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기본소득은 국민연금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입력 2020.03.14 (09:07) 수정 2020.03.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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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기본소득 논란에 소환된 국민연금
"국민연금 사회안전망 역할 한계"
기본소득, 국민연금 대안으로 거론
"기존 복지·조세체계 개편 없으면 포퓰리즘"

코로나19 대책으로 재난 기본소득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과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나서 긴급 생활 지원비를 기본소득처럼 지급할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련 기사의 댓글을 살펴보면, 어찌 된 일인지 국민연금이 종종 거론됩니다.

"기본소득은 니들이 알아서 하고 지금 힘드니깐 국민연금 돌려주세요." 네이버 kkc7****
"국민 세금으로 생색내지 말고 내가 낸 국민연금 좀 돌려쓰게 해 주라." 네이버 jnis****
"재난 기본소득보다 국민연금 대출을 해라." 네이버 a202****
"재난 기본소득 대신에 전국민 국민연금 6개월분 면제나 해줘요." 네이버 ehdg****


누리꾼들은 직관적으로 기본소득과 국민연금을 서로 대체할 수 있는 비슷한 제도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일부 누리꾼의 단편적인 생각만은 아닙니다.

시사기획 창 '국민연금 믿어도 될까'편을 취재하면서 만난 여러 당사자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미래를 언급하면서 툭툭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전문가는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입니다. 서 회장은 1986년 KDI 부원장을 지내면서 국민연금 제도를 설계한 연구 책임자였습니다.

국민연금 설계자가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1986년 KDI 부원장 시절 국민연금 제도를 설계했다. 1995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국민연금 농어촌 확대 시행을 책임졌다. 국민연금에 정부 재정이 투입된 것은 이때부터다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1986년 KDI 부원장 시절 국민연금 제도를 설계했다. 1995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국민연금 농어촌 확대 시행을 책임졌다. 국민연금에 정부 재정이 투입된 것은 이때부터다

서 회장은 34년 전 자신이 설계한 국민연금의 현 상황에 대해 "재정 측면만 아니라 공적연금 전반을 정비할 때가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해서 재정적 지속성을 높이는 건 "땜질 처방"이라며 "근본적인 고민을 해서 새로운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연금 설계자가 국민연금의 한계를 말하는 이유는, 국민연금 제도의 기반이 되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이 급변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고용형태를 기반으로 한 국민연금 구조는 오늘날 모든 국민의 사회안전망이 되기에는 한계에 직면했다고 판단합니다.

"사회보험은 직장이 있어야 가능한데, 지금은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잖아요.
요새는 유튜브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고, 평생 직업을 10개를 할지 20개를 할지 몰라요.
그래서 새로운 사회안전망이 필요해요. 그것 중에 가장 괜찮은 게 기본소득 제도인 거예요."


국민연금이 처음 시작된 1988년에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서 정년까지 일하는 삶의 형태가 보편적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은 이를 토대로 회사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반씩 나눠내고 40년간 가입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하는 일자리에선 사업자와 노동자의 전통적인 관계가 더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프로그램에서 사례로 소개한 택배 기사와 같은 특수고용직이 대표적입니다. 택배 기사들은 한 대리점에 소속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그 업체의 물건만을 담당하고 회사의 업무 지시도 받지만,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택배회사들은 택배기사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분담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관기사] [시사기획 창] 국민연금 믿어도 될까

요양보호사 같은 시간제 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노인 장기요양보험 운영센터는 주 15시간 이상을 근무하면 사업자가 의무 부담해야 하는 4대 보험료를 회피하기 위해, 요양보호사들에게 일부러 일을 15시간 이하로 쪼개서 주고 있습니다. 요양보호사는 여러 업체에서 일을 받아 실제로는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자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가입자가 되면 혼자서 보험료를 모두 내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국민연금 보험료를 체납하거나 납부 예외 상태에 놓이는 등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1,363만 명, 국민의 42%나 됩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에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 영세자영업자, 성비로는 여성이 배제된 경우가 굉장히 많다"면서 "국민연금이 사실상 노후소득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안정된 고용과 안정된 소득을 보장받는 사람들이 주 수혜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각지대 없는 사회안전망' 기본소득, 선행 과제는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의 급여를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입니다. 이 핵심 원칙이 지켜진다면, 기본소득은 사각지대 없이 효과적으로 모든 시민에 대한 보편적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소득, 직업, 근로 형태, 나이, 성별,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급여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대안적인 사회안전망으로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처럼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추가'하는 현금성 복지 제도가 아닙니다. 기본소득 구상은 기존의 선별적 복지제도, 예를 들어 기초연금, 아동수당, 구직촉진수당 등 기존의 복지 급여를 모두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봐도 기본소득 금액은 대개 기존 사회복지예산 규모를 고려해 정해집니다.

