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크루의세계…민폐라고요?

입력 2025.01.1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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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42회 Ⅱ] 크루의 세계…민폐라고요?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 여의도 공원.

편한 옷차림의 남녀 20여 명이 둥그렇게 모여 몸을 풉니다. 달리기를 뜻하는 ‘러닝’과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집단을 일컫는 ‘크루’가 합쳐진 ‘러닝 크루’입니다.

기자도 함께 뛰어보기로 했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보행자들이나 반려동물 동반해서 산책하시는 분들의 안전을 위해서 서로 배려하면서


이날 코스는 여의도 공원에서 마포대교까지 왕복하는 5.4km 구간.

속도가 빠른 그룹이 먼저 출발합니다.

드디어 출발! 완주가 목표일 뿐 더 빨리 달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크루들의 격려가 이어집니다.


김가람/취재기자
(진짜 다 왔어요. 600m, 600m) 600m요? 아까 500m라면서요….

결국 초보자인 저도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김가람/취재기자
해냈습니다. 이게 쉴 수가 없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러닝크루를 비롯한 크루 문화. 그런데 크루에 대한 언짢은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러닝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많이 속상하고, 많이 안타깝고 그런 마음이 큽니다.

크루는 왜 논란의 대상이 됐을까요?


한강공원에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천 명 넘게 모였습니다.


여의도 둘레길 8.4km를 기록 측정이나 경쟁 없이 달리는 ‘서울 러너스 데이’ 행사입니다.

카운트 다운 5초부터 가겠습니다. 준비, 시작! (5, 4, 3, 2, 1!) 출발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바로 ‘러닝 크루’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달리기 붐과 함께 크게 늘었는데, 한 SNS 오픈채팅방에서만 5백 개 넘게 검색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여러 연예인들이 러닝을 동참하시고, 러닝크루 활동을 하시고 하면서 러닝에 관심을 갖지 않으신 분들도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제 크루도 가입하셔서 뛰러 나오시고

30대 직장인 성슬기 씨. 슬기 씨는 1년 전부터 러닝크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슬기/여의도 러닝크루
영등포 러닝크루 이런 식으로 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거기에 검색을 했어요. 가장 가깝고 좀 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 같은 크루를 찾아서 들어가서 가입을 하게 됐어요.


러닝크루 SNS에 공개된 정기 모임 일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습니다.

성슬기/여의도 러닝크루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다른 자격 요건은 없고, 와서 같이 달리고, 달리면서 같이 생활을 하면서 하면 들어올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입과 탈퇴가 손쉬운 점은 기존 동호회와 다른 점입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언제든지 유연하게 가입을 하고 활동하고 이런 것들이 자유롭다는 점, 그런 점에서 젊은 세대가 추구하고 있는 자유로운 그런 단체, 모임 활동을 가리킬 때 이제 크루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기록보다는 자기만족과 즐거움에 의미를 두는 것도 기존 동호회와 다른 점입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러닝 동호회라든지 러닝 클럽을 다른 분들한테도 여쭤보고 했을 때 생각하고 들었던 내용은 이제 그 당시에는 러닝이랑 훈련에 집중을 했다면, 최근에는 SNS를 기반으로 해서 사람들이 본인이 러닝하는 모습을 많이 공유하고, 이제 다른 분들한테 보여주기도 하고, 서로의 그런 취미 활동을 공유하고 하면서 저 친구가 러닝을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볼까


달리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데 열심인 것도 특징인데요, 한 SNS에서 ‘러닝크루’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의 개수는 무려 60만 건을 넘습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뭔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성취해 냈을 때의 그런 것들을 SNS를 통해서 같이 공유하고, 그러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이런 여러 가지 사회문화 양상들이 결합돼서 크루 문화가 더 젊은 세대들한테 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루 문화는 이제 러닝 크루를 필두로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퇴근 시간, 서울의 한 공공 재개발 후보지.

직장인 여섯 명이 인근 지하철역 앞에 모였습니다.

재개발 재건축을 비롯해 부동산 시장을 답사하는 모임으로, 최근에는 ‘임장 크루’라고도 불립니다.

김종화/부동산 임장 모임 운영
단어 뜻 그대로 하면 현장에 임한다는 뜻이긴 한데요, 부동산에서는 손품을 팔다가 결국에는 현장에 꼭 가봐야만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발품을 팔아서 가는 행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재개발에 관심이 많던 김종화 씨는 지난해 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김종화/부동산 임장 모임 운영
여기 안에는 빌라를 지을 수가 없어요.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가 되어 있던 구역이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신규로 개발을 추진하려는 의지가 유입되기 어렵다 보니 공공 재개발로 빠졌다

이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은 그날그날 다릅니다.


