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국회의원 공약, 아무도 안 본다?…“저희가 봅니다”

입력 2022.12.10 (11:00) 수정 2022.12.10 (11: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1대 국회의원들이 지난달 30일, 취임 2년 6개월을 맞았습니다. 임기 절반을 훌쩍 넘긴 셈입니다. KBS는 한국 메니페스토실천본부와 함께 지역구 의원들의 공약 이행도를 중간 점검해 사흘간 <뉴스9>를 통해 집중 보도했습니다.

오늘은 '공약 점검' 취재, 그 후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국비 확보하겠습니다" "유치하겠습니다."

선거 때마다 수많은 약속이 쏟아집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된 지역구 의원들이 내건 공약만 1만 1천 건이 넘습니다. 국회의원 1명이 100건이 넘는 공약을 낸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들 누가 선거에서 공약을 보고 투표하냐고 얘기합니다. 정말 아무도 안보는 공약이라면 왜 이렇게 많은 약속을 하는 걸까요? 공약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요? 좀 따져보겠습니다.

■공약 이행 계획 담은 '의정활동계획서'…21대 총선 당선자 79%가 제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KBS가 21대 총선후보자들로부터 제출받은 ‘의정활동계획서’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KBS가 21대 총선후보자들로부터 제출받은 ‘의정활동계획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KBS는 2년 반 전 21대 총선 당시 후보자들에게 '의정활동계획서'를 제출받았습니다. 핵심공약이 뭔지, 그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지 등의 계획을 물었습니다. 21대 총선 후보자 1,101명 가운데 448명(40.6%)이 제출했습니다.

위 결과를 총선 결과가 나온 뒤에 비교해보니, 당선자는 79.8%가 '의정활동계획서'를 제출했었는데, 낙선자는 29%만 제출했습니다. 구체적인 공약 이행방안이나 소요예산 등을 추계해야 해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들은 제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당선자와 낙선자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공약이행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준비된 후보자가 많이 당선됐다는 뜻이겠죠. 나아가 공약을 잘 준비한 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공약 만든 보좌진이 그만둬서"…"지자체에 물어보고 답변 드릴게요."

선거 때는 앞다퉈 거창한 공약을 내놓고 반드시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선거가 끝난 뒤는 어떨까요?

공약 이행도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원실에 문의했습니다. 답변서를 토대로 해당 공약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공약 이행은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돌아온 답은 "잘 모르겠다"였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총선 당시 공약을 만드는 데 관여했던 보좌진이 지금은 의원실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진행 상황은 지자체에서 알고 있으니 물어보고 연락 주겠다." 등이었습니다.

국회 보좌진이 자주 교체되다 보니 의원실에는 공약을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공약 대다수가 지역개발 공약, 즉 지자체가 진행하는 사업들이다 보니 정작 공약을 낸 의원실에서도 지자체에 진행 상황을 물어봐야 하는 거죠.

국회의원에게 공약 이행도를 알려야 법적 의무는 없습니다. 시도지사 등 선출직 공직자의 공약이행도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2011년과 2013년 발의됐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폐기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들의 공약은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는 셈입니다.

■ 50% 넘기기 힘든 국회의원 공약 이행률…시도지사 공약 이행률은 70%대

시도지사 등 지자체장들도 공약이행도를 공개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전국 지자체 대부분이 홈페이지를 통해 기관장 공약 이행도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등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공약 이행도 공개를 요구하며 매년 공약 이행내역을 공개했는지 확인하다 보니 이제는 대부분 지자체에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과 시도지사의 공약 이행률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집계한 시도지사의 공약 이행률민선 7기(2018~2022) 기준 71%였습니다. 20대(2016~2020)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은 46%였습니다.

물론 국회의원은 행정권과 재정권이 없다 보니 시도지사와 비교하면 공약 이행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반대로 의원들이 자신의 권한 밖에 있는 약속을 해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 재정 추계한 공약 지키는 데만 천백조 원…지켜야 하는 공약일까?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볼까 합니다. 국회의원들의 공약, 꼭 지켜야 하는 걸까요?

21대 국회의원 공약 가운데 필요한 재정을 추계한 공약은 절반 가량(53%)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더해도 필요한 돈이 천백조 원이 넘습니다. 우리 정부의 2년 치 예산에 맞먹는 액수입니다.

대부분 도로와 철도를 깔고, 병원과 학교를 짓고, 관광단지나 산업단지를 만들겠다는 지역개발 공약입니다. 그 공약들을 다 지킨다면 온 나라가 공사판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다 지키지 않는 것이 나라 전체로 봤을 때 이득일 수 있습니다.

그럼 안 지키는 게 차라리 나은 공약을 언제까지 선거에서 내세워야 하는 걸까요? 유권자들은 언제까지 부도날 게 뻔한 공약을 보고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하는 걸까요?

약속하는 사람도 책임 못 질 것을 알고, 듣는 사람도 믿지 못한다는 걸 알고, 선거가 끝나면 나 몰라라 잊혀지는 '공약(空約)', 이대로 좋을까요?

