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공분 산 ‘부모 찬스’…잘못 있지만 처벌 못한다?

입력 2020.10.28 (10:41) 수정 2020.10.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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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교수 아빠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 올린 미성년 자녀들
대학은 ‘입학 취소’·경찰은 ‘기소 의견’ 송치했는데
검찰은 “처벌 어렵다”며 기소 안 해…왜?


고등학생 자녀들이 국립대 교수인 아버지가 쓰는 논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훗날 이 자녀들은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 같은 단과대에 입학하는데요. 자녀들은 수시전형 가운데 '입학사정관제'로 학교에 들어왔습니다. 예상대로 입학 지원 서류에는 논문 집필 내용이 기재돼있었습니다.

■ 논문에 '자녀 끼워 넣기' 의혹…입시 비리로 비화


전북대 농생명과학대학 소속 이 모 교수가 쓴 '성충의 방제 효과'를 다룬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2014년에 완성됐습니다.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 이 교수와 함께 논문을 쓴 공동저자가 2명인데 모두 이 씨죠. 게다가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습니다. KBS는 이 점에 착안해 취재를 시작했고 이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미성년 2명이 이 교수의 딸과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5월 교육부는 전북대를 찾아 현장 조사를 벌였습니다. 교육부 학술진흥과는 이 교수의 연구 활동에 자녀들이 실제 참여했는지, 또 이 논문이 자녀들의 대학 입시에 활용됐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특별 감사도 진행했죠.


사안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어 경찰도 이 교수를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전북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 교수의 자녀뿐 아니라 논문에 이름이 적힌 또 다른 고등학생 2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습니다.

며칠 뒤, 교육부는 전북대에 대해 전수 조사까지 나섭니다. 전북대 소속 교수들이 2007년 이후 발표한 모든 연구 논문에 미성년자들이 참여했는지, 또 이런 정황이 입시 비리로까지 이어졌는지 살펴보기로 한 겁니다.

■ 결국 이 교수 '직위 해제'…다른 교직원 징계도

교육부의 특별 감사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이 교수뿐 아니라 자녀 등 미성년자들을 연구 논문 공동 저자로 올려 물의를 빚은 전북대 교수와 교직원이 20명이나 적발된 겁니다. 이들은 무더기 징계 처분을 받았고 교육부는 문제가 된 이 교수에게 중징계를 내리도록 대학을 압박했습니다.

의혹에 그칠 뻔했던 이른바 '교수 아빠 찬스'가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었습니다.


대학 측은 결국 보도가 나가고 교육부 감사가 진행된 지 석 달 만에 이 교수를 직위 해제했습니다. 강의에서도 배제됐습니다. 총장도 공식 사과했습니다. 입시 공정성을 해쳤다는 이유로 자녀 2명의 입학이 취소됐습니다. 전북대학교 개교 이래 학생 입학 취소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지만, 당시 사안이 완전히 마무리됐다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대학 측이 이 교수를 직위 해제한 건 선제 조치일 뿐, 사법기관이 최종 유죄 여부를 가릴 때까지 징계를 사실상 미루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 최종 판단 쥔 수사기관…'엇갈린 판단' 내놔

경찰은 지난해 12월 이 교수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교수가 자녀뿐 아니라 미성년자인 조카 역시 논문에 공동저자로 올려 입시에 활용하도록 한 혐의를 찾아냈죠. 적용한 법령은 '업무방해'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뿐만 아니라 이 교수가 연구비 등을 횡령한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겼습니다.

해가 바뀐 현재.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검찰은 이 교수를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논문 관련 사건에 한해서입니다. 검찰 수사를 마친 게 지난 9월이니까 장장 아홉 달을 들여 수사한 결과 이 교수 자녀들의 논문 공동저자 기재와 해당 논문의 입시 활용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이 쓴 '연구 노트'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선 발견되지 않았던 자녀들의 공책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나왔는데, 이 공책을 들여다보니 논문에 쓰인 실험의 내용과 일치하는 필기가 남아있었다는 겁니다.

이 연구 노트로 이 교수와 자녀들은 형사상 책임을 면하게 됐습니다.

■ 논문 참여 인정되면 처벌 없다? "어떻게 참여하나요?"


'논문 연구에 참여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명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일부일지라도 논문 집필을 위해 함께 연구하고 실험했다면 당당히 저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겠죠. 그런데 그 기회는 과연 누구에게나 동일할까요? 누구나 공동 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공분을 샀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기회가 결코 공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수든 유력 정치인이든 간에 미성년 자녀들에게 이른바 '부모 찬스'를 준 것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만 특혜를 준 게 아닙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 '박탈당할 기회' 또한 준 겁니다. 성년이 되기도 전에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곳인지 몸소 알려준 거죠.


우리나라는 평등권을 헌법 11조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평등원칙이 우리 헌법의 최고 원리이자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이런 가치를 우선시해 법리 해석을 내려야 할 사법당국은 도리어 적확한 법령 적용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습니다.