[연관기사] 월 300만 원 기본소득, 스위스에선 최저생계비 수준

서상목 회장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면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추진 중인 정책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대목도 이 지점입니다.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면 기존 복지 제도와 조세 체계를 전면 개편해 재원 조달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데, 이런 선행 과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장 기본소득 도입해도 월 30만 원 수준

서 회장이 대표로 있는 사회안전망 4.0포럼은 지난 1월 '보수와 진보, 기본소득을 논하다'라는 제목으로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가능성을 짚어보는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보수 측 전문가로 발제한 김용하 순천향대 IT 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기에는 재원 조달에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교수는 2020년 보건·복지·고용 분야의 예산 총액 180.5조 원을 기본소득으로 바꿔 전 국민에게 지급한다면 1인당 월 30만 원, 연간 360만 원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으로는 기존의 복지급여 대부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급하는 각종 급여에 비해서도 금액이 낮아 일부 저소득층은 복지 후퇴를 겪게 된다는 겁니다.

진보 측 발제자로 나선 이원재 LAB2050 대표 역시 현실적인 기본소득 금액으로 월 30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기존 복지 예산과 재정 지출을 조정하고, 중산층 이상이 혜택을 누리는 소득공제 등 비과세 감면을 정비하고 기본소득 과세를 신설하면 재원조달이 가능하다고 제안했습니다.

두 발제자의 발표 내용 모두 기본소득 시행에 앞서 제도 정비를 전제로 하는 데다, 코로나19 관련해 언급되는 재난 기본소득과는 지급금액에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3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재난 기본소득 관련 기자회견. 4·15총선에는 기본소득 운동을 펼쳐온 여러 정치세력의 도전이 본격화됐다3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재난 기본소득 관련 기자회견. 4·15총선에는 기본소득 운동을 펼쳐온 여러 정치세력의 도전이 본격화됐다

기본소득 시대의 국민연금은 어떻게 될까

먼 미래에 기본소득이 국민연금의 대안이 된다면, 혹시 낸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할 테니 당장 국민연금을 안 내도 되지 않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소득이 아니더라도 공적연금을 통합하는 개혁이 진행되면 국민연금은 구조 변화를 겪을 것이고, 이미 낸 보험료는 납부 당시 제도만큼 보장됩니다.

조금 복잡하지만, 거론되는 공적연금 통합 방안은 이런 방식입니다. 국민연금 수급액은 균등부분(A값)과 소득비례부분(B값)으로 구성됩니다. 가입자 본인이 낸 돈은 소득비례부분(B값)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을 포함해 다른 나라의 국민연금은 완전 소득비례연금입니다. 국민연금의 소득비례부분(B값)과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면, 가입자가 낸 만큼 돌려받는 완전 소득비례 공적 연금으로 재설계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균등부분(A값)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위해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을 반영한 부분인데, 2014년 도입된 기초연금과 성격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균등부분과 기초연금은 통합해 금액을 높이고 지급대상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있고, 서상목 회장은 이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이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면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는 완전 소득비례 공적연금과 기본소득을 중복 수령하게 됩니다.


그래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기가 여전히 불안하다면, 마지막 국민연금 개혁 시기가 2007년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켜드립니다. 연금 개혁은 정권을 흔드는 이슈라서 어느 나라든 단시간 안에 급격한 변화를 추진하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고 사적연금보다 수익률이 높은 데다 물가상승률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민간 금융상품과 비교해도 가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가 아닌 한, 현행 제도에서 모든 국민은 어느 연령대에서나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2배 이상 많은 연금을 돌려받습니다.

