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건 월경, 티베트 난민의 꿈

입력 2006.12.2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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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얼마 전 설산을 넘던 티베트 인들이 중국군의 총격을 받고 숨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충격을 줬습니다만 이렇게 목숨을 건 티베트 인들의 월경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무날이 넘게 걸리는 고된 여정의 끝은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라는 곳인데요.

티베트인들이 목숨을 걸고 이 다람살라로 향하는 이유, 용태영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도 북부 다람살라... 이른 아침, 운동장에 학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섰습니다.

노래처럼 들리지만 실은 지혜와 배움의 공덕을 찬양하는 불교 기도문입니다. 인도 땅이지만 학생들은 모두 티베트인입니다.

티베트인이 이렇게 인도에 자리잡게 된 사연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0년, 중공군은 티베트를 침공,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티베트는 독립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무시했고 국제사회도 외면했습니다.

1959년에는 대규모 독립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중공군의 진압과정에서 12만 명의 티베트인이 숨졌고 6천여 개의 사원이 파괴됐습니다.

자신의 생명마저 위태로워지자 달라이 라마는 마침내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눈 덮인 히말라야의 산자락 아래, 옹기종기 마을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곳에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티베트 망명정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터뷰>텐진 발린(티베트 망명정부 공보담당) : "티베트 안팎에서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망명정부를 신뢰하고 유일한 대표기구로 인정합니다."

국제사회에 티베트 문제를 알리고 중국과의 협상을 추진하는 것은 망명정부의 가장 중요한 업무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업무는 바로 미래를 위한 교육입니다.

시설은 허름하지만 배움을 향한 학생들의 열기는 뜨겁습니다.

중국이 점령한 티베트에서는 학교마다 중국어로 가르치고 중국 사상을 주입시키지만 여기서는 티베트어와 역사, 전통 문화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단지 이 교육을 받기 위해 티베트에서 국경을 넘어온 학생들도 많습니다.

<인터뷰>타쉬(난민학교 교장서무) : "학생들이 매우 강한 애국적 자세를 갖고 있죠. 아주 적극적으로 배우려합니다."

13살 겔렉도 1년 전에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왔습니다.

눈 속을 걷다가 그만 동상에 걸려서 두 발의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야 했습니다.

<인터뷰>겔렉(13살) : "후회는 없어요. (왜?) 아마도 내 전생의 나쁜 업보 때문인지도 모르죠."

국경을 넘을 때 동상은 흔한 일, 이런 부상으로만 끝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합니다.

지난 9월, 70여 명의 티베트인이 국경을 넘다가 중국군의 총격을 받았습니다.

17살 비구니를 포함해 두 명이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30여 명이 중국군에 잡혔고 나머지만 국경을 넘는 데 성공했습니다.

롭상과 쩨왕도 당시 참사를 겪은 일행 속에 섞여 있었습니다.

<인터뷰>롭상(22살 난민학생) :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냥 달려야만 했어요. 중국인이 계속 총을 쏘았거든요."

달아나는 일행에게도 중국군은 30발 가량의 총을 계속 쏘았다고 합니다.

<인터뷰>째왕(21살 난민학생) : "저도 총에 맞을 수 있었죠. 중국인들은 우리는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무슨 동물처럼 생각했죠."

난민 학교에는 거의 매일 이처럼 새로 온 학생들이 도착합니다.

간단한 짐 보따리만 들고 온 난민들을 학교는 무료로 교육시킬 뿐만 아니라 잠자리도 제공해 줍니다.

학교의 재원은 대부분 국제 사회의 기부금입니다. 이런 교육 기회를 얻고 달라이 라마를 보기 위해 해마다 3천 명 가량의 티베트인이 국경을 넘습니다.

다람살라 남쪽에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궁전이 아니라 티베트 전통 문화를 가르치는 기관으로 이용됩니다.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탕가는 티베트의 독특한 문화 예술입니다.

<인터뷰>우뚭(탕가 화가 지망생) : "아주 완벽하게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싶습니다. 그림에만 온 정신을 집중합니다."

티베트에서는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보존하는 것도 여기 다람살라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탕가에 들어가는 지극한 정성만큼이나 자유를 원하는 티베트인들의 마음은 간절합니다.

하지만,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독립운동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이 비폭력 운동의 중심에는 달라이 라마가 있습니다.

일 년에 두세 번씩, 달라이 라마는 다람살라에서 공개 법회를 엽니다.

40여 년 전 나라를 등져야 했던 달라이 라마, 하지만 표정에는 늘 여유와 미소가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를 직접 보고 법문을 듣기 위해 티베트인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외국인들도 법회에 참석합니다.

<녹취>달라이 라마 : "궁극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행복을 구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원해야 합니다."

