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체제 선전·대중성 노리는 북한 영화배우

입력 2019.02.16 (08:06) 수정 2019.02.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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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배우입니다.

북한 영화에서 이런 배우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과거엔 체제 선전이 배우의 가장 큰 임무였다면,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대중성이라는 요소가 녹아들면서 최근엔 배우 개인에 대한 관심과 인기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시대별로 달라져 가는 북한 영화배우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어두운 무대 위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한 여성.

[조선중앙TV/2017년 3월 : "조국의 북녘 두만강 기슭에 돌풍이 몰아치고 강수가 범람하던, 피와 눈물의 그 밤으로부터 60여 일의 나날이 흘렀습니다."]

여성의 소개로 막을 올린 연극, 2016년 함경북도의 수해 복구과정을 소재로 한경희극 ‘북부전역’이다.

그런데 연극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은 도입 나레이션을 맡은 여성, 영화배우 ‘백설미’의 출연이었다.

2016년, 영화 <우리 집 이야기>에서 주인공 이정아 역을 맡으며 북한 영화계의 샛별로 떠오른 백설미.

아직 신예 배우지만 그녀의 인기는 이미 북한 매체에서도 여러 번 다룰 정도로 대단하다.

[백설미/북한 영화배우 : "정말 제가 이렇게 많은 축하인사를 받을 줄 몰랐습니다."]

과거 영화 속 등장인물로 철저하게 체제선전의 얼굴 역할을 담당해온 북한의 배우들.

그러나 이제 영화의 인기가 배우 개인의 인기로 이어지는 현상이 배우 백설미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예전에는 배우가 누구인지는 그렇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었거든요. 그 배우가 맡고 있는 극중 역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최근에 보면 특히 방송 쪽에서는 어떤 개인적인 팬덤, 이런 것도 생겨나고 있고 또 적극적으로 그런 배우들이라든가 인물들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초기적인 현상으로서 팬덤이 생겨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을 거 같습니다."]

대단한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 위원장.

김 위원장은 일찌감치 예술영화의 대중성에 주목했다.

영화를 예술적 기능보다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했고, 1973년 <영화예술론>을 집필하며 모든 영화를 북한 당국의 지도하에 제작하게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통한 김일성 수령화 작업에 돌입했다.

[북한 영화 ‘조선의 별’/1980년~1987년 : "동무들! 성주 동무가 오는구먼."]

청년 김일성의 항일투쟁 일대기를 다룬 10부작 영화 ‘조선의 별’.

김일성 주석을 연기하는 배우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 영화는 북한의 대표적인 수령형상 작품으로 수령의 지난 업적을 구체적으로 찬양한다.

[북한 영화 ‘조선의 별’/1980년~1987년 : "이번 시위 투쟁은 2년간 축적한 우리의 힘을 시위하며 우리의 입장을 국내와 전중국에, 우리 동포들에게 천명하게 되는 거요."]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꼭 빼닮은 외모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배우 강덕.

그는 이 영화로 ‘1호 배우’라는 칭호와 함께 사회적 명성까지 누리게 됐다.

그러나 수령과 꼭 닮은 배우를 통해 그 업적을 찬양한다는 영화 자체의 목적이 뚜렷한 만큼 배우 개인의 연기력이나 대중성은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북한의 영화배우는 주체 사상을 표현하는 사상적 롤모델이 됩니다. 따라서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상성이 더 투철하게 반영된다라고 반영을 해야 되는 그런 역할에 서있는 어떤 직업이라고 볼 수 있겠고요. 영화예술론에서도 언급되다시피 배우의 연기는 감정보다 사상에 우선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후 북한영화의 제작편수는 늘어갔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정형화 되고 도식화 된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정일의 <영화 예술론>이라는 지침서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저하시키고, 배우 개인의 역량마저도 움츠러들게 하는 현상을 낳은 것이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문학, 영화 문학이 완성된 이후에는 영화 문학에 대한 수정이라든가 현장에서 추가하거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할 수가 있고요. 그래서 북한에서 어떤 연기에 대한 어떤 변신이라든가 영화 장르 자체에 대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북한 내부에 있었던 스텝진들로서는 북한 영화가 지녀왔었던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았었던 것이었죠."]

[북한 영화 ‘축포가 오른다’/1980년 :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동지 저희들이 왔습니다."]

침체기에 빠져있던 북한 영화계에도 개성 있는 연기로 김정일의 총애를 받은 배우가 있다.

바로 오미란이다.

1980년, 영화 ‘축포가 오른다’로 데뷔한 오미란은 기존 배우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87년 개봉한 영화 도라지꽃은 오미란의 연기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모두 떠난 고향 산골을 지키는 처녀 송림을 연기한 오미란.

