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집에 왔구나”…유골함 품에 안은 아버지 [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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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망자 179명의 명단에는 태국에서 한국으로 가던 45살과 22살 여성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중 45살 종락 두엉마니 씨의 유해가 지난 6일 태국 고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품에 안겼습니다. KBS취재진이 태국 북부 우돈타니에 있는 종락 씨의 고향 집을 찾았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46692
(1월 7일, KBS뉴스9 보도)
■ "우리 딸, 집에 왔구나"
딸은 유골함에 담겨 있었습니다.
제주항공 관계자 5명이 직접 운구해 온 유골함, 태국 방콕을 거쳐
지난 6일 오후 우돈타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는 유골함을 품에 안았습니다.
지난달 초, 한국의 집으로 돌아간다며 밝게 웃으며 헤어진 딸이었습니다.
"딸아, 이제 집에 왔구나"
비행기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아버지,
그래도 딸이 집에 왔다며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 빈소 차려진 고향 집…가족들의 장례식
태국 수도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우돈타니주 공항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다시 차량으로 1시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넝우아써 마을,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논과 밭 사이 드문드문 마을이 들어선 전형적인 태국의 농촌,
종락 씨의 고향입니다.
종락 씨가 돌아온 6일 밤, KBS 취재진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경황이 없었을 텐데, 유족들은 취재진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집 마당에서는 가족과 이웃만 참석하는 첫 장례 의식이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태국 전통 불교 예법에 따라 승려들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염불을 외고 있었고,
합장을 한 가족과 이웃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종락 씨의 유골함은 집 현관 계단 옆 마당에 형형색색의 꽃과 자신의 사진들에 둘러싸여
고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때 기온이 19도, 태국에서는 추운 날씨였지만 가족과 이웃들은 의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 "남을 돕기를 좋아했어요"…'집안의 기둥'이었던 고인
45살의 종락 두엉마니 씨는 7년 전 한국으로 건너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3년 전에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전남 나주에 정착했습니다.
급여를 받는 대로 꼬박꼬박 모아서 고향 집에 보내 주었습니다.
"동생은 정말 착했습니다. 남을 돕는 일을 정말 좋아했어요.
이 집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생이 어머니를 위해 지어 준 거예요."
종락 씨의 오빠 촉차이 두엉마니 씨가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만큼 가족들은 그녀가 '집안의 기둥'이었다고 했습니다.
종락 씨는 그러면서도 최소 1년에 한 번은 우돈타니 고향 집을 방문했고,
지난달에도 남편과 함께 가까운 치앙마이로 여행을 온 뒤 고향에 찾았습니다.
남편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고, 며칠 더 머물며 가족 간의 정을 주고받은 종락 씨,
그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딸은 한국에 갈 때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그날은 전화가 오지를 않았어요. 매우 불안했죠. 그런데 TV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보게 됐죠"
종락 씨의 아버지 문춰이 씨는 취재진에게 기억하기 싫은 그 순간을 담담히 전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요. 한국에 가기 불과 이틀 전까지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조카입니다.
정말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너무 슬픕니다."
종락 씨의 고모 랏다완 분탄 씨가 취재진에게 전한 말입니다.
■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들
다음 날인 7일 아침, 취재진은 다시 종락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이날 저녁부터 외부 조문객을 받는 공식 장례식이 시작되기에,
유족과 이웃들은 아침 일찍부터 모여 조문객 맞이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살수차를 불러 집 앞길을 청소하고, 마당에 의자를 깔고,
주방에선 음식을 만들고....
노인들은 모여 앉아 바나나잎으로 승려들에게 공양할 꽃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종락 씨를 잃었다는 사실은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취재진을 볼 때마다 유족과 이웃들은 종락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며,
그리고 한국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며 고인을 그리워했습니다.
종락 씨의 장례는 조문객 맞이, 공양, 유골함의 사리탑 안치 등의 절차로
오는 10일까지 진행됩니다.
■ "딸아, 모든 걸 용서한단다…그곳에서는 행복하렴"
이미 수많은 태국 매체 취재진들이 오간 뒤였습니다.
종락 씨의 아버지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을 터입니다.
그러면서 사고를 접했던, 그 끔찍했던 순간을 몇 번이고 떠올렸을 겁니다.
그래서 또다시 마이크를 꺼내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며 종락 씨와, 사고 당시와, 지금의 심정을
담담히 말해 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 결코 짧지 않은 충격과 슬픔의 시간을 견뎌온 아버지는
KBS 마이크 앞에서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내 딸아,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구나.
그래도 집에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네가 했던 모든 행동과 말들, 이 아빠가 다 용서한단다.
