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쓸쓸한 코로나 죽음’ 그 후…유족들이 하지 못한 세 가지

입력 2021.03.02 (13:24) 수정 2021.03.0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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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코로나19라는 전례없는 감염병으로 세상을 떠난 1600여 명, 이들의 가족 역시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KBS 취재진은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유족 2명을 만났습니다. '코로나 유족'이라서 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하지 못한 세 가지, '취재후'로 돌아봅니다.

■①작별

남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한평생 살아오신 아버지였습니다. 박철규 씨의 아버지는 대학교 행정직원으로 근무하던 10여 년 전, 불이 난 연구실에서 학생을 구하다 연기를 들이마셨습니다. 이후 만성 폐 질환을 앓던 박 씨 아버지는 지난해 2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숨졌습니다.

칫솔도 챙겨가지 못한 채 입원한 아버지는 마지막 통화에서 "칫솔이 없어 불편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화장 전, 평소 즐겨 입던 옷을 입혀드리고 칫솔이라도 쥐여 드리고 싶었지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염과 입관 등 일반적인 장례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 씨 아버지는 환자복을 입은 상태에서 곧바로 화장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박 씨 어머니는 꿈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꿈속에서 남편이 옷장을 뒤지며 옷을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치매를 앓고 있던 어머니는 당시 남편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덤덤하게 꿈 얘기를 하는 어머니에게 차마 아버지 수의도 못 입혀드린 채 보내드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 뒤 박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박철규 씨 아버지가 생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유족 제공)박철규 씨 아버지가 생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유족 제공)

■②장례

또 다른 유족 이은희(가명) 씨는 지난해 4월, 서울의 모 대학병원 음압 병동 유리창 너머로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봤습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전부터 신장 투석을 받던 남편, "잘 살아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입원한 지 45일 만에 손발이 까맣게 썩어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이 씨에게 음압병동 내부와 연결된 수화기를 건넸습니다. 고통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해, 의료진이 남편에게 강한 수면제를 투여한 상태였지만 선잠처럼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씨는 "나를 기다리려고 견뎌내 줘서 고맙다"는 말을 27년의 동반자에게 건넸습니다. 남편은 이틀 뒤 눈을 감았습니다.

코로나 사망자는 일반 시신 화장이 다 끝난 늦은 시간대에 화장합니다. 유족은 방호복을 입는 조건으로 단둘만 화장장 입장이 허용됐습니다. 밤 11시를 넘긴 시각, 이 씨는 하나뿐인 딸과 함께 남편의 유골함을 안고 화장장을 나섰습니다. "둘이서 걷는 어두운 밤길이 참 서러웠다"고 이 씨는 회상했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 화장 진행 모습 (용인 평온의 숲 제공)코로나19 사망자 화장 진행 모습 (용인 평온의 숲 제공)

남편의 1주기가 다 되어가지만,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유골함을 놓고 장례를 치르겠다고 해도 받아주는 장례식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자의 장례를 거부하는 장례식장이 속출하자 보건복지부는 2017년 전국 195개 재난 대비 장례식장을 지정했습니다. 다시 찾아온 감염병, 현장에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지적에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 중 ‘국가재난대비 지정장례식장 운영매뉴얼’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국가재난대비 지정 장례식장에 배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장에는 아직 매뉴얼이 배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와 관련 협회 등의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에서 배포가 다소 늦어졌다"며 의견 조율을 마치는대로 매뉴얼을 배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에게 남편 사망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이은희 씨. (KBS 뉴스9)취재진에게 남편 사망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이은희 씨. (KBS 뉴스9)
■③회복

애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돌아온 건 주변 사람들의 '낙인'이었습니다. 이 씨는 "납골당에 남편의 유골을 안치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옆집에서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웃의 적대적인 시선에 충격을 받은 딸은 극심한 우울증을 얻어 직장도 관뒀습니다.

평소 인복이 많았던 박 씨 아버지의 경우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위로는커녕, 연락을 피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습니다. 뒤늦게 남편의 죽음을 인지한 박 씨 어머니는 대인기피증이 생겼습니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상담 서비스라도 받을까 싶었지만 "이 고통을 누가 이해해주겠나"는 마음에 단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정부는 코로나19 유족을 '트라우마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상담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1월 31일 기준, 5천 명이 넘는 유족 중 실제 트라우마 상담을 받은 건수는 336건에 그쳤습니다. 이미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시선에 상처를 받은 유족들은 상담조차 우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심민영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장은 "충분히 아파해야만 상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적응해나갈 수가 있는 건데 코로나19 유족의 경우 맘놓고 슬퍼하는 것조 쉽지 않아 애도의 과정 자체가 막혀버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애도도, 장례도, 일상으로의 복귀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코로나 유족들이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심 단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재난은 사람을 가려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로 사망하신 분과 가족은 손가락질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평범한 이웃들인거죠. 나도 그런 이웃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면, 유가족분들이 이 슬픔을 극복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시는데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연관기사] “수의도 못 입히고 보내”…쓸쓸한 ‘코로나 죽음’ (2021.02.23. KBS1TV 뉴스9)

※우울감 등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코로나19 유족 분들은 국가트라우마센터 ☎02-2204-0001~2, 정신건강복지센터 ☎1577-0199에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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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쓸쓸한 코로나 죽음’ 그 후…유족들이 하지 못한 세 가지
    • 입력 2021-03-02 13:24:52
    • 수정2021-03-02 13:25:11
    취재후·사건후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코로나19라는 전례없는 감염병으로 세상을 떠난 1600여 명, 이들의 가족 역시 같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KBS 취재진은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유족 2명을 만났습니다. '코로나 유족'이라서 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하지 못한 세 가지, '취재후'로 돌아봅니다.

