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론스타ISDS]⑩ 태평양 같은 변호사들이 ICSID(정부)·ICC(하나금융)도 대리…문제 없나?

입력 2022.09.23 (12:03) 수정 2022.09.2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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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와 정부 간 분쟁(ICSID)과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분쟁(ICC)에서 법무법인 태평양의 동일한 변호사들이 정부와 하나금융을 동시에 대리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욱이 두 분쟁은 중재가 진행되는 기간이 중복됩니다. 론스타와 정부 간 ICSID 중재는 2012년 5월부터 2022년 8월까지이며,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ICC 중재는 2016년 8월부터 2019년 5월까지입니다.

두 분쟁에서 정부와 하나금융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면 논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해가 같지 않았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실제 두 분쟁의 진행 과정과 중재판정문을 분석한 결과, 정부와 하나금융의 이해관계는 동일하지 않았고 판정 결과도 하나금융에는 유리했지만, 정부에는 불리했습니다.

이는 론스타와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하는 태평양이 ICSID에서의 정부 주장과 상충되며 오히려 론스타의 주장과 매우 유사한 법률의견서를 정식 제출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동시 대리 태평양 변호사들, “아무런 문제 없다”

“ICC가 제기됐을 때 하나금융 대리를 내가 한다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었습니다. 정부에 동의를 구할 사안은 아니지만, 정부에 통보했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맡는 것이 양쪽에서 일관된 주장을 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ICSID, ICC 중재 동시 대리 태평양 A 변호사

"이해 상충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잘 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입니다. 다른 대리인이 했으면 정부가 책임을 안 지는 방향으로 나왔을까요? 정부가 왈가왈부 할 입장이 아닙니다."
ICSID, ICC 중재 동시 대리 태평양 B 변호사

■ ICSID와 ICC에서 당사자들 주장

ICSID에서 론스타, 정부, 하나금융
ㅇ 론스타(청구인) : 금융위는 매수자인 하나금융의 자격만 심사할 수 있다. 금융위가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하나금융에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론스타는 승인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하했다.
ㅇ 정부(피청구인) :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서 론스타의 유죄는 승인을 심사하는 데 중요한 사항이다. 금융위는 하나금융에 가격 인하를 압박한 적이 없다.
ㅇ 하나금융(증인) : 금융위는 가격 인하를 압박하지 않았다. 금융위의 압박을 얘기한 것은 협상 전략이었다.

ICC에서 론스타, 하나금융
ㅇ 론스타(청구인) : 하나금융이 협상 당시 금융위가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나금융의 말을 믿고 가격을 인하했는데, 이는 당시 양측의 계약(최선 의무)과 한국 민법상 불법(사기 등)이다.
ㅇ 하나금융(피청구인) : 거짓말을 했지만, 이는 가격 인하를 위한 협상 전략으로 정당하다.
ㅇ 정부 : 의견을 제출하지 않음.

■ 전성인 교수, “정부와 하나금융의 이해가 상충된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하나금융의 입장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의 설명입니다. 론스타의 손해가 인정되면 정부와 하나금융은 정반대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ICSID와 ICC는 모두 론스타의 손해를 인정했습니다.

“론스타의 주장은 매각이 지연되었고 가격을 깎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론스타 손해가 확정된다면, 하나금융에 잘못이 없으면 정부가 잘못한 것이고 정부에 잘못이 없으면 하나금융이 론스타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두 분쟁의 논리 구조로 보면 정확하게 한국 정부와 하나금융의 이해관계가 상충됩니다. 상식적인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태평양은 도대체 누구를 변호하는 거야 이렇게 되는 겁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하나금융의 '수상한' 증언 변경

주목할 점은 ICSID에서 하나금융 관계자들은 정부가 내세운 여러 증인들 중의 일부였지만, ICC에서는 자신들이 직접 분쟁 당사자가 됐다는 점입니다. 자칫하면 하나금융이 론스타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금융은 ICC에서도 “자신들의 거짓말이 정당했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을까요?

ICC 판정문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일관되게,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판정문에는 하나금융 관계자들이 증인 신문에서 “금융위의 가격 인하 압력 여부에 대해 일관되게 증언하지 않았으며, 기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금융의 이런 수상한 태도 변경은 ICC 판정부가 한국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됐습니다.

