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3일 매출 떨어지면 회장님께 끌려간다’…가매출 굴레에 빠진 쇼핑몰 직원들

입력 2020.07.13 (11:38) 수정 2020.07.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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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매장은 마감 시간마다 결제 대금과 재고를 확인합니다. 일반적으로 결제 대금과 재고가 맞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일부러 다르게 꾸미는 곳도 있습니다. 일명 '가매출'을 찍는 매장입니다. 가매출은 매출이 전년 대비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팔리지도 않은 상품을 판 것처럼 결제해 매출을 부풀리는 수법입니다.

가매출의 굴레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쇼핑몰에서 매출이 가장 많은 점포 중 하나였던 유명 모자 브랜드는 특히 중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한 달 매출이 2~30억 원을 가뿐히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주문 건이 들어오는 날짜에 따라 하루 매출의 변동폭이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출이 좀 적은 날에는 매니저가 주변 카드를 빌려 '가매출'을 찍고 실제 물건이 팔리면 이를 취소해주는 방식으로 매일 매출이 전년 대비 오르는 것처럼 속였습니다.


KBS가 확보한 당시 직원들의 카드 결제 내역입니다. 지금부터 4년 전인 2016년에는 10만 원 내외로 가매출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최근인 지난해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하자 하루에 1,700만 원의 결제를 하기에 이릅니다. 점차 매출이 줄면서 메꿔야 할 돈의 금액도 더 커지고 그럴수록 그다음 메꿀 금액이 더 많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가매출의 굴레에 빠진 겁니다.

가장 짧게 카드를 빌려준 직원의 경우 약 3달 가까이 빌려주면서 3,000만 원 상당의 결제가 이뤄졌습니다. 이외에도 8개월간 7,500만 원 등 한 달에도 수천만 원의 가매출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결국 매출이 줄고 해당 매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일부 직원들은 1억여 원이 되는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쇼핑몰이 매출 압박...'가매출' 알면서도 모른 척"

매출에 따라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 쇼핑몰은 실적이 높을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습니다. 매출이 떨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해당 쇼핑몰에서도 공공연하게 가매출을 요구해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일한 직원 A 씨는 "쇼핑몰 담당자들이 와서 '오늘 부족한 매출이 얼마냐', '얼마 가매출을 하면 되냐'고 매니저에게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직원 역시 "카드를 빌려주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압박을 느꼈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매장 매니저 역시 '매출이 줄면 매일 계속 찾아와 가매출을 결제할 카드를 요구했다'며 '3일 연속으로 역신장(매출 하락)을 하면 회장님에 끌려간다며 쇼핑몰 직원들이 계속 가매출을 결제했다'고 주장합니다.


가매출 압박을 받은 사람은 이 매니저뿐만이 아닙니다. 쇼핑몰 측 영업팀장과 다른 직원이 주고받은 문자에는 팀장이 적극적으로 카드를 먼저 요구하고, 1년 전보다 줄어든 매출액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등 당시 가매출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됩니다. 그럼에도 이 팀장은 1년 사이 지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연 매출 수백억, 수천억인 쇼핑몰과 의류업체지만 그 누구도 가매출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습니다. 의류업체에서는 카드 취소를 할 권한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쇼핑몰에서는 매니저 개인의 일탈이기에 카드 결제를 취소해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카드 결제는 여전히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가매출 거부할 수 없었나?

쇼핑몰과 입점업체 직원, 표면적으로는 고용 관계가 아닙니다. 하지만 쇼핑몰에서는 입점업체에 대한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테리어 비용을 전가하거나 본사를 압박해 매니저를 교체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입점업체 직원들과 쇼핑몰 직원 사이에는 암묵적인 권력 관계가 형성됩니다. 게다가 좁은 업계 특성상 한 번 찍히면 다른 곳에서 일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직원들은 부당한 요구를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매출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매장 매니저에게 계약과 무관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렸다면 노동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신고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앞서 2013년 한 백화점 매장 직원의 죽음 이후 '가매출'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이후 7년간 관련 보도도, 문제 제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젯밤(12일) 9시 뉴스가 나간 뒤 최근까지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익명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신고가 없었던 게 아니라 신고를 할 수 없는 '을'들의 처지에 모두가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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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3일 매출 떨어지면 회장님께 끌려간다’…가매출 굴레에 빠진 쇼핑몰 직원들
    • 입력 2020-07-13 11:38:57
    • 수정2020-07-13 11:39:35
    취재후·사건후
의류 매장은 마감 시간마다 결제 대금과 재고를 확인합니다. 일반적으로 결제 대금과 재고가 맞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일부러 다르게 꾸미는 곳도 있습니다. 일명 '가매출'을 찍는 매장입니다. 가매출은 매출이 전년 대비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팔리지도 않은 상품을 판 것처럼 결제해 매출을 부풀리는 수법입니다.

