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런던 화재 참사…무능한 정부에 분노

입력 2017.06.24 (21:48) 수정 2017.06.2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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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현지시간 지난 14일 새벽, 영국 런던 고층 아파트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이 넘을 거란 우려 속에 시민들의 분노가 현 보수당 정부를 향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제기돼온 오래된 고층아파트에 대한 안전기준 강화 요구를 묵살한 데 따른 '인재'라는 지적에 참사 이후 무성의한 태도에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연이은 테러와 대형 참사 속에 메이 총리는 최대 위기를 맞았고, 브렉시트 협상도 동력이 약화된 채 시작됐습니다.

런던 김덕원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런던 아파트 화재 현장 인근의 구청 건물입니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강제로 문을 열고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갑니다.

건물 진입을 막아선 경찰들과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부상자도 속출합니다.

<녹취>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

주민들은 불이 난 이후 정부의 대처가 너무나 무성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화재로 오갈데 없어진 생존자들의 거처 마련은 물론 실종자를 찾아 병원을 헤매는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인터뷰> 실종자 가족 : "(실종자를 찾으려고) 병원을 전전하고 있어요. 왜 실종자 찾는것을 도와주지 않죠? 왜 우리가 찾아 헤메야 하죠?"

메이 총리가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를 방문했다는 소식은 분노한 주민들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그동안 실종자 가족을 외면해 온 메이 총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뒤 억지로 찾아온 것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메이 총리는 경호를 받으며 황급히 자리를 뜨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녹취> "겁쟁이!"

런던 시민들은 아예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번 참사는 보수당 정부의 긴축과 탈규제 정책 그리고 복지 예산 삭감이 불러온 참사라고 주장했습니다.

국회의사당을 거쳐 총리공관 앞 거리를 점거한 채 보수당과 메이 총리를 비판했습니다.

<인터뷰> 제시(런던 시민) : "사람들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고 있어요. 정말 상황이 안 좋아요."

메이 총리는 5백만 파운드, 우리 돈 72억여 원 지원과 진상 규명 등을 약속했지만 성난 민심 수습에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분석입니다.

<녹취> BBC 기자 : "총리는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과 분노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깨달았을 때 주민들은 당신을 겁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무엇보다 이번 참사가 예고된 인재라는 분석 때문입니다.

불이 시작된 직후의 아파트 모습입니다.

4층에서 시작된 불은 건물 가운데 기둥을 타고 순식간에 옥상까지 번졌습니다.

<인터뷰> 목격자 : "저층에서 옥상까지 불이 쭉 올라갔어요. 건물 전체로 번지는 데 30분도 안 걸렸어요."

최근 리모델링을 하면서 외벽에 알루미늄 단열재를 붙였는데, 위아래로 연결된 이 외장재가 불길이 번지는 통로가 된 겁니다.

<인터뷰> 영국 화재 전문가 : "(외장재는) 층마다 방화 장치가 있거나 불에 타지 않는 재질이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불이 번지는 굴뚝 역할을 하게 됩니다."

화재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인명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바로 건물 외장재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방당국이 불이 나면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안내판을 설치했던 점, 스프링클러가 없는 가운데 화재경보기가 먹통이었다는 것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인터뷰> 유세프 칼라우드(생존자) :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죠. 그런데도 화재 경보기는 울리지 않았어요."

사망자가 백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 속에 희생자들의 사연은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3년 전 영국에 온 대학생 모하메드.

토목 공학을 공부해 언젠가는 시리아로 돌아가 안전한 고국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 왔습니다.

그러다 화재 당일 14층에서 불길을 뚫고 동생과 탈출을 시도하다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하쉠(모하메드 동생) : "형이 왜 나를 두고 갔느냐고 (전화로) 말했어요. 난 형이 같이 나온 줄 알았어요."

17층에 살던 화목했던 일가족은 모두 세상을 등져야 했습니다.

다음 달 결혼식을 앞둔 막내 후즈나는 엄습한 죽음의 공포를 이겨보려고 사촌에게 전화한 게 세상과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인터뷰> 후즈나 사촌 : "구조대에게 전화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뭐지? 하고 말을 멈췄어요. 수화기 너머로 뭔가 타는 소리가 들렸고, 전화는 연결되어 있었지만 후즈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어요."

화재 발생 10여 일째.

그러나 불에 탄 아파트 내부의 붕괴 우려 등으로 인해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시신의 수는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신이 수습되더라도 화재 당시의 고열 등으로 인해 신원 확인이 영원히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살슨(실종자 가족) : "형제들과 매일 병원을 돌아다녀요. 그런데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어요."

올 들어 발생한 네 번의 테러와 총선 과반 실패 이후 벌어진 대형 화재 참사.

