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지 않게]① 죽은 곳에서 또 죽는 일터는 어디?

입력 2020.07.03 (07:01) 수정 2020.07.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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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도시락 싸가지고 아침에 출근하셨는데 갑자기 대낮에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날벼락이죠."


올해 5월, 평소와 마찬가지로 강원 삼척시 삼표시멘트 공장으로 출근했던 62살 하청 노동자 김 모 씨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설비 점검 중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이는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2인 1조로 해야 하는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1시간 40분 뒤 동료가 그를 발견했을 땐 이미 숨진 상태였습니다.

예견된 사고였습니다. 사고가 나기 두 달 전 같은 설비에서 일하던 다른 일용직 노동자도 몸이 끼이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위험이 늘 존재했지만, 사람이 죽을 때까지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지난 1년간 삼표시멘트 삼척 공장에서만 18명이 다치거나 숨졌습니다.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는 지난 10년간 노동자 21명이 일하다가 숨졌습니다. 가스 누출 사고가 잦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작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올해 3월에도 노동자 2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 노동자가 숨지는 일터는 어디?…9년간 중대 재해 전수 분석

노동자의 반복되는 죽음은 특정한 일터의 이야기일까요? KBS는 최근 9년간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중대 재해 8,057건을 '노동건강연대'와 한정애 의원실로부터 입수해 전수 분석했습니다. '중대 재해'란 사망 1명 이상 또는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뜻합니다.

 
■ 죽음이 반복된 일터 279곳·3번 이상은 60곳

취재진은 중대 재해 8천여 건 가운데 '죽은 곳에서 또 죽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같은 전수 분석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청 노동자의 경우,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다 숨지더라도 발생 현황에는 원청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자기가 소속된 하청업체 이름이 표기됩니다. 따라서 취재진은 사고 발생 '장소'를 기준으로 '죽은 곳에서 또 죽는 경우'를 분류해봤습니다.

그 결과 중대 재해가 2번 이상 반복된 사업장은 279곳, 3번 이상 반복된 곳은 60곳이었습니다.

KBS는 중대 재해가 잦았던 상위 15개 기업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상위 15곳에서는 최소 5건에서부터 무려 30건까지 노동자가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했습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2013년 12월 추락과 질식 사고가 연이어 나면서 하루에 노동자 3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두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숨져 가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하청업체 소속입니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 주요 원인은 '안전관리 미흡'

당연한 지적이겠지만, 중대 재해의 주요 원인은 '안전관리 미흡'입니다. 미리 관리만 했어도 노동자들이 죽지 않았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산재 예방을 위한 정부의 지도·감독 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문제는 인력 부족입니다. 사업장은 전국에 2백만 곳이 넘는데,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은 5백여 명입니다. 안전감독관 1명당 챙겨야 하는 사업장은 4천 곳인 셈입니다. 사업장에 미리 통보한 뒤 점검을 나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부의 관리 감독이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 지침을 어기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업장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다음 주에는 판결문 분석을 통해 이른바 솜방망이 처벌의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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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하다 죽지 않게]① 죽은 곳에서 또 죽는 일터는 어디?
    • 입력 2020-07-03 07:01:37
    • 수정2020-07-23 13:16:37
    취재K

"아버지가 도시락 싸가지고 아침에 출근하셨는데 갑자기 대낮에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날벼락이죠."


올해 5월, 평소와 마찬가지로 강원 삼척시 삼표시멘트 공장으로 출근했던 62살 하청 노동자 김 모 씨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설비 점검 중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이는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2인 1조로 해야 하는 위험한 작업이었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1시간 40분 뒤 동료가 그를 발견했을 땐 이미 숨진 상태였습니다.

예견된 사고였습니다. 사고가 나기 두 달 전 같은 설비에서 일하던 다른 일용직 노동자도 몸이 끼이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고 위험이 늘 존재했지만, 사람이 죽을 때까지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지난 1년간 삼표시멘트 삼척 공장에서만 18명이 다치거나 숨졌습니다.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는 지난 10년간 노동자 21명이 일하다가 숨졌습니다. 가스 누출 사고가 잦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작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입니다. 올해 3월에도 노동자 2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 노동자가 숨지는 일터는 어디?…9년간 중대 재해 전수 분석

노동자의 반복되는 죽음은 특정한 일터의 이야기일까요? KBS는 최근 9년간 고용노동부에 보고된 중대 재해 8,057건을 '노동건강연대'와 한정애 의원실로부터 입수해 전수 분석했습니다. '중대 재해'란 사망 1명 이상 또는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뜻합니다.

 
■ 죽음이 반복된 일터 279곳·3번 이상은 60곳

취재진은 중대 재해 8천여 건 가운데 '죽은 곳에서 또 죽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같은 전수 분석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청 노동자의 경우,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다 숨지더라도 발생 현황에는 원청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자기가 소속된 하청업체 이름이 표기됩니다. 따라서 취재진은 사고 발생 '장소'를 기준으로 '죽은 곳에서 또 죽는 경우'를 분류해봤습니다.

그 결과 중대 재해가 2번 이상 반복된 사업장은 279곳, 3번 이상 반복된 곳은 60곳이었습니다.

KBS는 중대 재해가 잦았던 상위 15개 기업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상위 15곳에서는 최소 5건에서부터 무려 30건까지 노동자가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반복해서 발생했습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는 2013년 12월 추락과 질식 사고가 연이어 나면서 하루에 노동자 3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두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숨져 가는 노동자들 대부분은 하청업체 소속입니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 주요 원인은 '안전관리 미흡'

당연한 지적이겠지만, 중대 재해의 주요 원인은 '안전관리 미흡'입니다. 미리 관리만 했어도 노동자들이 죽지 않았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산재 예방을 위한 정부의 지도·감독 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문제는 인력 부족입니다. 사업장은 전국에 2백만 곳이 넘는데,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은 5백여 명입니다. 안전감독관 1명당 챙겨야 하는 사업장은 4천 곳인 셈입니다. 사업장에 미리 통보한 뒤 점검을 나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부의 관리 감독이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 지침을 어기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업장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다음 주에는 판결문 분석을 통해 이른바 솜방망이 처벌의 문제점을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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