다만 국민연금이 세대 간 부양을 원리로 하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개혁 논의를 시작해야,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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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기본소득은 국민연금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 입력 2020-03-14 09:07:32
    • 수정2020-03-14 09:09:36
    취재후·사건후
기본소득 논란에 소환된 국민연금<br />"국민연금 사회안전망 역할 한계" <br />기본소득, 국민연금 대안으로 거론<br />"기존 복지·조세체계 개편 없으면 포퓰리즘"
코로나19 대책으로 재난 기본소득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과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나서 긴급 생활 지원비를 기본소득처럼 지급할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련 기사의 댓글을 살펴보면, 어찌 된 일인지 국민연금이 종종 거론됩니다.

"기본소득은 니들이 알아서 하고 지금 힘드니깐 국민연금 돌려주세요." 네이버 kkc7****
"국민 세금으로 생색내지 말고 내가 낸 국민연금 좀 돌려쓰게 해 주라." 네이버 jnis****
"재난 기본소득보다 국민연금 대출을 해라." 네이버 a202****
"재난 기본소득 대신에 전국민 국민연금 6개월분 면제나 해줘요." 네이버 ehdg****


누리꾼들은 직관적으로 기본소득과 국민연금을 서로 대체할 수 있는 비슷한 제도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는 일부 누리꾼의 단편적인 생각만은 아닙니다.

시사기획 창 '국민연금 믿어도 될까'편을 취재하면서 만난 여러 당사자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미래를 언급하면서 툭툭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전문가는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입니다. 서 회장은 1986년 KDI 부원장을 지내면서 국민연금 제도를 설계한 연구 책임자였습니다.

국민연금 설계자가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1986년 KDI 부원장 시절 국민연금 제도를 설계했다. 1995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국민연금 농어촌 확대 시행을 책임졌다. 국민연금에 정부 재정이 투입된 것은 이때부터다
서 회장은 34년 전 자신이 설계한 국민연금의 현 상황에 대해 "재정 측면만 아니라 공적연금 전반을 정비할 때가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해서 재정적 지속성을 높이는 건 "땜질 처방"이라며 "근본적인 고민을 해서 새로운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연금 설계자가 국민연금의 한계를 말하는 이유는, 국민연금 제도의 기반이 되는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이 급변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고용형태를 기반으로 한 국민연금 구조는 오늘날 모든 국민의 사회안전망이 되기에는 한계에 직면했다고 판단합니다.

"사회보험은 직장이 있어야 가능한데, 지금은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잖아요.
요새는 유튜브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고, 평생 직업을 10개를 할지 20개를 할지 몰라요.
그래서 새로운 사회안전망이 필요해요. 그것 중에 가장 괜찮은 게 기본소득 제도인 거예요."


국민연금이 처음 시작된 1988년에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가서 정년까지 일하는 삶의 형태가 보편적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은 이를 토대로 회사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반씩 나눠내고 40년간 가입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새롭게 등장하는 일자리에선 사업자와 노동자의 전통적인 관계가 더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프로그램에서 사례로 소개한 택배 기사와 같은 특수고용직이 대표적입니다. 택배 기사들은 한 대리점에 소속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그 업체의 물건만을 담당하고 회사의 업무 지시도 받지만,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택배회사들은 택배기사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분담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관기사] [시사기획 창] 국민연금 믿어도 될까

요양보호사 같은 시간제 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노인 장기요양보험 운영센터는 주 15시간 이상을 근무하면 사업자가 의무 부담해야 하는 4대 보험료를 회피하기 위해, 요양보호사들에게 일부러 일을 15시간 이하로 쪼개서 주고 있습니다. 요양보호사는 여러 업체에서 일을 받아 실제로는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자 자격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가입자가 되면 혼자서 보험료를 모두 내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국민연금 보험료를 체납하거나 납부 예외 상태에 놓이는 등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1,363만 명, 국민의 42%나 됩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에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 영세자영업자, 성비로는 여성이 배제된 경우가 굉장히 많다"면서 "국민연금이 사실상 노후소득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을 배제하고, 안정된 고용과 안정된 소득을 보장받는 사람들이 주 수혜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각지대 없는 사회안전망' 기본소득, 선행 과제는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의 급여를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입니다. 이 핵심 원칙이 지켜진다면, 기본소득은 사각지대 없이 효과적으로 모든 시민에 대한 보편적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소득, 직업, 근로 형태, 나이, 성별,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급여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대안적인 사회안전망으로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처럼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추가'하는 현금성 복지 제도가 아닙니다. 기본소득 구상은 기존의 선별적 복지제도, 예를 들어 기초연금, 아동수당, 구직촉진수당 등 기존의 복지 급여를 모두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봐도 기본소득 금액은 대개 기존 사회복지예산 규모를 고려해 정해집니다.