폭력 앞에 나라를 빼앗긴 달라이 라마, 하지만 다시 폭력으로 나라를 찾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인터뷰>삼동 린포체(티베트 망명정부 총리) : "비폭력 운동은 전술이 아닙니다. 우리의 운명이고 신념입니다. 종교적 실천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티베트의 독립 대신 자치를 요구하는 수준으로 양보했습니다.
티베트를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진 티베트 난민은 12만여 명...

망명정부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에 들어가 시위를 벌이겠다는 단체도 있습니다.

<인터뷰>라돈 테동(자유티베트 학생동맹 대표) : "항상 위험이 있기 마련이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티베트 운동가들, 하지만 폭력을 사용하는 단체는 없습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른 쭌두는 나라를 찾을 때까지 띠를 풀지 않기로 맹세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인터뷰>쭌두(시인) :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럽습니다. 가슴 속 깊이 아픕니다. 삶에 존엄성이 없습니다. 어딜 가나 외국인이고 불청객이고 이방인입니다. 매우 깊이 고통스럽습니다."

쭌두는 지난 2002년 중국 총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삼엄한 경비를 뚫고 건물 위에서 단독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쭌두 역시 비폭력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동료들 중에는 뜻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쭌두(시인) : "우리는 달라이 라마의 생전에 티베트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내 생각엔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달라이 라마의 나이는 올해로 73살,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주인 그가 떠난다면 혼란에 빠지는 것은 티베트인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과거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인도의 독립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티베트의 비폭력 운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티베트의 미래는 과연 국제사회가 얼마나 진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습니다.

배움을 위해 티베트에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나온 어린이들, 고아 아닌 이들 고아를 위해 다람살라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습니다. 6살부터 16살까지 30여 명이 한 집에 삽니다.

이 남매는 티베트를 떠나 보름 전에 여기에 들어왔습니다.

올해 6살과 7살, 한창 부모의 사랑 받을 때지만 공부를 위해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언제 다시 부모를 만날 수 있을지, 그때까지 얼굴이라도 기억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기숙사에서 빨래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큰 아이들의 몫입니다.

티베트를 떠난 이 어린이들에게는 여기가 가정이고 함께 사는 모두가 한 가족인 셈입니다.

기숙사의 저녁식사는 밀가루 빵과 따뜻한 국물이 전부입니다.

