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노역과 폭행·강제 결혼까지…1960년대 서산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22.08.21 (08:00) 수정 2022.08.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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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서산개척단 활동 모습1960년대 서산개척단 활동 모습

노역과 폭행, 강제 결혼까지... 국가가 행한 인권침해

60여 년 전 충남 서산. 평범한 시민 800여 명이 강제로 국가에 동원돼, 흙과 돌로 바다를 메워 농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루하루 계속되는 고된 노역. 감시대원들은 이들을 매일같이 폭행했고, 숨진 사람도 나왔습니다. 국가는 이들에게 일한 대가를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서산 개척단'의 이야기입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5월 '서산 개척단'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인권침해를 인정했습니다. 국가의 집단 인권침해 사건 가운데, 첫 '진실 규명'입니다.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 진화위의 결정문에는 '서산 개척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생히 담겨있습니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이주정착의 근거로 '경찰에 단속되어 수용시설에 임시 보호 중에 있는 걸인 등 근로 능력이 있는 남자 약 450명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지시에 의해 이주 정착 시킨다고 하였다(1961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문건에서 확인).

보건사회부는 충남 서산군 인지면 모월리 지역에 정착지를 설정하고, 부랑아 천 명을 정착시킬 계획을 세웠다.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서산 개척단'이 국가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근거입니다. 하지만 처음 보건사회부의 계획과 달리, 개척단은 부랑인들로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수를 맞추려 평범한 시민들이 강제로 끌려오기도 했습니다. 일하면 땅을 준단 말에 속아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김00/ 마산역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개척단 간부들이 강제로 개척단으로 데려감
황00/ 일을 하면 땅을 주겠다는 단장의 단원 모집 설명을 듣고, 가족 5명이 입소함
손00/ 서울역 앞 병원 구두닦이로 생활을 하다, 새벽에 경찰과 군인들이 들이닥쳐 강제로 끌고 감
송00/ 아버지와 함께 대전역에 갔다 경찰 제복을 입고 카빈 소총을 멘 사람 2명에 의해 끌려감
이00/ 대전역에서 기차가 1시간 연착돼 기다리고 있는데, 순경이 아무 이유도 없이 끌고 감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이렇게 끌려 간 서산. 하루 12시간씩 삽으로 바다를 메우는 노역이 이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도망치려 하면, 감시단은 단원들을 가차 없이 때렸고 사망 사고도 속출했습니다.

"감독관이 아버지를 곡괭이 자루로 수 십 대를 때렸다. 쓰러져서 의무실에 실려 갔는데 그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행정반에 근무한 사람이 아버지는 맞아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알려줬다"

"감독관이 말로 지시하면, 연대장이나 대대장이 도망치다 잡혀 온 사람을 엄청나게 때렸다. 맞은 사람은 의무실에 실려 가서 약도 없으니 앓다가 많이 죽었다고 들었다. 장례도 없이 그냥 가마니에 싸서 공동묘지에 묻었다."

"일할 때면 간부 1명이 단원 5~6명을 맡아서 감시했다. 일을 열심히 안 하면 간부들이 곡괭이 자루로 엄청 때렸다."

"집마다 작업 할당량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여자, 노인 아이들 할 것 없이 나가서 리어카를 끌고 돌을 나르는 일을 했다. 어린 애들이 보리밥 한 그릇을 먹고 일하다 땡볕에 쓰러지곤 했다"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개척단원 진술

농지 개간 현황 등을 담은 서산군 문건농지 개간 현황 등을 담은 서산군 문건

국가는 개척 단원들을 강제 결혼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교화'시키겠다는 명목이었는데, 속뜻은 함부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합동결혼식은 개척단을 교화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가족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보사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서울시와 충청남도는 개척단 단원들과 여성들의 결혼을 주선하여 2차에 걸쳐 350쌍을 결혼시켜 개척단에 정착하게 하였다(내무부 문건서 확인).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화위는 개척단원들의 피해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산 개척단'은 국가기관이 국민의 인권을 총체적으로 침해한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피해자들이 동의 없이 개척단으로 이송돼 강제수용됐고, 간부들에 의해 감시 및 통제를 당하고 자유를 구속받은 사실을 60여 년 만에 공식 확인한 겁니다.