■ 하나금융 증언은 어떻게 바뀌었나… 증인 신문의 재구성

ICC 중재판정부는 “금융위가 승인을 지연하면서 가격 인하를 강력히 요청했다”는 독자적인 결론을 도출합니다. 이런 결론은 론스타는 물론 하나금융도 당초에는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중재판정부가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주장이 아닌 독자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데는 증인 신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ICC 중재에서 구두 증인 신문은 2018년 12월 3일부터 8일까지 6일 동안 싱가포르에서 열렸습니다. ICC 판정문에는 증인으로 나온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증언이 ICSID와 달라졌다고 언급된 부분이 여러 곳입니다.

우선, 2011년 김승유 당시 하나금융 회장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의 매각명령이 내려지더라도, 기존 계약은 매각명령에 따라 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규 계약을 제출해야 합니다. 새로운 계약을 제출하는데 있어, 우리는 거래를 승인하는데 금융위원회에 가해질 정치적 압력을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시장 평가와 금융업계 상황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위원회가 기존 계약으로 승인을 진행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게 보낸 편지(2011년 10월 28일)

이 언급에 대해 김승유 전 회장은 ICSID에서는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해 “금융위원회가 실제로 신규 계약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승유의 ICSID 증언
(질문) 마지막 문장에서 증인은 “그렇지 않으면 금융위원회가 기존 계약으로 승인을 진행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대답) 그렇게 쓰여있습니다. 내가 얘기했듯이 이는 가격협상을 위한 전략의 일부였습니다.
(질문) 그러면 금융위원회가 기존 계약으로 승인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맞습니까?
(대답) 맞습니다.

김승유 전 회장은 그러나 ICC에서는 증언을 달리했습니다.

김승유의 ICC 증언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에 새로운 승인 신청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줬고, 하나금융은 이 사실을 론스타에 통보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승인 신청’은 새로운 협상 가격을 담은 신규 계약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증언은 ICC 판정부가 “금융위원회가 새로운 승인 신청을 요청한 것은 가격 인하가 이뤄질 때까지 하나금융의 승인을 지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됩니다.

둘째, 김승유 전 회장은 ICSID에서는 금융당국과 외환은행 인수 가격에 대해 협의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승유의 ICSID 증언
“금융당국과 가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협의하지 않았다”

이 부분 역시 ICC에서는 증언이 달라집니다.

김승유의 ICC 증언
“하나금융 직원들이 금융당국 관계자들과 외환은행 인수가격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금융위가 받는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서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을 금융위원장으로부터 암묵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금융위원장도 하나금융이 가격을 인하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나로부터 암묵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김승유 전 회장은 특히 론스타와 최종 합의한 가격보다 인수가가 높았다면 금융위가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김승유의 ICC 증언
"철저하게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미화 1억 달러라면, 한 주당 500원이거나
500원 미만일 것입니다. 약 200원 또는 300원의 가격 인하로는 시민단체나 정치권으로 더 강력한 반대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러한 압박 때문에 금융위원회가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 론스타와 협상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은 당시 김병호 하나금융 부회장이었습니다. 김병호 전 부회장은 ICC에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설명 없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었지만 협상 과정에서 정당한 전략이었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어야 할 당사자가 참석하지 않은 것입니다.

■ ICSID와 ICC에서 승자는 하나금융과 태평양?

"결론적으로, 중재판정부는 세 번째 설명이 진실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하나금융은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가격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을 론스타에 정확하게 전달했다. 그것이 당시 금융위원회의 실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ICC 중재판정문

이 판정으로 하나금융은 론스타에 대한 배상 책임을 벗었지만, 정부에 책임을 돌린 결과가 됐습니다. ICC 판정문은 ICSID에 증거로 채택됐습니다. 이래도 ICSID와 ICC에서 태평양이, 그것도 같은 변호사들이 정부와 하나금융을 동시에 대리한 것이 문제가 없는 걸까요?

론스타의 주장대로면, 외환은행 인수가격이 내려감으로써 하나금융은 당시 약 4억 3천만 달러의 이익을 보았습니다. ICC에서 승소하면서 하나금융은 중재에 들어갔던 비용도 론스타로부터 보전받았습니다. 정부와 하나금융을 대리한 태평양은 물론 양쪽으로부터 수임료를 받았습니다.

