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남북군인들 풀영상…“심장 두근거렸다”

입력 2019.05.27 (16:37) 수정 2019.05.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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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남과 북의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나들었습니다. 비무장지대 주요 고지에 서늘한 모습으로 서 있던 양측의 감시초소(GP)가 무너져 내린 자리도 함께 밟았죠.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서 비무장지대 내부의 GP를 모두 철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위한 시범적 조치로 서로 1km 이내에 근접한 GP 11개를 각각 철수하기로 했고, 보존하기로 합의한 1개 GP를 제외하고 모두 20개 GP를 지난해 11월 30일부로 완전히 철거했습니다. 그리고 12월 12일, 남북 군인들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시범 철수한 GP를 공동검증하고 이를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그중 한 군인의 '보디캠'에 찍힌 영상, 지난 다섯 달 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다가 지난 25일 KBS <뉴스9>를 통해 처음 보도됐습니다.

[연관 기사] 보디캠이 본 GP 철거 후 ‘남북 군인들의 만남’…영상 첫 공개

이 영상은 남측 검증반의 일원이었던 정성진 중사의 어깨에 부착된 보디캠에 찍힌 건데, 군인들의 숨소리부터 양측이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모습 등이 생생히 담겼습니다. 남측 검증반원들이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출발해 군사분계선까지 가는 모습, 군사분계선에서 북측 군인들과 만나는 모습, 또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을 함께 걸어 GP 철거 현장까지 가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뉴스9>에는 KBS가 확보한 영상 4분 22초 가운데 일부만 공개했었는데, 방송에 담지 못했던 부분까지 포함해 풀 영상을 올립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서 그날,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의 분위기

이 영상을 촬영한 정성진 중사, 그리고 다른 검증반원들은 그 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분위기는 어땠을지, 북측 군인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영상에 다 담기지 않은 일들도 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보도 이후에 현장에 있었던 검증단 박윤서 소령, 정성진 중사와 짧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입니다.

Q. 군사분계선 넘던 날,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A. (정성진 중사) 원소속 부대가 3사단 백골 부대여서, (GP 철거 검증이 진행된) 그 지역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때 우리 GP 쪽에서 반대편 북측 GP를 한 번씩 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을 직접 간다니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북한 군인들을 보는 것도 정말 신기했습니다. 실제 북 GP에 가서 아군 GP 쪽을 봤는데 정말 멀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깨에 보디캠을 달고 사진을 찍고 있는 정성진 중사. 정 중사의 얼굴이 카메라 액정에 비춰져있다.어깨에 보디캠을 달고 사진을 찍고 있는 정성진 중사. 정 중사의 얼굴이 카메라 액정에 비춰져있다.

Q. 워낙 역사적인 일이어서, 부담도 컸을 것 같습니다.
A. (정성진 중사)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면서, 국민들 모두 관심 있는 사안인데 혹여나 실수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죠. 어떻게 역사적 순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Q. 영상에 숨소리가 크게 녹음돼서, 힘든 게 느껴졌습니다.
A. (박윤서 소령) 비무장지대 중에 오솔길이 난 부분만 지뢰를 제거한 상태였습니다. 길도 새로 만들어서 가파르고 미끄러웠고요. 오솔길을 따라서 줄을 쳐놓기는 했는데, 조금만 헛디디거나 벗어나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또, 북측 GP가 굉장히 높은 곳에 있기도 했고요.

Q. 북측 군인들 보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도 궁금합니다.
A. (박윤서 소령) 저는 북측 군인들이 우리 GP 철거 현장을 검증할 때 만났는데, 굉장히 경계심이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북측과 달리 폭파 방식이 아니라 철거 방식으로 GP를 철수했는데, 그러다보니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뭐 남아있는 건 아닌지 질문도 많이 하고 아주 꼼꼼히 촬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북측에 간 검증반원 말로는 북측에서 GP 폭파 현장 검증을 위해 아주 정성스럽게 준비해놨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 검증반원이 처음에 굉장히 긴장하면서 갔는데, 현장에 안내판까지 준비해서 세워놓고, 모든 질문에 굉장히 성의있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Q. 북측에도 촬영하는 군인이 있던데, 무슨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A. (정성진 중사) 따로 대화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GP 철거) 검증을 해야 하니까 북측에서도 촬영 요원이 나왔는데, 서로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고 경쟁도 하고 그랬죠. 그래도, 예의 있게 한 명이 촬영하고 있을 땐 다른 쪽이 숙여서 앵글 안 가리게 해주기도 하고, 그런 배려가 있었습니다.

