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돌고 도는 폐기물…‘불법의 고리’를 쫓아서

입력 2020.09.24 (10:49) 수정 2020.09.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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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0㎡ 공장서 불...꺼진 뒤 드러난 ‘쓰레기 산’

지난 6월 25일, 군산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매일 얼마나 껐나, 언제 꺼지나를 두고 언론사마다 기사를 쏟아낼 정도로 불은 대단했습니다. 6백 명 넘는 소방 인력이 매일같이 물을 쏴대 결국 불은 일주일 만에 잡혔는데, 화염이 걷힌 뒤 드러난 광경은 더 대단했습니다. 취재 하면서 그런 건 처음 봤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 산’이 공장 안에 있었고, 양은 1만 톤에 달했습니다.

불이 꺼진 뒤 드러난 ‘쓰레기 산’, 전북 군산시불이 꺼진 뒤 드러난 ‘쓰레기 산’, 전북 군산시

■ ‘김 부장’을 잡아라

이보다 앞서 4월 2일에도 공장 화재가 있었습니다. 역시 불법 폐기물이 쌓여있던 곳입니다. 차로 10분 거리 두 곳에서 잇따라 큰불이 난 건 얘깃거리지만, 사실 폐기물 화재는 너무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두 불을 겹쳐놓자 뜻밖의 공통분모가 생깁니다.

여기서 ‘김 부장’이 등장합니다. 처음 쓰레기 산이 발견됐을 때 곧장 궁금했던 건 ‘공장을 빌린 사람이 누구냐’는 겁니다. 그가 남의 공장을 불법 투기장으로 만든 사람일 게 뻔해서인데, 그게 김 부장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예상될 겁니다. 뒤이어 불이 난 공장의 임대차 계약서에도 같은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김 부장’

이제 화재 사고보다는 범죄 사건 냄새가 진해집니다. 김 부장은 대포폰 쓰는 40대 남자였습니다. 취재 처음 김 부장에 대해 더 알기 어려웠던 건 그가 도주해서입니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그를 쫓았습니다. 저희도 ‘김 부장’을 추적했습니다.

■ “충북 진천으로 가보시오.”

“광주라더라” 한 마디에, “전남 목포라더라” 한 마디에, 그곳에 카메라를 댔습니다. 김 부장과 함께 일한 폐기물 브로커의 영업 동선을 거꾸로 추적한 건데, 그러다 불이 난 군산의 그것과 똑 닮은 공장에서 같은 일, 폐기물 불법 투기가 벌어진 걸 알았습니다.

불법 폐기물로 가득 찬 공장, 충북 진천군불법 폐기물로 가득 찬 공장, 충북 진천군

충북 진천 시골 마을에 있는 공장입니다. 건물 안에도, 마당에도, 심지어 지하에도 잡다한 쓰레기가 들어찼습니다. 불법 투기 일당이 남의 공장을 빌려 벌인 일입니다. 이걸 안 들키려고 울타리도 높게 쳤습니다. 공장 주인은 “제조업 한다는 사람한테 공장을 내줬다가 이래 됐다. 한바탕 호통쳤더니 만나서 얘기하자더라. 일단 신고는 안 했다.”라고 합니다. 제조업 한다고 거짓말한 사람, 주인도 모르게 폐기물 3천 톤을 쌓은 사람, 공장을 빌린 사람은 수배 중인 ‘김 부장’이었습니다.

붙잡힌 ‘김 부장’붙잡힌 ‘김 부장’

■ 넘기고 또 넘기며 얽힌 ‘불법의 고리’

‘김 부장’은 그렇게 수갑을 찼습니다. 전북 군산, 충북 진천, 전남 영암에도 김 부장은 쓰레기 산을 쌓았습니다. 수배 중에도 브로커가 떼온 폐기물을 빌린 공장에 쌓다가 달아나는 일을 계속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불법 투기 일당의 수익 구조는 이렇습니다.

