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마’ 윤흥길 작가 “남북 화해의 길에 문학으로 기여했기를…”

입력 2022.01.02 (21:30) 수정 2022.01.0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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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소설가

Q. 소설 제목을 ‘장마’라 붙인 특별한 이유?

한국전쟁의 비극이나 불행, 모든 사람을 간섭하고 억압하고 불행 속으로 몰아넣는 이 전쟁 기간을 장마 기간으로 설정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계속 비가 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지고, 불행을 겪고, 일상생활에서 신음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설정하기 위한 방편으로 장마를 중요한 소재로 했고, 또 제목으로 삼고 그랬습니다.

Q. 두 가족의 비극은 실제로 있었던 일?

(소설에 나오는) 외가가 저희 외가 쪽 이야기에요. 장교로 참전해 가지고 김화지구에서 전사한 외삼촌이 어린 시절에 제 영웅이었어요. 외삼촌처럼 나도 닮아서 저렇게 잘 크겠다... 아주 똑똑하고 매력적인 남자였는데, 그 외삼촌이 전사해가지고 전사통지서를 받는 날 제가 외갓집에 가 있다가 외할아버지가 전사통지받고 그냥 절망에 빠지는 모습, 외할머니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기절하는 모습, 이런 거를 제가 직접 목격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6.25 때문에 저희 외가가 자손도 없이 그냥 사라져 버렸죠. 그 외가의 비극이 이제 소설 속에서 외가 쪽 이야기로 많이 편입돼 있고, 그다음에 친가 쪽 이야기는 저하고 아주 친한 시인이 있어요. 이 시인의 집안 이야기가 많이 편입되어 있죠. 그래서 특히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점쟁이가 예언한 날, 그날 아버지는 안 돌아오고 커다란 구렁이가 집안으로 들어온 사건, 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낚시 같이 갔다가 듣고, 두 집안 이야기를 한 공간에 몰아넣어서 장마기간 동안을 나타낸 거죠.

Q. 집필 당시에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그때가 사실은 그 반공, 반공주의가 나라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하던 시기였는데, 이걸 쓰는데 사실은 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어요. 써서 잘못되는 거 아닌가, 써야 되는가 고민도 했었고. 그걸 피하기 위한 방법이 화자를 어린아이로 두는 거였어요. 어린아이가 철부지 철없는, 좌우익 이념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순수하게 들어오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거를 서술해 놓는다면 뭔가 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래가지고 의도적으로 어린아이 시점을 차용을 하게 되었고. 마침 소설이 완성됐을 때, 73년도에 남북 간에 화해 분위기가 생겼어요. 이후락이, 이후락 씨가 북한에 비밀리에 다녀와가지고 남북합의서도 발표하고 그러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풀리는 시기였죠. 그래가지고 이때다 해가지고 <장마를> 발표를 하게 됐어요.

Q. 분단을 다뤄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나?

제가 태어나가지고 자라는 과정에서 최초로 사회적 자아가 싹트기 시작한 게 6·25예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제 6·25를 만났는데 그때 받은, 어린 마음에 받은 엄청난 충격, 그리고 이제 이어서 집안 외가 쪽에 찾아온 전쟁 비극, 이런 것들 때문에 모든, 그전까지는 이제 뭐 집안 식구들하고 학교 친구들 고것이 세계의 전부였는데,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제 시작이 됐죠, 그때부터. 그래가지고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살 때 겪는 여러가지 신산고초 이런 것들이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 보면 결국은 6·25더라고요.

Q. 구렁이 설화를 해법으로 제시한 이유는?

샤머니즘 가지고 무슨 뭐 민간 신앙을 내세워서 독자들을 믿게 만든다든지 그런 거는 전혀 아니고. 다만 남과 북이 반세기가 넘어서 이제 100년을 향해서 가고 있잖아요. 그동안에 장구한 세월 분단에 의해서 남과 북이 한민족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이민족처럼 이질화의 길을 걷고 있잖아요.

외국산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분단돼가지고 오랜 세월 이질화의 길을 걷고 있는 남과 북이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그거는 분단되기 이전에 남과 북이 공유했던 어떤 전통, 풍습, 신앙 이런 것들을 되새기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켜나가는 작업을 통해서 (악) 우리가 이민족이 아니고 한민족이었다는 거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거, 이것이 문학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일에 대한 기여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Q. <장마>는 작가님께 어떤 작품?

<장마>가 저한테 중요한 이유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외가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고, 어린 시절에 사회적 자아가 최초로 눈 뜨기 시작할 무렵에 겪었던 전쟁의 기억들 역시 많이 담겨 있고, 또 가장 친한 친구의 집안의 일화가 또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이런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장마>가 애착이 갈 수밖에 없고, 저한테 가장 내세울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장편 <문신>을 3권까지 낸 뒤 소식이 없는데?