국방부 특별기획전시회 중 보디캠 영상 상영 공간국방부 특별기획전시회 중 보디캠 영상 상영 공간

더 생생하게 보고 싶다면

병사들이 내몰아 쉬는 숨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까지 들리는 보디캠 영상을 보다 보면, 다른 검증반원들과 함께 직접 오솔길을 걷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이 간접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국방부가 준비한 특별기획전시 <강한 국방이 열어가는 평화의 길>에서는 대형 스크린으로 이 보디캠 영상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전시 공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영상에 둘러싸인 채로 보다 보면, 그날 분위기가 정말 실감 나게 느껴집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노란 깃발을 기억하시나요? 남북 검증반원들이 만날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위에 설치됐던 이정표인데, 이 노란 깃발 역시 전시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성진 중사가 찍은 보디캠 영상 외에도, 남북을 잇는 비무장지대 오솔길의 다른 사진들, 북측에서 GP를 폭파하는 영상, 강원도 고성의 보존 GP에서 촬영한 자연경관 영상도 함께 전시돼 있습니다.


여러분의 봄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위 영상을 클릭하시면, 전시회 시작부터 끝까지 대략 어떤 전시물들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GP 폭파, 상호 검증과 관련된 전시물 외에도 9·19 군사합의 이후 남북이 만들어낸 여러 역사적 장면들이 담겨있습니다.

특별한 전시물 하나만 따로 소개하자면,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해 도로 개설을 하던 도중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품들-인식표와 계급장, 단추가 있습니다. 박 이등중사의 유해와 함께 발굴된 것들입니다. 올 들어 분위기가 바뀌면서 남북이 공동유해발굴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공동유해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얼마나 많은 '제2의 박재권'들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품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품

판문점 선언 1주년을 즈음해 마련된 이 전시회는 원래 지난주 일요일을 마지막으로 끝날 예정이었지만 2주 연장됐습니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다음 달 9일까지 이어집니다. 한 달 동안 2만 명 넘게 이 전시회를 다녀갔다고 하네요.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잠시 멈춘 듯한 이 시기, 전시회를 둘러보다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하게 됩니다. 남북 군인들이 만났던 오솔길은 언제 다시 열릴까, 박재권 이등중사의 전우들은 화살머리고지에서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관람객들을 떠나보내며, 전시회는 출구에 내건 문구로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의 봄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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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남북군인들 풀영상…“심장 두근거렸다”
    • 입력 2019-05-27 16:37:12
    • 수정2019-05-27 17:29:30
    취재후·사건후
지난해 겨울, 남과 북의 군인들이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나들었습니다. 비무장지대 주요 고지에 서늘한 모습으로 서 있던 양측의 감시초소(GP)가 무너져 내린 자리도 함께 밟았죠.

남북은 '9·19 군사합의'에서 비무장지대 내부의 GP를 모두 철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위한 시범적 조치로 서로 1km 이내에 근접한 GP 11개를 각각 철수하기로 했고, 보존하기로 합의한 1개 GP를 제외하고 모두 20개 GP를 지난해 11월 30일부로 완전히 철거했습니다. 그리고 12월 12일, 남북 군인들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시범 철수한 GP를 공동검증하고 이를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그중 한 군인의 '보디캠'에 찍힌 영상, 지난 다섯 달 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다가 지난 25일 KBS <뉴스9>를 통해 처음 보도됐습니다.

[연관 기사] 보디캠이 본 GP 철거 후 ‘남북 군인들의 만남’…영상 첫 공개

이 영상은 남측 검증반의 일원이었던 정성진 중사의 어깨에 부착된 보디캠에 찍힌 건데, 군인들의 숨소리부터 양측이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 모습 등이 생생히 담겼습니다. 남측 검증반원들이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출발해 군사분계선까지 가는 모습, 군사분계선에서 북측 군인들과 만나는 모습, 또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을 함께 걸어 GP 철거 현장까지 가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뉴스9>에는 KBS가 확보한 영상 4분 22초 가운데 일부만 공개했었는데, 방송에 담지 못했던 부분까지 포함해 풀 영상을 올립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서 그날,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의 분위기

이 영상을 촬영한 정성진 중사, 그리고 다른 검증반원들은 그 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분위기는 어땠을지, 북측 군인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영상에 다 담기지 않은 일들도 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보도 이후에 현장에 있었던 검증단 박윤서 소령, 정성진 중사와 짧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입니다.

