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구간단속 구간을 150km로 달린다고?

입력 2021.09.20 (07:01) 수정 2021.09.20 (07: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구간단속은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처음 구간단속 지점을 지나면서 "아이디어 정말 좋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만 급하게 속도를 줄이는 '캥거루 운전'을 막아 우리 운전 문화 전반에 변화를 가져온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속 구간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곳이 전국에 수십 곳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의아했습니다. 실제 그런지 확인하러 가봤습니다.

■ 의도야 없었겠지만, 굳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일부러 그런 구간에 설치하진 않았을 겁니다. 대전시 서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호남고속도로 지선' 이야기입니다.

취재진은 유성 나들목(IC)을 통해 이 도로의 상행선에 진입했습니다. 분명 구간단속 구간인데도 평소와 달리 네비게이션에는 구간단속 알림이 뜨지 않습니다.

단속 시작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차량이니 당연히 단속대상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달리던 차들은 그야말로 열심히 '규정 속도' 지켜가며 주행하고 있는데, 중간에 들어온 차가 옆에서 쌩쌩 달리니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 졸음쉼터에서 만난 운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정규속도로 가는데, 뒤에서 쉬었다 오는사람은 저와 속도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평균으로 하는 거니깐. 그렇게 되면 속도 좀 천천히 가다보니깐 (새로 진입해서) 빨리 오는 사람들은 뒤에서 쪼아대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분기점(JC)까지 있습니다. 과속하다 여기로 빠져나가면 마지막 카메라를 또 피하게 되는 셈입니다.


여기에 ' 졸음쉼터' 2곳도 구간 내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쉼터에 쉬는 건 분명 필요하지만, 여기 머무는 시간만큼 이후 구간 단속에 영향을 끼칩니다. 시작점과 끝점의 시간으로 속도를 계산하니까요.

이런 '회피가능시설'이 1곳 이상 포함된 곳이 전국 고속도로 36곳에 있습니다. 전체 구간단속 지점의 약 40%에 해당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악용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 "휴게소에서 쉬고 간다"… 인터넷엔 '꿀팁' 공유까지

2006년 대형 추돌사고가 발생한 서해대교 구간, 기억하실 겁니다. 이후 이곳도 구간단속 카메라가 설치됐습니다.

그런데, 다리 중간에 휴게소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구간만 나오면 담배도 피우고 화장실도 다녀온다며 단속을 조롱하는 글까지 보입니다. 실제 이곳에서 만난 운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의 (단속에) 안 걸리죠. 150~200km 밟아도 5분만 쉬었다 가도 시간은 정확히 충분하니까…"

"그냥 돈 낭비? 세금 낭비? 쉴 (수 있다는) 메리트도 크고 구간단속 여기 뭐하러 되어있지 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 잠깐 쉬고 가면 좋은거 아니야?…문제는 '악용'

뉴스가 나간 이후 인터넷 기사 댓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질문 주셨습니다. 먼저, 휴게소나 졸음쉼터에서 잠깐 쉬고 회피해 가면 그거 나름대로 좋은거 아니야? 라고 물어봐 주셨습니다. 휴게소와 졸음쉼터는 꼭 필요합니다. 기사도 구간 단속 내에 해당 시설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는 아닙니다.

문제는 악용입니다. 쉬고 나가는 차들이 잘 쉬고, 속도도 규정대로 지키며 이동한다면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그런데 단속 대상이 되지 않는 걸 이미 인지한 차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구간단속 내에서 버젓이 과속을 한다는게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그 차들은 꽤 시간을 보냈으니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과속하는 차들이 뭣 하러 휴게소에 들어가서 쉬고 가느냐? 라고도 물어봐 주셨습니다. 상당수 장거리 운전자가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화장실 이용이나 음식 구입 또는 휴식을 목적으로 1번 정도 휴게소에 들르곤 합니다.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왕 갈 휴게소, 여기 와서 쉬고 간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실제 인터넷에선 구간단속과 관련해 이런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쭉 밟다가 휴게소 들렸다가 다시 쭉 달리는거 꿀이었는데.."

"중간에 휴게소가 있는데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차들은 거의 열에 아홉은 과속을 하더라고요."


■ 그런데 23곳이나 더 만든다고?…이왕 설치할거 제대로

그런데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이런 회피가능시설이 1곳 이상 포함된 구간단속 지점이 앞으로 23곳이나 더 생길 예정이라고 합니다. 전체 설치예정구간이 39곳인데, 이 중 60%를 차지하는 겁니다.

결국, 세금으로 설치하는 구간단속 카메라인데, 이런 문제점이 있다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설치 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요? 또, 현재 문제로 지적되는 지점이 있다면 고정식 또는 이동식 카메라를 보완 설치하는 등의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겁니다.

