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이스라엘 정착촌 불법 아니다”…팔레스타인의 미래는?

입력 2019.11.20 (16:10) 수정 2019.11.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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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지어진 이스라엘 정착촌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두 곳입니다. 한 곳은 가자지구, 다른 한 곳은 서안지구입니다. 모두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두 지구의 성격은 조금 다릅니다.


무장정파 하마스가 담당하는 가자지구는 흔히 ‘봉쇄’라는 단어와 함께 자주 언급됩니다. 이스라엘이 세운 장벽과 이집트 국경으로 둘러싸여 봉쇄돼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허가 하에 출입통로를 통해서 최소한의 식량과 연료, 의약품 등은 반입되고 있습니다. 인근 이슬람 국가들이 지원하기도 하고, 가자지구 일부 주민이 인근 이슬람 국가에 가서 일하고 번 돈을 송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은 충돌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이 통로를 차단합니다.

반면 서안지구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요르단강의 서쪽에 있어서 서안(west bank) 지구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파타(Fatah)’ 자치 정부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또한 이스라엘 정착촌이 면적을 넓혀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안지구에는 팔레스타인 경찰도 있고, 이스라엘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 군도 순찰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안지구의 주민들은 이스라엘로 출퇴근하며 경제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군의 충돌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처럼 서안지구의 상황이 가자지구보다는 조금 더 유연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곳은 엄연히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입니다. 미국은 지난 1978년 지미 카터 정부 당시 이스라엘과 이집트 협상팀을 미국으로 불러 캠프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을 체결했는데, 이 협정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체결된 오슬로 협정 내용도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등 일부 점령지를 반환해 팔레스타인의 국가 설립을 돕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포기한다는 것이 오슬로 협정 내용의 골자입니다.

즉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오슬로 협정에 비춰볼 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동의도 없이 서안지구에서 정착촌을 늘려가는 것은 명백히 협정 위반입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할 말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속 이어가고 있으니 당연히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8일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더는 간주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자국이 참여한 캠프데이비드 협정의 결과를 자기부정한 셈입니다.

물론 미국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1981년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해 본질적으로 불법이 아니라고 평가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오바마 전 정부는 이스라엘 정착촌 해체를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고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는 등 과거 정부와는 달리 선명한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이 아니라는 폼페이오 장관의 선언도 이런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같은 미국의 입장 변화를 이스라엘 강경파는 크게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더는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아니라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돼야 한다, 이스라엘이 영토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옵니다. 최근 총선에서 패배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연립정부 구성에서 다시 입지를 넓힐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먼 옛날 유대인들이 살던 곳이었지만, 기원 전후 로마제국에 복속되면서 유대인들은 유럽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유명한 ‘벤허’입니다.

유대인들의 공백은 아랍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메웠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독일 편에 섰던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기 위해 아랍 민족과 유대인 모두에게 독립국가를 약속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히틀러의 학대를 견뎌낸 유대인들은 옛 선조들의 땅에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국했지만, 이 때문에 이곳에서 2천년 가까이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난민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반발한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 모두 4차례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적은 병력 수에도 불구하고 이들 전쟁에서 모두 승리합니다. 특히 1973년에 치러진 마지막 전쟁은 선제공격에 나선 이집트의 승리가 예상됐지만, 미국의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가장 치열하게 싸운 국가는 이집트였습니다. 특히 이집트는 가자지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한때는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연결하는 지하 터널을 통해 많은 물자가 가자지구로 반입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봉쇄를 무디게 만드는 숨통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2013년 이집트는 이 터널을 봉쇄하기 시작합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물품이 공급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집트군이 터널에 독가스를 살포해 팔레스타인 주민이 숨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가자지구로서는 가장 강력한 우방이 등을 돌린 셈입니다.

2016년에는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이 이집트 때문에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안보리 이사국이었던 이집트의 엘시시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전화를 받고 표결을 돌연 미룬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미·이집트 정상회담을 앞두고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참모들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my favorite dictator)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이 아니라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발언 이후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안보고위대표는 18일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EU의 입장 변화는 없다면서 모든 이스라엘 정착 활동은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위로가 되기 어렵습니다. 불법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이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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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0 16:10:34
    • 수정2019-11-20 16:30:23
    특파원 리포트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지어진 이스라엘 정착촌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두 곳입니다. 한 곳은 가자지구, 다른 한 곳은 서안지구입니다. 모두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두 지구의 성격은 조금 다릅니다.


