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시간]⑮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이리도 사연 많은 증거물

입력 2020.05.04 (07:00) 수정 2020.05.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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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월 8일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교수에 대한 9차 공판, 동양대 교원인사팀장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검사 - 언론에서 갑자기 정경심 측이 압수수색을 하기 전에 동양대 (정경심 교수 연구실)에서 가져간 업무용 PC를 (나중에) 임의제출했는데 거기에 동양대 총장 직인파일 발견됐다는 기사 본 적 있습니까?

증인 - 본 적 있습니다.

검사 - 사실은 이 보도내용과는 다르게 이 PC에는 총장 직인 발견된 건 아니었는데. 보도내용 진위는 알 수 없었지요?

증인 - 네

검찰 측에 이어 나선 변호인. 역시 같은 언론 보도를 언급한다.

변호인 - ...마찬가지로 피고인 컴퓨터에서 직인 파일이 나왔다니까 그 과정을 물은 거죠?

증인 - 네 본인이 물었죠.

변호인 - 그런데 오보였고 그 컴퓨터에선 직인 파일이 안 나온 건 아시죠?

증인 - 그건 모릅니다.

모두 같은 보도를 인용한 증인 신문인데, 이 보도는 왜 검찰과 변호인 측에 다 중요했을까?

다음은 이에 해당하는 SBS 2019년 9월 7일 보도의 앵커멘트 부분.

이 부분에서 저희가 단독으로 취재를 한 것이 있습니다. 정경심 교수가 사무실에서 가지고 나왔다가 나중에 검찰에 제출을 한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이 안에서 총장 도장, 직인을 컴퓨터 사진 파일로 만들어서 갖고 있던 게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관련 보도가 나왔을 당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기자들의 추가 취재에 검찰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확인해줄 수 없다" 정도의 반응을 보일 법도 한 검찰이 이 보도에서만큼은 "따라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즉 정경심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에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총장 직인 파일'의 존재에 대해 당시까지 검찰은 확증적인 증거를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KBS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검찰이 9월 7일 해당 보도가 나갈 때까지 확보했던 증거는 9월 3일 김경록 씨가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 보관하고 있던 정경심 교수 사무실 컴퓨터에서 나온 것뿐인데, '정경심 교수 아들의 상장 이미지 파일'과 '어학교육원장 직인 파일' 정도다.

때문에 9월 6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당일 저녁 부인인 정경심 교수를 기소할 당시에는 이 '직인 파일'을 확보한 상태에서 기소가 이뤄지지 못했던 탓에 "성명불상자 등과 공모해 2012년 9월 7일 동양대학교에서 (중략) 학교 총장의 직인을 임의로 날인했다"는 정도의 불확정적인 표현만이 들어갔을 뿐이다.

검찰이 실제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을 발견한 것은 언론 보도가 나간 사흘 뒤인 9월 10일이다. 언론 보도를 보고 '총장 직인 파일'이 들어있는 컴퓨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우연히 그 후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왔는지 알 수 없으나, 검찰은 이날 동양대 강사 휴게실 한쪽에 쳐박혀 있던 먼지 쌓인 컴퓨터 안에서 '조국 파일'이라는 폴더를 찾아냄으로써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강사 휴게실에서 발견된 컴퓨터 안에는 '아들 상장 사진 파일'과 함께 '아들 상장에서 총장 직인 부분만 잘라낸 총장 직인 파일'이 들어 있었고, 이 증거는 고스란히 이후 추가 기소에서 혐의를 구체화하는데 쓰이게 된다. 검찰의 이후 추가 기소 당시 공소장을 보자.

"딸과 공모해 2013년 6월 경 주거지에서 아들 상장을 스캔한 후 이미지 프로그램을 이용해 총장 직인 부분만을 캡처 프로그램으로 오려내는 방법으로 '총장님 직인’제목의 파일을 만들었다."

참 탈도 많고 사연도 많은 증거물, '총장 직인 파일'이다.

