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친일파’…불 뿜는 조국의 페북 여론전

입력 2019.07.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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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민정수석이 일본 수출규제 사태와 관련해 페이스북에서 연일 불을 뿜고 있습니다. 18일부터 20일까지 나흘 동안 14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주로 일본 조치가 부당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링크한 겁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를 겨냥한 글만 올린 건 아닙니다. 오히려 눈에 띄는 건, 국내 여론을 겨냥해 '피아(彼我) 구분'을 강조한 글들입니다.

조국 민정수석의 18일 페이스북조국 민정수석의 18일 페이스북

◆ "애국이냐, 이적이냐?" 확실한 피아 구분

18일 조국 수석의 페이스북에 '이적'(利敵)이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조 수석은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경제전쟁’의 ‘최고통수권자’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 이다"라고 썼습니다.

이적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 가둘 때 적용한 게, 이적 혐의였습니다. 조 수석은 무엇이 이적 행위에 해당하는지, 또 누가 이적 행위를 하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의 20일 페이스북조국 민정수석의 20일 페이스북

◆ "대법원 판결 부정하면 친일파"

20일에는 '친일파'란 단어가 동원됐습니다. 조국 수석은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 비판을 위하여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세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1)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에게 받은 돈은 정치적 보상이었을 뿐 법적 배상이 아니라는 것과 2) 참여정부 때 민관공동위는 징용 피해자가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3) 또 이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여기서 조 수석이 가리키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7일 조선일보는 '참여정부 민관공동위가 강제징용 관련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지만, 청구권 협정에 따라 행사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같은 날 심 의원도 아침 회의 석상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했습니다. 조 수석은 관련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친일파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당장 야당은 조 수석의 페이스북 글에 '정부 비판하면 매국이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애국과 이적이라는 유아기적 이분법으로 문재인 정권 수준을 떨어뜨리는 조국 수석부터 단죄하시길 바란다"고 했고, 바른미래당도 "조국 수석이 짚은 부분은 엄밀하게 따지면 시각에 따라 논쟁적 사안이 될 수 있다"며 "논리가 안되면 반일과 친일, 애국이니 이적이니 하는 '낙인찍기'로 공격하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 대법원 판결 뒤에도 치열한 논쟁

강제징용 판결은 대법관 만장일치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결론을 낼 때, 대법관 7명은 다수의견을 냈지만 3명은 별개 의견을, 2명은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이렇게 갈릴 정도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해석이 다양하고, 사안도 복잡합니다.

법학계에서도 지난 2012년 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온 이래로, 수차례 토론회가 열리고 각종 연구 논문이 나올 정도로 논쟁이 치열했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 이근관 교수 등 국제법학자들은 대법원 판결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법학자인 조국 수석이 이 같은 배경을 모를 리는 없을 겁니다.

◆ 조국이 찍고 청와대가 공개 비판

청와대는 최근 특정 언론사에 대해 '국민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몇몇 칼럼을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 일본 수출 규제나 한일관계에 대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칼럼이었습니다.

청와대의 해당 브리핑은 조국 수석이 페이스북에서 해당 언론사를 '매국적'이라고 비판한 바로 다음 날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조 수석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청와대가 기사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경우는 있지만 칼럼의 논조를, 그것도 공개 비판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조국 수석의 연이은 페이스북을 두고,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서 사태가 엄중하기 때문에 단결을 호소하는 건 당연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실제 청와대는 '이번 사태에 잘못 대응하면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걱정할 정도로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대로, 논쟁적 사안에 대해 '이적'이나 '친일파' 등의 표현으로 다른 의견을 감정적 표현을 덧씌워 공격하는 건, 오히려 분열을 만들고 건전한 비판도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죽창가, 이적행위, 친일파... 조국 수석의 메시지는 선명합니다. 분명하고 자극적입니다. 시동을 걸었으니 멈추기 어렵습니다. 수위가 낮아지면 결기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들을테니, 더 강한 '피아 구분' 메시지가 이어질 겁니다.