취재 최문호 기자 bird@kbs.co.kr 송명희 기자 thimble@kbs.co.kr
촬영 김성현 기자 neptune@kbs.co.kr 허용석 기자 godup@kbs.co.kr
자료조사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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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9-23 12:03:35
    • 수정2022-09-23 17:28:43
    탐사K

론스타와 정부 간 분쟁(ICSID)과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분쟁(ICC)에서 법무법인 태평양의 동일한 변호사들이 정부와 하나금융을 동시에 대리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욱이 두 분쟁은 중재가 진행되는 기간이 중복됩니다. 론스타와 정부 간 ICSID 중재는 2012년 5월부터 2022년 8월까지이며, 론스타와 하나금융 간 ICC 중재는 2016년 8월부터 2019년 5월까지입니다.

두 분쟁에서 정부와 하나금융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면 논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해가 같지 않았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KBS 탐사보도부가 실제 두 분쟁의 진행 과정과 중재판정문을 분석한 결과, 정부와 하나금융의 이해관계는 동일하지 않았고 판정 결과도 하나금융에는 유리했지만, 정부에는 불리했습니다.

이는 론스타와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한국 정부를 대리하는 태평양이 ICSID에서의 정부 주장과 상충되며 오히려 론스타의 주장과 매우 유사한 법률의견서를 정식 제출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동시 대리 태평양 변호사들, “아무런 문제 없다”

“ICC가 제기됐을 때 하나금융 대리를 내가 한다는 것을 정부도 알고 있었습니다. 정부에 동의를 구할 사안은 아니지만, 정부에 통보했고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맡는 것이 양쪽에서 일관된 주장을 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ICSID, ICC 중재 동시 대리 태평양 A 변호사

"이해 상충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잘 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입니다. 다른 대리인이 했으면 정부가 책임을 안 지는 방향으로 나왔을까요? 정부가 왈가왈부 할 입장이 아닙니다."
ICSID, ICC 중재 동시 대리 태평양 B 변호사

■ ICSID와 ICC에서 당사자들 주장

ICSID에서 론스타, 정부, 하나금융
ㅇ 론스타(청구인) : 금융위는 매수자인 하나금융의 자격만 심사할 수 있다. 금융위가 정치적 부담을 피하고자 하나금융에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론스타는 승인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하했다.
ㅇ 정부(피청구인) :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서 론스타의 유죄는 승인을 심사하는 데 중요한 사항이다. 금융위는 하나금융에 가격 인하를 압박한 적이 없다.
ㅇ 하나금융(증인) : 금융위는 가격 인하를 압박하지 않았다. 금융위의 압박을 얘기한 것은 협상 전략이었다.

ICC에서 론스타, 하나금융
ㅇ 론스타(청구인) : 하나금융이 협상 당시 금융위가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나금융의 말을 믿고 가격을 인하했는데, 이는 당시 양측의 계약(최선 의무)과 한국 민법상 불법(사기 등)이다.
ㅇ 하나금융(피청구인) : 거짓말을 했지만, 이는 가격 인하를 위한 협상 전략으로 정당하다.
ㅇ 정부 : 의견을 제출하지 않음.

■ 전성인 교수, “정부와 하나금융의 이해가 상충된다”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하나금융의 입장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의 설명입니다. 론스타의 손해가 인정되면 정부와 하나금융은 정반대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ICSID와 ICC는 모두 론스타의 손해를 인정했습니다.

“론스타의 주장은 매각이 지연되었고 가격을 깎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론스타 손해가 확정된다면, 하나금융에 잘못이 없으면 정부가 잘못한 것이고 정부에 잘못이 없으면 하나금융이 론스타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두 분쟁의 논리 구조로 보면 정확하게 한국 정부와 하나금융의 이해관계가 상충됩니다. 상식적인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태평양은 도대체 누구를 변호하는 거야 이렇게 되는 겁니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하나금융의 '수상한' 증언 변경

주목할 점은 ICSID에서 하나금융 관계자들은 정부가 내세운 여러 증인들 중의 일부였지만, ICC에서는 자신들이 직접 분쟁 당사자가 됐다는 점입니다. 자칫하면 하나금융이 론스타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금융은 ICC에서도 “자신들의 거짓말이 정당했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을까요?

ICC 판정문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일관되게,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판정문에는 하나금융 관계자들이 증인 신문에서 “금융위의 가격 인하 압력 여부에 대해 일관되게 증언하지 않았으며, 기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금융의 이런 수상한 태도 변경은 ICC 판정부가 한국 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됐습니다.

