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찍은 영화를 61세에 개봉하게 된 사연은?

입력 2020.10.28 (06:00) 수정 2020.10.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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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이 사람, 누군지 알아보시겠습니까? 70여 편에 이르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 조선묵 씨입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61세가 됐는데, 사진 왼쪽은 그가 20대 후반일 때 모습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선한 눈빛만큼은 그대로지만, 꽃다운 청년은 이제 흰머리가 내려앉은 중년이 됐죠.

20대 청년 조선묵 씨가 출연했던 영화 한 편이 무려 31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극장에서 개봉하게 됐습니다. 당시 정부가 '상영 불가' 판정을 내리고 필름 자체를 빼앗아 갔기 때문인데요. 대체 무슨 내용이었기에 그렇게 발끈했던 걸까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첫 영화로, 세상에 나오자마자 묻혀버린 김태영 감독의 영화 <<황무지: 5월의 고해>> 이야기입니다.


■ "줄, 줄을 잘 서야 해." 고문당해 미쳐버린 시민군 '칸트 씨'

영화 앞부분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묘한 재미가 있습니다. 31년 전 영화인데 지금 보면 'B급 코드' 같은 유머가 읽힌다고 할까요. 성당을 지키고 선 군인 앞에서 "줄, 줄을 잘 서야 해. 본인은 대통령이다!"라는 이상한 말을 하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등장해서 군인이 붙여준 별명이 '칸트 씨'입니다. 태극기를 들고 서울 시내 곳곳을 정처 없이 다니고, 딱 봐도 미친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말 속에 뼈가 있습니다.

트럭에 실려 모두 어디 갔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무서워, 무서워요...
공정성 보도요원 여러분께! 삼천리는 살기 좋은가?
국민 여러분! 누님을 보셨나요? 두부처럼 잘려나간...우리 누님의 젖가슴...
히-히-히 우리나라 좋은 나라...재밌는 나라.
히, 히, 플라스틱 예수?

알고 보니 이 이상한 청년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누이를 잃고, 자신은 고문을 당해 미쳐버린 시민군이었습니다. '칸트 씨'가 내뱉는 저 말들 속엔 당시 정부와 언론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담겼고, 시민군이 참혹하게 고문당하는 모습도 영화에 등장합니다. 지금이야 5.18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작품을 제작해 개봉하려던 시기는 1989년, 아직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참 용감했던 영화죠.


■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진압군

영화 후반부엔 5.18 진압군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군의 명령을 받고 어린 소녀를 죽인 군인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탈영해 미군 기지촌으로 숨게 되는데요. 결국, 양심선언을 하고 희생자들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 날 이후 이 탈영병의 삶도 송두리째 바뀐 겁니다.

영화는 당시 미군이 기지촌 주민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도 파격적으로 드러냅니다. TV에서 전두환, 이순자 씨의 얼굴을 본 등장인물들이 "만날 저 면상을 보려니 에휴 지겨워." "비극이죠." 이런 대화도 스스럼없이 주고받거든요.


■ 보안사가 필름에 아세톤 뿌리고 압수…'비디오테이프' 복원


지금 봐도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이 영화를 당시 군사 정부가 가만 뒀을 리 없죠. 1989년 5월 광주 소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하려고 하자, 보안사의 지시를 받은 용역 직원들이 쳐들어와서 필름에 아세톤을 뿌렸고, 이후 문화공보부 직원, 경찰, 형사들이 아예 필름을 압수해 갔습니다. 그렇게 사라진 영화가 어떻게 복원됐을까요?

김태영 감독이 예비용으로 떠놓은 비디오테이프가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영화 후반부 화질이 앞부분보다 선명하지 못한 건, 필름 원본은 사라지고 비디오테이프에 남아 있는 영상을 복원했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이렇게 5.18이란 역사적 비극을 피해자, 가해자의 시선으로 다룬 자신의 두 작품을 하나로 묶고, 올해 5월 광주 망월동 모습까지 담아 새로 편집해 <<황무지:5월의 고해>>라는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황무지: 5월의 고해’ 김태영 감독‘황무지: 5월의 고해’ 김태영 감독

31년이나 지났으니 이 영화가 그저 '옛날엔 이랬지'하고 넘어가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가 5.18이 남긴 과제를 다 풀었더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기적같이 부활한 이 영화의 메시지에 여전히 주목해야 하는 건, 비극인 동시에 작은 희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민군을) 쏜 병사가 있을 거 아니에요, 쏜 병사. 그러니까 지금 40년 동안에 양심선언들이 조금씩 조금씩 있었어요, 장교까지. 근데 직접적으로 '내가 죽였습니다. 내가 총을 쏴서 죽였습니다. 내가 칼로 이렇게 죽였습니다.' 이런 양심선언은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까지. 해야 한다는 거죠, 그분들이. " - 김태영 감독 인터뷰 中

[연관기사] 군사정권이 빼앗은 첫 5.18 영화…31년 만에 관객들 만난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3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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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에 찍은 영화를 61세에 개봉하게 된 사연은?
    • 입력 2020-10-28 06:00:23
    • 수정2020-10-28 10:35:11
    취재K

사진 속 이 사람, 누군지 알아보시겠습니까? 70여 편에 이르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 조선묵 씨입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61세가 됐는데, 사진 왼쪽은 그가 20대 후반일 때 모습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선한 눈빛만큼은 그대로지만, 꽃다운 청년은 이제 흰머리가 내려앉은 중년이 됐죠.