소모임 애플리케이션에 날짜와 지역을 올리면 사람들이 신청하는 방식입니다.

부동산 임장 모임 참가자
제 기준으로 시간이 돼야 하니까, 시간이 되는 날, 약속이 없는 날, 시간 되는 날 위주로 해서 많이 참석하려고


기존 임장 모임과 달리 젊은 층의 참여가 많고, 실제 투자보다는 공부에 비중을 둔 것도 새로운 특징입니다.

김종화/부동산 임장 모임 운영
내 집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부동산을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지고, 모임 문화, 새로운 관계를 되게 중요시하는 그런 문화들이 융합적으로 작용한 게 임장크루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 같아요.

러닝 크루와 임장 크루, 목적은 다르지만,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이제흔/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
MZ세대나 Z세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되게 관계를 맺고자 하는, 내가 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나누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욕구가 굉장히 큽니다. 뭔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의 취향과 맞는 사람과 가볍게 교류하면서 개인 지향적으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그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이기도 쉽고 헤어지기도 쉬운 점 때문에 다양한 크루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제흔/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
SNS가 발달하면서 좀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조금 더 즉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캠핑이라든지 와인, 등산, 클라이밍, 테니스, 요즘 사람들이 즐기고 관심 갖고 이런 것들이 거의 모두가 크루라는 단어를 붙여서 모임들이 형성되고 이뤄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 크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늦은 시간에도 산책하는 사람이 많은 석촌호수.

3명 이상 달리기를 자제해달라는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사실상 러닝 크루의 단체 달리기를 막은 겁니다.

지역주민
불편하죠. 왜냐하면 여기 산책로인데, 이렇게 개인적으로 뛰는 건 괜찮은데 무리를 지어서 한 5명, 6명 이렇게 뛰면 산책하는 사람들 되게 불편해요. 음악도 좀 틀죠, 많이는 안 틀어도

서울 서초구에 있는 공공운동장.


5인 이상 단체달리기를 제한하고 있사오니 이용객 분들의 적극 협조 바랍니다. 아울러 러닝 시 함성 지르기, 상의 탈의, 역주행…

5인 이상 달리기를 할 수 없다는 안내방송이 수시로 나오지만, 무리 지어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서초구청 관계자(음성변조)
단체로 달리면서 개인적으로 달리시는 분들에게 이게 방해가 되니까 비키라고 한다거나, 그리고 기록 측정이나 사진을 찍는다고 트랙 일부를 점거하고

러닝 크루에 대해 잇따라 문제가 제기되면서 크루 안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는 자정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여럿이서 너무 떼를 지어서 다닌다, 무분별하게. 그리고 무분별하게 사진 촬영을 한다, 그리고 고성방가를 지르거나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서 주변에 방해가 된다 이런 지점이었던 것 같은데 저희가 러닝을 즐김에 있어서 다른 분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게 하려면 저희가 그런 목소리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러닝크루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본격화된 민폐 논란.


신인철/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그전에도 사실 한강을 달리거나 아니면 트랙을 달리는 크루들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게 활성화되면서 러닝크루 모임 자체가 많아지다 보니까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죠. 걷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인의 운동이었는데, 이게 소위 말하는 집단 운동이 되면서 어떻게 달려야 할 것인가, 그러니까 집단을 이루어서 달리는 방법에 대한 어떤 문화라든지, 그다음에 그럴 때 타인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에티켓이 아직 형성이 안 된 것 같아요.

임장 크루도 이 같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7년 차 공인중개사 이현노 씨. 요즘 들어 실제 계약할 의사가 없는데도 손님을 가장해 집을 보러 가자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이현노/공인중개사
실제로 매매를 하거나 임차를 하지 않을 분들인데 보러 온다고 하면 저희한테도 피해가 됩니다. 저희도 헛수고를 하는 그런 경우가 생기면 실망감도 크고

한 부동산 강의에서 운영하는 임장크루 참여 후기.

자신이 공인중개사를 속였다는 글들도 종종 올라옵니다.


임장크루 참여자
(집까지 본 적도 있으시고?) 네, 있죠. 그런데 어쨌든 잠재적 고객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일이 잦아지면서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부동산 모임 운영자들에게 공인중개사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현노/공인중개사
훗날 산다거나 훗날 임차를 하신다고 하는 거는 사실은 상황과는 맞지 않아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임차 임대 매물이거나 매매 물건들은 최근 몇 개월 내에 거래를 목표로 매물들이 나오는 거지. 한 1년 후에 놓을 건데 지금 매물을 내놓지는 않잖아요.