<녹취> 식사 전 기도 : "이 음식을 받게 돼 감사드립니다. 모든 생명이 이처럼 음식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는 어린이 난민들, 이들이 바로 티베트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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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숨건 월경, 티베트 난민의 꿈
    • 입력 2006-12-24 10:17:5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얼마 전 설산을 넘던 티베트 인들이 중국군의 총격을 받고 숨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충격을 줬습니다만 이렇게 목숨을 건 티베트 인들의 월경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무날이 넘게 걸리는 고된 여정의 끝은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라는 곳인데요. 티베트인들이 목숨을 걸고 이 다람살라로 향하는 이유, 용태영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도 북부 다람살라... 이른 아침, 운동장에 학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섰습니다. 노래처럼 들리지만 실은 지혜와 배움의 공덕을 찬양하는 불교 기도문입니다. 인도 땅이지만 학생들은 모두 티베트인입니다. 티베트인이 이렇게 인도에 자리잡게 된 사연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0년, 중공군은 티베트를 침공,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티베트는 독립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무시했고 국제사회도 외면했습니다. 1959년에는 대규모 독립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중공군의 진압과정에서 12만 명의 티베트인이 숨졌고 6천여 개의 사원이 파괴됐습니다. 자신의 생명마저 위태로워지자 달라이 라마는 마침내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했습니다. 눈 덮인 히말라야의 산자락 아래, 옹기종기 마을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곳에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티베트 망명정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터뷰>텐진 발린(티베트 망명정부 공보담당) : "티베트 안팎에서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망명정부를 신뢰하고 유일한 대표기구로 인정합니다." 국제사회에 티베트 문제를 알리고 중국과의 협상을 추진하는 것은 망명정부의 가장 중요한 업무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업무는 바로 미래를 위한 교육입니다. 시설은 허름하지만 배움을 향한 학생들의 열기는 뜨겁습니다. 중국이 점령한 티베트에서는 학교마다 중국어로 가르치고 중국 사상을 주입시키지만 여기서는 티베트어와 역사, 전통 문화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단지 이 교육을 받기 위해 티베트에서 국경을 넘어온 학생들도 많습니다. <인터뷰>타쉬(난민학교 교장서무) : "학생들이 매우 강한 애국적 자세를 갖고 있죠. 아주 적극적으로 배우려합니다." 13살 겔렉도 1년 전에 티베트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왔습니다. 눈 속을 걷다가 그만 동상에 걸려서 두 발의 발가락을 모두 잘라내야 했습니다. <인터뷰>겔렉(13살) : "후회는 없어요. (왜?) 아마도 내 전생의 나쁜 업보 때문인지도 모르죠." 국경을 넘을 때 동상은 흔한 일, 이런 부상으로만 끝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합니다. 지난 9월, 70여 명의 티베트인이 국경을 넘다가 중국군의 총격을 받았습니다. 17살 비구니를 포함해 두 명이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30여 명이 중국군에 잡혔고 나머지만 국경을 넘는 데 성공했습니다. 롭상과 쩨왕도 당시 참사를 겪은 일행 속에 섞여 있었습니다. <인터뷰>롭상(22살 난민학생) :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냥 달려야만 했어요. 중국인이 계속 총을 쏘았거든요." 달아나는 일행에게도 중국군은 30발 가량의 총을 계속 쏘았다고 합니다. <인터뷰>째왕(21살 난민학생) : "저도 총에 맞을 수 있었죠. 중국인들은 우리는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어요. 무슨 동물처럼 생각했죠." 난민 학교에는 거의 매일 이처럼 새로 온 학생들이 도착합니다. 간단한 짐 보따리만 들고 온 난민들을 학교는 무료로 교육시킬 뿐만 아니라 잠자리도 제공해 줍니다. 학교의 재원은 대부분 국제 사회의 기부금입니다. 이런 교육 기회를 얻고 달라이 라마를 보기 위해 해마다 3천 명 가량의 티베트인이 국경을 넘습니다. 다람살라 남쪽에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궁전이 아니라 티베트 전통 문화를 가르치는 기관으로 이용됩니다.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탕가는 티베트의 독특한 문화 예술입니다. <인터뷰>우뚭(탕가 화가 지망생) : "아주 완벽하게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싶습니다. 그림에만 온 정신을 집중합니다." 티베트에서는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보존하는 것도 여기 다람살라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탕가에 들어가는 지극한 정성만큼이나 자유를 원하는 티베트인들의 마음은 간절합니다. 하지만,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독립운동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이 비폭력 운동의 중심에는 달라이 라마가 있습니다. 일 년에 두세 번씩, 달라이 라마는 다람살라에서 공개 법회를 엽니다. 40여 년 전 나라를 등져야 했던 달라이 라마, 하지만 표정에는 늘 여유와 미소가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를 직접 보고 법문을 듣기 위해 티베트인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외국인들도 법회에 참석합니다. <녹취>달라이 라마 : "궁극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행복을 구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원해야 합니다." 폭력 앞에 나라를 빼앗긴 달라이 라마, 하지만 다시 폭력으로 나라를 찾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인터뷰>삼동 린포체(티베트 망명정부 총리) : "비폭력 운동은 전술이 아닙니다. 우리의 운명이고 신념입니다. 종교적 실천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티베트의 독립 대신 자치를 요구하는 수준으로 양보했습니다. 티베트를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진 티베트 난민은 12만여 명... 망명정부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에 들어가 시위를 벌이겠다는 단체도 있습니다. <인터뷰>라돈 테동(자유티베트 학생동맹 대표) : "항상 위험이 있기 마련이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티베트 운동가들, 하지만 폭력을 사용하는 단체는 없습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른 쭌두는 나라를 찾을 때까지 띠를 풀지 않기로 맹세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인터뷰>쭌두(시인) :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럽습니다. 가슴 속 깊이 아픕니다. 삶에 존엄성이 없습니다. 어딜 가나 외국인이고 불청객이고 이방인입니다. 매우 깊이 고통스럽습니다." 쭌두는 지난 2002년 중국 총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삼엄한 경비를 뚫고 건물 위에서 단독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쭌두 역시 비폭력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동료들 중에는 뜻을 달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쭌두(시인) : "우리는 달라이 라마의 생전에 티베트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내 생각엔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어떤 수단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달라이 라마의 나이는 올해로 73살,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주인 그가 떠난다면 혼란에 빠지는 것은 티베트인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과거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인도의 독립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티베트의 비폭력 운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티베트의 미래는 과연 국제사회가 얼마나 진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습니다. 배움을 위해 티베트에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나온 어린이들, 고아 아닌 이들 고아를 위해 다람살라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습니다. 6살부터 16살까지 30여 명이 한 집에 삽니다. 이 남매는 티베트를 떠나 보름 전에 여기에 들어왔습니다. 올해 6살과 7살, 한창 부모의 사랑 받을 때지만 공부를 위해 부모 곁을 떠났습니다. 언제 다시 부모를 만날 수 있을지, 그때까지 얼굴이라도 기억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기숙사에서 빨래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큰 아이들의 몫입니다. 티베트를 떠난 이 어린이들에게는 여기가 가정이고 함께 사는 모두가 한 가족인 셈입니다. 기숙사의 저녁식사는 밀가루 빵과 따뜻한 국물이 전부입니다. <녹취> 식사 전 기도 : "이 음식을 받게 돼 감사드립니다. 모든 생명이 이처럼 음식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는 어린이 난민들, 이들이 바로 티베트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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