폐기물 불법 투기 과정폐기물 불법 투기 과정

폐기물 브로커는 영업을 통해 톤당 12~13만 원 정도 처리 비용을 받고 폐기물을 떼왔습니다. 그리고 김 부장은 브로커에게 폐기물을 넘겨받는 대가로 톤당 5만 원 정도를 챙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는 폐기물을 실어 나르는 데 드는 비용을 냈고, 김 부장은 공장 보증금과 다달이 임대료를 부담했습니다. 굴착기를 불러 쓰레기를 차곡히 쌓는 비용도 김 부장 몫이었습니다. 공장 하나를 작업하면 김 부장은 4억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일단 김 부장과 브로커 사이 고리 하나는 밝혀진 셈이지만, 사실상 ‘바지’인 김 부장만 잡고 말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브로커에겐 누가 폐기물을 넘겼을까요?

■ 돌고 도는 폐기물

브로커 지시로 폐기물을 옮긴 운전사의 증언들을 긁어 모았습니다. 퍼즐 맞추듯 불법 폐기물의 경로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더니, 전국에 흩어져 있는 폐기물의 원래 주인, 5개 폐기물 처리업체가 나옵니다. 광주광역시 2곳, 전남 목포시 1곳, 경기도 화성시 2곳입니다.

불법 폐기물 브로커와 거래한 폐기물 처리업체불법 폐기물 브로커와 거래한 폐기물 처리업체

이들 업체에 찾아가 폐기물 브로커 이름을 대자, 거래해 온 게 맞는다고 털어놓습니다. 다만 불법 투기는 선을 긋습니다. 싼값에 처리를 맡겠다고 해 거래했을 뿐, 자신의 폐기물이 불법 투기장으로 흘러들 줄은 몰랐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들이 브로커에게 요구받은 조건은 이렇습니다. ①거래 내용을 환경부 폐기물관리시스템인 ‘올바로’에 입력하지 않을 것. ②현금만 주고받을 것. 수상한 이 조건에 흔쾌히 ‘오케이’ 하면서도 의심은 안 했다는 핑계, 조금 궁색합니다.

또 있습니다. 폐기물 처리비용이란 게 시세가 있습니다. 조금씩 변하지만, 최근엔 톤당 16만 원 선입니다. 그런데 이들 업체가 브로커에게 처리 대가로 준 돈은 톤당 12~13만 원 정도. 정상적인 비용 16만 원에 한참 못 미칩니다. 사전 교감 없이, 이런 가격이 정해지긴 힘들겠지요.

결국, 브로커가 직접 털어놨습니다. 업체가 폐기물이 불법 처리될 줄 알고 있거나, 적어도 묵인했다는 증언입니다.

”불법으로 처리될 줄 당연히 알고 있죠. 그 정도 가격으로 어떻게 폐기물 처리를 할 수 있습니까.“

폐기물을 넘기고 넘기며 불법으로 얽힌 ‘고리’가 하나 더 드러났습니다.

■ 불법 고리 ‘끝판왕’을 쫓아서

불법 폐기물 투기와 방치는 최근 몇 년 새 끊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복합적입니다만, 쓰레기 ‘처리 길’이 막히면서 처리 비용이 크게 뛴 게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힙니다.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했고,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했던 폐기물은 평택항으로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우리 정부는 미세먼지 등을 이유로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소각장 같은 처분 시설은 더 만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한민국 땅엔 폐기물이 쌓여가는데, 처리 길이 막힌 겁니다. ‘폐기물 대란’이란 이름으로 사회적 이슈가 됐지요.

그러자 처리 단가가 급등했습니다. 2018년, 쓰레기 1톤을 태우는데 대략 18만 원 정도였던 비용은 지난해 26만 원까지 뛰었고, 최근에도 24만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용이 급등하자
어떤 이는 쓰레기 산을 두고 그대로 도망갔고, 또 어떤 이는 브로커가 돼 이런 상황을 돈벌이 삼았습니다.