일부 크루의 문제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종화/부동산 임장 모임 운영
모임마다 각자의 모임의 이름이 있고, 그 모임이 운영되는 구조들도 되게 각양각색인데 어떤 크루라고 하는 용어 하나로 이렇게 묶여서 불리는 게 좀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고요

SNS 시대 자아실현을 위한 새로운 관계 형성의 틀로 자리 잡은 크루 문화.


하지만 이제 크루라는 단어에서 민폐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개념은 이제 '갓생 트렌드'거든요. 이 '갓생'이라는 건 결국 매일매일 사소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 열심히 사는 모습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뭐냐 하면 자기 자신이 굉장히 열심히 사는데 그 열심히 사는 것들이 자칫 잘못하게 되면 다른 사람한테 혹은 공동체한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했죠

코로나19 이후 2, 3년 만에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크루 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약간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이제 젊은 세대들이 개인에서 벗어나서 같이 뭔가 목적을 가지고 연대하고 협력하고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어떤 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민폐 주는 것은 일정 정도는 우리 사회가 감내하면서, 민폐를 주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세밑 한파가 찾아온 지난해 마지막 목요일.

살을 엘 듯한 추위에도 러닝크루 50여 명이 모였습니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한 달여간 방학에 들어갑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한 해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고 내년에도 아마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생존하시는 분이 아닐까 싶긴 한데, 내년에도 즐겁게 달리기하면서 YRC 생활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급격히 주목받으면서 성장통을 겪기도 했던 크루 문화.


수도권 러닝크루 25곳은 예의 있는 달리기를 약속하고 에티켓을 SNS에 공유하는 릴레이 챌린지에도 나섰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조금 더 나아지고 좋아지는 모습 바라봐주시면서


신인철/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청년들이 자신을 표출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 하나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새해엔 크루 문화가 조금 더 성숙해진다면 긍정적인 시선도 더 늘지 않을까요?


천진아/여의도 러닝크루
러닝 크루에 대한 시선이 좀 더 좋아지고 다들 러닝 문화를 다 같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취재:김가람
촬영기자:신봉승 김민준
촬영:강우용
편집:최정연
그래픽:장수현
자료조사:한혜민
조연출:유화영 심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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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보다] 크루의세계…민폐라고요?
    • 입력 2025-01-12 23:10:22
    사회

[더 보다 42회 Ⅱ] 크루의 세계…민폐라고요?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 여의도 공원.

편한 옷차림의 남녀 20여 명이 둥그렇게 모여 몸을 풉니다. 달리기를 뜻하는 ‘러닝’과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집단을 일컫는 ‘크루’가 합쳐진 ‘러닝 크루’입니다.

기자도 함께 뛰어보기로 했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보행자들이나 반려동물 동반해서 산책하시는 분들의 안전을 위해서 서로 배려하면서


이날 코스는 여의도 공원에서 마포대교까지 왕복하는 5.4km 구간.

속도가 빠른 그룹이 먼저 출발합니다.

드디어 출발! 완주가 목표일 뿐 더 빨리 달리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크루들의 격려가 이어집니다.


김가람/취재기자
(진짜 다 왔어요. 600m, 600m) 600m요? 아까 500m라면서요….

결국 초보자인 저도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김가람/취재기자
해냈습니다. 이게 쉴 수가 없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러닝크루를 비롯한 크루 문화. 그런데 크루에 대한 언짢은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러닝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많이 속상하고, 많이 안타깝고 그런 마음이 큽니다.

크루는 왜 논란의 대상이 됐을까요?


한강공원에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천 명 넘게 모였습니다.


여의도 둘레길 8.4km를 기록 측정이나 경쟁 없이 달리는 ‘서울 러너스 데이’ 행사입니다.

카운트 다운 5초부터 가겠습니다. 준비, 시작! (5, 4, 3, 2, 1!) 출발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바로 ‘러닝 크루’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달리기 붐과 함께 크게 늘었는데, 한 SNS 오픈채팅방에서만 5백 개 넘게 검색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여러 연예인들이 러닝을 동참하시고, 러닝크루 활동을 하시고 하면서 러닝에 관심을 갖지 않으신 분들도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제 크루도 가입하셔서 뛰러 나오시고

30대 직장인 성슬기 씨. 슬기 씨는 1년 전부터 러닝크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슬기/여의도 러닝크루
영등포 러닝크루 이런 식으로 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거기에 검색을 했어요. 가장 가깝고 좀 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 같은 크루를 찾아서 들어가서 가입을 하게 됐어요.


러닝크루 SNS에 공개된 정기 모임 일정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습니다.