무장정파 하마스가 담당하는 가자지구는 흔히 ‘봉쇄’라는 단어와 함께 자주 언급됩니다. 이스라엘이 세운 장벽과 이집트 국경으로 둘러싸여 봉쇄돼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허가 하에 출입통로를 통해서 최소한의 식량과 연료, 의약품 등은 반입되고 있습니다. 인근 이슬람 국가들이 지원하기도 하고, 가자지구 일부 주민이 인근 이슬람 국가에 가서 일하고 번 돈을 송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은 충돌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이 통로를 차단합니다.

반면 서안지구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요르단강의 서쪽에 있어서 서안(west bank) 지구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파타(Fatah)’ 자치 정부가 지배하는 곳이지만 또한 이스라엘 정착촌이 면적을 넓혀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안지구에는 팔레스타인 경찰도 있고, 이스라엘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 군도 순찰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안지구의 주민들은 이스라엘로 출퇴근하며 경제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군의 충돌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처럼 서안지구의 상황이 가자지구보다는 조금 더 유연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곳은 엄연히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입니다. 미국은 지난 1978년 지미 카터 정부 당시 이스라엘과 이집트 협상팀을 미국으로 불러 캠프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을 체결했는데, 이 협정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체결된 오슬로 협정 내용도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등 일부 점령지를 반환해 팔레스타인의 국가 설립을 돕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포기한다는 것이 오슬로 협정 내용의 골자입니다.

즉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오슬로 협정에 비춰볼 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동의도 없이 서안지구에서 정착촌을 늘려가는 것은 명백히 협정 위반입니다. 물론 이스라엘도 할 말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속 이어가고 있으니 당연히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8일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더는 간주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자국이 참여한 캠프데이비드 협정의 결과를 자기부정한 셈입니다.

물론 미국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1981년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해 본질적으로 불법이 아니라고 평가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오바마 전 정부는 이스라엘 정착촌 해체를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고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는 등 과거 정부와는 달리 선명한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이 아니라는 폼페이오 장관의 선언도 이런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같은 미국의 입장 변화를 이스라엘 강경파는 크게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더는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아니라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돼야 한다, 이스라엘이 영토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옵니다. 최근 총선에서 패배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연립정부 구성에서 다시 입지를 넓힐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먼 옛날 유대인들이 살던 곳이었지만, 기원 전후 로마제국에 복속되면서 유대인들은 유럽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유명한 ‘벤허’입니다.

유대인들의 공백은 아랍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메웠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독일 편에 섰던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기 위해 아랍 민족과 유대인 모두에게 독립국가를 약속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히틀러의 학대를 견뎌낸 유대인들은 옛 선조들의 땅에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국했지만, 이 때문에 이곳에서 2천년 가까이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난민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반발한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 모두 4차례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적은 병력 수에도 불구하고 이들 전쟁에서 모두 승리합니다. 특히 1973년에 치러진 마지막 전쟁은 선제공격에 나선 이집트의 승리가 예상됐지만, 미국의 지원 덕분에 이스라엘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가장 치열하게 싸운 국가는 이집트였습니다. 특히 이집트는 가자지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한때는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연결하는 지하 터널을 통해 많은 물자가 가자지구로 반입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봉쇄를 무디게 만드는 숨통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2013년 이집트는 이 터널을 봉쇄하기 시작합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물품이 공급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집트군이 터널에 독가스를 살포해 팔레스타인 주민이 숨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가자지구로서는 가장 강력한 우방이 등을 돌린 셈입니다.

2016년에는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표결이 이집트 때문에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안보리 이사국이었던 이집트의 엘시시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전화를 받고 표결을 돌연 미룬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미·이집트 정상회담을 앞두고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참모들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재자(my favorite dictator)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이 아니라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발언 이후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안보고위대표는 18일 유대인 정착촌에 대한 EU의 입장 변화는 없다면서 모든 이스라엘 정착 활동은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위로가 되기 어렵습니다. 불법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이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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