조국 수석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일본', '친일파'를 상대로 한 전선에서 선봉에 섰습니다.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써 내려갔을 메시지가 차기 법무장관 후보자로 꼽히는 그에게 독(毒)일지 득(得)일지, 무엇보다 대한민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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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적’·‘친일파’…불 뿜는 조국의 페북 여론전
    • 입력 2019-07-21 09:23:48
    취재K
조국 민정수석이 일본 수출규제 사태와 관련해 페이스북에서 연일 불을 뿜고 있습니다. 18일부터 20일까지 나흘 동안 14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주로 일본 조치가 부당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링크한 겁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를 겨냥한 글만 올린 건 아닙니다. 오히려 눈에 띄는 건, 국내 여론을 겨냥해 '피아(彼我) 구분'을 강조한 글들입니다.

조국 민정수석의 18일 페이스북
◆ "애국이냐, 이적이냐?" 확실한 피아 구분

18일 조국 수석의 페이스북에 '이적'(利敵)이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조 수석은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경제전쟁’의 ‘최고통수권자’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 이다"라고 썼습니다.

이적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 가둘 때 적용한 게, 이적 혐의였습니다. 조 수석은 무엇이 이적 행위에 해당하는지, 또 누가 이적 행위를 하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조국 민정수석의 20일 페이스북
◆ "대법원 판결 부정하면 친일파"

20일에는 '친일파'란 단어가 동원됐습니다. 조국 수석은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 비판을 위하여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세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1)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에게 받은 돈은 정치적 보상이었을 뿐 법적 배상이 아니라는 것과 2) 참여정부 때 민관공동위는 징용 피해자가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3) 또 이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여기서 조 수석이 가리키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7일 조선일보는 '참여정부 민관공동위가 강제징용 관련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지만, 청구권 협정에 따라 행사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같은 날 심 의원도 아침 회의 석상에서 비슷한 취지로 말했습니다. 조 수석은 관련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친일파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당장 야당은 조 수석의 페이스북 글에 '정부 비판하면 매국이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애국과 이적이라는 유아기적 이분법으로 문재인 정권 수준을 떨어뜨리는 조국 수석부터 단죄하시길 바란다"고 했고, 바른미래당도 "조국 수석이 짚은 부분은 엄밀하게 따지면 시각에 따라 논쟁적 사안이 될 수 있다"며 "논리가 안되면 반일과 친일, 애국이니 이적이니 하는 '낙인찍기'로 공격하는가"라고 비판했습니다.

◆ 대법원 판결 뒤에도 치열한 논쟁

강제징용 판결은 대법관 만장일치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결론을 낼 때, 대법관 7명은 다수의견을 냈지만 3명은 별개 의견을, 2명은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이렇게 갈릴 정도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해석이 다양하고, 사안도 복잡합니다.

법학계에서도 지난 2012년 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온 이래로, 수차례 토론회가 열리고 각종 연구 논문이 나올 정도로 논쟁이 치열했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 이근관 교수 등 국제법학자들은 대법원 판결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법학자인 조국 수석이 이 같은 배경을 모를 리는 없을 겁니다.

◆ 조국이 찍고 청와대가 공개 비판

청와대는 최근 특정 언론사에 대해 '국민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몇몇 칼럼을 문제 삼기도 했습니다. 일본 수출 규제나 한일관계에 대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칼럼이었습니다.

청와대의 해당 브리핑은 조국 수석이 페이스북에서 해당 언론사를 '매국적'이라고 비판한 바로 다음 날 진행됐습니다. 그래서 조 수석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청와대가 기사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고 항의하는 경우는 있지만 칼럼의 논조를, 그것도 공개 비판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조국 수석의 연이은 페이스북을 두고,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서 사태가 엄중하기 때문에 단결을 호소하는 건 당연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실제 청와대는 '이번 사태에 잘못 대응하면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걱정할 정도로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대로, 논쟁적 사안에 대해 '이적'이나 '친일파' 등의 표현으로 다른 의견을 감정적 표현을 덧씌워 공격하는 건, 오히려 분열을 만들고 건전한 비판도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죽창가, 이적행위, 친일파... 조국 수석의 메시지는 선명합니다. 분명하고 자극적입니다. 시동을 걸었으니 멈추기 어렵습니다. 수위가 낮아지면 결기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들을테니, 더 강한 '피아 구분' 메시지가 이어질 겁니다.

조국 수석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일본', '친일파'를 상대로 한 전선에서 선봉에 섰습니다.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써 내려갔을 메시지가 차기 법무장관 후보자로 꼽히는 그에게 독(毒)일지 득(得)일지, 무엇보다 대한민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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