자격을 딴 이후엔 자립해 운영하고 있다.
단순 약물투약으로 경찰에 검거돼도 약물을 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우리가 징역사는 걸 제일 우려하는 경우가, A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감옥 갔다오면 '전국구'가 돼서 나오거든요. 거기서 정보를 다 얻는 거에요, 시약기 피하는 방법, 약 구입하는 방법…." B가 설명했습니다.

B는 그래서 마약의 '공급 억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수요 억제'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약류 유통을 단속하면서, 마약의 폐해를 알려 "애초에 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단순 투약자들을 '치료'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원에서 치료보호 제도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게 처음엔 명령이지만 나중엔 (단약의) 동기 부여가 되거든요."

A의 책상 위에 ‘오늘 하루만’이라는 단약의 다짐이 적힌 N·A 열쇠고리가 놓여 있다.
이제 인터뷰를 끝낼 시간입니다. 중독자, 동시에 재활자인 A는 말합니다.

"마약은 너무 후회할 게 많고. 거기에 빠져드는 순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주변 관계도 다 엉망으로 가고. 그때만 좋지 시간이 지나면 걸리게 돼 있어요. 다 이어져 있어서…."

이날 오후엔 A의 부모님이 시설을 방문해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 보기 긴장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는 "아뇨~"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약물중독으로 감옥을 드나들며 가족들과의 연이 끊어졌다는 선배들은 "얘가 얼마나 배가 부른지 아직도 모른다"며 웃었습니다.

다음편에서는 [나는 약물중독자입니다]③ 마약 '공급책'이 풀려나오는 이유…'머릿수 채우기' 수사의 함정 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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