성슬기/여의도 러닝크루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다른 자격 요건은 없고, 와서 같이 달리고, 달리면서 같이 생활을 하면서 하면 들어올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입과 탈퇴가 손쉬운 점은 기존 동호회와 다른 점입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언제든지 유연하게 가입을 하고 활동하고 이런 것들이 자유롭다는 점, 그런 점에서 젊은 세대가 추구하고 있는 자유로운 그런 단체, 모임 활동을 가리킬 때 이제 크루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기록보다는 자기만족과 즐거움에 의미를 두는 것도 기존 동호회와 다른 점입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러닝 동호회라든지 러닝 클럽을 다른 분들한테도 여쭤보고 했을 때 생각하고 들었던 내용은 이제 그 당시에는 러닝이랑 훈련에 집중을 했다면, 최근에는 SNS를 기반으로 해서 사람들이 본인이 러닝하는 모습을 많이 공유하고, 이제 다른 분들한테 보여주기도 하고, 서로의 그런 취미 활동을 공유하고 하면서 저 친구가 러닝을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볼까


달리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데 열심인 것도 특징인데요, 한 SNS에서 ‘러닝크루’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의 개수는 무려 60만 건을 넘습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뭔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성취해 냈을 때의 그런 것들을 SNS를 통해서 같이 공유하고, 그러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이런 여러 가지 사회문화 양상들이 결합돼서 크루 문화가 더 젊은 세대들한테 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루 문화는 이제 러닝 크루를 필두로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퇴근 시간, 서울의 한 공공 재개발 후보지.

직장인 여섯 명이 인근 지하철역 앞에 모였습니다.

재개발 재건축을 비롯해 부동산 시장을 답사하는 모임으로, 최근에는 ‘임장 크루’라고도 불립니다.

김종화/부동산 임장 모임 운영
단어 뜻 그대로 하면 현장에 임한다는 뜻이긴 한데요, 부동산에서는 손품을 팔다가 결국에는 현장에 꼭 가봐야만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발품을 팔아서 가는 행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재개발에 관심이 많던 김종화 씨는 지난해 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김종화/부동산 임장 모임 운영
여기 안에는 빌라를 지을 수가 없어요.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가 되어 있던 구역이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신규로 개발을 추진하려는 의지가 유입되기 어렵다 보니 공공 재개발로 빠졌다

이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은 그날그날 다릅니다.


소모임 애플리케이션에 날짜와 지역을 올리면 사람들이 신청하는 방식입니다.

부동산 임장 모임 참가자
제 기준으로 시간이 돼야 하니까, 시간이 되는 날, 약속이 없는 날, 시간 되는 날 위주로 해서 많이 참석하려고


기존 임장 모임과 달리 젊은 층의 참여가 많고, 실제 투자보다는 공부에 비중을 둔 것도 새로운 특징입니다.

김종화/부동산 임장 모임 운영
내 집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부동산을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지고, 모임 문화, 새로운 관계를 되게 중요시하는 그런 문화들이 융합적으로 작용한 게 임장크루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 같아요.

러닝 크루와 임장 크루, 목적은 다르지만,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이제흔/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
MZ세대나 Z세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되게 관계를 맺고자 하는, 내가 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나누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욕구가 굉장히 큽니다. 뭔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의 취향과 맞는 사람과 가볍게 교류하면서 개인 지향적으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는 그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이기도 쉽고 헤어지기도 쉬운 점 때문에 다양한 크루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제흔/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
SNS가 발달하면서 좀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조금 더 즉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캠핑이라든지 와인, 등산, 클라이밍, 테니스, 요즘 사람들이 즐기고 관심 갖고 이런 것들이 거의 모두가 크루라는 단어를 붙여서 모임들이 형성되고 이뤄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 크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늦은 시간에도 산책하는 사람이 많은 석촌호수.

3명 이상 달리기를 자제해달라는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사실상 러닝 크루의 단체 달리기를 막은 겁니다.

지역주민
불편하죠. 왜냐하면 여기 산책로인데, 이렇게 개인적으로 뛰는 건 괜찮은데 무리를 지어서 한 5명, 6명 이렇게 뛰면 산책하는 사람들 되게 불편해요. 음악도 좀 틀죠, 많이는 안 틀어도

서울 서초구에 있는 공공운동장.