20대 청년 조선묵 씨가 출연했던 영화 한 편이 무려 31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극장에서 개봉하게 됐습니다. 당시 정부가 '상영 불가' 판정을 내리고 필름 자체를 빼앗아 갔기 때문인데요. 대체 무슨 내용이었기에 그렇게 발끈했던 걸까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첫 영화로, 세상에 나오자마자 묻혀버린 김태영 감독의 영화 <<황무지: 5월의 고해>> 이야기입니다.


■ "줄, 줄을 잘 서야 해." 고문당해 미쳐버린 시민군 '칸트 씨'

영화 앞부분은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묘한 재미가 있습니다. 31년 전 영화인데 지금 보면 'B급 코드' 같은 유머가 읽힌다고 할까요. 성당을 지키고 선 군인 앞에서 "줄, 줄을 잘 서야 해. 본인은 대통령이다!"라는 이상한 말을 하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등장해서 군인이 붙여준 별명이 '칸트 씨'입니다. 태극기를 들고 서울 시내 곳곳을 정처 없이 다니고, 딱 봐도 미친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말 속에 뼈가 있습니다.

트럭에 실려 모두 어디 갔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무서워, 무서워요...
공정성 보도요원 여러분께! 삼천리는 살기 좋은가?
국민 여러분! 누님을 보셨나요? 두부처럼 잘려나간...우리 누님의 젖가슴...
히-히-히 우리나라 좋은 나라...재밌는 나라.
히, 히, 플라스틱 예수?

알고 보니 이 이상한 청년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누이를 잃고, 자신은 고문을 당해 미쳐버린 시민군이었습니다. '칸트 씨'가 내뱉는 저 말들 속엔 당시 정부와 언론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담겼고, 시민군이 참혹하게 고문당하는 모습도 영화에 등장합니다. 지금이야 5.18을 다룬 영화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작품을 제작해 개봉하려던 시기는 1989년, 아직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참 용감했던 영화죠.


■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진압군

영화 후반부엔 5.18 진압군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군의 명령을 받고 어린 소녀를 죽인 군인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탈영해 미군 기지촌으로 숨게 되는데요. 결국, 양심선언을 하고 희생자들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 날 이후 이 탈영병의 삶도 송두리째 바뀐 겁니다.

영화는 당시 미군이 기지촌 주민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도 파격적으로 드러냅니다. TV에서 전두환, 이순자 씨의 얼굴을 본 등장인물들이 "만날 저 면상을 보려니 에휴 지겨워." "비극이죠." 이런 대화도 스스럼없이 주고받거든요.


■ 보안사가 필름에 아세톤 뿌리고 압수…'비디오테이프' 복원


지금 봐도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이 영화를 당시 군사 정부가 가만 뒀을 리 없죠. 1989년 5월 광주 소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하려고 하자, 보안사의 지시를 받은 용역 직원들이 쳐들어와서 필름에 아세톤을 뿌렸고, 이후 문화공보부 직원, 경찰, 형사들이 아예 필름을 압수해 갔습니다. 그렇게 사라진 영화가 어떻게 복원됐을까요?

김태영 감독이 예비용으로 떠놓은 비디오테이프가 남아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영화 후반부 화질이 앞부분보다 선명하지 못한 건, 필름 원본은 사라지고 비디오테이프에 남아 있는 영상을 복원했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이렇게 5.18이란 역사적 비극을 피해자, 가해자의 시선으로 다룬 자신의 두 작품을 하나로 묶고, 올해 5월 광주 망월동 모습까지 담아 새로 편집해 <<황무지:5월의 고해>>라는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황무지: 5월의 고해’ 김태영 감독
31년이나 지났으니 이 영화가 그저 '옛날엔 이랬지'하고 넘어가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가 5.18이 남긴 과제를 다 풀었더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기적같이 부활한 이 영화의 메시지에 여전히 주목해야 하는 건, 비극인 동시에 작은 희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민군을) 쏜 병사가 있을 거 아니에요, 쏜 병사. 그러니까 지금 40년 동안에 양심선언들이 조금씩 조금씩 있었어요, 장교까지. 근데 직접적으로 '내가 죽였습니다. 내가 총을 쏴서 죽였습니다. 내가 칼로 이렇게 죽였습니다.' 이런 양심선언은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까지. 해야 한다는 거죠, 그분들이. " - 김태영 감독 인터뷰 中

[연관기사] 군사정권이 빼앗은 첫 5.18 영화…31년 만에 관객들 만난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3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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