검찰이 확보하기도 전에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존재를 알렸고, 검찰은 마치 그 존재를 알았던 것처럼 보도 며칠 뒤 동양대 한쪽 구석에서 발견해 추가 기소의 '결정적 증거'로 삼았다. 여기에 동양대 교원인사팀장이 총장이 수여하는 상은 모두 '인주'로 직접 직인을 찍는다는 증언까지 법정에서 한 탓에 어떻게 봐도 '정경심 교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증거다.

하지만 이 사연 많은 증거물은 아직도 한 단계의 복잡함을 또 남겨 놓고 있다.

즉 확보과정에서의 '적법성 문제'다.

하늘의 도우심이 있었는지 강사 휴게실에서 직인 파일이 있는 컴퓨터를 찾아냈지만,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가지 않은 탓에 '임의 제출'이라는 형식으로 컴퓨터를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검찰이 '총장 직인 파일' 존재 자체를 정확히 알고 해당일 동양대에 갔다면 아마 미리 영장을 발부받아 증거 확보에 나섰겠지만, 그렇지 못한 걸로 봤을 때 검찰도 정확한 정보를 가진 상태는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우연이든 필연이든 '결정적 증거'가 눈앞에 나타난 상황에서 검찰은 학교 측 관계자의 동의 아래 임의제출 형식으로 컴퓨터를 확보했지만, 과연 이 과정이 적법하느냐는 논란은 남아 있는 상태다.

우리 법원이 갈수록 수사 과정의 정당성을 요구하는 경향을 띠는 만큼, 만일 재판부가 이 컴퓨터를 확보한 과정을 문제 삼아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동양대 총장 직인이 찍힌 정경심 교수의 딸 조민 씨의 상과 관련된 기소 혐의 자체는 원천 무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이른바 '핵심 증거'라는 게 있지만,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처럼 갖가지 스토리를 낳는 증거도 흔치 않은 듯하다.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날지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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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의 시간]⑮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이리도 사연 많은 증거물
    • 입력 2020-05-04 07:00:34
    • 수정2020-05-04 09:45:22
    취재K
지난달 4월 8일 서울중앙지법, 정경심 교수에 대한 9차 공판, 동양대 교원인사팀장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검사 - 언론에서 갑자기 정경심 측이 압수수색을 하기 전에 동양대 (정경심 교수 연구실)에서 가져간 업무용 PC를 (나중에) 임의제출했는데 거기에 동양대 총장 직인파일 발견됐다는 기사 본 적 있습니까?

증인 - 본 적 있습니다.

검사 - 사실은 이 보도내용과는 다르게 이 PC에는 총장 직인 발견된 건 아니었는데. 보도내용 진위는 알 수 없었지요?

증인 - 네

검찰 측에 이어 나선 변호인. 역시 같은 언론 보도를 언급한다.

변호인 - ...마찬가지로 피고인 컴퓨터에서 직인 파일이 나왔다니까 그 과정을 물은 거죠?

증인 - 네 본인이 물었죠.

변호인 - 그런데 오보였고 그 컴퓨터에선 직인 파일이 안 나온 건 아시죠?

증인 - 그건 모릅니다.

모두 같은 보도를 인용한 증인 신문인데, 이 보도는 왜 검찰과 변호인 측에 다 중요했을까?

다음은 이에 해당하는 SBS 2019년 9월 7일 보도의 앵커멘트 부분.

이 부분에서 저희가 단독으로 취재를 한 것이 있습니다. 정경심 교수가 사무실에서 가지고 나왔다가 나중에 검찰에 제출을 한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이 안에서 총장 도장, 직인을 컴퓨터 사진 파일로 만들어서 갖고 있던 게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관련 보도가 나왔을 당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기자들의 추가 취재에 검찰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확인해줄 수 없다" 정도의 반응을 보일 법도 한 검찰이 이 보도에서만큼은 "따라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즉 정경심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한 혐의에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총장 직인 파일'의 존재에 대해 당시까지 검찰은 확증적인 증거를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KBS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검찰이 9월 7일 해당 보도가 나갈 때까지 확보했던 증거는 9월 3일 김경록 씨가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 보관하고 있던 정경심 교수 사무실 컴퓨터에서 나온 것뿐인데, '정경심 교수 아들의 상장 이미지 파일'과 '어학교육원장 직인 파일' 정도다.

