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진보 아젠다라고?”…‘보수 버전’도 있는데…

입력 2020.06.0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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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의가 국회까지 왔다. 지금의 논의는 21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야당이 먼저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기본소득 관련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언론은 국회에서의 기본소득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수 정당이 왜 기본소득을 말할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다양한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기본소득은 진보의 아젠다 아니냐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하는 주민들(지난 4월)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하는 주민들(지난 4월)

■ 다양하게 변주되는 기본소득 개념

기본소득은 다양하게 변주되는 개념이다. 카톨릭대 백승호 교수(사회복지학)와 이화여대 이승윤 교수(사회복지학)는 '기본소득 논쟁 제대로 하기'란 논문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크게 '좌파 버전'과 '우파 버전'으로 구분된다고 정리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소득 논의가 소모적 경향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기본소득은 좌에서 우까지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논의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진보 버전의 기본소득 중 하나는 우리 사회의 '공유부'(토지 등)로 발생하는 이익은 특정인의 노력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 만큼 기본소득의 형태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배당돼야 한다는 '공유부 배당'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분배 정의로서 지속 가능한 최대의 기본소득'은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추구한다. 생산수단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 선천적으로 타고난 요소에 따라 발생한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기회의 실질적 평등이 필요하고 그 수단이 기본소득이라는 것이다.

■ 보수 버전의 기본소득도 존재한다.

기존의 사회복지제도를 전면적으로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는 태도가 '보수 버전'의 기본소득의 핵심이다. 수혜대상을 선별하고, 지급하는 등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과다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계를 보이는 사회복지제도를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우파 경제학자이자 시장주의자로 잘 알려진 밀턴 프리드먼도 '음(-)의 소득세'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일정 소득 이상의 계층에는 소득세를 징수하고 이하의 계층에는 보조금을 주자는 것이다.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아닌 보조금을 준다는 점에서 '음(-)의 소득세'라는 명칭이 붙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보수적 버전의 기본소득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기본소득엔 보수적 버전도 있다"며 "기존의 복지를 줄이고 국가를 축소해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원한 후, 사회보장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토록 하자는 발상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이재명 경기지사

■ 그럼 기본소득 논의는 이념논쟁이 돼야 할까?

그러나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를 이러한 기존의 논의로 틀 짓기 하는 것은 아직은 성급해 보인다. 특히 주목해봐야 할 건 학술적 논의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학계가 아니라 현장에서 먼저 촉발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2016년 성남시에서 시행된 '청년배당'은 기본소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촉발했다. 또한 기본소득에 관한 학술 논문의 다수에 성남시의 '청년배당'이 언급되는 걸 보면, 당시 이재명 시장이 시작했던 이 제도가 국내 학계에서의 기본소득 논의를 촉발하는 데 일정 부분 이바지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제안했던 이재명 경기 지사는 올해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전 주민에게 10만 원씩을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했는데, 기본소득 논의가 이념적 논쟁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이 지사는 이틀 전 '알고 갑시다'란 트위터 글을 통해 "강단도 아닌 정치에서 국민과 나라에 유용하면 그만이지 진보보수가 무슨 상관입니까?"라는 말로 기본소득 논의가 의제선점 경쟁에 그치거나 이념틀에 갇히는 것을 우려했다. 이재명 지사는 최근에도 "기본소득에 대해 보수진영과도 연대 가능하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 사변적 논의 안 되려면 구체적 방안 나와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최근 "기본소득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아무렇게나 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에는 수혜대상과 지급방식, 금액에 대한 표면적 논의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제도와의 양립문제, 정부 재정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단, 일자리와 인간의 삶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정국으로 인한 소비침체, 전 주민에게 10만 원씩을 지급한 경기도의 초유의 재난기본소득 실험, 그리고 이어진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까지. 재난 현장에서 촉발된 기본소득 논의는 21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여야 정치인 모두 입에 올리는 뜨거운 화두가 됐다.