[북한 영화 ‘도라지 꽃’/1987년 : "나도 믿는다. 어떤 사람은 백 년 있어도 안된다지만 난 십 년 안에, 죽어도 십 년 안에..."]

그녀는 이 작품으로 전에 없던 대중스타로서의 큰 인기를 얻었으며, 제1회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고 여자 연기자상을 거머쥐게 된다.

제1회 뉴욕 남북영화제에서 최우수 남북 영화 예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오미란은 변화무쌍한 연기력으로 선전선동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오미란 배우와 같은 경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굉장히 총애하고 이런 배우가 역사상 없었다라고 계속 우리나라의 자랑이라고 하기까지 한 그런 배우입니다. 그래서 아주 이른 나이인 30대에 인민배우라는 칭호를 파격적으로 수여받게 된 것이죠."]

2016년, 영화 <우리집 이야기>릍 통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신예는 배우 백설미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여주인공이 이웃집 고아 남매를 돌보는 내용의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는데, 연출을 맡은 감독은 그 어느 때 보다 주인공 발탁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리윤호/‘우리 집 이야기’ 연출가 : "원형 인물과 성격도 취미도 생김새도 비슷한 이런 주인공역을 솔직히 말하면 스무명 가량 골라서 거기서 봐가지고 지금 배우를 선택했습니다."]

내용적, 기술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하고 있는 대중성도 적절히 녹여냈다는 평가다.

[북한 영화 ‘우리 집 이야기’/2016년 : "너희들은 알기나 해? 공부보다 더 힘든 게 세간살이야. 그래서 난 공부를 반 줄이고 너희를 돌보고 있단 말이야!"]

젊은 배우가 대거 출연해 가족 간에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한 생활과 청소년들의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그려냈으며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장면에서도 다양한 컷들을 사용해 몰입도를 높였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화면 구성이 굉장히 다이내믹해졌습니다. 신, 장면도 많이 비춰지기도 하고 카메라 각도가 '우리 집 이야기'도 보면 공중에서 지미집이라든가 기타 장비들을 이용해서 보이는 기법들이 많이 적극적으로 도입이 되고 있죠."]

대사 역시 과거 후시녹음 형식을 벗어나 동시 녹음 방식을 택했다.

이는 배우들의 집중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곧 감정연기로도 이어졌다는 평가다.

["언니야! 언니"]

["은정아..."]

그러나 영화 흥행의 중심엔 주인공역을 맡은 백설미의 역할이 있었다는 게 영화 제작소의 주장이다.

촬영 전 백설미는 자신의 근무처로 나오는 강선 제철소를 직접 찾아 현장감을 익히는가 하면 실제 주인공과는 수 개월 동안 함께 생활하며 캐릭터를 분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정화/‘우리 집 이야기’ 실존 인물 : "정말 별에 별걸 다 물었습니다. 그리고 촬영기간 내내 나와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돌보곤 했습니다."]

백설미의 열정은 영화 대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설미/‘우리 집 이야기’ 주인공 이정아 역 : "원래 연출대로는 제가 은정이의 매정함에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그의 뺨을 직접 때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때리는 것은 감정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백설미의 의견에 감독은 대사까지 변경했다.

["때려요! 왜 못 때려요?"]

이후 백설미는 제15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여자연기상을 수상하며 신예 배우로는 초고속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백설미의 행보를 북한 영화배우의 변화상으로, 북한 영화를 대중성 있는 작품으로 일반화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장마당 등을 통해 이미 수많은 해외 영화와 드라마를 접한 북한의 젊은 세대들에겐 북한 영화와 배우들의 연기가 큰 눈길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시우/2017년 탈북 : "북한 영화가 스토리가 뻔하거든요. 실제 생활이 반영된 걸 많이 영화로 제작해야 되는데 영화가 완전히 당에 충실하고 이런 걸로 만드니까 영화 스토리가 재미 없잖아요. 그러니까 20대들의 그런 마음을 울리지 못하거든요. 주로 지금 많이 보는 영화가 한국 드라마나 미국 영화 이런 거 많이 보죠."]

그럼에도 북한 영화와 영화배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김정은 시대 북한 영화와 드라마가 조금씩이지만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김정은 위원장이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슨 말이냐면 사상적 순결성은 가지면서도 외세의 우수한 것들은 받아내자라는 거거든요. 북한 영화예술의 제작의 지침인 영화예술론의 방향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경우도 관찰이 되고 있고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변화를 조금씩 조금씩 꾀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틀어쥘 영화를 만들 것을 당부한 김정은 위원장.

남다른 연기력으로 북한 대표 배우가 된 오미란과 주목받는 신예 백설미처럼 앞으로 또 어떠한 배우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지 북한 영화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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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6 08:12:34
    • 수정2019-02-16 09: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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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배우입니다.