5인 이상 단체달리기를 제한하고 있사오니 이용객 분들의 적극 협조 바랍니다. 아울러 러닝 시 함성 지르기, 상의 탈의, 역주행…

5인 이상 달리기를 할 수 없다는 안내방송이 수시로 나오지만, 무리 지어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서초구청 관계자(음성변조)
단체로 달리면서 개인적으로 달리시는 분들에게 이게 방해가 되니까 비키라고 한다거나, 그리고 기록 측정이나 사진을 찍는다고 트랙 일부를 점거하고

러닝 크루에 대해 잇따라 문제가 제기되면서 크루 안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는 자정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여럿이서 너무 떼를 지어서 다닌다, 무분별하게. 그리고 무분별하게 사진 촬영을 한다, 그리고 고성방가를 지르거나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서 주변에 방해가 된다 이런 지점이었던 것 같은데 저희가 러닝을 즐김에 있어서 다른 분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게 하려면 저희가 그런 목소리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러닝크루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본격화된 민폐 논란.


신인철/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그전에도 사실 한강을 달리거나 아니면 트랙을 달리는 크루들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게 활성화되면서 러닝크루 모임 자체가 많아지다 보니까 부딪힐 수밖에 없는 거죠. 걷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인의 운동이었는데, 이게 소위 말하는 집단 운동이 되면서 어떻게 달려야 할 것인가, 그러니까 집단을 이루어서 달리는 방법에 대한 어떤 문화라든지, 그다음에 그럴 때 타인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에티켓이 아직 형성이 안 된 것 같아요.

임장 크루도 이 같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7년 차 공인중개사 이현노 씨. 요즘 들어 실제 계약할 의사가 없는데도 손님을 가장해 집을 보러 가자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이현노/공인중개사
실제로 매매를 하거나 임차를 하지 않을 분들인데 보러 온다고 하면 저희한테도 피해가 됩니다. 저희도 헛수고를 하는 그런 경우가 생기면 실망감도 크고

한 부동산 강의에서 운영하는 임장크루 참여 후기.

자신이 공인중개사를 속였다는 글들도 종종 올라옵니다.


임장크루 참여자
(집까지 본 적도 있으시고?) 네, 있죠. 그런데 어쨌든 잠재적 고객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일이 잦아지면서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부동산 모임 운영자들에게 공인중개사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현노/공인중개사
훗날 산다거나 훗날 임차를 하신다고 하는 거는 사실은 상황과는 맞지 않아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임차 임대 매물이거나 매매 물건들은 최근 몇 개월 내에 거래를 목표로 매물들이 나오는 거지. 한 1년 후에 놓을 건데 지금 매물을 내놓지는 않잖아요.

일부 크루의 문제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종화/부동산 임장 모임 운영
모임마다 각자의 모임의 이름이 있고, 그 모임이 운영되는 구조들도 되게 각양각색인데 어떤 크루라고 하는 용어 하나로 이렇게 묶여서 불리는 게 좀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고요

SNS 시대 자아실현을 위한 새로운 관계 형성의 틀로 자리 잡은 크루 문화.


하지만 이제 크루라는 단어에서 민폐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개념은 이제 '갓생 트렌드'거든요. 이 '갓생'이라는 건 결국 매일매일 사소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 열심히 사는 모습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뭐냐 하면 자기 자신이 굉장히 열심히 사는데 그 열심히 사는 것들이 자칫 잘못하게 되면 다른 사람한테 혹은 공동체한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했죠

코로나19 이후 2, 3년 만에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크루 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헌식/문화평론가
약간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이제 젊은 세대들이 개인에서 벗어나서 같이 뭔가 목적을 가지고 연대하고 협력하고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어떤 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민폐 주는 것은 일정 정도는 우리 사회가 감내하면서, 민폐를 주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세밑 한파가 찾아온 지난해 마지막 목요일.

살을 엘 듯한 추위에도 러닝크루 50여 명이 모였습니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한 달여간 방학에 들어갑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한 해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고 내년에도 아마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생존하시는 분이 아닐까 싶긴 한데, 내년에도 즐겁게 달리기하면서 YRC 생활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급격히 주목받으면서 성장통을 겪기도 했던 크루 문화.


수도권 러닝크루 25곳은 예의 있는 달리기를 약속하고 에티켓을 SNS에 공유하는 릴레이 챌린지에도 나섰습니다.

김태균/여의도 러닝크루장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조금 더 나아지고 좋아지는 모습 바라봐주시면서


신인철/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청년들이 자신을 표출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 하나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서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새해엔 크루 문화가 조금 더 성숙해진다면 긍정적인 시선도 더 늘지 않을까요?


천진아/여의도 러닝크루
러닝 크루에 대한 시선이 좀 더 좋아지고 다들 러닝 문화를 다 같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취재:김가람
촬영기자:신봉승 김민준
촬영:강우용
편집:최정연
그래픽:장수현
자료조사:한혜민
조연출:유화영 심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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