문학잡지 연재 지면이 두 번이나 폐간이 되고, 그래가지고 작품 연재가 중단되고, 또 연재 고료 없으면 먹고 살길이 막연하니까 또 딴 작품을 손을 대게, 그 작품을 중단하고 딴 작품을 손대게 되고, 그러고 그동안에 결정적으로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진 기간도 또 여러 번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이런저런 풍파를 많이 겪으면서 어렵게 이제 세 권까지 내고 4권째 한참 쓰고 있는데 또 건강에 문제가 생겨가지고 중단하면서 작품이 늦어지고. 여러 가지로 어떻게 보면 불운하고 어떻게 보면 시련이 많고 그래서 이 작품이 완간돼서 나온다면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지금 4권은 원고가 끝난 상태고 5권에 들어가면서 중단했다가 지금 또 이제 시작을 하고 있어요. 근데 아직은 오래 쉬어 가지고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인데 그러다보면 또 발동이 걸리겠죠.

Q. 우리가 과거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과거를 안다는 거는 현재를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의 현재의 삶을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치는 그런 것들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6·25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더 올라가면 일제강점기가 또 자리 잡고 있고. 그런데 작가가 작품으로, 작품의 소재로 선택할 때 제일 좋은 것이 자기가 잘 아는 세계, 자기가 잘 겪은 세계, 이거를 작품으로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저는 믿고 있는 편이에요.

할머니의 긴 일생 가운데서, 어떻게 생각하면,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그러고도 놀라운 기력으로 며칠 동안이나 식구들을 들볶아대면서 삼촌을 기다리던 그 짤막한 기간이 사실은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 한 순간을 확 타오르는 촛불의 찬란함과 맞먹는, 할머니에겐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에 넘치던 시간이었나 보다. 임종의 자리에서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내 지난날을 모두 용서해 주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할머니의 모든 걸 용서했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Q. 소설을 읽어가려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독서의 기능이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뭐 위안을 위한 독서든 오락을 위한 독서든 깨달음을 위한 독서든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소설 독서의 경우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반영물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서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나와 동시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그런 암시같은 것이 소설에 많이 들어있어요. 물론 순수한 오락이나 재미를 위한 독서도 있지만. 그래서 디지털이 판을 치는 시대일수록 아날로그 형식의 독서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편집: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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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장마’ 윤흥길 작가 “남북 화해의 길에 문학으로 기여했기를…”
    • 입력 2022-01-02 21:30:15
    • 수정2022-01-02 2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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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소설가

Q. 소설 제목을 ‘장마’라 붙인 특별한 이유?

한국전쟁의 비극이나 불행, 모든 사람을 간섭하고 억압하고 불행 속으로 몰아넣는 이 전쟁 기간을 장마 기간으로 설정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계속 비가 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해지고, 불행을 겪고, 일상생활에서 신음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설정하기 위한 방편으로 장마를 중요한 소재로 했고, 또 제목으로 삼고 그랬습니다.

Q. 두 가족의 비극은 실제로 있었던 일?

(소설에 나오는) 외가가 저희 외가 쪽 이야기에요. 장교로 참전해 가지고 김화지구에서 전사한 외삼촌이 어린 시절에 제 영웅이었어요. 외삼촌처럼 나도 닮아서 저렇게 잘 크겠다... 아주 똑똑하고 매력적인 남자였는데, 그 외삼촌이 전사해가지고 전사통지서를 받는 날 제가 외갓집에 가 있다가 외할아버지가 전사통지받고 그냥 절망에 빠지는 모습, 외할머니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기절하는 모습, 이런 거를 제가 직접 목격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6.25 때문에 저희 외가가 자손도 없이 그냥 사라져 버렸죠. 그 외가의 비극이 이제 소설 속에서 외가 쪽 이야기로 많이 편입돼 있고, 그다음에 친가 쪽 이야기는 저하고 아주 친한 시인이 있어요. 이 시인의 집안 이야기가 많이 편입되어 있죠. 그래서 특히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점쟁이가 예언한 날, 그날 아버지는 안 돌아오고 커다란 구렁이가 집안으로 들어온 사건, 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낚시 같이 갔다가 듣고, 두 집안 이야기를 한 공간에 몰아넣어서 장마기간 동안을 나타낸 거죠.

Q. 집필 당시에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그때가 사실은 그 반공, 반공주의가 나라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하던 시기였는데, 이걸 쓰는데 사실은 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어요. 써서 잘못되는 거 아닌가, 써야 되는가 고민도 했었고. 그걸 피하기 위한 방법이 화자를 어린아이로 두는 거였어요. 어린아이가 철부지 철없는, 좌우익 이념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순수하게 들어오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거를 서술해 놓는다면 뭔가 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래가지고 의도적으로 어린아이 시점을 차용을 하게 되었고. 마침 소설이 완성됐을 때, 73년도에 남북 간에 화해 분위기가 생겼어요. 이후락이, 이후락 씨가 북한에 비밀리에 다녀와가지고 남북합의서도 발표하고 그러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풀리는 시기였죠. 그래가지고 이때다 해가지고 <장마를> 발표를 하게 됐어요.