■ 하나금융 증언은 어떻게 바뀌었나… 증인 신문의 재구성

ICC 중재판정부는 “금융위가 승인을 지연하면서 가격 인하를 강력히 요청했다”는 독자적인 결론을 도출합니다. 이런 결론은 론스타는 물론 하나금융도 당초에는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중재판정부가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주장이 아닌 독자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데는 증인 신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ICC 중재에서 구두 증인 신문은 2018년 12월 3일부터 8일까지 6일 동안 싱가포르에서 열렸습니다. ICC 판정문에는 증인으로 나온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증언이 ICSID와 달라졌다고 언급된 부분이 여러 곳입니다.

우선, 2011년 김승유 당시 하나금융 회장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의 매각명령이 내려지더라도, 기존 계약은 매각명령에 따라 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규 계약을 제출해야 합니다. 새로운 계약을 제출하는데 있어, 우리는 거래를 승인하는데 금융위원회에 가해질 정치적 압력을 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시장 평가와 금융업계 상황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위원회가 기존 계약으로 승인을 진행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게 보낸 편지(2011년 10월 28일)

이 언급에 대해 김승유 전 회장은 ICSID에서는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해 “금융위원회가 실제로 신규 계약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승유의 ICSID 증언
(질문) 마지막 문장에서 증인은 “그렇지 않으면 금융위원회가 기존 계약으로 승인을 진행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대답) 그렇게 쓰여있습니다. 내가 얘기했듯이 이는 가격협상을 위한 전략의 일부였습니다.
(질문) 그러면 금융위원회가 기존 계약으로 승인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급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맞습니까?
(대답) 맞습니다.

김승유 전 회장은 그러나 ICC에서는 증언을 달리했습니다.

김승유의 ICC 증언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에 새로운 승인 신청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줬고, 하나금융은 이 사실을 론스타에 통보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승인 신청’은 새로운 협상 가격을 담은 신규 계약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증언은 ICC 판정부가 “금융위원회가 새로운 승인 신청을 요청한 것은 가격 인하가 이뤄질 때까지 하나금융의 승인을 지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됩니다.

둘째, 김승유 전 회장은 ICSID에서는 금융당국과 외환은행 인수 가격에 대해 협의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김승유의 ICSID 증언
“금융당국과 가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협의하지 않았다”

이 부분 역시 ICC에서는 증언이 달라집니다.

김승유의 ICC 증언
“하나금융 직원들이 금융당국 관계자들과 외환은행 인수가격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금융위가 받는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서 가격 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을 금융위원장으로부터 암묵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금융위원장도 하나금융이 가격을 인하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나로부터 암묵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김승유 전 회장은 특히 론스타와 최종 합의한 가격보다 인수가가 높았다면 금융위가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김승유의 ICC 증언
"철저하게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미화 1억 달러라면, 한 주당 500원이거나
500원 미만일 것입니다. 약 200원 또는 300원의 가격 인하로는 시민단체나 정치권으로 더 강력한 반대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러한 압박 때문에 금융위원회가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 론스타와 협상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은 당시 김병호 하나금융 부회장이었습니다. 김병호 전 부회장은 ICC에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설명 없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었지만 협상 과정에서 정당한 전략이었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했어야 할 당사자가 참석하지 않은 것입니다.

■ ICSID와 ICC에서 승자는 하나금융과 태평양?

"결론적으로, 중재판정부는 세 번째 설명이 진실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하나금융은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가격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을 론스타에 정확하게 전달했다. 그것이 당시 금융위원회의 실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ICC 중재판정문

이 판정으로 하나금융은 론스타에 대한 배상 책임을 벗었지만, 정부에 책임을 돌린 결과가 됐습니다. ICC 판정문은 ICSID에 증거로 채택됐습니다. 이래도 ICSID와 ICC에서 태평양이, 그것도 같은 변호사들이 정부와 하나금융을 동시에 대리한 것이 문제가 없는 걸까요?

론스타의 주장대로면, 외환은행 인수가격이 내려감으로써 하나금융은 당시 약 4억 3천만 달러의 이익을 보았습니다. ICC에서 승소하면서 하나금융은 중재에 들어갔던 비용도 론스타로부터 보전받았습니다. 정부와 하나금융을 대리한 태평양은 물론 양쪽으로부터 수임료를 받았습니다.

취재 최문호 기자 bird@kbs.co.kr 송명희 기자 thimble@kbs.co.kr
촬영 김성현 기자 neptune@kbs.co.kr 허용석 기자 godup@kbs.co.kr
자료조사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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