■①작별

남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한평생 살아오신 아버지였습니다. 박철규 씨의 아버지는 대학교 행정직원으로 근무하던 10여 년 전, 불이 난 연구실에서 학생을 구하다 연기를 들이마셨습니다. 이후 만성 폐 질환을 앓던 박 씨 아버지는 지난해 2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숨졌습니다.

칫솔도 챙겨가지 못한 채 입원한 아버지는 마지막 통화에서 "칫솔이 없어 불편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화장 전, 평소 즐겨 입던 옷을 입혀드리고 칫솔이라도 쥐여 드리고 싶었지만, 마지막 인사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염과 입관 등 일반적인 장례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 씨 아버지는 환자복을 입은 상태에서 곧바로 화장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박 씨 어머니는 꿈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꿈속에서 남편이 옷장을 뒤지며 옷을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치매를 앓고 있던 어머니는 당시 남편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덤덤하게 꿈 얘기를 하는 어머니에게 차마 아버지 수의도 못 입혀드린 채 보내드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 뒤 박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박철규 씨 아버지가 생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유족 제공)
■②장례

또 다른 유족 이은희(가명) 씨는 지난해 4월, 서울의 모 대학병원 음압 병동 유리창 너머로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봤습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전부터 신장 투석을 받던 남편, "잘 살아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입원한 지 45일 만에 손발이 까맣게 썩어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이 씨에게 음압병동 내부와 연결된 수화기를 건넸습니다. 고통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해, 의료진이 남편에게 강한 수면제를 투여한 상태였지만 선잠처럼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씨는 "나를 기다리려고 견뎌내 줘서 고맙다"는 말을 27년의 동반자에게 건넸습니다. 남편은 이틀 뒤 눈을 감았습니다.

코로나 사망자는 일반 시신 화장이 다 끝난 늦은 시간대에 화장합니다. 유족은 방호복을 입는 조건으로 단둘만 화장장 입장이 허용됐습니다. 밤 11시를 넘긴 시각, 이 씨는 하나뿐인 딸과 함께 남편의 유골함을 안고 화장장을 나섰습니다. "둘이서 걷는 어두운 밤길이 참 서러웠다"고 이 씨는 회상했습니다.

코로나19 사망자 화장 진행 모습 (용인 평온의 숲 제공)
남편의 1주기가 다 되어가지만,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유골함을 놓고 장례를 치르겠다고 해도 받아주는 장례식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자의 장례를 거부하는 장례식장이 속출하자 보건복지부는 2017년 전국 195개 재난 대비 장례식장을 지정했습니다. 다시 찾아온 감염병, 현장에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지적에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 중 ‘국가재난대비 지정장례식장 운영매뉴얼’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국가재난대비 지정 장례식장에 배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장에는 아직 매뉴얼이 배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와 관련 협회 등의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에서 배포가 다소 늦어졌다"며 의견 조율을 마치는대로 매뉴얼을 배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에게 남편 사망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이은희 씨. (KBS 뉴스9) ■③회복

애도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돌아온 건 주변 사람들의 '낙인'이었습니다. 이 씨는 "납골당에 남편의 유골을 안치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옆집에서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웃의 적대적인 시선에 충격을 받은 딸은 극심한 우울증을 얻어 직장도 관뒀습니다.

평소 인복이 많았던 박 씨 아버지의 경우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위로는커녕, 연락을 피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습니다. 뒤늦게 남편의 죽음을 인지한 박 씨 어머니는 대인기피증이 생겼습니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상담 서비스라도 받을까 싶었지만 "이 고통을 누가 이해해주겠나"는 마음에 단념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정부는 코로나19 유족을 '트라우마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상담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1월 31일 기준, 5천 명이 넘는 유족 중 실제 트라우마 상담을 받은 건수는 336건에 그쳤습니다. 이미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시선에 상처를 받은 유족들은 상담조차 우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심민영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장은 "충분히 아파해야만 상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적응해나갈 수가 있는 건데 코로나19 유족의 경우 맘놓고 슬퍼하는 것조 쉽지 않아 애도의 과정 자체가 막혀버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애도도, 장례도, 일상으로의 복귀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코로나 유족들이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심 단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재난은 사람을 가려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로 사망하신 분과 가족은 손가락질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평범한 이웃들인거죠. 나도 그런 이웃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면, 유가족분들이 이 슬픔을 극복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시는데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연관기사] “수의도 못 입히고 보내”…쓸쓸한 ‘코로나 죽음’ (2021.02.23. KBS1TV 뉴스9)

※우울감 등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코로나19 유족 분들은 국가트라우마센터 ☎02-2204-0001~2, 정신건강복지센터 ☎1577-0199에서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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