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지영이 여성들에 보내는 응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해야”

입력 2021.08.15 (21:31) 수정 2021.08.1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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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소설가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재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면 그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모욕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그녀 자신의 말대로 누구도 자신을 발닦개처럼 밟고 가도록 만들지 말아야 했다.

Q.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출간 직후 반응은?

그 당시에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 충격적으로, 센세이셔널 한 이야기였어요.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들 책꽂이에 이 책이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책이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집에 가져갈 수가 없어서. 와이프가 보면 큰일나니까. 딸이 봐도 안되는 책.

Q. '여성주의'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사회주의나 혹은 사회학의 여러 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심지어 제가 이 세상을 해석할 수 있다고도 생각을 했는데, 내가 집 안에 있는 여자와 남자, 집 안에 있는 아내와 남편 하나 해석할 수 없다니 하는 당혹감이 저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죠. 그래서 작가로서는 그것을 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어요. 결혼을 처음 했는데 남자 측에서는 우리 부모님을 장인, 장모 이렇게 부르고, 처남, 처형 이렇게 부르고. 저는 남자 쪽 식구들을 아버님, 어머님, 도련님, 아가씨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랬죠. 이것은 종년의 언어인데, 왜 나는 동등하게 결혼을 한 사람인데, 왜 나에게 이런 용어를 쓰게 하는지, 결혼이란 것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해야 되는 거 아냐? 라고 했는데, 그런 발언을 하고 나서부터 뭇매를 맞기 시작하는데...

노동자든 여자든 흑인이든 제3국인이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저의 모토였기 때문에 여성의 현실, 제가 맞닥뜨린 여성의 현실을 보면서 제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거죠.

Q. 본인의 경험을 소설에 반영했나?

제가 이혼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냈는데 소설 이야기는 하나도 안하고 제 이혼한 이야기만 (기사로) 쓸 정도였어요. 그럴 정도로 이혼이란 것은 사회에서 굉장히 센세이셔널 한 이야기였고, 그걸 심지어 밖으로 드러낸다? 이런 일은 거의 없었을 때여서 한번 이혼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보고 싶었죠.

(주인공) 셋 중의 하나의 고통에 들어가지 않는 여자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것들이 한번도 공식적으로 표명되지 않았을 정도로 닫힌 사회였던 거죠. 그리고 모든 것을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던 그런 사회였기 때문에.

Q. 소설 속 상황 설정이 '극단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전쟁소설을 썼을 때 주인공이 '네가 어떻게 한국전쟁을 이렇게 다 겪나' 이런 비판이랑 비슷한 거예요. 소설을 쓰는데 일부만 쓰고 나머지는 절대 안 겪어, 이렇게 하지는 못하죠. 오히려 그 소설에서 나온 극단적인 상황들이 무색할 정도로 더 다양한 소설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주인공들의 운명이 가혹하다는 반응도 있는데...

그 당시에 제가 느꼈던 여성의 전망이 절망적이었어요. 죽지 않으면 계속되는 모욕 속에서 살아야 한다...절망이니까 희망적으로 그려라가 정답이 아니라 절망을 정확히 드러내면 그 속에 분명히 희망이 생기거든요. 절망이 아니라고 우기는 게 제일 나쁜 것 같아요.

Q. 이 소설 이후, 여성들의 삶은 나아졌나.

'고속도로 화장실 그 때 정말 더러웠어요?' '네, 정말 더러웠거든요. 갈 수가 없을 정도로.' 지금은 상상할 수가 없잖아요. 그게 불과 30년 전이에요. 그런 식으로 비유를 하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빨리 알아들으실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우리가 많이 욕 먹고 논란 일으키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Q. 제목처럼 여성들도 '혼자서' 살아가야 할까.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의 행복을 해결해주기를 원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해결하고 갈 때 연대도 가능한 거죠. 사실 연대란 것이 누구에게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진정으로 혼자서 잘 행복해질 때, 누구를 만나도 행복해지고, 진정으로 혼자서 자기 자신을 헤쳐나갈 때, 연대도 의미가 있는 거죠. 연대라는 것이 누구를 돌보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심진경/문학평론가

결혼이란 것이 연애의 끝이고, 거기가 여성 이야기의 끝이었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본격적으로 결혼 이후에, 사회적 욕망, 주체로서의 욕망을 갖고 있는 여성이 여전히 전업주부를 요구하는 사회와의 갈등을 드러내고, 그것을 서로 다른 3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해서 안정적으로 구성을 했고.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이냐, 결혼 해서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 것이냐, 갈등하고 있었던 당시의 여성 독자들의 갈등 상황들을 대변해주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많은 호응을 얻지 않았나 싶어요.

Q. 명성에 비해 '상 복'은 없었는데...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데, 저는 칭찬에 무지 약해서 누가 계속 칭찬해주면 그 사람이 하라는대로 다 할거예요 아마. 그래서 아 잘됐다, 나를 별로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나는 내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자. 정말 사형제도 언급하고, 세 번 이혼한 엄마 이야기도 언급하고, 장애인 성폭행도 언급하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그 서운함이 엄청난 자유로 바뀌었어요.

Q.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나.

아이들도 다 컸고 제가 시골에 내려왔고 이래서 이제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뭔지 아직 모르겠어요. 그동안 너무 생계를 위해서, 대학 졸업한 해부터 지금까지 글로 먹고 살았거든요. 너무나 쉬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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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공지영이 여성들에 보내는 응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해야”
    • 입력 2021-08-15 21:31:06
    • 수정2021-08-15 21: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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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소설가

누군가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었다면 그 누군가가 다가오기 전에 스스로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재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면 그것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모욕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그녀 자신의 말대로 누구도 자신을 발닦개처럼 밟고 가도록 만들지 말아야 했다.