앞의 명제를 조금 바꿔보면 이렇습니다.
'미성년 학생이 교수 부모나 지인을 통해 쌓은 경력은, 약간의 근거만 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
검찰의 이번 불기소 결정이 사회에 남긴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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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공분 산 ‘부모 찬스’…잘못 있지만 처벌 못한다?
    • 입력 2020-10-28 10:41:40
    • 수정2020-10-28 10:42:24
    취재후·사건후
교수 아빠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 올린 미성년 자녀들<br />대학은 ‘입학 취소’·경찰은 ‘기소 의견’ 송치했는데<br />검찰은 “처벌 어렵다”며 기소 안 해…왜?

고등학생 자녀들이 국립대 교수인 아버지가 쓰는 논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훗날 이 자녀들은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 같은 단과대에 입학하는데요. 자녀들은 수시전형 가운데 '입학사정관제'로 학교에 들어왔습니다. 예상대로 입학 지원 서류에는 논문 집필 내용이 기재돼있었습니다.

■ 논문에 '자녀 끼워 넣기' 의혹…입시 비리로 비화


전북대 농생명과학대학 소속 이 모 교수가 쓴 '성충의 방제 효과'를 다룬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2014년에 완성됐습니다.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 이 교수와 함께 논문을 쓴 공동저자가 2명인데 모두 이 씨죠. 게다가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습니다. KBS는 이 점에 착안해 취재를 시작했고 이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미성년 2명이 이 교수의 딸과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5월 교육부는 전북대를 찾아 현장 조사를 벌였습니다. 교육부 학술진흥과는 이 교수의 연구 활동에 자녀들이 실제 참여했는지, 또 이 논문이 자녀들의 대학 입시에 활용됐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특별 감사도 진행했죠.


사안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어 경찰도 이 교수를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전북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 교수의 자녀뿐 아니라 논문에 이름이 적힌 또 다른 고등학생 2명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습니다.

며칠 뒤, 교육부는 전북대에 대해 전수 조사까지 나섭니다. 전북대 소속 교수들이 2007년 이후 발표한 모든 연구 논문에 미성년자들이 참여했는지, 또 이런 정황이 입시 비리로까지 이어졌는지 살펴보기로 한 겁니다.

■ 결국 이 교수 '직위 해제'…다른 교직원 징계도

교육부의 특별 감사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이 교수뿐 아니라 자녀 등 미성년자들을 연구 논문 공동 저자로 올려 물의를 빚은 전북대 교수와 교직원이 20명이나 적발된 겁니다. 이들은 무더기 징계 처분을 받았고 교육부는 문제가 된 이 교수에게 중징계를 내리도록 대학을 압박했습니다.

의혹에 그칠 뻔했던 이른바 '교수 아빠 찬스'가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었습니다.


대학 측은 결국 보도가 나가고 교육부 감사가 진행된 지 석 달 만에 이 교수를 직위 해제했습니다. 강의에서도 배제됐습니다. 총장도 공식 사과했습니다. 입시 공정성을 해쳤다는 이유로 자녀 2명의 입학이 취소됐습니다. 전북대학교 개교 이래 학생 입학 취소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지만, 당시 사안이 완전히 마무리됐다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대학 측이 이 교수를 직위 해제한 건 선제 조치일 뿐, 사법기관이 최종 유죄 여부를 가릴 때까지 징계를 사실상 미루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 최종 판단 쥔 수사기관…'엇갈린 판단' 내놔

경찰은 지난해 12월 이 교수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교수가 자녀뿐 아니라 미성년자인 조카 역시 논문에 공동저자로 올려 입시에 활용하도록 한 혐의를 찾아냈죠. 적용한 법령은 '업무방해'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뿐만 아니라 이 교수가 연구비 등을 횡령한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겼습니다.

해가 바뀐 현재.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검찰은 이 교수를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논문 관련 사건에 한해서입니다. 검찰 수사를 마친 게 지난 9월이니까 장장 아홉 달을 들여 수사한 결과 이 교수 자녀들의 논문 공동저자 기재와 해당 논문의 입시 활용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이 쓴 '연구 노트'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선 발견되지 않았던 자녀들의 공책이 검찰 수사 단계에서 나왔는데, 이 공책을 들여다보니 논문에 쓰인 실험의 내용과 일치하는 필기가 남아있었다는 겁니다.

이 연구 노트로 이 교수와 자녀들은 형사상 책임을 면하게 됐습니다.

■ 논문 참여 인정되면 처벌 없다? "어떻게 참여하나요?"


'논문 연구에 참여했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명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일부일지라도 논문 집필을 위해 함께 연구하고 실험했다면 당당히 저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겠죠. 그런데 그 기회는 과연 누구에게나 동일할까요? 누구나 공동 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공분을 샀던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기회가 결코 공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수든 유력 정치인이든 간에 미성년 자녀들에게 이른바 '부모 찬스'를 준 것은 자신의 자녀들에게만 특혜를 준 게 아닙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 '박탈당할 기회' 또한 준 겁니다. 성년이 되기도 전에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 곳인지 몸소 알려준 거죠.


우리나라는 평등권을 헌법 11조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평등원칙이 우리 헌법의 최고 원리이자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이런 가치를 우선시해 법리 해석을 내려야 할 사법당국은 도리어 적확한 법령 적용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습니다.

앞의 명제를 조금 바꿔보면 이렇습니다.
'미성년 학생이 교수 부모나 지인을 통해 쌓은 경력은, 약간의 근거만 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
검찰의 이번 불기소 결정이 사회에 남긴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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