공약, 아무도 안 본다고요? KBS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함께 앞으로도 '공약'이 지켜지는지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국회의원 공약, 아무도 안 본다?…“저희가 봅니다”
    • 입력 2022-12-10 11:00:21
    • 수정2022-12-10 11:00:32
    취재후·사건후

21대 국회의원들이 지난달 30일, 취임 2년 6개월을 맞았습니다. 임기 절반을 훌쩍 넘긴 셈입니다. KBS는 한국 메니페스토실천본부와 함께 지역구 의원들의 공약 이행도를 중간 점검해 사흘간 <뉴스9>를 통해 집중 보도했습니다.

오늘은 '공약 점검' 취재, 그 후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국비 확보하겠습니다" "유치하겠습니다."

선거 때마다 수많은 약속이 쏟아집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된 지역구 의원들이 내건 공약만 1만 1천 건이 넘습니다. 국회의원 1명이 100건이 넘는 공약을 낸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들 누가 선거에서 공약을 보고 투표하냐고 얘기합니다. 정말 아무도 안보는 공약이라면 왜 이렇게 많은 약속을 하는 걸까요? 공약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요? 좀 따져보겠습니다.

■공약 이행 계획 담은 '의정활동계획서'…21대 총선 당선자 79%가 제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KBS가 21대 총선후보자들로부터 제출받은 ‘의정활동계획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KBS는 2년 반 전 21대 총선 당시 후보자들에게 '의정활동계획서'를 제출받았습니다. 핵심공약이 뭔지, 그 공약을 어떻게 이행할지 등의 계획을 물었습니다. 21대 총선 후보자 1,101명 가운데 448명(40.6%)이 제출했습니다.

위 결과를 총선 결과가 나온 뒤에 비교해보니, 당선자는 79.8%가 '의정활동계획서'를 제출했었는데, 낙선자는 29%만 제출했습니다. 구체적인 공약 이행방안이나 소요예산 등을 추계해야 해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들은 제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당선자와 낙선자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공약이행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을 만큼 준비된 후보자가 많이 당선됐다는 뜻이겠죠. 나아가 공약을 잘 준비한 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공약 만든 보좌진이 그만둬서"…"지자체에 물어보고 답변 드릴게요."

선거 때는 앞다퉈 거창한 공약을 내놓고 반드시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선거가 끝난 뒤는 어떨까요?

공약 이행도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원실에 문의했습니다. 답변서를 토대로 해당 공약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공약 이행은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돌아온 답은 "잘 모르겠다"였습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총선 당시 공약을 만드는 데 관여했던 보좌진이 지금은 의원실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진행 상황은 지자체에서 알고 있으니 물어보고 연락 주겠다." 등이었습니다.

국회 보좌진이 자주 교체되다 보니 의원실에는 공약을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공약 대다수가 지역개발 공약, 즉 지자체가 진행하는 사업들이다 보니 정작 공약을 낸 의원실에서도 지자체에 진행 상황을 물어봐야 하는 거죠.

국회의원에게 공약 이행도를 알려야 법적 의무는 없습니다. 시도지사 등 선출직 공직자의 공약이행도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2011년과 2013년 발의됐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폐기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들의 공약은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는 셈입니다.

■ 50% 넘기기 힘든 국회의원 공약 이행률…시도지사 공약 이행률은 70%대

시도지사 등 지자체장들도 공약이행도를 공개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전국 지자체 대부분이 홈페이지를 통해 기관장 공약 이행도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등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공약 이행도 공개를 요구하며 매년 공약 이행내역을 공개했는지 확인하다 보니 이제는 대부분 지자체에서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과 시도지사의 공약 이행률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집계한 시도지사의 공약 이행률민선 7기(2018~2022) 기준 71%였습니다. 20대(2016~2020)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은 46%였습니다.

물론 국회의원은 행정권과 재정권이 없다 보니 시도지사와 비교하면 공약 이행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반대로 의원들이 자신의 권한 밖에 있는 약속을 해놓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 재정 추계한 공약 지키는 데만 천백조 원…지켜야 하는 공약일까?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볼까 합니다. 국회의원들의 공약, 꼭 지켜야 하는 걸까요?

21대 국회의원 공약 가운데 필요한 재정을 추계한 공약은 절반 가량(53%)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더해도 필요한 돈이 천백조 원이 넘습니다. 우리 정부의 2년 치 예산에 맞먹는 액수입니다.

대부분 도로와 철도를 깔고, 병원과 학교를 짓고, 관광단지나 산업단지를 만들겠다는 지역개발 공약입니다. 그 공약들을 다 지킨다면 온 나라가 공사판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다 지키지 않는 것이 나라 전체로 봤을 때 이득일 수 있습니다.

그럼 안 지키는 게 차라리 나은 공약을 언제까지 선거에서 내세워야 하는 걸까요? 유권자들은 언제까지 부도날 게 뻔한 공약을 보고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하는 걸까요?

약속하는 사람도 책임 못 질 것을 알고, 듣는 사람도 믿지 못한다는 걸 알고, 선거가 끝나면 나 몰라라 잊혀지는 '공약(空約)', 이대로 좋을까요?

공약, 아무도 안 본다고요? KBS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함께 앞으로도 '공약'이 지켜지는지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