졸음쉼터와 휴게소는 안전운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입니다. 문제는 안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을 악용해 역설적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구간단속 구간을 150km로 달린다고?
    • 입력 2021-09-20 07:01:03
    • 수정2021-09-20 07:02:58
    취재후·사건후

구간단속은 분명 효과가 있습니다. 처음 구간단속 지점을 지나면서 "아이디어 정말 좋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만 급하게 속도를 줄이는 '캥거루 운전'을 막아 우리 운전 문화 전반에 변화를 가져온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속 구간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곳이 전국에 수십 곳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의아했습니다. 실제 그런지 확인하러 가봤습니다.

■ 의도야 없었겠지만, 굳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일부러 그런 구간에 설치하진 않았을 겁니다. 대전시 서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호남고속도로 지선' 이야기입니다.

취재진은 유성 나들목(IC)을 통해 이 도로의 상행선에 진입했습니다. 분명 구간단속 구간인데도 평소와 달리 네비게이션에는 구간단속 알림이 뜨지 않습니다.

단속 시작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차량이니 당연히 단속대상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달리던 차들은 그야말로 열심히 '규정 속도' 지켜가며 주행하고 있는데, 중간에 들어온 차가 옆에서 쌩쌩 달리니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 졸음쉼터에서 만난 운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정규속도로 가는데, 뒤에서 쉬었다 오는사람은 저와 속도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평균으로 하는 거니깐. 그렇게 되면 속도 좀 천천히 가다보니깐 (새로 진입해서) 빨리 오는 사람들은 뒤에서 쪼아대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분기점(JC)까지 있습니다. 과속하다 여기로 빠져나가면 마지막 카메라를 또 피하게 되는 셈입니다.


여기에 ' 졸음쉼터' 2곳도 구간 내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쉼터에 쉬는 건 분명 필요하지만, 여기 머무는 시간만큼 이후 구간 단속에 영향을 끼칩니다. 시작점과 끝점의 시간으로 속도를 계산하니까요.

이런 '회피가능시설'이 1곳 이상 포함된 곳이 전국 고속도로 36곳에 있습니다. 전체 구간단속 지점의 약 40%에 해당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악용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 "휴게소에서 쉬고 간다"… 인터넷엔 '꿀팁' 공유까지

2006년 대형 추돌사고가 발생한 서해대교 구간, 기억하실 겁니다. 이후 이곳도 구간단속 카메라가 설치됐습니다.

그런데, 다리 중간에 휴게소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구간만 나오면 담배도 피우고 화장실도 다녀온다며 단속을 조롱하는 글까지 보입니다. 실제 이곳에서 만난 운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의 (단속에) 안 걸리죠. 150~200km 밟아도 5분만 쉬었다 가도 시간은 정확히 충분하니까…"

"그냥 돈 낭비? 세금 낭비? 쉴 (수 있다는) 메리트도 크고 구간단속 여기 뭐하러 되어있지 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 잠깐 쉬고 가면 좋은거 아니야?…문제는 '악용'

뉴스가 나간 이후 인터넷 기사 댓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질문 주셨습니다. 먼저, 휴게소나 졸음쉼터에서 잠깐 쉬고 회피해 가면 그거 나름대로 좋은거 아니야? 라고 물어봐 주셨습니다. 휴게소와 졸음쉼터는 꼭 필요합니다. 기사도 구간 단속 내에 해당 시설을 없애야 한다는 취지는 아닙니다.

문제는 악용입니다. 쉬고 나가는 차들이 잘 쉬고, 속도도 규정대로 지키며 이동한다면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그런데 단속 대상이 되지 않는 걸 이미 인지한 차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구간단속 내에서 버젓이 과속을 한다는게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그 차들은 꽤 시간을 보냈으니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됩니다.

과속하는 차들이 뭣 하러 휴게소에 들어가서 쉬고 가느냐? 라고도 물어봐 주셨습니다. 상당수 장거리 운전자가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화장실 이용이나 음식 구입 또는 휴식을 목적으로 1번 정도 휴게소에 들르곤 합니다.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왕 갈 휴게소, 여기 와서 쉬고 간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실제 인터넷에선 구간단속과 관련해 이런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쭉 밟다가 휴게소 들렸다가 다시 쭉 달리는거 꿀이었는데.."

"중간에 휴게소가 있는데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차들은 거의 열에 아홉은 과속을 하더라고요."


■ 그런데 23곳이나 더 만든다고?…이왕 설치할거 제대로

그런데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이런 회피가능시설이 1곳 이상 포함된 구간단속 지점이 앞으로 23곳이나 더 생길 예정이라고 합니다. 전체 설치예정구간이 39곳인데, 이 중 60%를 차지하는 겁니다.

결국, 세금으로 설치하는 구간단속 카메라인데, 이런 문제점이 있다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설치 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요? 또, 현재 문제로 지적되는 지점이 있다면 고정식 또는 이동식 카메라를 보완 설치하는 등의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겁니다.

졸음쉼터와 휴게소는 안전운전을 위해 꼭 필요한 공간입니다. 문제는 안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을 악용해 역설적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