가매출의 굴레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쇼핑몰에서 매출이 가장 많은 점포 중 하나였던 유명 모자 브랜드는 특히 중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한 달 매출이 2~30억 원을 가뿐히 넘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주문 건이 들어오는 날짜에 따라 하루 매출의 변동폭이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출이 좀 적은 날에는 매니저가 주변 카드를 빌려 '가매출'을 찍고 실제 물건이 팔리면 이를 취소해주는 방식으로 매일 매출이 전년 대비 오르는 것처럼 속였습니다.


KBS가 확보한 당시 직원들의 카드 결제 내역입니다. 지금부터 4년 전인 2016년에는 10만 원 내외로 가매출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최근인 지난해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하자 하루에 1,700만 원의 결제를 하기에 이릅니다. 점차 매출이 줄면서 메꿔야 할 돈의 금액도 더 커지고 그럴수록 그다음 메꿀 금액이 더 많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가매출의 굴레에 빠진 겁니다.

가장 짧게 카드를 빌려준 직원의 경우 약 3달 가까이 빌려주면서 3,000만 원 상당의 결제가 이뤄졌습니다. 이외에도 8개월간 7,500만 원 등 한 달에도 수천만 원의 가매출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결국 매출이 줄고 해당 매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일부 직원들은 1억여 원이 되는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쇼핑몰이 매출 압박...'가매출' 알면서도 모른 척"

매출에 따라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받는 쇼핑몰은 실적이 높을수록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습니다. 매출이 떨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해당 쇼핑몰에서도 공공연하게 가매출을 요구해왔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일한 직원 A 씨는 "쇼핑몰 담당자들이 와서 '오늘 부족한 매출이 얼마냐', '얼마 가매출을 하면 되냐'고 매니저에게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직원 역시 "카드를 빌려주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압박을 느꼈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매장 매니저 역시 '매출이 줄면 매일 계속 찾아와 가매출을 결제할 카드를 요구했다'며 '3일 연속으로 역신장(매출 하락)을 하면 회장님에 끌려간다며 쇼핑몰 직원들이 계속 가매출을 결제했다'고 주장합니다.


가매출 압박을 받은 사람은 이 매니저뿐만이 아닙니다. 쇼핑몰 측 영업팀장과 다른 직원이 주고받은 문자에는 팀장이 적극적으로 카드를 먼저 요구하고, 1년 전보다 줄어든 매출액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등 당시 가매출에 관여한 정황이 포착됩니다. 그럼에도 이 팀장은 1년 사이 지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연 매출 수백억, 수천억인 쇼핑몰과 의류업체지만 그 누구도 가매출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습니다. 의류업체에서는 카드 취소를 할 권한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쇼핑몰에서는 매니저 개인의 일탈이기에 카드 결제를 취소해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카드 결제는 여전히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가매출 거부할 수 없었나?

쇼핑몰과 입점업체 직원, 표면적으로는 고용 관계가 아닙니다. 하지만 쇼핑몰에서는 입점업체에 대한 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테리어 비용을 전가하거나 본사를 압박해 매니저를 교체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입점업체 직원들과 쇼핑몰 직원 사이에는 암묵적인 권력 관계가 형성됩니다. 게다가 좁은 업계 특성상 한 번 찍히면 다른 곳에서 일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직원들은 부당한 요구를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매출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매장 매니저에게 계약과 무관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렸다면 노동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신고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앞서 2013년 한 백화점 매장 직원의 죽음 이후 '가매출'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이후 7년간 관련 보도도, 문제 제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젯밤(12일) 9시 뉴스가 나간 뒤 최근까지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익명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신고가 없었던 게 아니라 신고를 할 수 없는 '을'들의 처지에 모두가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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