Q. 군사분계선 넘던 날,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A. (정성진 중사) 원소속 부대가 3사단 백골 부대여서, (GP 철거 검증이 진행된) 그 지역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때 우리 GP 쪽에서 반대편 북측 GP를 한 번씩 본 적이 있었는데, 그곳을 직접 간다니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북한 군인들을 보는 것도 정말 신기했습니다. 실제 북 GP에 가서 아군 GP 쪽을 봤는데 정말 멀지 않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깨에 보디캠을 달고 사진을 찍고 있는 정성진 중사. 정 중사의 얼굴이 카메라 액정에 비춰져있다.
Q. 워낙 역사적인 일이어서, 부담도 컸을 것 같습니다.
A. (정성진 중사)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면서, 국민들 모두 관심 있는 사안인데 혹여나 실수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죠. 어떻게 역사적 순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Q. 영상에 숨소리가 크게 녹음돼서, 힘든 게 느껴졌습니다.
A. (박윤서 소령) 비무장지대 중에 오솔길이 난 부분만 지뢰를 제거한 상태였습니다. 길도 새로 만들어서 가파르고 미끄러웠고요. 오솔길을 따라서 줄을 쳐놓기는 했는데, 조금만 헛디디거나 벗어나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또, 북측 GP가 굉장히 높은 곳에 있기도 했고요.

Q. 북측 군인들 보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도 궁금합니다.
A. (박윤서 소령) 저는 북측 군인들이 우리 GP 철거 현장을 검증할 때 만났는데, 굉장히 경계심이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북측과 달리 폭파 방식이 아니라 철거 방식으로 GP를 철수했는데, 그러다보니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뭐 남아있는 건 아닌지 질문도 많이 하고 아주 꼼꼼히 촬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북측에 간 검증반원 말로는 북측에서 GP 폭파 현장 검증을 위해 아주 정성스럽게 준비해놨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 검증반원이 처음에 굉장히 긴장하면서 갔는데, 현장에 안내판까지 준비해서 세워놓고, 모든 질문에 굉장히 성의있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Q. 북측에도 촬영하는 군인이 있던데, 무슨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A. (정성진 중사) 따로 대화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GP 철거) 검증을 해야 하니까 북측에서도 촬영 요원이 나왔는데, 서로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고 경쟁도 하고 그랬죠. 그래도, 예의 있게 한 명이 촬영하고 있을 땐 다른 쪽이 숙여서 앵글 안 가리게 해주기도 하고, 그런 배려가 있었습니다.

국방부 특별기획전시회 중 보디캠 영상 상영 공간
더 생생하게 보고 싶다면

병사들이 내몰아 쉬는 숨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까지 들리는 보디캠 영상을 보다 보면, 다른 검증반원들과 함께 직접 오솔길을 걷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이 간접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국방부가 준비한 특별기획전시 <강한 국방이 열어가는 평화의 길>에서는 대형 스크린으로 이 보디캠 영상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전시 공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영상에 둘러싸인 채로 보다 보면, 그날 분위기가 정말 실감 나게 느껴집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노란 깃발을 기억하시나요? 남북 검증반원들이 만날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위에 설치됐던 이정표인데, 이 노란 깃발 역시 전시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성진 중사가 찍은 보디캠 영상 외에도, 남북을 잇는 비무장지대 오솔길의 다른 사진들, 북측에서 GP를 폭파하는 영상, 강원도 고성의 보존 GP에서 촬영한 자연경관 영상도 함께 전시돼 있습니다.


여러분의 봄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위 영상을 클릭하시면, 전시회 시작부터 끝까지 대략 어떤 전시물들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GP 폭파, 상호 검증과 관련된 전시물 외에도 9·19 군사합의 이후 남북이 만들어낸 여러 역사적 장면들이 담겨있습니다.

특별한 전시물 하나만 따로 소개하자면,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해 도로 개설을 하던 도중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품들-인식표와 계급장, 단추가 있습니다. 박 이등중사의 유해와 함께 발굴된 것들입니다. 올 들어 분위기가 바뀌면서 남북이 공동유해발굴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공동유해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얼마나 많은 '제2의 박재권'들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품
판문점 선언 1주년을 즈음해 마련된 이 전시회는 원래 지난주 일요일을 마지막으로 끝날 예정이었지만 2주 연장됐습니다. 서울 용산구의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다음 달 9일까지 이어집니다. 한 달 동안 2만 명 넘게 이 전시회를 다녀갔다고 하네요.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잠시 멈춘 듯한 이 시기, 전시회를 둘러보다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하게 됩니다. 남북 군인들이 만났던 오솔길은 언제 다시 열릴까, 박재권 이등중사의 전우들은 화살머리고지에서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관람객들을 떠나보내며, 전시회는 출구에 내건 문구로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의 봄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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