특히 국민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 속에 보수당 내에서도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국민으로부터의 신뢰와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메이 총리가 영국의 운명을 결정할 브렉시트 협상을 과연 잘 이끌고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김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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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리포트] 런던 화재 참사…무능한 정부에 분노
    • 입력 2017-06-24 22:15:14
    • 수정2017-06-24 22:27:28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멘트>

현지시간 지난 14일 새벽, 영국 런던 고층 아파트 화재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이 넘을 거란 우려 속에 시민들의 분노가 현 보수당 정부를 향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제기돼온 오래된 고층아파트에 대한 안전기준 강화 요구를 묵살한 데 따른 '인재'라는 지적에 참사 이후 무성의한 태도에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연이은 테러와 대형 참사 속에 메이 총리는 최대 위기를 맞았고, 브렉시트 협상도 동력이 약화된 채 시작됐습니다.

런던 김덕원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런던 아파트 화재 현장 인근의 구청 건물입니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강제로 문을 열고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갑니다.

건물 진입을 막아선 경찰들과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부상자도 속출합니다.

<녹취>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

주민들은 불이 난 이후 정부의 대처가 너무나 무성의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화재로 오갈데 없어진 생존자들의 거처 마련은 물론 실종자를 찾아 병원을 헤매는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인터뷰> 실종자 가족 : "(실종자를 찾으려고) 병원을 전전하고 있어요. 왜 실종자 찾는것을 도와주지 않죠? 왜 우리가 찾아 헤메야 하죠?"

메이 총리가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거처를 방문했다는 소식은 분노한 주민들을 더욱 자극했습니다.

그동안 실종자 가족을 외면해 온 메이 총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뒤 억지로 찾아온 것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메이 총리는 경호를 받으며 황급히 자리를 뜨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녹취> "겁쟁이!"

런던 시민들은 아예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번 참사는 보수당 정부의 긴축과 탈규제 정책 그리고 복지 예산 삭감이 불러온 참사라고 주장했습니다.

국회의사당을 거쳐 총리공관 앞 거리를 점거한 채 보수당과 메이 총리를 비판했습니다.

<인터뷰> 제시(런던 시민) : "사람들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고 있어요. 정말 상황이 안 좋아요."

메이 총리는 5백만 파운드, 우리 돈 72억여 원 지원과 진상 규명 등을 약속했지만 성난 민심 수습에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분석입니다.

<녹취> BBC 기자 : "총리는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과 분노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깨달았을 때 주민들은 당신을 겁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무엇보다 이번 참사가 예고된 인재라는 분석 때문입니다.

불이 시작된 직후의 아파트 모습입니다.

4층에서 시작된 불은 건물 가운데 기둥을 타고 순식간에 옥상까지 번졌습니다.

<인터뷰> 목격자 : "저층에서 옥상까지 불이 쭉 올라갔어요. 건물 전체로 번지는 데 30분도 안 걸렸어요."

최근 리모델링을 하면서 외벽에 알루미늄 단열재를 붙였는데, 위아래로 연결된 이 외장재가 불길이 번지는 통로가 된 겁니다.

<인터뷰> 영국 화재 전문가 : "(외장재는) 층마다 방화 장치가 있거나 불에 타지 않는 재질이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불이 번지는 굴뚝 역할을 하게 됩니다."

화재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인명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바로 건물 외장재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방당국이 불이 나면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안내판을 설치했던 점, 스프링클러가 없는 가운데 화재경보기가 먹통이었다는 것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인터뷰> 유세프 칼라우드(생존자) :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죠. 그런데도 화재 경보기는 울리지 않았어요."

사망자가 백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 속에 희생자들의 사연은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습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3년 전 영국에 온 대학생 모하메드.

토목 공학을 공부해 언젠가는 시리아로 돌아가 안전한 고국을 만들겠다는 꿈을 키워 왔습니다.

그러다 화재 당일 14층에서 불길을 뚫고 동생과 탈출을 시도하다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하쉠(모하메드 동생) : "형이 왜 나를 두고 갔느냐고 (전화로) 말했어요. 난 형이 같이 나온 줄 알았어요."

17층에 살던 화목했던 일가족은 모두 세상을 등져야 했습니다.

다음 달 결혼식을 앞둔 막내 후즈나는 엄습한 죽음의 공포를 이겨보려고 사촌에게 전화한 게 세상과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인터뷰> 후즈나 사촌 : "구조대에게 전화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뭐지? 하고 말을 멈췄어요. 수화기 너머로 뭔가 타는 소리가 들렸고, 전화는 연결되어 있었지만 후즈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어요."

화재 발생 10여 일째.

그러나 불에 탄 아파트 내부의 붕괴 우려 등으로 인해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시신의 수는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신이 수습되더라도 화재 당시의 고열 등으로 인해 신원 확인이 영원히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살슨(실종자 가족) : "형제들과 매일 병원을 돌아다녀요. 그런데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어요."

올 들어 발생한 네 번의 테러와 총선 과반 실패 이후 벌어진 대형 화재 참사.

특히 국민들의 슬픔을 어루만지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 속에 보수당 내에서도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 협상이 시작됐습니다.

국민으로부터의 신뢰와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메이 총리가 영국의 운명을 결정할 브렉시트 협상을 과연 잘 이끌고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김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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