Q.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출간 직후 반응은?

그 당시에는 이 이야기가 너무나 충격적으로, 센세이셔널 한 이야기였어요.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들 책꽂이에 이 책이 가장 많이 꽂혀 있는 책이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집에 가져갈 수가 없어서. 와이프가 보면 큰일나니까. 딸이 봐도 안되는 책.

Q. '여성주의' 소설을 쓰게 된 동기는?

사회주의나 혹은 사회학의 여러 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심지어 제가 이 세상을 해석할 수 있다고도 생각을 했는데, 내가 집 안에 있는 여자와 남자, 집 안에 있는 아내와 남편 하나 해석할 수 없다니 하는 당혹감이 저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죠. 그래서 작가로서는 그것을 쓰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어요. 결혼을 처음 했는데 남자 측에서는 우리 부모님을 장인, 장모 이렇게 부르고, 처남, 처형 이렇게 부르고. 저는 남자 쪽 식구들을 아버님, 어머님, 도련님, 아가씨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랬죠. 이것은 종년의 언어인데, 왜 나는 동등하게 결혼을 한 사람인데, 왜 나에게 이런 용어를 쓰게 하는지, 결혼이란 것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해야 되는 거 아냐? 라고 했는데, 그런 발언을 하고 나서부터 뭇매를 맞기 시작하는데...

노동자든 여자든 흑인이든 제3국인이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저의 모토였기 때문에 여성의 현실, 제가 맞닥뜨린 여성의 현실을 보면서 제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거죠.

Q. 본인의 경험을 소설에 반영했나?

제가 이혼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냈는데 소설 이야기는 하나도 안하고 제 이혼한 이야기만 (기사로) 쓸 정도였어요. 그럴 정도로 이혼이란 것은 사회에서 굉장히 센세이셔널 한 이야기였고, 그걸 심지어 밖으로 드러낸다? 이런 일은 거의 없었을 때여서 한번 이혼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보고 싶었죠.

(주인공) 셋 중의 하나의 고통에 들어가지 않는 여자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것들이 한번도 공식적으로 표명되지 않았을 정도로 닫힌 사회였던 거죠. 그리고 모든 것을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던 그런 사회였기 때문에.

Q. 소설 속 상황 설정이 '극단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전쟁소설을 썼을 때 주인공이 '네가 어떻게 한국전쟁을 이렇게 다 겪나' 이런 비판이랑 비슷한 거예요. 소설을 쓰는데 일부만 쓰고 나머지는 절대 안 겪어, 이렇게 하지는 못하죠. 오히려 그 소설에서 나온 극단적인 상황들이 무색할 정도로 더 다양한 소설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주인공들의 운명이 가혹하다는 반응도 있는데...

그 당시에 제가 느꼈던 여성의 전망이 절망적이었어요. 죽지 않으면 계속되는 모욕 속에서 살아야 한다...절망이니까 희망적으로 그려라가 정답이 아니라 절망을 정확히 드러내면 그 속에 분명히 희망이 생기거든요. 절망이 아니라고 우기는 게 제일 나쁜 것 같아요.

Q. 이 소설 이후, 여성들의 삶은 나아졌나.

'고속도로 화장실 그 때 정말 더러웠어요?' '네, 정말 더러웠거든요. 갈 수가 없을 정도로.' 지금은 상상할 수가 없잖아요. 그게 불과 30년 전이에요. 그런 식으로 비유를 하는 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빨리 알아들으실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 우리가 많이 욕 먹고 논란 일으키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Q. 제목처럼 여성들도 '혼자서' 살아가야 할까.

누군가가 다가와서 나의 행복을 해결해주기를 원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해결하고 갈 때 연대도 가능한 거죠. 사실 연대란 것이 누구에게 의존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진정으로 혼자서 잘 행복해질 때, 누구를 만나도 행복해지고, 진정으로 혼자서 자기 자신을 헤쳐나갈 때, 연대도 의미가 있는 거죠. 연대라는 것이 누구를 돌보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심진경/문학평론가

결혼이란 것이 연애의 끝이고, 거기가 여성 이야기의 끝이었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본격적으로 결혼 이후에, 사회적 욕망, 주체로서의 욕망을 갖고 있는 여성이 여전히 전업주부를 요구하는 사회와의 갈등을 드러내고, 그것을 서로 다른 3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해서 안정적으로 구성을 했고.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이냐, 결혼 해서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 것이냐, 갈등하고 있었던 당시의 여성 독자들의 갈등 상황들을 대변해주는 소설이었기 때문에 많은 호응을 얻지 않았나 싶어요.

Q. 명성에 비해 '상 복'은 없었는데...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데, 저는 칭찬에 무지 약해서 누가 계속 칭찬해주면 그 사람이 하라는대로 다 할거예요 아마. 그래서 아 잘됐다, 나를 별로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나는 내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자. 정말 사형제도 언급하고, 세 번 이혼한 엄마 이야기도 언급하고, 장애인 성폭행도 언급하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어느 순간 그 서운함이 엄청난 자유로 바뀌었어요.

Q.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나.

아이들도 다 컸고 제가 시골에 내려왔고 이래서 이제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뭔지 아직 모르겠어요. 그동안 너무 생계를 위해서, 대학 졸업한 해부터 지금까지 글로 먹고 살았거든요. 너무나 쉬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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