잘 버리는 문제에 고민이 없다 보니, 쓰레기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폐기물로 얽힌 ‘불법의 고리’도 이렇게 생겼습니다. 역습에 된통 당하지 않으려면 진열을 잘 정비해야 합니다. 없는 제도를 꾸리고, 있는 제도의 허점을 메우는 일은 정부가 할 일입니다. 지금이 고리를 쳐낼 칼을 벼릴 때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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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돌고 도는 폐기물…‘불법의 고리’를 쫓아서
    • 입력 2020-09-24 10:49:04
    • 수정2020-09-24 10:50:16
    취재후·사건후
■ 4,000㎡ 공장서 불...꺼진 뒤 드러난 ‘쓰레기 산’

지난 6월 25일, 군산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매일 얼마나 껐나, 언제 꺼지나를 두고 언론사마다 기사를 쏟아낼 정도로 불은 대단했습니다. 6백 명 넘는 소방 인력이 매일같이 물을 쏴대 결국 불은 일주일 만에 잡혔는데, 화염이 걷힌 뒤 드러난 광경은 더 대단했습니다. 취재 하면서 그런 건 처음 봤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 산’이 공장 안에 있었고, 양은 1만 톤에 달했습니다.

불이 꺼진 뒤 드러난 ‘쓰레기 산’, 전북 군산시
■ ‘김 부장’을 잡아라

이보다 앞서 4월 2일에도 공장 화재가 있었습니다. 역시 불법 폐기물이 쌓여있던 곳입니다. 차로 10분 거리 두 곳에서 잇따라 큰불이 난 건 얘깃거리지만, 사실 폐기물 화재는 너무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두 불을 겹쳐놓자 뜻밖의 공통분모가 생깁니다.

여기서 ‘김 부장’이 등장합니다. 처음 쓰레기 산이 발견됐을 때 곧장 궁금했던 건 ‘공장을 빌린 사람이 누구냐’는 겁니다. 그가 남의 공장을 불법 투기장으로 만든 사람일 게 뻔해서인데, 그게 김 부장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예상될 겁니다. 뒤이어 불이 난 공장의 임대차 계약서에도 같은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김 부장’

이제 화재 사고보다는 범죄 사건 냄새가 진해집니다. 김 부장은 대포폰 쓰는 40대 남자였습니다. 취재 처음 김 부장에 대해 더 알기 어려웠던 건 그가 도주해서입니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그를 쫓았습니다. 저희도 ‘김 부장’을 추적했습니다.

■ “충북 진천으로 가보시오.”

“광주라더라” 한 마디에, “전남 목포라더라” 한 마디에, 그곳에 카메라를 댔습니다. 김 부장과 함께 일한 폐기물 브로커의 영업 동선을 거꾸로 추적한 건데, 그러다 불이 난 군산의 그것과 똑 닮은 공장에서 같은 일, 폐기물 불법 투기가 벌어진 걸 알았습니다.

불법 폐기물로 가득 찬 공장, 충북 진천군
충북 진천 시골 마을에 있는 공장입니다. 건물 안에도, 마당에도, 심지어 지하에도 잡다한 쓰레기가 들어찼습니다. 불법 투기 일당이 남의 공장을 빌려 벌인 일입니다. 이걸 안 들키려고 울타리도 높게 쳤습니다. 공장 주인은 “제조업 한다는 사람한테 공장을 내줬다가 이래 됐다. 한바탕 호통쳤더니 만나서 얘기하자더라. 일단 신고는 안 했다.”라고 합니다. 제조업 한다고 거짓말한 사람, 주인도 모르게 폐기물 3천 톤을 쌓은 사람, 공장을 빌린 사람은 수배 중인 ‘김 부장’이었습니다.

붙잡힌 ‘김 부장’
■ 넘기고 또 넘기며 얽힌 ‘불법의 고리’

‘김 부장’은 그렇게 수갑을 찼습니다. 전북 군산, 충북 진천, 전남 영암에도 김 부장은 쓰레기 산을 쌓았습니다. 수배 중에도 브로커가 떼온 폐기물을 빌린 공장에 쌓다가 달아나는 일을 계속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불법 투기 일당의 수익 구조는 이렇습니다.