때문에 9월 6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당일 저녁 부인인 정경심 교수를 기소할 당시에는 이 '직인 파일'을 확보한 상태에서 기소가 이뤄지지 못했던 탓에 "성명불상자 등과 공모해 2012년 9월 7일 동양대학교에서 (중략) 학교 총장의 직인을 임의로 날인했다"는 정도의 불확정적인 표현만이 들어갔을 뿐이다.

검찰이 실제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을 발견한 것은 언론 보도가 나간 사흘 뒤인 9월 10일이다. 언론 보도를 보고 '총장 직인 파일'이 들어있는 컴퓨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니면 우연히 그 후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왔는지 알 수 없으나, 검찰은 이날 동양대 강사 휴게실 한쪽에 쳐박혀 있던 먼지 쌓인 컴퓨터 안에서 '조국 파일'이라는 폴더를 찾아냄으로써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강사 휴게실에서 발견된 컴퓨터 안에는 '아들 상장 사진 파일'과 함께 '아들 상장에서 총장 직인 부분만 잘라낸 총장 직인 파일'이 들어 있었고, 이 증거는 고스란히 이후 추가 기소에서 혐의를 구체화하는데 쓰이게 된다. 검찰의 이후 추가 기소 당시 공소장을 보자.

"딸과 공모해 2013년 6월 경 주거지에서 아들 상장을 스캔한 후 이미지 프로그램을 이용해 총장 직인 부분만을 캡처 프로그램으로 오려내는 방법으로 '총장님 직인’제목의 파일을 만들었다."

참 탈도 많고 사연도 많은 증거물, '총장 직인 파일'이다.

검찰이 확보하기도 전에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존재를 알렸고, 검찰은 마치 그 존재를 알았던 것처럼 보도 며칠 뒤 동양대 한쪽 구석에서 발견해 추가 기소의 '결정적 증거'로 삼았다. 여기에 동양대 교원인사팀장이 총장이 수여하는 상은 모두 '인주'로 직접 직인을 찍는다는 증언까지 법정에서 한 탓에 어떻게 봐도 '정경심 교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증거다.

하지만 이 사연 많은 증거물은 아직도 한 단계의 복잡함을 또 남겨 놓고 있다.

즉 확보과정에서의 '적법성 문제'다.

하늘의 도우심이 있었는지 강사 휴게실에서 직인 파일이 있는 컴퓨터를 찾아냈지만,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가지 않은 탓에 '임의 제출'이라는 형식으로 컴퓨터를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검찰이 '총장 직인 파일' 존재 자체를 정확히 알고 해당일 동양대에 갔다면 아마 미리 영장을 발부받아 증거 확보에 나섰겠지만, 그렇지 못한 걸로 봤을 때 검찰도 정확한 정보를 가진 상태는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우연이든 필연이든 '결정적 증거'가 눈앞에 나타난 상황에서 검찰은 학교 측 관계자의 동의 아래 임의제출 형식으로 컴퓨터를 확보했지만, 과연 이 과정이 적법하느냐는 논란은 남아 있는 상태다.

우리 법원이 갈수록 수사 과정의 정당성을 요구하는 경향을 띠는 만큼, 만일 재판부가 이 컴퓨터를 확보한 과정을 문제 삼아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동양대 총장 직인이 찍힌 정경심 교수의 딸 조민 씨의 상과 관련된 기소 혐의 자체는 원천 무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이른바 '핵심 증거'라는 게 있지만, '동양대 총장 직인 파일'처럼 갖가지 스토리를 낳는 증거도 흔치 않은 듯하다.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날지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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