[연관기사] 월 300만 원 기본소득, 스위스에선 최저생계비 수준

서상목 회장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면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추진 중인 정책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대목도 이 지점입니다.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면 기존 복지 제도와 조세 체계를 전면 개편해 재원 조달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는데, 이런 선행 과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장 기본소득 도입해도 월 30만 원 수준

서 회장이 대표로 있는 사회안전망 4.0포럼은 지난 1월 '보수와 진보, 기본소득을 논하다'라는 제목으로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가능성을 짚어보는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보수 측 전문가로 발제한 김용하 순천향대 IT 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기에는 재원 조달에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교수는 2020년 보건·복지·고용 분야의 예산 총액 180.5조 원을 기본소득으로 바꿔 전 국민에게 지급한다면 1인당 월 30만 원, 연간 360만 원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으로는 기존의 복지급여 대부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급하는 각종 급여에 비해서도 금액이 낮아 일부 저소득층은 복지 후퇴를 겪게 된다는 겁니다.

진보 측 발제자로 나선 이원재 LAB2050 대표 역시 현실적인 기본소득 금액으로 월 30만 원을 제시했습니다. 기존 복지 예산과 재정 지출을 조정하고, 중산층 이상이 혜택을 누리는 소득공제 등 비과세 감면을 정비하고 기본소득 과세를 신설하면 재원조달이 가능하다고 제안했습니다.

두 발제자의 발표 내용 모두 기본소득 시행에 앞서 제도 정비를 전제로 하는 데다, 코로나19 관련해 언급되는 재난 기본소득과는 지급금액에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3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재난 기본소득 관련 기자회견. 4·15총선에는 기본소득 운동을 펼쳐온 여러 정치세력의 도전이 본격화됐다
기본소득 시대의 국민연금은 어떻게 될까

먼 미래에 기본소득이 국민연금의 대안이 된다면, 혹시 낸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할 테니 당장 국민연금을 안 내도 되지 않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소득이 아니더라도 공적연금을 통합하는 개혁이 진행되면 국민연금은 구조 변화를 겪을 것이고, 이미 낸 보험료는 납부 당시 제도만큼 보장됩니다.

조금 복잡하지만, 거론되는 공적연금 통합 방안은 이런 방식입니다. 국민연금 수급액은 균등부분(A값)과 소득비례부분(B값)으로 구성됩니다. 가입자 본인이 낸 돈은 소득비례부분(B값)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 공무원연금을 포함해 다른 나라의 국민연금은 완전 소득비례연금입니다. 국민연금의 소득비례부분(B값)과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면, 가입자가 낸 만큼 돌려받는 완전 소득비례 공적 연금으로 재설계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균등부분(A값)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위해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을 반영한 부분인데, 2014년 도입된 기초연금과 성격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균등부분과 기초연금은 통합해 금액을 높이고 지급대상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있고, 서상목 회장은 이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이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면 기존 국민연금 가입자는 완전 소득비례 공적연금과 기본소득을 중복 수령하게 됩니다.


그래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기가 여전히 불안하다면, 마지막 국민연금 개혁 시기가 2007년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켜드립니다. 연금 개혁은 정권을 흔드는 이슈라서 어느 나라든 단시간 안에 급격한 변화를 추진하지 않습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고 사적연금보다 수익률이 높은 데다 물가상승률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민간 금융상품과 비교해도 가입자에게 유리한 제도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가 아닌 한, 현행 제도에서 모든 국민은 어느 연령대에서나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2배 이상 많은 연금을 돌려받습니다.

다만 국민연금이 세대 간 부양을 원리로 하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개혁 논의를 시작해야,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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