폐기물 불법 투기 과정
폐기물 브로커는 영업을 통해 톤당 12~13만 원 정도 처리 비용을 받고 폐기물을 떼왔습니다. 그리고 김 부장은 브로커에게 폐기물을 넘겨받는 대가로 톤당 5만 원 정도를 챙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는 폐기물을 실어 나르는 데 드는 비용을 냈고, 김 부장은 공장 보증금과 다달이 임대료를 부담했습니다. 굴착기를 불러 쓰레기를 차곡히 쌓는 비용도 김 부장 몫이었습니다. 공장 하나를 작업하면 김 부장은 4억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일단 김 부장과 브로커 사이 고리 하나는 밝혀진 셈이지만, 사실상 ‘바지’인 김 부장만 잡고 말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브로커에겐 누가 폐기물을 넘겼을까요?

■ 돌고 도는 폐기물

브로커 지시로 폐기물을 옮긴 운전사의 증언들을 긁어 모았습니다. 퍼즐 맞추듯 불법 폐기물의 경로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더니, 전국에 흩어져 있는 폐기물의 원래 주인, 5개 폐기물 처리업체가 나옵니다. 광주광역시 2곳, 전남 목포시 1곳, 경기도 화성시 2곳입니다.

불법 폐기물 브로커와 거래한 폐기물 처리업체
이들 업체에 찾아가 폐기물 브로커 이름을 대자, 거래해 온 게 맞는다고 털어놓습니다. 다만 불법 투기는 선을 긋습니다. 싼값에 처리를 맡겠다고 해 거래했을 뿐, 자신의 폐기물이 불법 투기장으로 흘러들 줄은 몰랐다는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들이 브로커에게 요구받은 조건은 이렇습니다. ①거래 내용을 환경부 폐기물관리시스템인 ‘올바로’에 입력하지 않을 것. ②현금만 주고받을 것. 수상한 이 조건에 흔쾌히 ‘오케이’ 하면서도 의심은 안 했다는 핑계, 조금 궁색합니다.

또 있습니다. 폐기물 처리비용이란 게 시세가 있습니다. 조금씩 변하지만, 최근엔 톤당 16만 원 선입니다. 그런데 이들 업체가 브로커에게 처리 대가로 준 돈은 톤당 12~13만 원 정도. 정상적인 비용 16만 원에 한참 못 미칩니다. 사전 교감 없이, 이런 가격이 정해지긴 힘들겠지요.

결국, 브로커가 직접 털어놨습니다. 업체가 폐기물이 불법 처리될 줄 알고 있거나, 적어도 묵인했다는 증언입니다.

”불법으로 처리될 줄 당연히 알고 있죠. 그 정도 가격으로 어떻게 폐기물 처리를 할 수 있습니까.“

폐기물을 넘기고 넘기며 불법으로 얽힌 ‘고리’가 하나 더 드러났습니다.

■ 불법 고리 ‘끝판왕’을 쫓아서

불법 폐기물 투기와 방치는 최근 몇 년 새 끊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복합적입니다만, 쓰레기 ‘처리 길’이 막히면서 처리 비용이 크게 뛴 게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힙니다.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했고,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했던 폐기물은 평택항으로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우리 정부는 미세먼지 등을 이유로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소각장 같은 처분 시설은 더 만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한민국 땅엔 폐기물이 쌓여가는데, 처리 길이 막힌 겁니다. ‘폐기물 대란’이란 이름으로 사회적 이슈가 됐지요.

그러자 처리 단가가 급등했습니다. 2018년, 쓰레기 1톤을 태우는데 대략 18만 원 정도였던 비용은 지난해 26만 원까지 뛰었고, 최근에도 24만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용이 급등하자
어떤 이는 쓰레기 산을 두고 그대로 도망갔고, 또 어떤 이는 브로커가 돼 이런 상황을 돈벌이 삼았습니다.

잘 버리는 문제에 고민이 없다 보니, 쓰레기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폐기물로 얽힌 ‘불법의 고리’도 이렇게 생겼습니다. 역습에 된통 당하지 않으려면 진열을 잘 정비해야 합니다. 없는 제도를 꾸리고, 있는 제도의 허점을 메우는 일은 정부가 할 일입니다. 지금이 고리를 쳐낼 칼을 벼릴 때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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