기본소득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이 화두가 소모적 논란 혹은 정치적 논란으로 그치는 '익숙한 풍경'을 보지 않으려면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더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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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소득이 진보 아젠다라고?”…‘보수 버전’도 있는데…
    • 입력 2020-06-06 10:01:02
    취재K
기본소득 논의가 국회까지 왔다. 지금의 논의는 21대 국회가 시작되면서 야당이 먼저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기본소득 관련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언론은 국회에서의 기본소득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수 정당이 왜 기본소득을 말할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다양한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기본소득은 진보의 아젠다 아니냐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을 신청하는 주민들(지난 4월)
■ 다양하게 변주되는 기본소득 개념

기본소득은 다양하게 변주되는 개념이다. 카톨릭대 백승호 교수(사회복지학)와 이화여대 이승윤 교수(사회복지학)는 '기본소득 논쟁 제대로 하기'란 논문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크게 '좌파 버전'과 '우파 버전'으로 구분된다고 정리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소득 논의가 소모적 경향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기본소득은 좌에서 우까지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논의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진보 버전의 기본소득 중 하나는 우리 사회의 '공유부'(토지 등)로 발생하는 이익은 특정인의 노력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 만큼 기본소득의 형태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배당돼야 한다는 '공유부 배당'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분배 정의로서 지속 가능한 최대의 기본소득'은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추구한다. 생산수단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 선천적으로 타고난 요소에 따라 발생한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기회의 실질적 평등이 필요하고 그 수단이 기본소득이라는 것이다.

■ 보수 버전의 기본소득도 존재한다.

기존의 사회복지제도를 전면적으로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는 태도가 '보수 버전'의 기본소득의 핵심이다. 수혜대상을 선별하고, 지급하는 등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과다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계를 보이는 사회복지제도를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우파 경제학자이자 시장주의자로 잘 알려진 밀턴 프리드먼도 '음(-)의 소득세'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일정 소득 이상의 계층에는 소득세를 징수하고 이하의 계층에는 보조금을 주자는 것이다.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아닌 보조금을 준다는 점에서 '음(-)의 소득세'라는 명칭이 붙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보수적 버전의 기본소득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기본소득엔 보수적 버전도 있다"며 "기존의 복지를 줄이고 국가를 축소해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원한 후, 사회보장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토록 하자는 발상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 그럼 기본소득 논의는 이념논쟁이 돼야 할까?

그러나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를 이러한 기존의 논의로 틀 짓기 하는 것은 아직은 성급해 보인다. 특히 주목해봐야 할 건 학술적 논의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학계가 아니라 현장에서 먼저 촉발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2016년 성남시에서 시행된 '청년배당'은 기본소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촉발했다. 또한 기본소득에 관한 학술 논문의 다수에 성남시의 '청년배당'이 언급되는 걸 보면, 당시 이재명 시장이 시작했던 이 제도가 국내 학계에서의 기본소득 논의를 촉발하는 데 일정 부분 이바지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제안했던 이재명 경기 지사는 올해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전 주민에게 10만 원씩을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했는데, 기본소득 논의가 이념적 논쟁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이 지사는 이틀 전 '알고 갑시다'란 트위터 글을 통해 "강단도 아닌 정치에서 국민과 나라에 유용하면 그만이지 진보보수가 무슨 상관입니까?"라는 말로 기본소득 논의가 의제선점 경쟁에 그치거나 이념틀에 갇히는 것을 우려했다. 이재명 지사는 최근에도 "기본소득에 대해 보수진영과도 연대 가능하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 사변적 논의 안 되려면 구체적 방안 나와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최근 "기본소득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아무렇게나 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에는 수혜대상과 지급방식, 금액에 대한 표면적 논의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제도와의 양립문제, 정부 재정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단, 일자리와 인간의 삶의 문제로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정국으로 인한 소비침체, 전 주민에게 10만 원씩을 지급한 경기도의 초유의 재난기본소득 실험, 그리고 이어진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까지. 재난 현장에서 촉발된 기본소득 논의는 21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여야 정치인 모두 입에 올리는 뜨거운 화두가 됐다.

기본소득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이 화두가 소모적 논란 혹은 정치적 논란으로 그치는 '익숙한 풍경'을 보지 않으려면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더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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