북한 영화에서 이런 배우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과거엔 체제 선전이 배우의 가장 큰 임무였다면,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대중성이라는 요소가 녹아들면서 최근엔 배우 개인에 대한 관심과 인기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시대별로 달라져 가는 북한 영화배우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어두운 무대 위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한 여성.

[조선중앙TV/2017년 3월 : "조국의 북녘 두만강 기슭에 돌풍이 몰아치고 강수가 범람하던, 피와 눈물의 그 밤으로부터 60여 일의 나날이 흘렀습니다."]

여성의 소개로 막을 올린 연극, 2016년 함경북도의 수해 복구과정을 소재로 한경희극 ‘북부전역’이다.

그런데 연극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은 도입 나레이션을 맡은 여성, 영화배우 ‘백설미’의 출연이었다.

2016년, 영화 <우리 집 이야기>에서 주인공 이정아 역을 맡으며 북한 영화계의 샛별로 떠오른 백설미.

아직 신예 배우지만 그녀의 인기는 이미 북한 매체에서도 여러 번 다룰 정도로 대단하다.

[백설미/북한 영화배우 : "정말 제가 이렇게 많은 축하인사를 받을 줄 몰랐습니다."]

과거 영화 속 등장인물로 철저하게 체제선전의 얼굴 역할을 담당해온 북한의 배우들.

그러나 이제 영화의 인기가 배우 개인의 인기로 이어지는 현상이 배우 백설미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예전에는 배우가 누구인지는 그렇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었거든요. 그 배우가 맡고 있는 극중 역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었는데 최근에 보면 특히 방송 쪽에서는 어떤 개인적인 팬덤, 이런 것도 생겨나고 있고 또 적극적으로 그런 배우들이라든가 인물들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초기적인 현상으로서 팬덤이 생겨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을 거 같습니다."]

대단한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 위원장.

김 위원장은 일찌감치 예술영화의 대중성에 주목했다.

영화를 예술적 기능보다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했고, 1973년 <영화예술론>을 집필하며 모든 영화를 북한 당국의 지도하에 제작하게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통한 김일성 수령화 작업에 돌입했다.

[북한 영화 ‘조선의 별’/1980년~1987년 : "동무들! 성주 동무가 오는구먼."]

청년 김일성의 항일투쟁 일대기를 다룬 10부작 영화 ‘조선의 별’.

김일성 주석을 연기하는 배우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 영화는 북한의 대표적인 수령형상 작품으로 수령의 지난 업적을 구체적으로 찬양한다.

[북한 영화 ‘조선의 별’/1980년~1987년 : "이번 시위 투쟁은 2년간 축적한 우리의 힘을 시위하며 우리의 입장을 국내와 전중국에, 우리 동포들에게 천명하게 되는 거요."]

젊은 시절 김일성 주석의 모습을 꼭 빼닮은 외모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배우 강덕.

그는 이 영화로 ‘1호 배우’라는 칭호와 함께 사회적 명성까지 누리게 됐다.

그러나 수령과 꼭 닮은 배우를 통해 그 업적을 찬양한다는 영화 자체의 목적이 뚜렷한 만큼 배우 개인의 연기력이나 대중성은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북한의 영화배우는 주체 사상을 표현하는 사상적 롤모델이 됩니다. 따라서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상성이 더 투철하게 반영된다라고 반영을 해야 되는 그런 역할에 서있는 어떤 직업이라고 볼 수 있겠고요. 영화예술론에서도 언급되다시피 배우의 연기는 감정보다 사상에 우선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후 북한영화의 제작편수는 늘어갔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정형화 되고 도식화 된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정일의 <영화 예술론>이라는 지침서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저하시키고, 배우 개인의 역량마저도 움츠러들게 하는 현상을 낳은 것이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문학, 영화 문학이 완성된 이후에는 영화 문학에 대한 수정이라든가 현장에서 추가하거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고 할 수가 있고요. 그래서 북한에서 어떤 연기에 대한 어떤 변신이라든가 영화 장르 자체에 대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북한 내부에 있었던 스텝진들로서는 북한 영화가 지녀왔었던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았었던 것이었죠."]

[북한 영화 ‘축포가 오른다’/1980년 :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동지 저희들이 왔습니다."]

침체기에 빠져있던 북한 영화계에도 개성 있는 연기로 김정일의 총애를 받은 배우가 있다.

바로 오미란이다.

1980년, 영화 ‘축포가 오른다’로 데뷔한 오미란은 기존 배우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87년 개봉한 영화 도라지꽃은 오미란의 연기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모두 떠난 고향 산골을 지키는 처녀 송림을 연기한 오미란.