국가는 중대한 인권을 침해한 점에 대해서 개척단원으로서의 신청인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에 대한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강제 노동에 대해서는 토지가치 증가분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시행해야 한다.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 60년째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정부…진화위 권고도 무용지물

하지만 이런 진화위의 '권고'. 하나도 실현되지 못하고 '권고'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권고 사항을 이행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접수를 한 달째 미루는 상황. 개척단원들은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진화위의 권고를 이행할 인력이 부족합니다. 진화위 활동기간이 끝날 때 (2024년) 종합보고서를 만듭니다. 그 때 권고 사항이 모두 몇 건인지 확인을 하고 (인력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 행정안전부 관계자

[연관 기사] 과거사 ‘1.5%’ 결론…권고 통지에도 행안부 한 달째 ‘묵묵부답’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36364

KBS 보도 이후, 행정안전부는 "진화위 과거사 권고사항 이행절차에 따라, 과거사 권고사항을 이행 관리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다만 "진화위 활동이 종료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종합보고서를 작성하고, 종합 보고서의 권고사항은 행안부로 이관해, 과거사 권고 사항을 이행 관리하게 돼 있다"며 "행안부 권고사항 이행관리 대상은 진화위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 작성하는 종합 보고서의 권고 사항"이라고 했습니다.

또 진화위의 권고 사항 통지는 이런 이행절차에 맞지 않아, 반송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셈인데, 서산개척단 피해자들은 하루가 급합니다.

"개척단에 끌려가서 맞아서 골병 들은 것이 지금까지 낫지 않고 있어요. 살아있을 때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줬으면 하는데요. 국가에서 말로만 잘못했다고만 하고,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우리한테 말해준 게 하나도 없어요." 20대에 서산에 끌려와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성재용 씨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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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노역과 폭행·강제 결혼까지…1960년대 서산에서 무슨 일이?
    • 입력 2022-08-21 08:00:16
    • 수정2022-08-21 08:01:11
    취재후·사건후
1960년대 서산개척단 활동 모습
노역과 폭행, 강제 결혼까지... 국가가 행한 인권침해

60여 년 전 충남 서산. 평범한 시민 800여 명이 강제로 국가에 동원돼, 흙과 돌로 바다를 메워 농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루하루 계속되는 고된 노역. 감시대원들은 이들을 매일같이 폭행했고, 숨진 사람도 나왔습니다. 국가는 이들에게 일한 대가를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서산 개척단'의 이야기입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5월 '서산 개척단'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인권침해를 인정했습니다. 국가의 집단 인권침해 사건 가운데, 첫 '진실 규명'입니다.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 진화위의 결정문에는 '서산 개척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생히 담겨있습니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이주정착의 근거로 '경찰에 단속되어 수용시설에 임시 보호 중에 있는 걸인 등 근로 능력이 있는 남자 약 450명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지시에 의해 이주 정착 시킨다고 하였다(1961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문건에서 확인).

보건사회부는 충남 서산군 인지면 모월리 지역에 정착지를 설정하고, 부랑아 천 명을 정착시킬 계획을 세웠다.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서산 개척단'이 국가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근거입니다. 하지만 처음 보건사회부의 계획과 달리, 개척단은 부랑인들로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수를 맞추려 평범한 시민들이 강제로 끌려오기도 했습니다. 일하면 땅을 준단 말에 속아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김00/ 마산역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개척단 간부들이 강제로 개척단으로 데려감
황00/ 일을 하면 땅을 주겠다는 단장의 단원 모집 설명을 듣고, 가족 5명이 입소함
손00/ 서울역 앞 병원 구두닦이로 생활을 하다, 새벽에 경찰과 군인들이 들이닥쳐 강제로 끌고 감
송00/ 아버지와 함께 대전역에 갔다 경찰 제복을 입고 카빈 소총을 멘 사람 2명에 의해 끌려감
이00/ 대전역에서 기차가 1시간 연착돼 기다리고 있는데, 순경이 아무 이유도 없이 끌고 감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이렇게 끌려 간 서산. 하루 12시간씩 삽으로 바다를 메우는 노역이 이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거나 도망치려 하면, 감시단은 단원들을 가차 없이 때렸고 사망 사고도 속출했습니다.