이제 그곳에선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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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딸, 집에 왔구나”…유골함 품에 안은 아버지 [특파원 리포트]
-
- 입력 2025-01-08 17:35:47
- 수정2025-01-08 17:36:59
■ "우리 딸, 집에 왔구나"
딸은 유골함에 담겨 있었습니다.
제주항공 관계자 5명이 직접 운구해 온 유골함, 태국 방콕을 거쳐
지난 6일 오후 우돈타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는 유골함을 품에 안았습니다.
지난달 초, 한국의 집으로 돌아간다며 밝게 웃으며 헤어진 딸이었습니다.
"딸아, 이제 집에 왔구나"
비행기에서 내려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아버지,
그래도 딸이 집에 왔다며 다행이라고 말합니다.
■ 빈소 차려진 고향 집…가족들의 장례식
태국 수도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우돈타니주 공항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다시 차량으로 1시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넝우아써 마을,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논과 밭 사이 드문드문 마을이 들어선 전형적인 태국의 농촌,
종락 씨의 고향입니다.
종락 씨가 돌아온 6일 밤, KBS 취재진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경황이 없었을 텐데, 유족들은 취재진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집 마당에서는 가족과 이웃만 참석하는 첫 장례 의식이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태국 전통 불교 예법에 따라 승려들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염불을 외고 있었고,
합장을 한 가족과 이웃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종락 씨의 유골함은 집 현관 계단 옆 마당에 형형색색의 꽃과 자신의 사진들에 둘러싸여
고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이때 기온이 19도, 태국에서는 추운 날씨였지만 가족과 이웃들은 의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 "남을 돕기를 좋아했어요"…'집안의 기둥'이었던 고인
45살의 종락 두엉마니 씨는 7년 전 한국으로 건너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3년 전에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전남 나주에 정착했습니다.
급여를 받는 대로 꼬박꼬박 모아서 고향 집에 보내 주었습니다.
"동생은 정말 착했습니다. 남을 돕는 일을 정말 좋아했어요.
이 집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생이 어머니를 위해 지어 준 거예요."
종락 씨의 오빠 촉차이 두엉마니 씨가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만큼 가족들은 그녀가 '집안의 기둥'이었다고 했습니다.
종락 씨는 그러면서도 최소 1년에 한 번은 우돈타니 고향 집을 방문했고,
지난달에도 남편과 함께 가까운 치앙마이로 여행을 온 뒤 고향에 찾았습니다.
남편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고, 며칠 더 머물며 가족 간의 정을 주고받은 종락 씨,
그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딸은 한국에 갈 때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한테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그날은 전화가 오지를 않았어요. 매우 불안했죠. 그런데 TV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보게 됐죠"
종락 씨의 아버지 문춰이 씨는 취재진에게 기억하기 싫은 그 순간을 담담히 전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요. 한국에 가기 불과 이틀 전까지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눴던 조카입니다.
정말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너무 슬픕니다."
종락 씨의 고모 랏다완 분탄 씨가 취재진에게 전한 말입니다.
■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들
다음 날인 7일 아침, 취재진은 다시 종락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이날 저녁부터 외부 조문객을 받는 공식 장례식이 시작되기에,
유족과 이웃들은 아침 일찍부터 모여 조문객 맞이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살수차를 불러 집 앞길을 청소하고, 마당에 의자를 깔고,
주방에선 음식을 만들고....
노인들은 모여 앉아 바나나잎으로 승려들에게 공양할 꽃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종락 씨를 잃었다는 사실은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취재진을 볼 때마다 유족과 이웃들은 종락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며,
그리고 한국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며 고인을 그리워했습니다.
종락 씨의 장례는 조문객 맞이, 공양, 유골함의 사리탑 안치 등의 절차로
오는 10일까지 진행됩니다.
■ "딸아, 모든 걸 용서한단다…그곳에서는 행복하렴"
이미 수많은 태국 매체 취재진들이 오간 뒤였습니다.
종락 씨의 아버지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을 터입니다.
그러면서 사고를 접했던, 그 끔찍했던 순간을 몇 번이고 떠올렸을 겁니다.
그래서 또다시 마이크를 꺼내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며 종락 씨와, 사고 당시와, 지금의 심정을
담담히 말해 주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 결코 짧지 않은 충격과 슬픔의 시간을 견뎌온 아버지는
KBS 마이크 앞에서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내 딸아,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구나.
그래도 집에 돌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네가 했던 모든 행동과 말들, 이 아빠가 다 용서한단다.
이제 그곳에선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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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섭 기자 bird2777@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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