[북한 영화 ‘도라지 꽃’/1987년 : "나도 믿는다. 어떤 사람은 백 년 있어도 안된다지만 난 십 년 안에, 죽어도 십 년 안에..."]

그녀는 이 작품으로 전에 없던 대중스타로서의 큰 인기를 얻었으며, 제1회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고 여자 연기자상을 거머쥐게 된다.

제1회 뉴욕 남북영화제에서 최우수 남북 영화 예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오미란은 변화무쌍한 연기력으로 선전선동성은 물론 대중성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오미란 배우와 같은 경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굉장히 총애하고 이런 배우가 역사상 없었다라고 계속 우리나라의 자랑이라고 하기까지 한 그런 배우입니다. 그래서 아주 이른 나이인 30대에 인민배우라는 칭호를 파격적으로 수여받게 된 것이죠."]

2016년, 영화 <우리집 이야기>릍 통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신예는 배우 백설미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여주인공이 이웃집 고아 남매를 돌보는 내용의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는데, 연출을 맡은 감독은 그 어느 때 보다 주인공 발탁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리윤호/‘우리 집 이야기’ 연출가 : "원형 인물과 성격도 취미도 생김새도 비슷한 이런 주인공역을 솔직히 말하면 스무명 가량 골라서 거기서 봐가지고 지금 배우를 선택했습니다."]

내용적, 기술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하고 있는 대중성도 적절히 녹여냈다는 평가다.

[북한 영화 ‘우리 집 이야기’/2016년 : "너희들은 알기나 해? 공부보다 더 힘든 게 세간살이야. 그래서 난 공부를 반 줄이고 너희를 돌보고 있단 말이야!"]

젊은 배우가 대거 출연해 가족 간에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한 생활과 청소년들의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그려냈으며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장면에서도 다양한 컷들을 사용해 몰입도를 높였다.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 "화면 구성이 굉장히 다이내믹해졌습니다. 신, 장면도 많이 비춰지기도 하고 카메라 각도가 '우리 집 이야기'도 보면 공중에서 지미집이라든가 기타 장비들을 이용해서 보이는 기법들이 많이 적극적으로 도입이 되고 있죠."]

대사 역시 과거 후시녹음 형식을 벗어나 동시 녹음 방식을 택했다.

이는 배우들의 집중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곧 감정연기로도 이어졌다는 평가다.

["언니야! 언니"]

["은정아..."]

그러나 영화 흥행의 중심엔 주인공역을 맡은 백설미의 역할이 있었다는 게 영화 제작소의 주장이다.

촬영 전 백설미는 자신의 근무처로 나오는 강선 제철소를 직접 찾아 현장감을 익히는가 하면 실제 주인공과는 수 개월 동안 함께 생활하며 캐릭터를 분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정화/‘우리 집 이야기’ 실존 인물 : "정말 별에 별걸 다 물었습니다. 그리고 촬영기간 내내 나와 함께 생활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돌보곤 했습니다."]

백설미의 열정은 영화 대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설미/‘우리 집 이야기’ 주인공 이정아 역 : "원래 연출대로는 제가 은정이의 매정함에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그의 뺨을 직접 때리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때리는 것은 감정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백설미의 의견에 감독은 대사까지 변경했다.

["때려요! 왜 못 때려요?"]

이후 백설미는 제15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여자연기상을 수상하며 신예 배우로는 초고속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백설미의 행보를 북한 영화배우의 변화상으로, 북한 영화를 대중성 있는 작품으로 일반화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장마당 등을 통해 이미 수많은 해외 영화와 드라마를 접한 북한의 젊은 세대들에겐 북한 영화와 배우들의 연기가 큰 눈길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시우/2017년 탈북 : "북한 영화가 스토리가 뻔하거든요. 실제 생활이 반영된 걸 많이 영화로 제작해야 되는데 영화가 완전히 당에 충실하고 이런 걸로 만드니까 영화 스토리가 재미 없잖아요. 그러니까 20대들의 그런 마음을 울리지 못하거든요. 주로 지금 많이 보는 영화가 한국 드라마나 미국 영화 이런 거 많이 보죠."]

그럼에도 북한 영화와 영화배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김정은 시대 북한 영화와 드라마가 조금씩이지만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김정은 위원장이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슨 말이냐면 사상적 순결성은 가지면서도 외세의 우수한 것들은 받아내자라는 거거든요. 북한 영화예술의 제작의 지침인 영화예술론의 방향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경우도 관찰이 되고 있고요.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변화를 조금씩 조금씩 꾀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대중의 마음을 틀어쥘 영화를 만들 것을 당부한 김정은 위원장.

남다른 연기력으로 북한 대표 배우가 된 오미란과 주목받는 신예 백설미처럼 앞으로 또 어떠한 배우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을지 북한 영화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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