Q. 분단을 다뤄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나?

제가 태어나가지고 자라는 과정에서 최초로 사회적 자아가 싹트기 시작한 게 6·25예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제 6·25를 만났는데 그때 받은, 어린 마음에 받은 엄청난 충격, 그리고 이제 이어서 집안 외가 쪽에 찾아온 전쟁 비극, 이런 것들 때문에 모든, 그전까지는 이제 뭐 집안 식구들하고 학교 친구들 고것이 세계의 전부였는데,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제 시작이 됐죠, 그때부터. 그래가지고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살 때 겪는 여러가지 신산고초 이런 것들이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 보면 결국은 6·25더라고요.

Q. 구렁이 설화를 해법으로 제시한 이유는?

샤머니즘 가지고 무슨 뭐 민간 신앙을 내세워서 독자들을 믿게 만든다든지 그런 거는 전혀 아니고. 다만 남과 북이 반세기가 넘어서 이제 100년을 향해서 가고 있잖아요. 그동안에 장구한 세월 분단에 의해서 남과 북이 한민족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이민족처럼 이질화의 길을 걷고 있잖아요.

외국산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분단돼가지고 오랜 세월 이질화의 길을 걷고 있는 남과 북이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그거는 분단되기 이전에 남과 북이 공유했던 어떤 전통, 풍습, 신앙 이런 것들을 되새기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켜나가는 작업을 통해서 (악) 우리가 이민족이 아니고 한민족이었다는 거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거, 이것이 문학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일에 대한 기여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Q. <장마>는 작가님께 어떤 작품?

<장마>가 저한테 중요한 이유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외가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고, 어린 시절에 사회적 자아가 최초로 눈 뜨기 시작할 무렵에 겪었던 전쟁의 기억들 역시 많이 담겨 있고, 또 가장 친한 친구의 집안의 일화가 또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이런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장마>가 애착이 갈 수밖에 없고, 저한테 가장 내세울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장편 <문신>을 3권까지 낸 뒤 소식이 없는데?

문학잡지 연재 지면이 두 번이나 폐간이 되고, 그래가지고 작품 연재가 중단되고, 또 연재 고료 없으면 먹고 살길이 막연하니까 또 딴 작품을 손을 대게, 그 작품을 중단하고 딴 작품을 손대게 되고, 그러고 그동안에 결정적으로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진 기간도 또 여러 번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이런저런 풍파를 많이 겪으면서 어렵게 이제 세 권까지 내고 4권째 한참 쓰고 있는데 또 건강에 문제가 생겨가지고 중단하면서 작품이 늦어지고. 여러 가지로 어떻게 보면 불운하고 어떻게 보면 시련이 많고 그래서 이 작품이 완간돼서 나온다면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지금 4권은 원고가 끝난 상태고 5권에 들어가면서 중단했다가 지금 또 이제 시작을 하고 있어요. 근데 아직은 오래 쉬어 가지고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인데 그러다보면 또 발동이 걸리겠죠.

Q. 우리가 과거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과거를 안다는 거는 현재를 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의 현재의 삶을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치는 그런 것들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6·25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더 올라가면 일제강점기가 또 자리 잡고 있고. 그런데 작가가 작품으로, 작품의 소재로 선택할 때 제일 좋은 것이 자기가 잘 아는 세계, 자기가 잘 겪은 세계, 이거를 작품으로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저는 믿고 있는 편이에요.

할머니의 긴 일생 가운데서, 어떻게 생각하면,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고 그러고도 놀라운 기력으로 며칠 동안이나 식구들을 들볶아대면서 삼촌을 기다리던 그 짤막한 기간이 사실은 꺼지기 직전에 마지막 한 순간을 확 타오르는 촛불의 찬란함과 맞먹는, 할머니에겐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에 넘치던 시간이었나 보다. 임종의 자리에서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내 지난날을 모두 용서해 주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할머니의 모든 걸 용서했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Q. 소설을 읽어가려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독서의 기능이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뭐 위안을 위한 독서든 오락을 위한 독서든 깨달음을 위한 독서든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소설 독서의 경우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반영물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서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나와 동시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그런 암시같은 것이 소설에 많이 들어있어요. 물론 순수한 오락이나 재미를 위한 독서도 있지만. 그래서 디지털이 판을 치는 시대일수록 아날로그 형식의 독서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편집: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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