"감독관이 아버지를 곡괭이 자루로 수 십 대를 때렸다. 쓰러져서 의무실에 실려 갔는데 그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행정반에 근무한 사람이 아버지는 맞아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알려줬다"

"감독관이 말로 지시하면, 연대장이나 대대장이 도망치다 잡혀 온 사람을 엄청나게 때렸다. 맞은 사람은 의무실에 실려 가서 약도 없으니 앓다가 많이 죽었다고 들었다. 장례도 없이 그냥 가마니에 싸서 공동묘지에 묻었다."

"일할 때면 간부 1명이 단원 5~6명을 맡아서 감시했다. 일을 열심히 안 하면 간부들이 곡괭이 자루로 엄청 때렸다."

"집마다 작업 할당량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여자, 노인 아이들 할 것 없이 나가서 리어카를 끌고 돌을 나르는 일을 했다. 어린 애들이 보리밥 한 그릇을 먹고 일하다 땡볕에 쓰러지곤 했다"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개척단원 진술

농지 개간 현황 등을 담은 서산군 문건
국가는 개척 단원들을 강제 결혼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교화'시키겠다는 명목이었는데, 속뜻은 함부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합동결혼식은 개척단을 교화하고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가족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보사부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서울시와 충청남도는 개척단 단원들과 여성들의 결혼을 주선하여 2차에 걸쳐 350쌍을 결혼시켜 개척단에 정착하게 하였다(내무부 문건서 확인).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화위는 개척단원들의 피해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산 개척단'은 국가기관이 국민의 인권을 총체적으로 침해한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피해자들이 동의 없이 개척단으로 이송돼 강제수용됐고, 간부들에 의해 감시 및 통제를 당하고 자유를 구속받은 사실을 60여 년 만에 공식 확인한 겁니다.

국가는 중대한 인권을 침해한 점에 대해서 개척단원으로서의 신청인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에 대한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는 강제 노동에 대해서는 토지가치 증가분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시행해야 한다.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 결정문 中


■ 60년째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정부…진화위 권고도 무용지물

하지만 이런 진화위의 '권고'. 하나도 실현되지 못하고 '권고'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권고 사항을 이행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접수를 한 달째 미루는 상황. 개척단원들은 무엇을 더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진화위의 권고를 이행할 인력이 부족합니다. 진화위 활동기간이 끝날 때 (2024년) 종합보고서를 만듭니다. 그 때 권고 사항이 모두 몇 건인지 확인을 하고 (인력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 행정안전부 관계자

[연관 기사] 과거사 ‘1.5%’ 결론…권고 통지에도 행안부 한 달째 ‘묵묵부답’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36364

KBS 보도 이후, 행정안전부는 "진화위 과거사 권고사항 이행절차에 따라, 과거사 권고사항을 이행 관리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다만 "진화위 활동이 종료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종합보고서를 작성하고, 종합 보고서의 권고사항은 행안부로 이관해, 과거사 권고 사항을 이행 관리하게 돼 있다"며 "행안부 권고사항 이행관리 대상은 진화위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 작성하는 종합 보고서의 권고 사항"이라고 했습니다.

또 진화위의 권고 사항 통지는 이런 이행절차에 맞지 않아, 반송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셈인데, 서산개척단 피해자들은 하루가 급합니다.

"개척단에 끌려가서 맞아서 골병 들은 것이 지금까지 낫지 않고 있어요. 살아있을 때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줬으면 하는데요. 국가에서 말로만 잘못했다고만 하고,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우리한테 말해준 게 하나도 없어요." 20대에 서산에 끌려와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성재용 씨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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